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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오일장 풍경. 청정바다에서 건진 해산물이 지천이다.
 완도오일장 풍경. 청정바다에서 건진 해산물이 지천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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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땅 해남과 완도를 잇는 13번 국도가 시원스레 뚫렸다. 여명을 받은 완도항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앞으로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바다가 펼쳐진다. 전복·김 등 싱싱한 갯것을 사철 후하게 내주는 완도 바다다.

지난 10일, 잠시 숨을 고르고 완도오일장으로 향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완도항 건너편 완도농업기술센터 아래쪽에 있다.

시장은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그 길에 난장을 펼친 할머니들이 올망졸망 앉아있다. 오일장의 보물이다. 길손을 먼저 반기는 건 어물전의 간자미다. 먹거리가 귀한 추운 겨울에 제 맛을 내는 계절음식이다.

해조류 4총사, 여기 있습니다

완도장터의 간자미. 이맘때 가장 맛있는 계절음식이다.
 완도장터의 간자미. 이맘때 가장 맛있는 계절음식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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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류 사총사. 물김과 파래, 매생이, 감태가 한데 모여 있다.
 해조류 사총사. 물김과 파래, 매생이, 감태가 한데 모여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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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잡은 간자미를 잘게 썰어. 글고 미나리, 오이를 넣고 고추장에 무쳐 먹어봐. 오돌오돌한 물렁뼈가 매콤한 양념과 함께 독특한 맛을 낸디, 죽여줬제. 근디 요즘은 옛날 맛이 안 나. 순전히 양념 맛이제. 이상하제."

주도리에서 왔다는 젊은 아낙네와 일부댁 할머니가 안타까워한다. 간자미와 함께 장터를 주름 잡고 있는 것은 감태다. 매생이 파래와 함께 남도를 대표하는 갯것이다.

"거 뭐시냐. 영양분이 엄청나게 많다고 하대. 피부에도 좋고, 담배 피우는 사람에게 더 좋다고 하던디..."

함지박에 고막·톳·굴을 담아 놓고 파는 김말자 할머니의 말이다. 할머니의 함지박엔 매생이, 파래·감태·물김도 가지런히 놓여있다. 이들 해조류 4총사를 한 곳에서 보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완도장 풍경. 어물전마다 제 철을 맞은 숭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완도장 풍경. 어물전마다 제 철을 맞은 숭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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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에 소주 한 잔. 할아버지들이 장터 한쪽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전어에 소주 한 잔. 할아버지들이 장터 한쪽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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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어디선가 굉음이 들린다. 냉동된 동태 궤짝을 바닥에 내리치는 소리다. 천둥소리에 가깝다. 그 소리에 보행기에 탄 아이가 자지러진다. 숨죽이고 있던 숭어도 덩달아 요동을 친다.

"오메. 이 잡것들이 어째 이런다냐. 콱 맥떼기를 짚어 불랑께."

할머니의 소리를 듣기라도 한 걸까. 난장을 헤집던 숭어가 이내 아가미를 벌리며 거친 숨을 몰아쉰다. 그러고 보니 가는 곳마다 숭어다. 발길에 치이는 게 숭어다.

"그랑께 겨울 숭어를 '눈먼 숭어'라고 하제. 이 눈 좀 봐봐. 흐리멍텅 하제. 그래도 맛은 좋아. 포 떠 갖고 냉장고에 살짝 넣었다가 묵으믄 정말 맛있어."

먹는 방법까지 알려주는 할머니의 마음이 정겹다.

장터를 어슬렁거리는데 진한 전어구이 냄새가 흘러든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그 구수함이다.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따라 간다. 할아버지 셋이서 소주를 마시고 있다. 샛서방한테만 준다는 딱돔도 노릇노릇 익고 있다.

"엄한 데 돈 쓰지 말고, 오일장이나 고쳤으면 좋것어"

완도장 풍경. 한 아낙네가 파래를 씻고 있다.
 완도장 풍경. 한 아낙네가 파래를 씻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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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장터 풍경. 완도장의 명물이 된 용칠아제가 장터 아낙네에 생선을 건네고 있다.
 완도장터 풍경. 완도장의 명물이 된 용칠아제가 장터 아낙네에 생선을 건네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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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점 하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나물에 손길이 먼저 간다. 칼칼하고 맛깔난다. 졸깃하게 씹히는 질감도 좋다. 입이 호강을 한다.

"모리여. 완도에서 나오는 것인디. 톳이 나오고 이맘때 이 잡것이 나오제. 추운 겨울 반짝 선을 보이고 사라져. 이 잡것을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나가도 모른당께."

점심시간이 지나자 시끌벅적했던 장터도 고요해졌다. 적막감마저 감돈다. 어물전 난장을 벌였던 아낙네들도 자리를 뜬지 오래다. 빈자리도 하나둘씩 늘어간다. 물건을 쌓아두고 트럭에서 낮잠을 자는 사람도 보인다. 좌판에 물건을 펼쳐놓고 담벼락에 기대 잠을 청한 할머니도 보인다.

한쪽에서는 윷판이 벌어졌다. 점심내기 윷판이라는데, 끝날 줄을 모른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눈빛도 진지하다.

"엄한 데 돈 쓰지 말고, 우리 오일장 좀 고쳤으면 좋겄어. 쉼터라도 하나 만들면 얼매나 좋아."

갈수록 쇠퇴해가는 오일장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윷판에 모인 어르신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완도장터 풍경. 점심시간을 넘기면서 장터가 한산해지고 장꾼도 졸고 있다.
 완도장터 풍경. 점심시간을 넘기면서 장터가 한산해지고 장꾼도 졸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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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도 발행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완도장, #재래시장, #해조류사총사, #용칠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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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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