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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부터 관덕정과 제주목관아 일대는 제주의 중심지였다.
 예부터 관덕정과 제주목관아 일대는 제주의 중심지였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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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이 사라져 버린 관덕정이 문화가 살아 있는 제주의 명소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광장이 사라져 버린 관덕정이 문화가 살아 있는 제주의 명소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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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천을 출발하여 동문시장을 둘러보고 오현단을 거쳐 관덕정까지 걸으니 여행도 거의 막바지다. 갑오개혁을 주도했던 김윤식이 유배생활을 했다는 외환은행 앞 표지석을 느긋하게 읽어보고 횡단보도를 건넜다.

쭉 뻗어 있는 4차선의 넓은 대로가 휘어지는 끝에 육중한 옛 건물 한 채가 보인다. 관덕정이다. 얼핏 보아도 제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웅장한 규모의 건물이다. 다만 천장이 낮고 깊숙하여 그 안은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서울에 경복궁과 광화문이 있다면 제주에는 제주 목관아와 관덕정이 있는 셈이다. 그만큼 이곳은 예부터 역사·문화·행정 등 제주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관덕정은 사방이 탁 트인 누각으로 앞면 5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이다.
 관덕정은 사방이 탁 트인 누각으로 앞면 5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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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덕정의 옛 모습, 지금보다 긴 처마가 인상적이다.
 관덕정의 옛 모습, 지금보다 긴 처마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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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관아 건물이다. 세종 30년(1448)에 당시 목사였던 신숙청이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창건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와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69년 보수한 것으로 원래의 건축 수법은 17세기 전후의 것으로 추정한다. 원래 관덕정은 처마가 길었으나 1924년 보수 때 일제가 15척 이상 나온 처마를 2척 이상 잘라버려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고 말았다.

관덕(觀德)이란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라는 <예기>의 글귀에서 유래했다. 관덕정에는 '관덕정', '호남제일정', '탐라형승' 등 세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청음 김상헌이 쓴 <남사록>에는 창건 당시의 현판은 제주 출신 고득종이 간청하여 안평대군이 써준 것이었으나 어느 때인가 불에 타서 없어지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가 쓴 현판이 지금 걸려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관덕(觀德)이란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라는 <예기>의 글귀에서 유래했다.
 관덕(觀德)이란 '사자소이관성덕야(射者所以觀盛德也,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보는 것이다)라는 <예기>의 글귀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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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덕정에는 호남제일정, 탐라형승 등의 글씨가 있는데 아계 이산해의 글씨로 추정하고 있다.
 관덕정에는 호남제일정, 탐라형승 등의 글씨가 있는데 아계 이산해의 글씨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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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상의 <탐라순력도>를 보면 숙종 18년(1702)에 활쏘기 전에 관덕정 앞에 정렬해 있는 모습인 제주사회(濟州射會), 진상에 필요한 말을 각 목장에서 징발하여 제주목사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공마봉진(貢馬封進), 소과 초시에 해당하는 시험인 승보시의 광경을 담은 승보시사(陞補試士) 등의 그림을 볼 수 있다.

관덕정 앞에서는 이처럼 활쏘기 등 각종 행사가 벌어졌던 것이다. 옛사람들에게 있어 활쏘기는 단순한 무술을 넘어 육예(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의 하나였다. 이곳에서 관이 주도하는 각종 행사가 열렸고 그 대표적인 행사가 활쏘기였기 때문에 관덕정이라는 현판이 달린 것이다.

관덕정은 앞면 5칸, 옆면 4칸의 팔작지붕이다. 바닥의 앞면 1칸은 마루를 깔지 않고 2중 기단의 바닥으로 그대로 두고 뒷면 3칸만 우물마루를 깔았다. 시원하게 펼쳐진 마루와 한 줄로 쭉 늘어선 기둥들이 건물의 위엄을 더한다.

 바닥의 앞면 1칸은 마루를 깔지 않고 2중 기단의 바닥으로 그대로 두고 뒷면 3칸만 우물마루를 깔았다.
 바닥의 앞면 1칸은 마루를 깔지 않고 2중 기단의 바닥으로 그대로 두고 뒷면 3칸만 우물마루를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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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덕정 내에는 모두 7점의 벽화가 있으나 아쉽게도 낡고 훼손되어 흐릿하다.
 관덕정 내에는 모두 7점의 벽화가 있으나 아쉽게도 낡고 훼손되어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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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 대들보 아래 창방을 보면 벽화가 있다. 세월이 흘러 워낙 낡고 훼손되어 벽화 부분이 허옇게 보인다. 벽화는 모두 7점으로 네 늙은이가 바둑을 두는 상산사호(商山四皓), 두보의 시구를 소재로 제주의 특산물인 귤을 노래한 취과양주귤만교(醉過楊州橘滿轎), 소식의 적벽대첩도(赤壁大捷圖), 제갈량의 진중서성탄고도(陣中西城彈琴圖), 한의 유방과 초의 항우를 주제로 한 홍문연(鴻門宴), 그리고 대수렵도(大狩獵圖), 십장생도(十長生圖) 등이다.

관덕정 앞에는 돌하르방 두 기가 서 있다. 키가 2m가 훌쩍 넘는 돌하르방은 한눈에 봐도 근엄하고 위엄이 넘친다. 부리부리한 눈에 굳은 표정을 하고 있어 읍성과 관아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쉽게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다만 조금은 기운 듯한 고개와 살짝 비뚤게 걸친 듯한 벙거지, 기이할 정도로 긴 상체와 직각을 이룬 팔꿈치의 부조화가 살짝 웃음을 머금게 한다. 관덕정 뒤 선덕대에도 두 기가 있는데 엷은 미소를 짓고 있어 인상이 한결 더 부드럽다.

 관덕정의 돌하르방은 모두 네 기로, 제주의 옛 돌하르방 47기 중 가장 명작으로 꼽힌다. 앞쪽의 돌하르방이 각기 216cm, 213cm이고, 뒤뜰의 것은 171cm, 146cm이다.
 관덕정의 돌하르방은 모두 네 기로, 제주의 옛 돌하르방 47기 중 가장 명작으로 꼽힌다. 앞쪽의 돌하르방이 각기 216cm, 213cm이고, 뒤뜰의 것은 171cm, 146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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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외대문 왼쪽에는 하마비가 있고 오른쪽 관덕정 앞으로는 기간지주가 있다. 기간지주는 우리가 흔히 보는 사찰의 당간지주와 같은 생김으로 제주목사의 상징인 노란 황수기를 달아두는 기둥이다.

관덕정 뒤에는 '선덕대'라는 글씨를 새긴 단이 있다. 본래 탐라국 시절에 북두칠성 모양을 본떠 '칠성대'라는 제단을 월대 형식으로 쌓았는데, 1735년 부임한 김정 목사가 이 월대를 고쳐 쌓고는 그 이름을 '선덕대'라 했다. 예전 탐라국 시절이나 조선시대에 이곳이 제주의 중심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관덕정 뒤 선덕대는 이곳이 옛 제주의 중심임을 말하고 있다.
 관덕정 뒤 선덕대는 이곳이 옛 제주의 중심임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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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 일대는 제주의 심장 같은 공간이다. 1901년 신축년농민항쟁(이재수의 난) 당시 장두였던 이재수가 이곳 광장에서 효수되었고, 1947년 3월 1일의 삼일절 기념행사가 이곳에서 열려 이후 4·3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다. 4·3 사건의 무장유격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가 처형되어 그의 시신이 며칠 동안 이곳 광장에 내걸려 있기도 했다. 새삼 관덕정을 지을 때 상량식만 하면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지나가던 비범한 중이 가르쳐준 대로 죽은 솥장수를 희생으로 지었다는 전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에도 관덕정은 제주의 중심이었다. 또한 5일장인 성내장이 이곳에서 열렸는가 하면 도청·경찰서·법원·세무서 등 행정기관들이 광장 일대에 밀집돼 있었다. 그만큼 제주에서 큰 사건이나 행사가 있으면 으레 모이는 곳이 관덕정 광장이었다.

그러나 오늘 관덕정 앞 광장엔 사람이 없다. 무릇 광장이란 사람이 모여야 제 구실을 하는 법인데, 지금은 도로에 광장의 대부분을 내어주고 복원된 제주 목관아의 좁은 앞마당처럼 돼 버렸다. 원래 광장의 역할이 상실된 관덕정을 제주의 상징적인 광장으로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올레꾼이든, 여행객이든 광장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도록 문화 행사 등을 자주 한다면 제주 목관아와 관덕정 일대가 제주의 새로운 명소로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관덕정은 보물 제322호로 지정돼 있다.

 관덕정에서 내려다본 광장과 제주목관아
 관덕정에서 내려다본 광장과 제주목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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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관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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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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