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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 작가 김주영 선생(우)과 이진석옹(좌)
 <객주> 작가 김주영 선생(우)과 이진석옹(좌)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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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에서는 스토리텔링사업으로 <객주>의 작가 김주영 선생님과 함께 하고 있다. 30여 년 전에 9권으로 마무리된 대하소설 <객주>가 2013년 울진 십이령을 배경으로 제10권이 탄생한 것이다. KBS는 설날특집방송으로 제10권 집필과정을 소개할 예정이다. 지난 6개월간 울진에서 특집방송 취재와 촬영을 하면서 수산염전을 재현하였다. 그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재현과정은 이진석(87)옹의 증언으로 가능했다. 이진석옹은 수산리 비래동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수산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1945년 해방전후의 수산염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17~18세 때 염밭에서 염부로 일하였고, 1945년 해방 직전에 염밭 한자리(300평)를 2년간 직접 운영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수산염전이 있었던 비래동은 해방 전후 약 40호가 살았으며, 마을에서 염전을 운영하던 사람은 4명이었고, 염전에 일한 사람은 20여 명이었다. 염전마을은 다른 동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잘 살았다고 한다.

수산염전의 토염생산은 오래전부터 해왔고, 이진석옹은 막바지 단계였다. 일제시대 이전에는 비래동을 비롯해서 산포리, 온양리, 부구리, 오산, 초산, 덕신 등 울진에는 염전이 많았으나, 해방전후는 수산염전, 군발염전, 덕천염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일제 말기에 외국으로부터 수입소금이 들어오고, 화염방식이 번성하면서 3개소 모두 쇠퇴하였는데, 수산염전은 해방 후 약 6~7년 지속되어 가장 늦게 폐쇄되었다. 염전은 한 꼭지가 150평, 한 자리는 300평, 한 그룹은 8자리로 수산염전은 2그룹 16자리가 있었으며, 평수로는 약 5000평 규모다.

토염은 주로 봄과 가을에 한다. 2꼭지를 1조가 하는데 일하는 사람 2명과 소 1마리가 조를 이룬다. 봄인 3, 4, 5월에는 6∼7회 정도 토염을 생산했으며, 가을에는 봄의 절반 횟수로 토염을 생산했다. 생산량은 2꼭지 기준으로 할 때 물을 몇 번 주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1회에 토염생산은 약 60∼70말이다. 봄에는 2꼭지에서 토염 약 420말 생산하며, 가을에는 봄의 절반 정도인 약 210말을 생산했다.

염판 만들기

염판 만들기
 염판 만들기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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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판은 왕피천과 남대천의 뻘진흙을 깔고 평탄하게 해서 나무로 된 도구를 이용해서 반들반들하게 다진다. 그 위에는 산에서 마사토를 가져와서 두께 약 5∼6cm정도 깔았으며, 염판 가장자리는 바닷물을 담는 골을 진흙으로 만들었다.

바닷물 들이기

염판에 바닷물 들이기
 염판에 바닷물 들이기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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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에서 바다까지 약 30미터는 바닷물이 들어올 수 있게 진흙으로 홈을 만들고, 바닷물 가까이 가서는 파도가 치기에 나무로 홈을 약 10미터 만들었다. 바닷물을 나무 홈에 붓는 것은 나무로 만든 물동이를 사용하였고, 바닷물이 나갈 때 떠서 나무홈에 퍼부으면 골을 타고 바닷물이 염판으로 들어간다.

염판갈기와 물주기

염판갈기
 염판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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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판에 바닷물 뿌리기
 염판에 바닷물 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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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판갈기는 소가 끄는 써래를 참나무로 만들어 밭갈이 하듯이 하는데,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2회 갈고, 1회 물을 먹인다. 물을 여러 번 주면 소금의 농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염판 물주기는 처음에는 15회, 2회부터는 8회 반복하며, 갈기는 16회를 한다. 염판갈기 16회와 물주기 8회가 끝나면 소를 이용하여 마사토를 가장자리에 모았다. 일하다가 소가 변을 보면 들어내고 했으며, 소변이면 그대로 소금이 되었다.

섯에서 물짜기

섯에 바닷물 붓기
 섯에 바닷물 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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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간에 짠물 내리기
 도간에 짠물 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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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은 염판 가장자리 염판 위에 둘레는 약 50cm높이 뚝을 하고, 넓이는 약 3평으로로 만들며, 삼을 벗긴 대궁을 밑에 약 20cm 두께로 깔았다. 그 위에 바닷물을 8회 먹인 마사토를 올리고 바닷물을 부으면 짠물은 도간으로 흘러간다.

도간과 큰도간(벌막)

솥에 짠물 붓기
 솥에 짠물 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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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간은 섯 옆에 시루처럼 생긴 독 같은 것으로 반 드럼 크기의 진흙으로 만들었으며, 한 꼭지는 4~5일에 약 8회 짠다. 1회에 짠 물이 약 4말이며, 8회 반복하면 한꼭지(150평)에 약 32말의 물이 나오며, 한 조가 1자리(2꼭지, 300평)를 하면 약 64말의 짠물이 나와서 큰도간(벌막)으로 간다. 걸려낸 마사토는 양쪽으로 쳐내서 다시 펴고 바닷물을 붓는 일을 반복한다. 큰도간은 저장고로 약 150평 규모다. 저장고 한가운데 솥을 만들었는데, 이진석옹의 선대 할아버지 때는 굴조개를 빻아서 솥을 만들었으나, 이진석옹이 할 때는 철편으로 6평 규모, 솥 높이 약 20cm의 솥을 만들어 사용했다.

불때기

솥에 불때기
 솥에 불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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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모두 마르고 소금이 될 때까지 불을 때는데, 물이 마르면 연이어 물을 부어서 1박 2일 동안 약 30시간 불을 땐다. 많은 양의 땔감이 필요했으며, 땔감은 인근 산에서 조달하였다.

가격과 판매

솥에서 소금이 되는 과정
 솥에서 소금이 되는 과정
ⓒ 이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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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말기 쌀 한 되가 약 50전 하였는데, 같은 양의 쌀과 소금을 비교하면 소금의 가격이 쌀의 절반 이상 가격이었다. 같은 넓이의 토지에서 쌀농사에 비해서 염전은 3배 정도 소득을 올렸다.

판매는 주로 내륙으로 하였는데, 봉화, 영양, 청송진보, 안동, 영주 등으로 많이 갔으며, 보부상, 선질꾼, 도부꾼들이 사갔다. 그 사람들은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으며, 주로 개인적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지역에서는 울진장으로 많이 나갔고, 매화장으로도 나갔다. 생산한 소금의 분배는 물주가 약 33%(나무, 경비포함) 가져가고, 나머지는 인건비로 소금으로 분배하였다.

울진토염 체험장 조성과 상품화

생산한 울진토염
 생산한 울진토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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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군은 근남면 수산리 엑스포공원 인근 약 4770㎡(약 1443평) 면적에 염전 체험장(960㎡, 약 290평)과 염사료관, 도자기 체험관(1,010㎡, 약 305평)을 올해부터 조성한다.

아주 연한 황토색(누런색)의 울진토염은 청정바닷물과 황토, 봄가을의 햇살과 마사토, 염부의 땀과 장작이 만나서 이루어진다. 과학적으로 품질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생산한 소금은 달고 감칠맛이 있었으며, 사람에게 이로울 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이나 프랑스에서는 그 지역의 특산 소금을 생산하여 일반 천일염보다 수십배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 황금소금이라고 불리는 울진토염을 전 국민이 맛보고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울진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태그:#울진토염, #이규봉, #김주영, #이진석, #울진생태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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