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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오륙도 선착장


부산의 상징
▲ 오륙도 전경 부산의 상징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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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1일 아침, 우리 식구는 부산 오륙도 선착장에서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틀 전 우리는 다음달에 있을 아내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고자 부산에 내려왔었는데, 그녀가 그날 저녁을 함께 했음에도 아내를 그냥 보낼 수 없다며 3일째 되는 날 우리를 새벽같이 불러낸 덕분이었다. 오륙도 선착장에서 만나 아침으로 돼지국밥이라도 한 그릇 같이 하자던 그녀.

오륙도 선착장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난 마냥 들떠있었다. 부산 사람이 소개시켜주는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에 대한 기대때문이었다. 그래도 토박이가 추천해 주는 식당이니 뭔가 특별한 것이 있겠거니. 그러나 왠걸. 오륙도 선착장 주위는 기대와 달리 허허벌판이었다. 저 멀리 생뚱맞은 아파트와 컨테이너 선착장만 보일 뿐,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돼지국밥은 고사하고 횟집도 하나 없는 이런 곳에서 무슨 아침을 먹겠다는 거지?

이윽고 아내의 친구가 도착했고, 그녀는 의아해하고 있는 우리에게 어처구니없는 말을 건냈다. 그래도 부산에 왔으면 회다운 회를 먹고, 바다다운 바다를 봐야 하니 이곳에서 유람선을 타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맑고 청명한 날씨도 만나기 힘드니 오늘은 딱 유람선 타기 좋은 날이라나?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도 칼바람이었지만, 유람선의 항로가 빤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대충 오륙도 한 바퀴 돌고, 저 멀리서 부산 해운대나 좀 보여준 뒤 끝나겠지. 눈치를 보아하니 아내도 딱히 내키지 않은 듯 보였다.

녀석들에게 이 풍경은 몇 번째일까?
▲ 바다와 꼬맹이들 녀석들에게 이 풍경은 몇 번째일까?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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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결국 유람선에 올랐다. 아내와 나 둘만 있었으면 절대 타지 않았을 유람선이었지만, 오랜만에 혹은 처음으로 (그렇게 기억할지도 모른다) 바다를 봤을 첫째와 둘째를 생각하자니 어쩔 수 없었다. 우리들에게는 별 거 아닌 항해였지만, 녀석들에게는 오늘 체감할 바다내음과 바닷바람이 무의식의 큰 부분을 차지할 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출발한 오륙도 유람선. 평일인데다가 날씨도 추운지라 손님은 별로 없었다. 우리 외에 낚시꾼 두 세 명과 작업복을 입은 네 댓 명이 전부였는데 대부분이 오륙도 등대가 설치되어 있는 섬에서 내렸다. 말 그대로 등대지기들과 그 등대 밑에서 바다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이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까지 낚싯줄을 드리우는 강태공의 후예들.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등대지기와 강태공의 근거지
▲ 오륙도 등대 등대지기와 강태공의 근거지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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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낚시꾼들을 조금 떨어진 섬에 내려준 뒤 유람선은 다시 선착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유람선이지 결국은 낚시꾼들 운반선. 꼴랑 이 풍경 보자고 비싼 돈과 시간을 투자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차라리 이 시간에 이 돈이라면 주위 아쿠아리움이라도 가서 까꿍이와 산들이가 좋아하는 물고기라도 실컷 보여줄 것을.

노동요 '청춘을 돌려다오~' 부르는 그녀들

얼마 되지 않아 도착한 선착장. 허탈한 마음으로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선장 아저씨가 우리를 붙잡았다. 지금 또 바다에 나갈 것인데 바쁘지 않으면 계속 앉아 있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선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배 안으로 들이닥치는 일군의 여성들. 우리는 그 기세에 눌려 주저앉았고 유람선은 또다시 선착장을 떠나 푸른 바다로 미끄러져 나아가고 있었다.

열창하는 해녀들
▲ 청춘을 돌려다오 열창하는 해녀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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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해녀의 뒷모습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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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을 가득 메운 여성들의 정체는 다름아닌 해녀들이었다. 제일 나이가 어려 보이는 분이 예순 안팎인 듯 했고, 나머지 분들은 연세가 그 이상 되어 보이는 명실공히 할머니 집단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차마 할머니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너무도 생기 충만해 있었고, 강인한 생명력을 풍기고 있었다. 이 엄동설한에도 고무옷을 입고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드는 그들.

해녀들은 우리들을 보며 그때가 좋은 줄 알라며 노동가요로서 '청춘을 돌려다오'를 열창했으며, 여느 할머니들처럼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꼬물대는 우리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쳐다보았다.

멀리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드디어 첨벙 첨벙 시퍼런 바닷물 속으로 뛰어드는 해녀들. 그 비장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순간 부끄러워졌다. 생존을 위해 70이 넘은 노구를 아끼지 않는 그들과 비교하여 내가 나의 삶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었는지 되돌아보게 된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탓할 자격이 없다
▲ 치열한 삶 우리는 그들을 탓할 자격이 없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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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전 대선의 패배로 '멘붕'을 운운하던 나. 어쩌면 그것은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평생을 저리 치열하게 사신 분들도 있건만 어찌 대선 패배 한 번으로 세상이 끝난 듯 유난을 떨 수 있단 말인가. 오랜 시간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 그분들을 폄훼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으며, 우리는 그들을 설득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혹자들은 과거 부마항쟁의 성지 부산이 아직이라며 혀를 차지만 그것은 우리가 아직 그만큼 절박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해녀들이 모두 입수하고 난 뒤 선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는 내가 해녀들에게 많이 잡으라는 말 대신 수고하라는 인사를 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해녀들은 그 일이 어려운만큼 많은 징크스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많이 잡으라는 인사를 받으면 그 날 하루 빈 손으로 집에 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조마조마했을 수밖에.

선장은 그 해녀들이 모두 제주 출신이고 이곳에 온 지 3~40년은 족히 되었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먹고 살기 위해 뭍으로 올라와 매일 힘차게 물질하다 보니 어느새 환갑이 넘었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몇 해 전 제주도 해녀박물관에서 보았던 "여자로 나느니 쉐로 나주(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태어나지)" 구절이 떠올랐다. 새삼 그들의 강인한 생활력에, 그리고 그렇게 이어지는 삶에 경외심을 느꼈다. 이곳 한반도 끝 부산에서 민초의 생명력은 그렇게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신화'를 넘어서야 한다

박정희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물질하는 사람들. 그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과연 그들에게 사회의 발전이란 무엇일까? 소위 진보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 대선에서도 역시 사회 저소득 계층은 여전히 박근혜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이를 단순히 그들이 배우지 못해서, 여권의 빨갱이 선동에 속아서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들을 단순히 계몽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엘리트적 관점으로서 매우 안일하고 위험한 발상이며,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그 어떤 계층보다도 자신의 경험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경이스러운 풍경
▲ 계속되는 물질 경이스러운 풍경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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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1분 1초가 먹고 사는 것과 직결된 사람들. 따라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며, 체험이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쨌거나 보릿고개를 면하게 해주었던 박정희의 신화를 뛰어넘을 만큼의 확실한 청사진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들에게 그 혜택이 어떤 것인지 가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부산의 명물 가족온천
▲ 힐링의 또다른 방법 부산의 명물 가족온천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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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이번 대선의 결과를 두고 문재인 후보 측이 박근혜 후보보다 민생과 관련된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매우 뼈아픈 지적임에 분명하다. 사실 민주당은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에 매몰되어 정작 그들로부터 쉽게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로 했던 질문의 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들은 베이비붐 세대들의 노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부동산 등 자산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불안감을 간과했다. 365일 바다로 나가야 했던 해녀들의 마음을 단지 정치공학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해녀들 덕분에 생각보다 길어진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선착장. 배에서 내린 나는 몇 시간 전 배에 오를 때보다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바다에 뛰어드는 해녀의 모습을 보며 '멘붕'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던 탓이었다. 그래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그들의 치열한 삶을 보며 좀 더 긴 호흡으로 좀 더 넓고 멀리 생각해야함을 다시금 깨닫게 된 것이다.

아침으로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을 먹은 뒤 서울로 올라오는 KTX에 몸을 실었다. 대선 패배 이후 쳐다보기도 싫었던, 수복하지 못한 야도(野都) 부산에서 오히려 힐링을 얻었다는 역설을 곱씹으며 창밖으로 보이는 따뜻한 풍경에 이별을 고했다. 안녕, 부산이여!


태그:#부산, #해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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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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