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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뿌르가트에서 몸을 씻고 있는 사람들
▲ 성스러움 자이뿌르가트에서 몸을 씻고 있는 사람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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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카르에서의 둘째 날 아침식사도 역시 감동이었다. 근처의 쉬바레스토랑은 과일이 푸짐하게 나와서 좋다는 평이 있었지만 그냥 묵고 있는 숙소의 뷔페에서 먹기로 했다. 이미 다른 숙소에서 온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과일도 있었고 죽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난 볶음밥에 김치를 먹었다. 맛있다.

푸쉬카르는 볼거리가 많진 않지만 쉬기에 그만인 곳이었다. 브라마 사원이 있는 성지라 그런지 전체적인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깨끗하기도 하고 공기도 맑았다. 질 낮은 오일을 써서 매연의 주범으로 불리는 릭샤도 없고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호객꾼들도 없다. 그러나 여행 일정이 끝나가는 우리는 더 머무를 시간이 없었다. 오늘 저녁 떠날 때까지의 남은 시간 동안을 최대한 활용하여 좀 더 돌아볼 곳을 찾다가 사비뜨리 사원과 가야뜨리 사원을 가기로 했다. 우선 사비뜨리 사원으로 갔다.

사비뜨리사원은 관리가 잘 되어 있다.
▲ 사비뜨리사원 사비뜨리사원은 관리가 잘 되어 있다.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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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북의 지도는 많이 생략되어 있어 한 번에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걷다가 잘 모르겠으면 현지인들한테 물어가며 걸었다. 산꼭대기에 있는 사원으로 오르는 길은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오랫만에 많이 걸었더니 땀이 났다. 중간에 쉴 수 있도록 벤치도 있었다.

벤치에 앉아 토마토와 청포도로 목을 축이고 에너지를 보충했다. 먹으면서도 혹시 원숭이가 달려들지 않을까 경계를 했다. 인도여행 경험자의 말에 의하면 바나나를 들고 있다가 원숭이가 덤벼 상처를 입은 적이 있다고 했다.

남들은 30분이면 올라간다는데 한 시간쯤 걸려 올라간 듯했다. 사비뜨리는 브라마신의 본처에 해당하는 신인데 사원의 규모는 굉장히 작았다. 한국의 산신각 정도의 위치와 규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찾는 사람도 적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관리는 잘되고 있었다. 우리가 사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도 관리인인 듯한 젊은 사람이 연신 바닥을 쓸고 있었다. 우린 신발을 벗고 올라갔다.

두 여신의 사원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는 까닭은?

뿌자에 바칠 물품들을 팔고 있다.
▲ 사비뜨리사원 뿌자에 바칠 물품들을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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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뜨리사원에서 바라본 가야뜨리사원
▲ 가야뜨리사원 사비뜨리사원에서 바라본 가야뜨리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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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에서 내려다보는 눈맛도 시원했다. 푸쉬카르 시내와 주변환경이 다 펼쳐졌다.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사원 벽에 올라앉아 명상하는 사람도 있고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한참을 둘러보고 쉬다가 사원 입구의 벤치에 앉아 짜이 한 잔을 주문해서 마셨다. 평지에선 한 잔에 5루피에서 8루피였는데 여기서는 한 잔에 20루피였다. 여기도 산꼭대기는 비싼 모양이었다. 짜이를 마시고 과일로 다시 에너지 보충을 하고 가야뜨리 사원으로 향했다.

가야뜨리 사원은 사비뜨리 사원의 반대편 산꼭대기에 있었다. 갔다오려면 1시간 반 이상 잡아야 할 듯했다.

"전 힘든데 가야뜨리 사원은 엄마 혼자 갔다오면 어때요?"
"알았어. 엄마 혼자 갔다 올 테니까 너는 천천히 뒤따라오다가 적당한 곳에서 쉬고 있어. 엄마가 보고 내려오다 만나서 같이 오자. 내가 본 거 말해줄게."


여기서 잠깐. 브라마사원, 사비뜨리 사원, 가야뜨리 사원에 얽힌 전설이 있다. 창조의 신인 브라마가 개최한 희생제에 부인인 사비뜨리가 지각을 하자, 다른 신과 성자들에게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브라마는 홧김에 그 옆을 지나던 우유 짜던 소녀인 가야뜨리를 그 자리에서 두 번째 부인으로 맞이해 희생제를 치러버린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사비뜨리는 불같이 노해서 희생제에 참석한 모든 신과 성자들에게 저주를 내렸다. 가장 큰 죄인인 남편에게는 세상을 창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브라마 사원은 전세계에서 푸쉬카르에 딱 하나일 것이라고. 아내의 저주에 분노한 브라마는 가야뜨리를 그 자리에서 여신으로 승격시켰다. 가장 이득을 본 것은 가야뜨리이다. 이런 사건 때문에 오늘날에도 두 여신은 브라마사원이 내려다 보이는 산 언덕에 앉아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신도 본처와 두 번째 부인을 차별하나?

가야뜨리 사원 올라가는 길은 사빔뜨리 사원 가는 길과는 잘리 정돈이 덜 되어 있다.
▲ 가야뜨리 사원 가는 길 가야뜨리 사원 올라가는 길은 사빔뜨리 사원 가는 길과는 잘리 정돈이 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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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횡재한 가야뜨리의 사원은 어떤 모습일까? 사원으로 가는 길부터 헤맸다. 산꼭대기의 사원은 보이는데 접어드는 입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몇 번 잘못든 끝에 간신히 길을 찾았다.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은 만들어져 있으나 사비뜨리 사원만큼 잘 다듬어놓진 않았다.

나는 먼저 올라가고 딸은 몸 상태 되는 만큼만 올라오라고 했다. 사원 입구에 신발 벗으라는 문구가 있었다. 신발을 벗었다. 양말도 벗었다. 사원은 관리도 안 되어 있고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예전엔 사원을 둘러싼 구조물이 있던 것 같은데, 누가 언제 부쉈는지 지금은 부서진 파편들만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어 초라해보였다.

겨우 초라한 구조물속에 신상만 안치해 놓고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잠가놓았다. 창살 사이로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다. 우유 짜는 소녀가 신으로 승격된 것만 해도 과분한 걸까? 인도인들은 신에 대해서도 본처와 두 번째 부인을 차별하나?

맨발로 걷는 나는 돌과 구조물 깨진 파편들이 섞여 있는 바닥을 걷다가 발 다칠까봐 불안하면서도 흙에서 느껴지는 시원함이 좋았다. 사원 뒤쪽으로 돌아가자 일찍 올라온 여행자 몇이 그늘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딸은 밑에서 쉬고 있을 줄 알았더니 사원까지 올라왔다. 우리도 그늘 한쪽에 앉았다. 눈앞에는 푸쉬카르와 주변이 보였고 맞은편 사비뜨리 사원도 멀리 보였다.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감상하며 쉬었다. 충분히 쉬었다 싶어서 시계를 봤더니 벌써 3시였다. 내려가서 점심 먹고 짐 찾아서 버스 타러 가면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리틀 티벳이라는 티벳 음식점엘 갔다. 인도에서는 국물 있는 음식을 찾아보기 어려워서 국물이 있는 뚝파와 모모를 주문했다. 1시간 넘게 걸려 나온 음식은 좀 짜긴 했지만 맛은 좋았다. 뚝파는 버섯을 포함한 채소와 면이 들어간 전골 비슷한 요리이고 모모는 만두 같았다.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준 사람, 처음이야

가야뜨리사원에서 내려다본 푸쉬카르 전경
▲ 푸쉬카르 전경 가야뜨리사원에서 내려다본 푸쉬카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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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었을 땐 5시쯤 되었다. 6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라 1시간쯤의 여유가 있어 바자르를 더 둘러보았다. 낙타가 많은 지역이라서일까 유난히 가죽제품이 많이 보였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넣을 만한 가방이 눈에 띄었다. 딸도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런데 주인은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좀처럼 깎아주질 않는다.

700루피였다. 물론 한국 물가로 치자면 결코 비싼 편이 아니지만 인도 물가로 치자면 꽤 비싼 편이었다. 한국 돈 1만4000원 정도에 해당하는 돈이다. 잠시 보류를 하고 다른 가게에 가보았다. 같은 디자인의 가방이 없었다. 서너 군데 더 들러봤지만 마음에 끌리는 물건은 없었다. 비싼 가방 대신 여행 기념이 될 만한 다른 가죽제품을 사기로 했다.

눈에 들어오는 필통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비싸다. 작은 가죽필통이 250루피. 크기에 비해 너무 비싸지 않나? 차라리 큰 가죽가방을 사고 말지. 또 다시 망설였다. 어쨌든 가죽제품 하나는 사고 싶은데.

디자인이 맘에 들면 가격이 비쌌고, 가격이 맘에 들면 디자인이 마음에 안 차고. 고민 끝에 가격대비 괜찮은 동전지갑 2개를 사가지고 돌아섰다. 그런데 아까 보았던 가죽가방이 눈에 어른거렸다. 그 가방에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넣으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다시 그 집으로 갔다. 어렵게 흥정을 해서 좀 작은 크기로 400루피에 구입했다. 얏호! 딸은 아주 맘에 드는 모양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딸의 발걸음이 사뿐사뿐했다.

식당안 마당에 걸려있는 타르초
▲ 리틀티벳 식당 식당안 마당에 걸려있는 타르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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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아웃 후에 맡겨놓았던 배낭을 찾았다. 주인에게 델리로 가는 버스 타는 곳을 물어보고, 잠시 화장실 갔다가 작별인사를 하려는데 주인이 안 보였다.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데 계단 아래서 올라와 우릴 보더니 따라오란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말 없이 앞장서서 걸어간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길 옆에 서 있는 버스를 가리키며 그 버스를 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숙소에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인데도 버스정류장까지 안내를 해준 것이다. 감동이었다. 버스정류장까지 친절히 바래다주고 타는 곳, 타는 시간, 탈 버스 등을 자세히 가르쳐준 사람은 처음이었다.

6시 반이 되자 기사가 나타나 버스 문을 열어주었다. 버스엔 손님이 별로 없었다. 푸쉬카르에서 좀 떨어진 아즈메르가 더 큰 도시이기 때문에 주로 거기서 타는 모양이다. 서양인 두 명이 버스기사에게 델리 가느냐고 영어로 물었는데 기사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 모양이었다. 서양인들은 버스를 타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 밤새 누운 채로 춤을...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염소뿔위에 색깔을 칠해서 소유주를 표하는 것 같고 오른쪽은 동네소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듯, 트럭에도 그림을 그리고 장식을 해서 인도인들의 손재주를 보여주는 것 같고 골목에 있는 교복파는집
▲ 푸쉬카르 풍경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염소뿔위에 색깔을 칠해서 소유주를 표하는 것 같고 오른쪽은 동네소들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듯, 트럭에도 그림을 그리고 장식을 해서 인도인들의 손재주를 보여주는 것 같고 골목에 있는 교복파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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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탄 버스는 침대버스로, 2인석과 1인석이 있었는데 우리 자리는 2인석 자리였다. 그러나 문제는 옆자리로 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낭 넣어놓고 쉬고 싶은데 자리가 떨어져 있어서 난감했다. 딸이나 내 옆에 오는 사람이 남자면 어떻게 하지? 설마 침대버스인데 모르는 남녀를 2인석에 배정하진 않았겠지? 여자겠지? 체격 좋은 서양여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며 불안해했다.

바꾸려 해도 딸이나 내 옆의 사람이 타질 않았다. 기사에게는 물어봐도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대화가 안 된다. 할 수 없이 1층에 앉아 있는데 호감 가는 여인이 말을 건다. 자신은 타이에서 왔는데 다음 날 타이로 돌아간다며 우리보고 어디에서 왔는냐고 물었다. 우린 방콕에서 환승했다는 얘기, 방콕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얘기 등 비교적 많은 대화를 나눴다.

우리를 배려해 천천히 말해주었기 때문인지 발음도 비교적 알아듣기가 쉬웠다. 그녀도 현지인이 아닌 우리를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즐거워보였다. 그녀는 우리의 관계를 물었다. 모녀지간이라 했더니 굉장히 놀라워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나이가 많아서 패키지 여행정도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자유롭게 배낭여행하는 우리 모녀를 특히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즐겁게 대화를 하던 중 차장이 와서 우리 표를 보더니 2인석은 따로따로는 예매가 불가능하고 자리번호가 잘못 쓰인 것 같다며 맨 뒷자리 2층 자리라고 알려준다. 뒷자리는 좀 좁고 멀미도 날 것 같아서 앞자리로 바꿔줄 수 없냐고 물었더니 그럴 수는 없단다.

붙어 있는 자리인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배낭 놓고 짐을 정리하니 누울 만은 했다. 어디선가 황소바람이 들어오길래 창문을 봤더니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구멍 두 개가 나 있었다. 휴지를 찾아서 돌돌 말아 끼우니 훨씬 덜했다.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갑자기 몸이 붕 떴다. 사고가 난 줄 알고 놀랐다. 노면상태 때문인 듯하다. 어렸을 땐 버스가 덜컹거리면 오히려 신나했지만 중년이 된 나는 힘들고 멀미가 날 뿐이었다. 자리가 좁아서 이리저리 구르진 않았지만 위아래로 15센티미터 이상은 뛰는 것 같았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았다. 누워 있으니 어떻게 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밤새 앉아서 갈 수도 없었다. 10시간을 가야 목적지인 델리에 도착한다. 한 숨도 잘 수가 없었다. 밤새 누운 채로 춤을 추었다.10시간을 버스와 함께!


태그:#푸쉬카르, #사비뜨리사원, #가야뜨리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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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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