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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날씨예보가 잘 맞는 것 같다. 퇴근길에 눈이 온다고 하면 눈이 내리고, 주말에 한파가 닥친다고 하면 어김 없이 칼날 같은 찬바람이 분다. 몇 년 전 주말 날씨예보가 6주 연속 빗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땐 많은 사람들이 예보를 불신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은 물론 스마트폰 앱으로 날씨예보를 실시간 참고할 정도로 신뢰도가 높아졌다. 날씨를 예측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수치예보'다. '수치예보'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최근 김영준(50)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을 만났다.

김영준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김영준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 KI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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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도 외국에서 개발된 수치예보 모델(UM·영국통합모델)을 일기예보 현업에서 쓰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가 한국산이라고 해도 엔진이 국산이 아닐 경우 제대로 평가를 못 받듯이 외국에서 개발된 수치예보 모델을 계속 사용한다면 기상 기술의 해외 종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지금은 기상 선진국들과 기상 기술 협력이 잘 이뤄지고 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기술협력을 해주지 않을 경우 그때는 그들의 요구에 맞춰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기술을 사올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에 기상예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이젠 수치예보 모델도 'Made in Korea'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런 중요성을 감안해 9년간 총 946억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재)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이하 한수예)'을 운용하고 있다.

한수예가 추진 중인 한국형수치예보모델사업은 3년씩 3단계로 나뉘어 진행된다. ▶1단계(2011~2013년) 기반구축 및 원천기술 개발 ▶2단계(2014~2016년) 시험모델 개발 ▶3단계(2017~2019년) 현업모델 개발 등이다.

한편 수치예보가 기상학에 도입된 것은 110여년 전이다. 1900년대 초, 노르웨이의 기상학자 브예크네스(Vilhelm Bjerknes)란 사람이 기상예보에서 수치예보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후 영국의 리처드슨(Lewis Fry Richardson)이 최초로 수치계산에 의한 기상예보를 시도했다. 하지만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으며 계산 결과도 실제값과 차이가 많이 났다. 1900년대 중반에 가서야 비로소 노르웨이의 표르토프트(Ragnar Fjørtoft)가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으로 수치예보에 처음 성공했다.

한국 기상청은 1990년대 초, 슈퍼급 컴퓨터를 도입하면서 수치예보를 본격적으로 기상예보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1993년 일본의 전구모델을 받아들여 시험운영을 거친 뒤 1997년부터 현업 예보에 적용했다.

최근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을 만나 수치예보에 관한 궁금증을 풀었다.
 최근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을 만나 수치예보에 관한 궁금증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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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치예보라는 용어 자체가 낯섭니다. 쉽게 설명해 주시겠어요.
"수치예보(Numerical Weather Prediction·NWP)란 한마디로 말해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는 기술입니다. 학문적으로 따지면 '기상학'과 '수학', '전산학'의 만남이라 할 수 있죠.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를 예측하기 위해 우선 대기를 지배하는 물리 현상들을 설명하는 법칙을 알아내고 이를 방정식들로 표현합니다. 이 식들은 복잡한데다가 불완전해서 그 답을 정확하게 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근사치로 풀어내게 됩니다. 수치예보란 대기 중의 기온, 습도, 바람과 같은 기상요소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물리방정식으로 표현하고 전 세계의 관측자료도 입력해 수시로 보정하면서 미래의 대기 상태를 슈퍼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예측하는 것입니다."

-(지난해 태풍 진로 예보가 실제와 다르다며 큰 논란이 됐다) 태풍 진로도 예보 중 하나인데 이때도 수치예보가 쓰이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태풍 진로 예보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참조하는 것이 수치예보 결과입니다. 과거엔 단순히 통계적으로 태풍의 경로를 예측한 때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단순한 방법으로 태풍 진로가 어떻게 변할지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각종 관측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수치예보 모델을 통해서만 태풍의 강도 및 진로의 변환점 등을 보다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과 같은 기상선진국에서는 허리케인 예보의 경우 많은 수치예보의 예측값을 종합한 다중수치예보모델 앙상블(multi-model ensemble)에서 나온 결과들을 기초로 허리케인 전문예보관이 진로·강도를 예보합니다. 향후 우리나라도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이 완성되면 태풍의 진로·강도 예보의 정확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 날씨에서 수치예보가 얼마나 중요한가요.
"기상청에서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날씨예보를 하는 데 있어 수치모델이 40%, 관측자료가 32%, 예보관의 능력이 28%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관측자료의 품질을 개선하는 데 수치예보모델이 쓰이며, 예보관들도 예보능력을 높이기 위해 모델자료를 많이 참조하기 때문에 실제 수치예보모델이 차지하는 비중은 50% 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국형'이라 하면 100% 우리가 만든다는 말입니까?
"'한국형'이라는 용어는 우리나라 사람이 개발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뜻입니다. 100% 독자기술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부분적으로 필요한 기술을 도입해 국내 기술진이 이를 완전 소화한 다음 개선 적용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때 한국의 지형과 기상학적 상황은 물론 (한국이 쏘아올린) 천리안 위성 등의 자료들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뜻도 내포된 것이죠."

-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이 개발되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무엇보다도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태풍이 연이어 한반도를 강타하며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냈습니다. 기상학자들은 한반도에 강력한 태풍이 앞으로 더 많이 다가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갈수록 지구온난화로 인한 집중호우, 한파 등 기상이변도 자주 발생합니다. 이런 이상 기상현상들은 과거와 비교해 볼 때 그 성격이 매우 다르고 기존의 기상지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한반도 주변의 기상상황에 맞게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이 개발된다면 기상 현상의 예측도가 향상돼 보다 정확한 예보가 가능해 질 것입니다."

-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이란 국가적 임무를 맡고 계시는데, 어떻게 한수예 단장으로 오게 되셨나요.
"외국 생활을 오래 하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죠. 저도 지난 26년간 미국에서 지냈지만 우리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도와야겠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 기상청에서 수치예보모델을 자체 개발하는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처음엔 자료 협조 요청을 받아 미국 기상학계 특히 수치예보모델링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전달해 주는 정도였습니다. 이후 이 사업이 정해지게 되면서 지인으로부터 고국을 위해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미국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안정된 연구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무척이나 고민했죠. 하지만 몇 달의 고심 끝에 고국을 위해 지금까지 배운 것을 활용하고자 사업단장에 지원을 했고 마침내 지난해 3월부터 한수예의 선장이 됐습니다."

- 한수예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기상선진국이 평균 30년 이상 걸려 완성한 일이지만 우리는 더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해야 하는 힘든 미션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각오로 연구원들 모두가 매일매일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기상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 한국형수치예보모델 사업을 꼭 성공시키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김 단장은 미 해군연구소 수치예보모델링 전문연구원을 역임했다.
 김 단장은 미 해군연구소 수치예보모델링 전문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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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친께서도 기상 관련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겠네요.
"아버지께서는 기상청(당시 중앙관상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셨습니다. 기상청 예보관을 거쳐 예보국장, 기상연구소장, 기후국장 등을 역임하셨죠. 또한 대학에서 농업기상학 분야로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기상에 관련된 책이나 신문 기사를 쓰거나 라디오나 TV에 출연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자랐습니다.

기상학에 대한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죠. 자연스레 기상학을 전공하게 됐고, 나아가서 최신분야인 대기역학, 수치모델링에 몰두하게 됐죠. 아버지께서는 컴퓨터가 활용되기 전 제한된 정보와 기술로 예보를 하셨지만 저는 최신 컴퓨터를 활용해 일기예보의 근간이 되는 수치예보모델을 만드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2대에 걸쳐 한국의 기상학 발전에 기여하게 돼 영광이며 그런만큼 사명감도 큽니다."

- 수치예보를 전공하면서 얽힌 에피소드 하나만 소개해 주세요.
"(전에 다른 곳에서 밝힌 적이 있지만) 세계적인 수치모델링계의 거장이자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셨던 UCLA의 아끼오 아라까와 교수님과 얽힌 일화를 들려드리죠. 아라까와 교수께서 면담 중에 'A=C'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련된 문제에 대해 저는 'A=B'로 생각한다고 말했다가 그것도 모르냐는 면박을 받았죠. 밤을 새워 논리를 만들어가며 'A=C'라고 억지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이튿날 교수님께서는 되려 'A=B'가 맞다며 번복하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교수님께서는 본인이 틀렸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오히려 뻔뻔하게) "과거는 과거이고 현재의 최신 정보와 지식에 따라 판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황당함과 약간의 허탈감에) 화가 났었죠. 하지만 그 사건 후로 학문이나 사회생활에 있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며 진취적으로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돼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때부터 그것이 제 삶의 기본 철학이 돼버렸답니다."

김 단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인터뷰를 매듭지었다.

"한국형 수치예보모델을 성공시키기 위해 기상학 분야의 실력있는 연구원들 (대부분 박사급)이 한데 모였습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벌써 시작했으니 이제 반은 채워졌습니다. 앞으로 남은 반을 채우기 위해 더욱 힘쓰는 일만 남았죠. 기상학도 기초과학의 한 분야로 어려운 학문입니다. 하지만 일상생활과 밀접한 학문인 만큼 일반인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일은 국가의 복지는 물론 안보에도 영향이 매우 커서 반드시 성사돼야 합니다. 앞으로 관·학계가 잘 협력해 최대의 효율을 내는 사업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김영준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김영준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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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단장 약력
 김영준 단장 약력
ⓒ 온케이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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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정연화 기자(lotusflower@onkweather.com)는 온케이웨더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날씨 뉴스 전문 매체 <온케이웨더(www.onkweather.com)>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수치예보, #예보, #날씨, #한국형수치예보모델개발사업단,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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