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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퇴거 이후 '기막힌' 5년을 살았습니다. 재개발이 되고 나면 우리(철거민)는 사람도 아니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15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대한문 앞. '용산참사 살인진압 책임자를 처벌하라' 등의 문구가 적인 몸자보를 두른 5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용산참사 범국민 추모주간(14~23일)' 일정 중 하나인 '강제퇴거 현장 순회단(아래 순회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오후 4시까지 재개발이 중단된 서울 순화동과 일산 덕이동, 김포시 신곡마을을 차례로 찾아 피해상황을 살펴봤다.

진행을 맡은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 사무국장은 "홈리스 행동,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전국철거민연합 등에서 연대한 20여 명과 대학생 등 일반인 30여 명이 모였다"며 "강제퇴거, 강제철거가 진행된 세 곳을 통해서 '용산참사'가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제대로 잠 못잘 정도로 고통스럽다"

유영숙씨가 순회단 참석자들에게 순화동 재개발 투쟁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유영숙씨가 순회단 참석자들에게 순화동 재개발 투쟁상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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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경 순회단이 처음 찾은 곳은 서울시 중구 순화동. 순화동 식당가는 밥 때마다 근처 직장인들로 붐볐다. 상인들에게 그곳은 일터이고 집이었다. 한정식 집 '미락정'을 운영하던 유영숙(52)씨도 마찬가지였다. 2005년, 재개발 바람이 순화동에 불어왔다. 세입자였던 유씨는 철거민이 됐다. 그는 '용산참사' 연대투쟁에 나섰다 사망한 고 윤용현씨의 아내이기도 하다.

이제 식당가 자리는 철제 울타리가 둘린 채 눈만 쌓여있다. 옛날의 흔적이라곤 한쪽 벽면이나 골격만 남은 건물 서너 채뿐이다.

유씨는 "(용산참사) 4주기는 말뿐이지 철거민들의 삶은 80년대 만큼이나 열악한 상황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고통스럽다. 아직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안 되지 않았느냐. 같이 조금이나마 격려하고 힘을 주시면 고맙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세에게는 절대로 이 억울함을 물려주지 않을 겁니다."

김명자씨가 세 딸과 살고 있는 천막.
 김명자씨가 세 딸과 살고 있는 천막.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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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씨가 순회단에게 자신의 투쟁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명자씨가 순회단에게 자신의 투쟁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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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덕이동, 4차선 도로 옆 천막에는 '여성의류 도매판매'라고 적혀있다. 문 너머로 줄지어 걸린 옷가지들이 보였다. 주변으로 늘어선 아파트 단지들이 멀지 않았다. 안쪽으로 들어서자 차례차례 방 셋과 부엌으로 이어졌다. 갖가지 살림살이들이 방에 흩어져있었다. 고개를 들자 얽힌 전선이 보였다. 반대쪽 문으로 천막을 나서자, 일산 덕이지구 철거민 김명자(52)씨는 허리를 굽히고 있었다. 그는 순회단에게 커피를 대접한다며 아스팔트 위로 종이컵을 늘어놨다.

김씨는 20대인 세 딸과 함께 생활한다. 가족의 한 달 수입은 기초생활수급으로 들어오는 것이 전부다. 물도 화장실도 없어 볼 일은 신문지에다 해결 중이다. 그는 "강제 퇴거 이후 기막힌 5년의 세월을 살았다"면서 "재개발이 되고나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다시는 이런 억울한 일이 없었으면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이 (철거 때문에) 청소년기를 힘겹게 보낸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후 김포 신곡마을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빈곤사회연대가 제작한 '강제퇴거감시단' 영상이 상영됐다. 철거민들을 인터뷰한 영상에서 김명자씨의 큰딸 박은주(29)씨는 "(철거는) 누구 하나가 죽어야 관심 가지잖아요"라 말했다. 상도4동의 한 철거민은 "재개발법은 건설업자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며 "세입자는 백전백패"라고 나직이 말했다.

대학생 이가현(21·가톨릭대 법학과)씨는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많아 행사에 참여했다. 이씨는 "이렇게 현장을 본건 처음인데, 국가와 법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국민을 지켜주기 위해 법이 있는 건데, 지금은 오히려 건설업체를 지켜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거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동안 국가는 대체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강경일 전국철거민연합회 홍보위원도 2008년 같은 일을 겪었다. 서초구 내곡동 헌인가구단지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다 쫓겨난 그는 "재개발법을 개정해 세입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소연 전철연 조직위원은 "재개발 중단으로 오도 가도 못하는 철거민들에게도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을 보탰다.

재개발로 한적해진 마을... 고라니가 뛰어다닌다

70여 가구와 250여 공장이 있던 신곡마을의 현재.
 70여 가구와 250여 공장이 있던 신곡마을의 현재.
ⓒ 박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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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마을의 건물들은 대부분 비어있다.
 신곡마을의 건물들은 대부분 비어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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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35만 평 부지의 경기도 김포시 신곡마을. 재개발을 진행하던 건설업체 새날이 자금난으로 개발을 중단하면서 이제 철거된 공장부지에는 풀이 무성하다. 남은 10여 가구의 철거민들은 그 속에서 종종 고라니를 본다. 철거민들은 고장 난 가로등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폐건물이 늘자 마을이 한적해졌고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두 명의 외지인이 마을 한 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규승 신곡6지구상공세입자 대책위원장은 "처음엔 6개월 정도 하다가 끝날 줄 알았는데, 중간에 (재개발이) 멈춰버린 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났다"고 말했다.

용산참사로 숨진 고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씨는 "여기(김포 신곡마을)에 처음 와봤다. 하지만 하나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며 미안해했다. 전씨는 "그래도 힘내시고, 모두 연대해 함께 살아가자"며 참가한 사람들과 철거민들을 격려했다. 피해지역 순회단은 일정을 마치고 오후 4시경 대한문 앞으로 돌아갔다.

박래군 용산참사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오늘 '강제퇴거 순회단'이 돌아본 지역들이 "재개발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여준다"면서 "재개발의 주체조차 사라진 탓에 철거민들은 하소연할 곳도 없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현진, 유성애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 기자입니다.



태그:#용산참사 4주기, #강제퇴거 순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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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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