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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 보름 이상이 지나고 해도 바뀌었는데 여전히 평상심을 찾지 못한다. 대선에 관한 생각들이 노상 온 뇌리에 통증처럼 매달려 있고, 한숨을 쉬게 한다. 또다시 대선 관련 이야기를 한다는 게 적이 곤혹스럽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오늘만 사는 게 아니니, 앞날을 위해서도 할 말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20년 전과 오늘의 본말전도 현상

돌이켜보면 새누리당과 범여권세력은 선거 전략이 매우 치밀하고 집요하고 철저했다. 이명박 정권을 세우기 전 '잃어버린 10년'을 고창할 때부터 이미 5년 후와 10년 후를 준비했다. 선거 당시에 필요한 전략들은 차후 문제였다. 선거 전에 나설 선수를 만들고 준비시키는 것보다 운동장을 조성하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썼다.

선수는 이미 정해진 셈이었다. 선수를 고르고 정하는 일에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비할 필요가 없었다. 관중의 관심을 증폭시키는 효과적인 요식행위만 필요할 뿐이었다. 그들은 선수가 유리한 조건 속에서 뛰도록 경기장을 장악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경기장을 다듬고 정비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한쪽을 기울어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들이 '잃어버린 10년'을 고창했던 것은 그런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뼈아픈 인식의 다른 표현이었다. 잃어버린 10년을 종식시키고 다시 정권을 잡았을 때 그들은 오랜 세월 속에서 강고하게 내장된 관성과 능력과 경험들을 되살려 경기장을 기울게 만드는 일에 총력을 쏟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방송장악을 실현시켰고, 날치기 처리로 미디어 법을 통과시켜 종편들을 출현시킴으로써 조중동 등 수구 족벌언론들과의 결속을 더욱 강화했다. 검찰과 경찰 등 권력기관들을 '잃어버린 10년'의 이전 형태로 되돌리는 일에도 성공했다. 법원과 선거관리위원회도 그들의 수중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경기장을 기울게 만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국인의 전반적인 심성, 대중의 속성을 일찍부터 속속들이 간파하고 있었다. 바람에 약하고 망각을 잘하는 것, 개인적인 원한은 오래 간직하면서도 공적인 과오들은 쉽게 용서하는 것, 본질보다 여줄가리(중요한 일에 곁달린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에 집착하는 본말전도 현상 등을 익히 알고 그것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전략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

대통령 후보 2차 토론회 당시 박근혜 후보와 이정희 후보
 대통령 후보 2차 토론회 당시 박근혜 후보와 이정희 후보

나는 2012년 12월 4일의 1차 TV토론을 지켜보면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약점이나 치부들을 공격하는 순간 불현듯 1992년의 부산 '초원복국사건'이 떠올랐다. 이정희의 발언에 일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지만, 곧이어 큰 우려와 불안 속으로 빠져들었다. 

'초원복국사건'이란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92년 12월 11일 김기춘 법무부 장관과 부산의 주요기관장들이 '초원복국'에 모여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방안을 논의한 사건이다. 이 일은 정주영 후보의 국민당이 도청으로 증거를 확보한 다음 세상에 공개하여 큰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곧 엄청난 역풍으로 도리어 김영삼 표를 더욱 크게 결집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관권선거라는 부도덕성보다 도청을 더욱 나쁜 일로 부각시킨 주류 언론의 의도는 그대로 적중되었다. 말하자면 여줄가리가 본질을 완전히 집어삼킨 셈이다. 나는 1992년의 그 기이한 본말전도 현상을 돌연 상기하면서 그때로부터 20년 후인 오늘의 본말전도 현상을 예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다카키 마사오도 사라졌고, 충성혈서도 증발해버렸고, 박근혜가 전두환에게서 받은 6억 원도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다. 결국 '불쌍한 박근혜'와 '싸가지 없는 이정희'만 남게 되었다. 새누리당의 선거 전략에 그것까지 사전에 포함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20년 전의 그 '경험'을 새롭게 되살려 여줄가리가 본령을 집어삼키는 본말전도 현상을 그들은 또 한 번 구가할 수 있었다.  

유신독재의 산물인 '종북 주술'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12월 18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씨 사진을 들어보이며 박 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하루 앞둔 12월 18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역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유세에서 지지자들이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씨 사진을 들어보이며 박 후보를 응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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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의 풍경을 기억한다. 유신독재에 대한 저항이 점점 거세어지자 자신이 자신을 뽑은 종신대통령 박정희는 1975년 2월 12일 유신헌법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시행한다. 이때도 정부의 일방적인 선전공세만 있었고, 반대의견 개진은 철저히 차단되었다. 그리고 공무원들이 대대적으로 동원되었다. 그 결과 투표율 79.8%에 찬성률 73.1%라는 기록이 나왔다. 

공무원 동원에는 학교의 교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사들은 가정방문 형식으로 학부모들을 찾아다니며 투표를 하도록 유도했고, 찬성을 하도록 설득해야 했다. 나는 그런 일들을 하고 다닌 교사들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앳된 처녀 교사들도 있었다. 당시 내 바로 아래 누이동생도 초등학교 교사였다. 나는 특히 처녀 교사들을 애처로운 눈으로 보곤 했다. 교사 본연의 일이 아닌 그런 일을 하면서 그들이 수치심과 모멸감에 시달리지는 않나 걱정을 했다.

그때로부터 40년 가까이 흐른 오늘, 당시의 앳된 처녀 교사들은 대부분 환갑을 넘긴 나이로 지금도 내 눈 앞에 있다. 교장도 있고, 교감도 있고, 평교사들도 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그때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당시 그들에게 수치심이나 모멸감 따위는 아예 없었던 듯싶다. 유신교육을 철저히 받았고, 또 유신교육을 잘 전파했던 '유신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들에게서 '불쌍한 박근혜'와 '싸가지 없는 이정희' 론을 들으며 어느 정도 가방끈을 가진 사람들도 무지몽매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암울한 절망감을 안아야 했다.

유신세대의 대표적인 특징 한 가지는 '종북론'에 목을 매고 있다는 점이다. 유신의 최대 명분은 '반공'이었다. 유신교육은 반공교육이었고, 반공교육은 곧 유신교육이었다. 오늘의 종북론은 유신교육의 소산임이 명백하다. 오늘의 종북론은 과거의 유신만큼이나 광포하고 강압적이며 살벌하다.

과거의 친일세력이나 유신독재를 비판해도 '종북'이라고 하고, 오늘의 이명박 정권의 악정과 실정을 말해도 종북이라고 매도한다. '평화통일'을 입에 담아도 종북이라고 하고, 정의와 인권이라는 말에도 종북을 들이댄다. 그만큼 종북은 무소불위의 형태다. 오죽하면 새누리당 입당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빨갱이 되려느냐"는 말까지 하겠는가. 빨간 옷은 괜찮지만 노란 목도리를 착용해도 좌빨이라는 소리를 한다.

종북이라는 주술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국가안보'가 자기들만의 전유물인 줄 안다. 안보를 최고의 가치로 삼을 뿐만 아니라 유일무이한 가치로 여긴다. 민주주의에 필요한 여타 가치들은 안보를 저해하는 것으로 여기며 무조건 종북 혐의를 들이대고 본다.

이런 현상은 요즘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대략 '잃어버린 10년'을 고창할 때부터 함께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확대되어 가면서 유신세대를 한껏 결속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위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민주당, 집안싸움 할 때가 아니다

대선 이후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세차게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멘붕(멘탈붕괴)'을 겪는 유권자들 다수가 민주당의 전략 부재를 주요 패인으로 꼽는다. 전략 부재를 증명하는 논거들이 봇물을 이룰 정도였다.

대부분은 고답적이고 학술적인 논거들이었다. 나같이 직접 생활현장에서 발로 뛴 사람들이 피부로 접하고 느낀 현상들의 맥을 짚어보는 논거들은 의외로 적었다. 민주당은 우선 '유신세대'들에 대한 심층적인 대책이 없었다. 40대 이하 젊은 층의 폭발하는 에너지 쪽으로만 너무 기대고 과신을 했다. 한국인의 전반적인 심성, 대중의 속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여러 가지 돌출 현상들에 대한 사전 대비책을 전혀 마련하지 못했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7일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7일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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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자발적인 행동 결집체들, 이를 테면 선거 막판의 '국민연대' 같은 것은 일시적인 에너지일 뿐이었다. 시민들이 장기적이고 세부적인 전략을 수립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당연히 정당의 몫이다. 민주당은 역사와 전통을 지닌 거대 정당이 아닌가. 피와 눈물로 점철된 항쟁 경험이 축적되어 있고, 10년 동안의 집권 경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민주당은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지 못했다. 일제 때 일본인들도 했던 한국인들의 전반적인 심성과 대중의 속성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제대로 해놓지 못했다. 여러 가지 돌출 현상들에 대한 가상들을 두루 설정해놓고 미리미리 대응책들을 세워놓는 일에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민주당이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당직자들과 국회의원들의 사명감 부족 탓일 수도 있다. 적어도 민주당에 참여할 때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정의감이 기본이었을 터다. 기울어진 경기장에 대한 인식과 각오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울어진 경기장의 기울어진 쪽에 서서 싸우려면 위쪽의 상대보다 몇 배로 더 힘을 써야 하고 더 지혜로워야 함을 전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민주당은 전체 투표자의 절반에 가까운 48%의 국민에게 죄를 지었다. 1469만 명의 국민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정신붕괴'와 지속적인 후유증에 시달리는 상황이다. 민주당이 그 죄를 갚는 길은 분골쇄신과 심기일전, 공고한 단결력이다. 패배 요인들을 철저히 분석하고 반성하며 업데이트된 모습으로 다음 선거들에 대비하는 일이다.

그렇건만 벌써부터 친노니 반노니 하며 집안싸움이나 하고, 국회의원 연금법 같은 부끄러운 법안에 덜컥 찬동하여 통과시키는 일이나 하다니. 주제를 모르는 짓이다. 정당에는 계파가 있기 마련이고, 계파가 있음으로써 역동성이 배가된다. 계파 존재나 계파 간 갈등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것을 외면한 채 책임전가나 하고 분열적인 언동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몰상식이다.                       

민주당은 왜 1469만 명이 박근혜를 거부하고 문재인을 지지했는지, 왜 지지자 다수가 눈물을 흘리며 정신붕괴를 겪는지 깊이 성찰하고 심기일전해야 한다. 1469만 명은 그 자체로 웅대한 힘이다. 국회의원 127명은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5.16쿠데타가 발생한 지 정확히 51년 6개월 만에 치러진 제18대 대선, 국민의 피로 쟁취한 직접 선거에서 5.16쿠데타와 같은 숫자인 51.6%의 지지표로 숭고한 국민주권을 봉쇄했던 박정희가 부활한 형국인 오늘의 아이러니한 현상에서 민주당의 좌표는 더더욱 명확하다.

민주당은 오늘의 좌표를 명확히 인식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눈물 어린 신념을 지닌 국민에게 희망과 신뢰를 선사하는 처신을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 현재 수많은 유권자들이 투개표에 의혹의 눈을 보내고 수(手)검표 시행을 요구하는 청원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정도 지지자들의 요구라면 민주당도 이 일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우선 이달 18일까지 유효한 투표용지 보관 요청에 나서기 바란다.



태그:#제18대 대선,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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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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