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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리길. 사십여 명이 걸음으로 마지막 코스의 길을 이었다. 이날도 줄이 길다. 조금 빠른 이들과 뒤에 처져서 걷는 이들 간은 10여분이 넘는 차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길. 해발 400미터에서 600미터에 이르는 길이다. 매주 토요일 삼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한 번에 걷는 것이 아니라 열네 번에 나누어진 일정. 적게는 스무 명, 많게는 사십여 명이 매주 모여 걸었다고. 작년 12월에 시작해 지난 2일 진안군 주천면 삼거리광장에서 12개 읍면을 두루 거친 여정을 마쳤다. '고원길을 걷다. 진안마실', '바람 이는 고원길에 서다'에 이은 세 번째 프로젝트. '하늘땅 고원길에 서다'의 마무리다.

지역의 문화유산을 둘러보고 설명을 듣는것도 재미. 주천면 와룡암의 서당을 둘러보는 회원들.
 지역의 문화유산을 둘러보고 설명을 듣는것도 재미. 주천면 와룡암의 서당을 둘러보는 회원들.
ⓒ 진안고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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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가 좋네."
"무작정 따라왔는데 앞으로 같이 걸어야겠네."
"왜 진작 안 왔는지 몰라."

'고원길 초보'들의 감상이 이어진다. 여럿이 어울려 같이 걷는다는 것의 새로움과 호기심이 가득 담긴다. 진안고원길은 길이 작은 마을을 지나 마을회관에서 주민과 식사를 나누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 고갯길을 지금을 사는 이들이 다시 밟는다.

진안고원길. 길 이름이자 40여명 회원들의 모임이름이기도 하다. 이날 행사는 14주에 걸친 일정 동안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가한 이들에 대한 시상과 소감발표가 있었다.

여럿이 어울려 같이 걷는다는 것

마지막날 점심을 먹은 주천면 산제마을회관 앞에서 주민들과 함께 기념촬영하는 고원길 회원들의 모습
 마지막날 점심을 먹은 주천면 산제마을회관 앞에서 주민들과 함께 기념촬영하는 고원길 회원들의 모습
ⓒ 임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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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보통 공간을 이동할 때 차를 타고 하는 요즘 세태에 반하는 것이다. 운동을 위한 등산 인구가 18세 이상 성인의 80%에 이른다는 어느 통계는 자연을 대표하는 산과 인간의 관계를 반영한다. 나의 등산은 앞사람 발뒤꿈치를 바라보고 오르고 돌부리를 추적하며 내리는 것이었다.

고원길을 걷는 것은 주변을 둘러보고 이웃마을과 옛이야기를 나누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목적이 무엇이냐 물으면 대답하기 쉽지 않다. 자동차에 익숙한지라 평상시 걷기를 생활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평소에 쇠약해진 몸에 활력을 주고 사색과 소통을 통해 마음을 치유한다는 점은 건강과 정상정복을 목표로 하는 등산과 다르다고 할까.

길위의 주천면 미적 마을회관 앞에서 지역주조장의 막걸리를 나누며 교류하는 회원들
 길위의 주천면 미적 마을회관 앞에서 지역주조장의 막걸리를 나누며 교류하는 회원들
ⓒ 진안고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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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고원길 최규영 대표는 "지금껏 우리가 해온 뚜렷한 목적 없는 행위를 어떻게 보느냐"고 회원들에 묻고 "이긴다던지 기록을 단축한다던지 하는 경기가 있는가 하면 건강과 치유를 위한 행위도 있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진안고원길은 진안의 각읍면, 마을, 고개, 논밭을 오롯이 거쳐가는 여정이다. 2008년 생명의숲 마을조사로 마을의 문화와 사회를 조사하다가 '길'에 착안한 정병귀 씨가 주체가 되어 2011년부터 한바퀴 휘도는 길을 이어 지역주민과 함께 걷기 시작했다.

길조성 등 출발의 시기는 비슷하지만 전국적 열풍을 주도한 제주 올레와 비하면 규모나 외연에서 소박한 느낌이다. 그곳과 비교한다면 걸으며 느낄 수 있는 풍광도 완전히 다르다. 바람과 바위, 바다를 배경으로 걷는 올레는 화사한 색동옷이라면 산과 개울, 계곡과 오래된 마을을 잇는 길인 진안고원길은 산사의 승복의 느낌에 가깝다.

용담면에서 용담호를 걷는길은 금강의 일원인 용담호와 만났다가 헤어졌다는 반복한다.
 용담면에서 용담호를 걷는길은 금강의 일원인 용담호와 만났다가 헤어졌다는 반복한다.
ⓒ 진안고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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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귀 사무국장은 "마을조사를 하다가 옛길을 통해 문화를 나누고 사람이 교류하는 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탐사를 시작했다"며 "길 위에서 주민들이 내 고장을 문화를, 사람을 알고 아끼는 마음과 즐겁게 교류하는 느린 걸음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아직 진안에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인근 도시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부분 진안에 직장을 두거나 고향인 이들이 많은 점도 진안고원길의 의미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주민과 함께 걷고 지역의 문화를 나누기. 관광상품으로 역량을 키우는 것보다 정기적으로 걷는 행사를 통해 주민과 소통하고 교류하겠다는 의도가 비친다. 마을만들기로 유명한 진안의 철학을 함께 한다는 점도 느껴진다.

하늘땅, 그 위에서 함께하는 즐거움

겨울걷기의 빼놓을수 없는 재미. 다큰 어른이 비료포대를 얻어 눈썰매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
 겨울걷기의 빼놓을수 없는 재미. 다큰 어른이 비료포대를 얻어 눈썰매를 타며 즐거워하는 모습.
ⓒ 진안고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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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땅 고원길에 서다. 올해 걷기 제목이다. 작년 12월에 시작해 3달 동안 500리를 걸었다. 바람 되어 걷는 이들의 표정에는 즐거움이 가득하다. 어느 날은 잔뜩 안개 낀 곳을 걷다가 어느 날은 눈 쌓인 길 내리막을 비료포대 타고 날기도 하는 곳. 숲과 논밭, 작은 고개와 재를 넘으면 마을이 나오고 그곳 회관에서 주민들과 점심을 나누는 일이 정겹다.

고원길은 14개구간으로 나뉜다. 평균구간 거리는 하루 4시간여 걸으면 마칠 수 있는 거리이다. 경사도는 대부분 구간이 "임산부와 어린 아이들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다. 평균해발 300미터 구간을 완만하게 휘도는 그림이다.

쌓인 눈길위로 전북권 상수원이자 담수호인 용담호의 모습이 잘 어우려진다. 걷다가 바라보는 대자연의 풍경도 가슴을 뛰게한다.
 쌓인 눈길위로 전북권 상수원이자 담수호인 용담호의 모습이 잘 어우려진다. 걷다가 바라보는 대자연의 풍경도 가슴을 뛰게한다.
ⓒ 진안고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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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은 개마고원, 남은 진안고원' 이 말처럼 진안 땅은 높은 지대에 있다. 산이 많고 물길은 곳곳을 굽이친다. 섬진강의 발원지가 있고 장수 뜸봉샘에서 시작된 금강이 용담호를 담고 흐르는 곳.

올해 여름에 시작하는 '무진장'을 아우르는 섬진강과 금강잇기 프로젝트와 가을에 시작되는 네 번째 완주프로젝트는 지역민과 원하는이들이 함께하는 정기적인 행사라면 비정기 걷기도 상시적으로 있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첩첩산중(疊疊山中) 하늘땅, 진안고원길


진안고원길은 하늘땅 고샅고샅에서 마을과 사람, 진안을 만나는 길이다. 마을길,논길,밭길,산길,숲길,물길,고갯길,옛길,신작로 등 산촌 진안땅에서 고원길은 절실한 소통의 공간이자 사연과 기억이 풍부한 공간이다.
진안고원길은 장기걷기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민들과 몇 차례 전 구간을 걸어냈고, 걷는 이들의 의미있는 능동적 길디자인을 지향한다.
진안고원길은 전체 200km에 이르는 길로, 개별 여행자들을 위한 이정표는 네 개 구간(1,2,3,1-1구간)에만 설치되어 있다.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 www.jinangowongil.kr 와 카페 http://cafe.daum.net/jinanmasil, 063-433-5191



태그:#진안고원길, #정병귀, #마을만들기, #마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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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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