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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1월 14일부터 19일까지 미국 뉴욕의 사회적 금융기관들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이 글은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한 짧은 보고서입니다. [편집자말]
착한기업 연구소(Benefit Laboratory) B Lab 뉴욕 사무실은 시청사가 있는 챔버 스트리트(Chambers St) 맞은편의 작고 아담한 건물 3층에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젊은 청년 두 명이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외부 방문객에 대한 단순한 예의라고 하기에는 환영해 주는 분위기가 너무 벅차서 괜히 머쓱해진다. 입구 맞은편 인테리어를 하지 않은 거친 벽돌 벽 중앙에 큼지막한 글씨가 적혀 있다. Be the change. 변화의 중심이 되어라. 저항운동을 하는 레지스탕스의 아지트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B Lab 뉴욕사무실 벽면에 쓰여진 표어
▲ 변화의 중심이 되라 B Lab 뉴욕사무실 벽면에 쓰여진 표어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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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7일 인터뷰를 약속하고 찾아간 그곳엔 나단 길버트(Nathan Gilbert) 국제협력팀장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는 모범생처럼 보이는 30대의 젊은 청년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한국의 딜라이트(Delight)라는 사회적기업을 잘 아느냐고 묻는다. 보청기를 만드는 '잘 나가는' 기술기반 사회적 기업으로 업계에서 꽤 유명하다고 말했더니, 자기네 식구라며 자랑스러워한다. 사회·환경적으로 유익한 사업을 펼치는 기업들에게 착한 기업(B Corporation) 인증을 해주는 것이 B Lab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데, 이 인증을 받은 한국의 첫 번째 회사가 딜라이트라며 칭찬 일색이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B lab은 '비즈니스의 힘을 통해 사회와 환경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는 기치 아래 사회·환경적으로 '유익한'(beneficial) 기업을 발굴, 성장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비영리 조직이다.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해외에도 지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을 만큼 국제  네트워크 사업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착한 기업 인증 이외에 'GIIRS'라는 기업평가 도구를 개발, 운영하고 있으며 이 평가지표를 활용해 사회적 투자자들을 모집하는 등 사회적 기업들을 위한 종합 '플랫폼' 역할을 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나단 길버트 국제협력팀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뉴욕사무소 (2013.1.17)에서 촬영
▲ B lab, Nathan Gilbert 국제협력팀장과 함께 뉴욕사무소 (2013.1.17)에서 촬영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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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B Lab의 설립 배경과 조직 현황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십시오.

"B Lab은 사회·환경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반기업과는 성격이 다른 착한기업들이 더 많아져야 하며, 따라서 이런 기업들을 확산시키는 운동(movement)이 필요하다는 취지하에 몇몇 뜻있는 리더들이 2006년에 설립한 단체입니다. 직원은 30명 내외의 작은 조직이지만, 뉴욕을 비롯하여 미국에 3개의 사무실이 있고 케냐의 나이로비, 칠레의 산티아고 등에도 지부를 두고 있고 유럽, 남미, 호주, 인도,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과의 교류도 활발히 추진 중입니다." 

- B Lab이 추진하는 사업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현재 저희가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은 착한기업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환경 및 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크게 3가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입니다. 하나는 인증제를 통해 이 기업들에 공공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의 성장에 방해되는 법적, 제도적 장애요인을 제거하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평가시스템을 활용해 임팩트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착한 기업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회사를 말하나요?
"간단히 말하자면, 사회·환경적으로 유익한 영향(Impact)을 미치는 회사를 말합니다. 소비자와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환경적 가치를 추구하며, 종업원을 포함한 이해관계자 중심의 경영을 실천하고 기업 지배구조 면에서도 투명한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을 골고루 갖춘 기업들을 평가해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회사를 착한 기업(B Corporation)이라는 이름의 자격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 인증 방법 및 절차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착한 기업 인증을 받으려면 먼저 일정한 평가(Assesment)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기업경영, 이해관계자 관리, 커뮤니티 및 환경 기여도 등 크게 4가지 차원에서 심사가 진행되는데, 200점 만점에 80점 이상을 얻으면 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봅니다. 기준에 부합한 기업들은 저희 B Lab과의 인터뷰 및 관련 증빙서류 검증을 거쳐 최종 인증을 받게 됩니다. B Corporation으로서 자격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순이익의 0.1%를 회비로 납부해야 하고, 자격갱신을 위해 매 2년마다 실시하는 검증과정도 준수해야 합니다." 

- 인증기준 및 절차는 공개되어 있습니까?  
"심사의 투명성을 위해 평가 기준 자체를 공개하고 있기 때문에 심사를 원하는 기업은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5000개가 넘는 기업들이 이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인증을 받기 위한 절차라기보다는 착한 기업이 되려면 어떤 부분을 더 키우고 보완해나가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싶은 생각이 큰 것 같습니다. 현재 3.0버전을 쓰고 있는데 올여름에 4.0버전이 출시될 예정입니다."

www.bcorporation.net
▲ 착한 기업 요건을 자체 심사할 수 있도록 구성된 누리집 메뉴 www.bcorporati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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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인증을 받은 기업은 몇 개나 됩니까?
"24개 국가에 총 690개의 기업이 착한 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미국 내 기업들만을 상대로 추진할 생각이었는데, 외국에서 많은 요청이 답지하여 글로벌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게 되었습니다. 남미에서는 저희를 거치지 않고 현지에서 직접 인증절차를 밟도록 프로세스를 정비하는 중입니다. 해당 국가의 사회경제적 환경에 맞도록 심사기준을 만들고 적용해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지 기관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협력관계를 유지해갈 계획입니다."

- 주로 어떤 기업들인가요, 소매나 서비스업에 편중되어 있지는 않나요?
"기업규모 면에서 대기업보다는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들이 더 많지만, 인증 기업들이 특정 분야나 업종에 편중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파타고니아(Patagonia, 캘리포니아에 있는 아웃도어 전문기업) 같은 소비재 생산업체도 있고, 플라스틱이나 태양광판을 생산하는 제조업체, 컨설팅회사, 법률회사, 은행 등 다양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로샨'이라는 통신회사가 있는데 바로 몇 주 전에 인증을 받았습니다."  

- B Lab의 심사기준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할 수 있나요?
"반드시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국가나 지역, 사업내용에 따라 환경적 차이가 크고 또 시장이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기준도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가기준 그 자체는 지속적인 보정작업이 필요할 겁니다. 다만 저희들의 평가기준이 지역적 맥락이나 업태, 기업 규모 등 비즈니스를 둘러싼 환경적 요인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는 점은 큰 강점이라 생각합니다."  

- 인증을 받은 기업들에게는 어떤 혜택이 제공되나요? 
"혜택이라 할 만한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사회·환경적으로 착한(benefit) 회사라는 가치를 부여해준다는 점이 가장 큰 혜택(benefit)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웃음) 실제로 저희들 인증기준이 까다로운 편이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될 것이고 이는 곧 회사의 성장으로 연결될 것이라 믿습니다. 인증회사 입장에서는 사회적 투자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제일 크게 평가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법적, 제도적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힘써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지난 몇 년간 B Lab은 착한 기업들에게 일정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사회혁신을 이끌고 있는 기업들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Benefit Corporation이라는 법인격을 부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특별한' 회사라는 의미부여를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는 주주(shareholder)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에서 이해관계자(stakeholder) 중심으로 기업 생태계를 바꾸어가기 위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현재 미국 내 12개 주에서 이 법률이 제정되었고, 주법에 따라 각기 다른 인센티브도 제공받고 있습니다."

- 인센티브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나요?   
"필라델피아에서는 인증을 받은 기업들에게 세금혜택을 주고 있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시 정부사업 참여시에 우선구매 대상으로 지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주에서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고 인센티브 제공이 법 제정에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저희들은 착한기업이 사회적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으며 활동할 수 있도록 일정한 자격을 부여받는 것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주정부들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법 제정 과정에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사실 법을 통과시키는 과정에 지지보다는 반발이 더 많았습니다. 특히 기업법률 부문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이 역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주장을 많이 했기 때문에 특혜시비가 생길만한 요소들을 가능한 제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주에서는 법 제정은 찬성했지만 투명성 유지조항을 삭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만일 착한기업이 투명하지 못하면 '유사'기업들이 많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강하게 반대했고, 결국 대부분의 주에서 저희들 입장을 받아들였습니다."

- GIIRS라는 평가시스템을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도구인가요?    
"GIIRS(Global Impact Investment Rating System)는 투자자 관점에서 기업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만든 기준입니다. 비즈니스 모델, 재무성과를 포함하여 사회·환경적 영향력 등을 일관된 절차와 흐름 안에서 비교할 수 있도록 고안된 평가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투자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공용어 및 평가세트가 IRIS(Impact Reporting & Investment Standards)라면, GIIRS는 이 기준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GIIRS를 통한 기업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앞서 말씀드린 평가 항목들을 합산하여 1점에서 5점까지 최종 평점을 매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임팩트 투자가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에 주목한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부정적 평가방식과는 많이 다릅니다. 출시된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지금까지 333개의 기업과 40개 이상의 펀드를 심사했습니다. 이 평가 자료들은 해당 기업에 대한 내용뿐만 아니라 신흥시장 정보 등 투자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데이터들을 담고 있어서 투자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하게 됩니다."  

www.giirs.org
▲ 기업가치 평가시스템 GIIRS 누리집 화면 www.giirs.org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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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평가시스템이 임팩트 투자활동을 촉진하고 있다고 믿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최근 GIIRS의 분석결과를 투자결정에 활용하고자 하는 투자자모임(Pioneer Investors)도 만들어졌는데, 이 투자자 그룹은 GIIRS의 평가를 신뢰하기 때문에 이 지표를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GIIRS는 동일한 기준과 잣대로 기업들을 평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각 나라의 환경적 차이를 극복해가야 하는 큰 과제가 남아있지만, 착한기업의 가치를 인정하는 투자자 그룹을 끌어들이는 다리(bridge)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끝으로, B Lab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비전은 무엇인가요?    
"지극히 당연한 말처럼 들리시겠지만, 사회․환경적 가치를 추구하는 착한 기업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성장하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지구를 좀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인류가 만든 훌륭한 제도 중 하나인 '비즈니스'라는 힘을 활용하여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사회를 풍요롭게 만들며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착한 기업운동을 펼쳐나가려고 합니다."

비즈니스(business)란 무엇인가

어떤 일을 일정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짜임새 있고 지속적으로 경영하는 것. 사전적 인 정의는 그러하다.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래 경제 운영원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돈 버는' 수단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인류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데 제대로 활용하고자 한다는 측면에서 B Lab의 도전은 신선하게 다가선다. 

살기 좋은 마을, 정이 흐르는 도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려면 어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것일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건들이 필요할 것이다. 천재적 능력을 가진 이들이 모여 그들의 전 생애를 다 바친다 해도 풀어내지 못할 '어렵고, 힘들고, 복잡한' 함수일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무모한 꿈을 달성하기 향해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사람들이 이 행성에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큰 위안과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2008년 금융위기는 현실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세계경제 체제가 언제든 침몰할 수 있는 취약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세계의 많은 석학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인류가 안고 있는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는 극도로 위험한 수준까지 발전되었으며 우리를 포함하여 후세들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세계가 이미 하나의 공동체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 안에서 '나비효과'는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우리 옆에 자리하고 있다.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오늘 착한 일을 하였는가 아니면 나쁜 짓을 했는가. 나는 어렵고 힘든 이웃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인가, 내 것을 지키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인가. 겉으로는 늘 그럴 듯한 말을 내뱉고 있지만 속으로는 이기적 타산을 우선시하는 위선자들과 나는 얼마만큼 다른가. 나는 문제를 만드는 사람인가 혹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문진수 기자는 한국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태그:#B LAB, #B CORPORATION, #착한기업, #사회적기업, #GI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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