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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운틴 쿡 빙하가 덮혀 있는 남섬 최고봉 마운틴쿡이 호수위에 떠있다 |
| ⓒ 임재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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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남섬 크라이스트처치로 이동했다. 비행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 날씨는 북섬에 비해 약간 쌀쌀하다. 긴 셔츠를 꺼내 입었다. 따뜻한 느낌이 부담스럽지 않다. 이 도시는 2010년 7.1의 강진으로 도심의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인명피해 있었던 곳이다. 가이드를 만나 남섬 최대의 관광도시 퀸스타운으로 출발했다.
도심을 벗어나자 케터베리 대평원이 펼쳐진다. 장방향 320km, 단방향 80km의 대평원이 기차 길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다. 북섬의 구릉과 달리 남섬의 드넓은 평원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시선을 고정하고 평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들의 숫자만 달라질 뿐 지루할 만큼 변화가 없다. 가끔씩 기차라도 지나가면 좋으련만 화물 기차도 다니지 않는다. 기차를 이용하는 승객이 많지 않을 뿐더러 주로 자동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남섬에서는 거의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세 시간을 넘게 평원을 달려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선 곳은 역시 한국 식당이다. 한국 사람이 뉴질랜드에 꽤 들어와 있는 모양이다. 지나는 도로 휴게소에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과 찻집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인기 있는 직업을 물어보니 의외로 미용사·자동차 정비공 등을 주저 않고 꼽는다.
마을은 600여 가구가 사는 크지 않은 마을이다. 그러나 마을에서 뛰어노는 아이들도 없고, 나무 그늘에 앉아 정담을 나누는 노인들도 없다. 식당 주변에는 슈퍼마켓과 은행이 있고 작은 공원도 있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서 뭘 하는 걸까? 아이들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방학을 싫어한단다. 마을에서 같이 놀 친구들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 가는 것을 즐거워한다니 한편으로 공감이 간다.
우리나라 시골처럼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텅빈 마을 같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이곳 젊은이들은 대학을 마치면 호주나 유럽으로 대부분 떠난다고 한다. 이곳 젊은이들도 낙농을 주업으로 하는 농사일에 흥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젊은이들이 시골에서 살아가기에는 무언가 좀 부족해 보인다. 그들의 젊은 에너지를 쏟아낼 이렇다 할 문화공간도 없고 함께 어울릴 친구가 없어 한국의 농촌 마을처럼 활기가 없어 보인다.
대평원을 지나자 구릉이 나타나고 높다란 산길로 이어진다. 그런데 산에는 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빙하침식으로 만들어 진 산은 대부분 바위산이어서 나무가 자랄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지루한 대평원보다는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산야 모습이 여행의 즐거움을 준다. 저 산 너머에는 과연 누가 살고 있을까. 또 어떠한 풍경이 펼쳐질까. 여행자의 호기심이 끊임없이 되살아나니 말이다.
산을 몇 구비 넘자 그림처럼 아름다운 호수가 펼쳐진다. 서던 알프스의 빙하물이 녹아 만들어진 데카포 호수다. 해발 700m에 위치한 데카포 호수는 빙하에 깍인 암석의 분말이 녹아 있기 때문에 밀키블루라고 하는 청록색을 띠고 있다. 맑은 날, 저녘 무렵에 호수가에 서면 연파랑에서 분홍색으로 호수의 색이 변하는 아름다운 호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흐린 날에는 불타오르는 저녘 노을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데카포 호수에는 영국인 선교사가 세운 뉴질랜드 최초의 선한목자 교회와 양치개의 개동상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편안한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데카포 호수를 지나자 만년설의 서던 알프스가 이어진다. 길가에는 루핀이라는 아름다운 자색의 꽃들이 곱게 피어 있다. 창밖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이 계속 펼쳐진다. 오랫동안 차를 타고와 피곤이 밀려오는데도 눈을 감을 수가 없다. 캔터베리 대평원을 지나고 데카포 호수부터는 남섬의 아름다운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계속 펼쳐지기 때문이다.
후카기 호수에 이르자 서던 알프스의 최고봉인 마운틴 쿡이 어렴풋이 나타난다. 마운틴 쿡이 잘 보이는 호수에 이르자 후카키 호수의 아름다운 그림이 비로소 완성된다. 고운 옥빛의 맑은 호수에 떠있는 마운틴 쿡은 빙하가 덮여 있어 한 겨울에 눈 내린 설산을 보는 듯 한 폭의 멋진 산수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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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카키호수 남섬 최고봉 마우틴 쿡이 후카키호수에 그림처럼 떠 있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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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키 호수를 떠나 남섬 최대 과일산지인 크롬웰로 간다. 개인적으로 남섬 최고의 드라이브코스가 아닐까 한다. 험한 산길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루한 평야도 아니다. 구릉지대를 넘나들며 맑은 호수의 주변을 달려가노라면 마음의 평화가 밀물처럼 밀려오는 곳이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쭉 벋은 시골 길을 마구 달리가고 싶은 충동을 주체할 수가 없다. 남섬에서 혹시 살게 된다면 주저하지 않고 이곳 크롬웰을 택할 것 같다.
크롬웰에는 길가에 풍성한 과일 가게가 있다. 먼 길을 달려온 여행객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 아닐까 한다. 그림 같은 풍경도 오래 보면 지루하고 자연 식욕이 돋기 마련이다. 채리 키위 포도등 이곳에 나는 온갖 과일들이 화려한 빛깔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오감을 자극하는 과일의 다채로운 빛깔이 금세 여행자의 마음을 빼앗고 만다. 이제 그 어떤 비경도 관심이 없다. 애플채리 하나를 얼른 입에 넣었다. 싱싱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꿀맛이다. 먹고 또 먹어도 물리지 않고 자꾸 손이 간다. 역시 여행의 즐거움은 먹는 데 있는 것 같다.
크롬웰에서 퀸스타운을 향해 다시 시동을 걸었다. 조그만 산길을 너머 달리자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다가가고 있다. 옛날에 사금이 발견되어 골드러시를 이루었던 애로우 마을을 지나 퀸스타운에 들어선다. 기묘하게 생긴 검은 색의 높은 산들이 나타나더니 그 아래로 푸른 호수가 펼쳐진다. 와카티푸 호수 주변 언덕으로는 팬션과 호텔로 보이는 많은 집들이 호수를 바라보며 멋진 도시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차에서 내려 수상 레져 센터에서 쾌속선을 타고 퀸스타운으로 들어섰다. 호수 위를 달려가며 바라보는 도시풍경이 색다르다.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호수에 미끄러지는 기분 또한 스릴이 있다. 사람들은 도심의 거리에서 차와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박해 있는 증기선위로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거리의 악사들이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며 도심의 거리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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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카티푸호수 퀸스타운에 있는 와카티푸 호수에 흰구름이 산등성이에 길게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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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스타운의 하루는 한국의 여름보다 길다. 오후 9시가 넘었는데도 해가지지 않고 도심 거리를 비추고 있다. 남극이 멀지 않으니 북반구처럼 백야 현상이 있는 듯하다. 밤 열시가 훨씬 넘어서야 어둠이 도심 깊숙이 내려와 아름다운 퀸스타운에 별들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내일은 아침 일찍 최종 목적지 밀포드사운드로 가야한다. 퀸스타운에 빛나는 밤별들을 바라보며 잠을 일찍 청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