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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광화문 대첩' 유세에 안철수 전 후보가 '깜짝 등장'해 문 후보 지원유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의 '광화문 대첩' 유세에 안철수 전 후보가 '깜짝 등장'해 문 후보 지원유세를 펼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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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나는 이번 대선은 '문재인의 잘못'보다는 '박근혜의 힘'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었다고 평가했다. 박근혜 후보는 센 후보였다. 그러면 과연 이번 대선에서 야권은 질 수밖에 없었던가? 그렇지는 않다. 시대정신과 유권자구도를 볼 때, 충분히 해볼 만한 선거였다.

그렇다면 승부처는 어디였던가? 어디에서 이번 대선의 승부가 결정되었던가? 대선직후 <중앙일보>가 실시한 유권자 패널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0%가 박근혜 후보의 승리 요인으로 '기대에 미흡한 야권 후보 단일화'를 뽑았다.

여론조사의 추이를 살펴보면, 11월 초만 해도 '여권후보로 정권연장이냐, 야권후보로 정권교체냐'를 물으면 '정권교체'가 10%p 정도 높았다. 이는 1년 동안 계속되어온 흐름이었다. 그런데 11월 말에는 '야권후보' 선호도가 없어지고 여야가 대등해졌다.

도대체 11월에 무슨 일이 있었나? 무엇이 이런 여론의 변화를 이끌었나? 그것은 바로 단일화 과정이 국민들에게 실망을 줬고 단일화 마무리도, 단일화 이후에도 국민들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거치며 전반적인 판세가 12월로 넘어가면서 야권에 어려워진 것이다.

사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안철수 현상과 안철수 후보의 리더십이었다. 지금 분위기는 단일화를 양보한 안철수 후보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거의 금기시되지만, 이번 대선 야권 패배의 근본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복기가 필수적이다.

왜 이번 대선에서 미흡한 단일화가 결정적이었나? 그것은 2002년과 비교해보면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2002년 4월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될 때 그 지지도는 50%에 이르렀다. 그 중 많은 지지자가 하반기에는 정몽준 후보 지지로 바뀌었다. 따라서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가 결정되자마자 정몽준 후보의 지지자들은 노무현 후보 지지로 바꾸었고, 거기에 시너지효과까지 나타나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급상승했다.

반면, 지난해 대선의 경우 야권 지지자의 다수는 1년 가까이 안철수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었다. 안철수 현상이 문재인 후보의 정치 시작보다 앞섰던 것이다. 따라서 2012년 단일화가 '안철수 후보의 눈물'로 끝나고, 안 후보의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원활동도 기대에 못 미치자 시너지효과는 고사하고 지지자의 100% 통합도 이뤄지지 못했다. 게다가 시간도 부족했다. 안철수 지지자들이 문재인 후보 지지로 바꾸기 위해서는 마음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전에 대선이 끝나고 말았다.

왜 이렇게 단일화가 잘못되었나? 대선 패배 후 그 책임이 고스란히 문재인 후보에게 지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선 단일화의 부족함은 안철수 후보의 책임이 크다. 안 후보는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두고 출마선언을 하면서, 전략적으로 '단일화 벼랑 끝 전략'을 취했다. 전략적으로 단일화를 계속 뒤로 미뤘다. 늦추면 늦출수록 유리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두 가지 때문이었다.

첫째,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를 함께 '낡은 정치'로 공격하고 자신을 '새 정치'로 내세우기 위해서는 3자(박·문·안) 구도의 유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단일화 프레임에 들어가는 순간 '낡은 정치 대 새 정치'의 구도가 사라지는 만큼, 안철수 후보는 가능하면 끝까지 단일화를 늦춰서, 대선을 '낡은 체제 대 새로운 체제', '기득권 대 국민'의 프레임으로 끌어가려고 했다.

둘째, 단일화를 최대한 늦출수록 유리한 경선방식으로 결정될 수 있다고 전략적 판단을 한 것이 분명하다. 여론조사 경선이면 이길 것으로 생각하고, 단일화를 최대한 늦춰서 현실적으로 여론조사 외에는 경선방식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단일화 벼랑 끝 전략'이 기본적으로 단일화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국민들에게 단일화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대단히 치명적인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위험성은 결국 뒤에 현실로 나타났다.

더욱 문제는 이런 '단일화 벼랑 끝 전략'이 단일화 효과를 감소시키는 위험성과 함께 안철수 후보의 지지도를 떨어트리는 자책골의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단일화를 계속 늦추자 민주진보 지지자들, 특히 호남과 30대가 안 후보에게 실망하고 지지를 철회했다. 대신 문재인 후보로 지지를 바꾸었다.

안철수는 왜 실패했는가?

왜 안철수 후보는 실패했는가? 출마선언 이후 안철수 후보의 정치행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근본적인 모순점을 가지고 있었다. 안철수 후보의 정치실험이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이 두 가지의 모순점에서 기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째, 출마 선언 이후 안철수 후보는 이미 정치를 시작한 정치인이요, 정당 수준의 캠프조직을 갖춰가면서도 마치 자신은 정치인이 아니라는 듯이 정치 전체를 낡은 정치로 공격했다. 이는 이미 정치를 하면서도 정치권 밖의 '아웃사이더의 이익'을 향유하려는 일종의 불공정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것은 비(非)정치 내지 반(反)정치의 전략으로 정치의 최고봉인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모순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둘째,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의 단일화(또는 문재인 후보의 양보)로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했다. 즉, 민주당과 그 지지 세력을 기반으로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 그러면서 안철수 후보는 줄곧 민주당과 그 지지 세력을 낡은 정치세력, 청산되어야 할 정치세력으로 공격했다. 민주당을 기반으로 대통령이 하려고 하면서 동시에 민주당을 낡은 정치로 공격하는 모순성, 그것이 안철수 후보의 두 번째 모순이었다.

이러한 두 가지의 모순, 두 가지의 이율배반이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을 떨어트리고 실패에 이르게 한 원인이었다. 본인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야권의 대선승리 자체를 힘들게 했다.

또한 안철수 후보가 출마선언 이후 계속 주장한 '새 정치와 정치혁신'은 대선의 전선을 흐트러뜨렸다. '정권교체'라는 핵심 이슈에 집중해야 할 시점에 정치혁신 주장은 결과적으로 야권의 승리를 저해했다. 더구나 안 후보가 주장한 정치혁신은 고작 의원정수 축소와 같은 비본질적인 것에 불과했다.

안철수 현상은 민주당의 자기해체가 초래한 재앙이었다

안철수 현상을 복기하며 이런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과연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 안철수 후보의 주장처럼 기존정당 부정, 새 정치였나? 물론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안철수 현상의 기폭제가 무엇인지를 보면 알 수 있다.

2011년 9월, 안철수 원장이 박원순 후보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하자 박근혜 후보와의 여론조사 양자대결에서 엇비슷한 지지율이 나왔다. 이것이 안철수 현상의 시작이었다. 안철수 현상에는 야권후보 단일화가 전제되어 있었다. 안철수 현상은 정권교체를 통해 시대교체를 이뤄내고 싶은 사람들의 염원이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그런데 왜 국민들은 정당 밖의 안철수 원장을 야권후보로 생각했을까? 그것은 직선제 이후 주요 선거마다 단일화가 논의되고 성사되었기에 이를 경험한 국민들에게 새누리당 소속이 아니면 민주당이든 아니든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즉, 국민들에게 야당은 민주당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이라는 넓은 의미의 정당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범 야권후보로, 광의의 민주당 후보로 받아들여진 안철수 후보를 민주당이 검증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검증시스템을 작동해 주저앉히지도 못했고, 당력을 모아 대통령후보에 걸맞게 준비시키지도 못했다. 그저 1년 가까이 혹시나 하며 지켜보다가 출마선언 후에는 그의 '반(反)정치의 정치' 행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왜 민주당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이를 반복하지 않을 방도는 없을까? 나는 이것이 2012년 대선 평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단일화의 역사가 만들어낸 역설이요, 민주당이 반복해온 스스로 자신을 해체해온 과정이 민주당에게 보복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민주당은 얼마나 스스로를 무시하고, 분당하고 탈당하고 당을 깨왔던가? 사실 그 동안 민주당이 정당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도입한 대부분의 제도는 당의 중심성과 리더십을 해체하고, 정당을 약화시키는 제도개혁이었다. 민주당의 리더십 해체는 결국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의 리더십의 부재로 결과 되었다.

최장집 교수는 "민주당의 정당개혁은 민주화 이후 여러 정치개혁 가운데 최악의 변화 중 하나"요,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자해적 정당개혁"라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대권과 당권의 분리, 당대표와 원내대표의 분리, 집단지도체제 등 당의 권력을 분산하는 제도 개혁을 그 예로 들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자해적 정당개혁의 최종판은 "국민경선제와 여론조사로 공직후보를 선출하고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이라며, "그런 식이라면 정당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당의 공직선거 후보와 지도부를 선출하면서 당원들에게 특별한 권한을 주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굳이 당비를 납부하며 당원이 되고 정당 활동을 하겠는가? 국민경선제를 확대하고, 여론조사와 모바일 투표를 불러들이는 문제에서 민주당만큼 적극적인 정당도 없었다.

정당개혁이라는 이유로 지구당을 폐지한 것 역시 민주당의 해체에 큰 기여를 했다. 지구당을 없애자 하부구조가 사라진 민주당의 약세가 구조화 됐다. 반면, 새누리당의 지지기반인 보수 세력들은 자유총연맹과 같은 관변 단체를 통해 유지되었다. 지구당 폐지에 이어 중앙당 폐지와 원내정당화가 정당개혁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중앙당을 폐지하고, 완전국민경선제를 하자는 등의 안철수의 정치 혁신안은 사실 과거 민주당의 잘못된 정당개혁안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현상은 민주당이 그동안 해온 '자해적 정당개혁', '정당 해체'에 의해 초래된 일종의 재앙이었다. 

강한 민주당, 강한 리더 없이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대선 패배 후 민주당에서 제기되는 쇄신안에는 과거 민주당이 계속해왔던 정당해체의 반복이 많아서 우려스럽다. 안민석 의원은 "민주당은 역사의 죄인인 만큼 기득권을 버리고 안철수 후보와 함께 하는 신당에 참여해야 한다. 민주당은 신당의 한 축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며, 앞으로 민주당은 안철수 후보가 내세운 '구정치 vs. 새정치'의 프레임으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과거 위기에 처했을 때, 당시 박근혜 대표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당시 박 대표가 얼마나 자신의 당을 소중히 여겼고, 얼마나 자기 당의 중심성과 리더십을 보존하면서 위기를 극복했는지 보고 배워야 한다. 또한 새누리당이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인적자원을 키우고 검증해서 차기 주자로 만들어왔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군사독재의 시녀에 불과했던 부끄럽고 형편없는 역사를 가진 새누리당이 지금은 보수의 중심으로 확고히 섰다. 그리고 그러한 보수정당의 힘이 있었기에 2007년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도, 2012년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도 가능했다.

반면 그동안 민주당은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해왔다. 걸핏하면 탈당하고, 분당하고, 또 합당했다. 자신의 인적자원을 믿지 않고 걸핏하면 당 밖의 사람들을 기웃거렸다. 끊임없는 자기부정, 그것은 올바른 정당정치의 모습도 아니지만, '새로운 정치'의 모습도 아니었다. 오히려 국민들에게는 식상한 정치행태, 구태 정치로 느껴지고 있다.

대선 패배 이후 '친노프레임 극복'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나는 민주당이 '친노프레임'을 극복하는 가장 분명한 길은 정당정치를 강화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해적 정당개혁', 정당해체를 그만 두고 민주당의 중심성과 리더십을 강화하는 일이야말로 바로 '친노프레임'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민주당이 살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의 정치지형과 세력균형을 볼 때, 단일화는 앞으로도 불가피한 점이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중심성과 리더십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단일화 역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이번 대선의 미흡한 단일화는 그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민주당의 리더십 강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중도까지 아우르는 민주진보의 폭넓은 연대 역시 불가능함을 이번 대선 패배를 통해 우리는 배워야 한다.

앞의 두 편의 '대선 뒤집어 보기' 글에서 나는 이번 대선을 통해 민주진보세력이 배워야 할 것은 리더십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민주당을 좋은 정당, 강한 정당으로 재건하지 않고서는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 민주당의 강한 리더십이 없이는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민주당이 배울 것은 반(反)정치주의적 성향의 극복, 정당의 중심성과 리더십 강화, 정당을 통한 책임정치의 강화다. 민주당이 자신을 사랑하고 믿지 않으면 그 누구도 민주당을 믿고 사랑하지 않는다. 항상 당 밖을 기웃거리는 버릇은 버려야 한다. 1470만 표의 힘을 소중히 해야 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이란의 영화감독이 만든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라는 영화가 있다. 오래 전에 봤던 영화인데, 대선 패배 후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그 비디오를 구해서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렇다. 야권은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또 민주주의도 계속되어야 한다. 또한 역사의 진보를 위한 노력 역시 계속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새시대전략연구소 소장입니다



태그:#안철수, #단일화 미흡, #반정치, #자해적 정당개혁, #민주당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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