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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에서 총리와 장관 등 고위 직책을 맡을 인물들의 자격여부를 검증하는 국회청문회가 진행되는 내내 이상한 자괴감에 시달렸다. 그것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진작부터 내 자괴감에 관한 글을 하나 써볼까 하는 생각에도 나는 시달렸다. 쓰는 것도 괴롭고 쓰지 않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내 자괴감에 스스로 기름을 붓지 않기 위해 계속 미루다가 결국은 부끄러운 고백을 하기로 했다.

가난한 삶을 추구해 왔지만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무기중개업체 로비스트 경력과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무기중개업체 로비스트 경력과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등 각종 의혹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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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골에서 살고 있지만 땅 한 평도 갖고 있지 못하다. 땅을 가져본 경험이 한 번도 없다. 서울의 어떤 친구들은 줄곧 시골에서 살고 있는 나를 '농민'으로 본다. 가진 땅에 농사도 짓고 사는 것으로 오해들을 한다. 젊은 시절 농사 경험은 해봤다. 밭에 작물도 심어보고, 작은 규모였지만 양계도 해보고 토끼와 염소도 길러봤다. 그러나 땅은 가져보지 못했다.

내 조부는 땅을 많이 가진 부농이었다고 한다. 내 증조부는 경복궁을 새로 짓는 대원군에게 많은 돈을 기부하고 '통정대부'라는 작호를 얻었다고 했다. 그 정도로 여유 있는 집안이었다. 하지만 이른 나이에 가장이 된 백부께서 재산을 모두 잃었다. 그 바람에 내 선친은 빈손으로 제금을 나야 했다. 백부는 그래도 정미소를 운영하며 비교적 풍족하게 사셨지만 내 선친은 평생 동안 애옥살이를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선친은 생전에 한 번도 자신의 형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형님에게 뭔가를 따지고 요구하는 선친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내 선친은 평생 동안 땅 한 평 가져보지 못하고 사시다가 별세하셨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선친께서는 사후에나마 두어 평의 땅을 차지하고 누워 계시지만, 나는 사후에도 전혀 땅을 갖지 않기 위해 일찍이(1995년) 안구와 장기 기증 다음에 시신 기증까지 했다. 아내도 내 뜻에 따랐다.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땅 한 평도 갖지 않으려는 의지는 오롯하다.

몇 년 전 사촌형님 한 분이 선영이 있는 마을의 한 산자락에 박혀 있는 조상의 땅을 용케 찾아내어 처분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도 나는 일체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형님이 먼저 그 사실을 내게 말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했지만 그 기대도 접었다. 처음부터 있는지조차 몰랐던 땅이니 나와는 상관없는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실을 나보다 먼저 아신 모친이 내 태도를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여러 번 타박과 푸념을 하시기도 했지만, 나는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다.

언젠가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한 친구가 내게 땅 투기를 권유했다. 나를 도우려는 뜻이었다. 자신이 장래성을 보고 땅을 사려고 하니 돈을 좀 보태라는 얘기였다. 나는 고마운 뜻을 표하면서도 도리질을 했다. 평생 동안 한 평의 땅도 갖지 않고 살려는 뜻을 말했고, 사후에도 땅을 갖지 않게 된 사실도 말해 주었다. 자연의 요체인 땅만큼은 하느님의 것으로 남겨두는 게 옳다는 내 생각도 말했고, 사람은 땅을 가지는 만큼 하느님께로 가는 길은 더욱 어려워지리라는 요상하게 들릴 말도 했다.

가난과 무능의 관계

어쨌거나 나는 부동산 투기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보지 않고 평생을 살아왔다.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등기에도 올라 있지 않은 옴팡집을 처분하고 23평짜리 연립주택을 장만하여 결혼을 하고 살다가 2006년 지금 살고 있는 32평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러니까 시골 동네의 32평 아파트 한 채가 내 재산의 전부다.

23평 연립주택에 살 때는 가족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사람의 '밑 빠진 독'에 계속 물 붓기를 하다가 내 집을 담보로 은행 빚까지 얻어준 탓에 법원 경매로 넘어간 집을 되찾느라 눈물겨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렇게 집 한 채만 겨우 건사하며 부동산 투기라는 것은 한 번 해본 적도 없고 관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으니, '위장전입'이라는 것은 뭔지도 모르는 숙맥이다. 부동산 투기도 위장전입도 그저 남들 얘기로만 알고 살아왔으니 숙맥도 그런 숙맥이 없을 것이다.

그런 숙맥이긴 해도 제 나이에 병역의무를 잘 완수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들도 가르쳐봤고, 베트남 전장에서 정글도 기어봤고, 최전방에서 철책선 근무도 해봤다. 두 동생도 병역의무를 잘 완수했고, 내 아들 녀석도 병역을 마쳤다. 또 두 조카 녀석은 현재 입영을 준비 중이다.

병역기피라는 것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게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지만, 병역기피가 병역면제로 둔갑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출세가도를 힘차게 잘 달리며 승승장구하는 건강한 사람들이 도대체 몸에 무슨 문제가 있었기에 병역면제를 받았고, 병역면제 이후에는 왜 아무런 건강 장애를 겪지 않는지 신기할 뿐이었다.

탈세라는 것도 내게는 별 천지 얘기다. 오종종한 살림에 탈세를 하고 어쩌고 할 건덕지도 없다. 삼류작가 신세지만 어쩌다 원고료 수입이라는 게 있는데, 쥐꼬리 만한 고료에는 으레 원천징수라는 게 붙는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의 월급에서는 매월 세금이 떼이는 모양인데, 지난 2월 세금 정산 때는 무려 2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세금으로 돌려주어야 했다.

이렇게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병역기피, 세금탈루 등 네 가지 사항 중 여태까지 한 가지도 해본 것이 없으니, 너무도 못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몰골이다. 게다가 이런 겸연쩍은 얘기를 퍼질러대고 앉아 있으니, 아예 부끄러움도 모르는 위인이 아닐지 모르겠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하늘 우러르는 것을 제일로 여겨왔다.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어찌 살 수 있을까마는 '하늘의 눈을' 늘 의식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조금은 '떳떳하다'는 생각을 슬며시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은 떳떳치 못하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병역기피, 세금탈루 중에서 평생 동안 한 가지도 해보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은 그대로 주변머리 없고 오종종하고 꾀죄죄한 형색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 무능을 증명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절로 기가 죽고 참담한 심정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이상하게 내 아이들에게도 부끄럽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없다. 대학까지 가르치기는 했지만,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녀석들에게 물려줄 것이라곤 시골의 집 한 채 뿐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 스스로 제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옳지만, 능력 없는 아비로서는 미안한 마음도 크다.

위법이나 의혹들도 결국은 '능력'이 되는 세상

박근혜 정부의 요직에 앉았거나 앉으려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도 화려하고 찬란하다. 국회 청문회에서(또는 청문회 전에) 문제가 된 인사들의 갖가지 의혹 덩어리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들인가를 알 수 있다. 그 의혹들과 위법 사실들은 그들에게 전혀 문제가 아니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다.

그들의 그 의혹들은 그들이 향유해온 '특권층의 테두리'를 실감케 한다. 그 테두리 밖에서 살아온 우리네 서민들로서는 그저 부럽기도 하다. 사실은 감탄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저런 비판들이 기승하기도 하지만, 잘난 사람들의 위풍당당한 행진을 시샘하는 짓으로 폄하될 수도 있다.

부동산 투기도, 위장전입도, 병역기피도, 세금탈루도, 또 그 밖의 갖가지 의혹들도 실은 별 문제가 아니다. 뭐가 어찌 됐건 결국은 높은 자리에 앉는 것으로 귀착이 된다. 그 어떤 위법이나 문제가 되는 사안이라도 얼마든지 덮어버리거나 깔아뭉갤 수가 있다.

박근혜의 섣부른 청문회 타박이 다방면으로 능력 있는 인재들의 기를 세워준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청문회 무용론'도 생겨나리라는 생각이 든다. 청문회가 인재들의 길을 막는다는 박근혜식 비판론과 함께, 청문회에서 아무리 문제와 의혹들을 검증하고 확인한다 해도 결국은 그것으로 끝나게 되니 청문회가 필요 없다는 비관론도 자리를 잡을 것 같다.

그래서 저 기득권의 성채는 더욱 강고해질 것이다. 저 능력 있는 인사들이 자신들의 능력과 조건에 부합하는 일을 충실히 잘 했으니 그것 역시 능력의 소산일시 분명하다. 국회 청문회에서 무슨 말이 오가고 세상이 뭐라 한들 그들의 능력이 위축되거나 소멸될 수는 없다. 갖가지 의혹과 문제들을 안고서도 버젓이 고위직에 오를 수 있으니, 그것은 세상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결국 나 같은 서민 나부랭이, 소졸한 위인은 그저 내 무능이나 탓하고 자책하며 운전 과속으로 범칙금을 몇 번 문 것 외로는 위법이나 범법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내 오종종하고 꾀죄죄한 삶을 놓고 회한이라는 초를 쳐서 반추하는 수밖에 없다. 제기럴!


태그:#국회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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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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