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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림의 절경, 멀리 지평선 너머에 관광객이 많이 찾는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이 있다.
 노스림의 절경, 멀리 지평선 너머에 관광객이 많이 찾는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이 있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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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뒤덮인 시온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 다음 목적지는 유명한 그랜드 캐니언(Grand Canyon)이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그랜드 캐니언은 남쪽에 있는 캐니언(Grand Canyon South Rim)이다. 우리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길이므로 먼저 북쪽 캐니언(Grand Canyon North Rim)을 본 후 관광객이 많이 찾는 남쪽 그랜드 캐니언을 가기로 했다. 서쪽에 있는 그랜드 캐니언도 좋다는데 거기까지 들르기에는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

시온 국립공원을 나오니 휴게소(Rest Area)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식사할 수 있도록 돌로 깔끔하게 만든 테이블과 화장지까지 마련된 화장실도 있다. 점심을 해결하기에 좋은 장소다. 나무 그늘에 주차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나이 많은 부부가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또 다른 테이블에는 여섯 명의 여행객이 점심을 먹고 있다. 한국 사람임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테이블 가득히 차려 놓은 음식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음식을 나누는 모습이 한국에서 흔히 보던 모습이다. 간단한 샌드위치 하나로 점심을 대신하는 서양인에 비하면 잔칫상이나 다름없다. 하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행을 해도 먹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우리 민족이다.

우리가 점심 준비를 하는 동안 조금은 떠들썩한 식사를 끝낸 한국 관광객은 길을 떠난다. 봉고차 한 대로 같이 여행하는 모양이다. 요즈음은 관광지에서 한국 사람들을 자주 보기 때문에 이런 오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도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예상 외로 그들이 떠난 테이블에는 밥풀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미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일까?

우리도 간단하게 이른 점심을 끝내고 기분 좋게 길을 떠난다. 오늘은 130마일(200킬로미터) 정도만 운전하면 되는 비교적 짧은 거리다. 다음 목적지에는 어떠한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도로에는 대륙을 횡단하는 화물 트럭과 캐러밴을 끌고 다니는 자동차가 많다. 끝없는 도로를 달린다. 지평선이 보이는 광야를 운전하다 보니 식곤증이 엄습한다. 졸음을 참으며 조금 더 운전하니 경치를 볼 수 있게 만든 전망대(view area)가 나온다. 꽤 높은 곳이다. 경치를 보는 것보다 일단 차 안에서 눈을 붙인다. 10분쯤 잤을까? 아내는 코까지 골며 잠을 잤다고 한다.

졸음을 이겨낸 몸으로 차에서 나와 경치를 본다. 꽤 높은 곳이다. 지평선까지 보이는 곳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막의 거친 모습이다. 양희은의 '저 거친 광야에'라는 가사가 생각난다. 아주 멀리, 흙덩이로 둘러싸인 성곽 같은 모습이 보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거친 광야이다.

노스림 그랜드캐니언 입구에 들어서면서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전개된다. 키가 큰 침엽수가 키 자랑을 하며 빽빽이 들어서 있고 넓은 초원도 있다. 초원에서는 까만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주위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들꽃이 만발하다.

그랜드 캐니언 북부 입구에 펼쳐지는 넓은 초원과 침엽수
 그랜드 캐니언 북부 입구에 펼쳐지는 넓은 초원과 침엽수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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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를 받는 곳에서 국립공원 일 년짜리 패스를 보여주니 지도를 준다. 지도를 보며 텐트촌을 찾아 떠난다. 중간 중간에 차를 세워놓고 풍경 볼 수 있는 곳이 나오지만, 잠자리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우리는 조급한 마음으로 텐트촌을 먼저 찾는다.

텐트촌에 도착하니 다행히 자리가 있다. 시온 국립공원과 마찬가지로 개인 텐트장은 자리가 없고 그룹 텐트장에만 자리가 있다. 돈을 내려고 하니 현금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신용 카드로 결제한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현금 취급하는 것을 꺼린다는 인상을 종종 받는다. 강도 때문일까? 미국은 삭막한 나라라는 나름의 짐작을 해본다.

텐트 칠 장소를 설명해 주며 입장권을 받던 나이 많은 안내원이 우리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며 동남아에서 오랫동안 일했다고 하니 자기도 베트남 등을 다녀본 적이 있다며 동남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 부인은 공원 입구에서 표를 받고 있다고 한다. 노부부가 국립공원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간단한 텐트를 친다. 바로 옆에 텐트를 막 친 어린 아들과 함께 온 중국인 부부와 인사를 나눈다. 10여 년 전에 휴스턴에 와서 정착한 중국 사람이다. 서양에서 동양 사람을 만나면 조금은 더 가까운 느낌이다. 나만 그럴까?

이곳에서 아침 저녁에 흔히 볼 수 있는 사슴
 이곳에서 아침 저녁에 흔히 볼 수 있는 사슴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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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사전 지식 없이 도착한 우리는 관광 안내소(visitor's center)를 찾아 나선다. 안내소 옆에 있는 넓은 주차장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자동차가 많다. 간신히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빈자리를 찾아 주차하고 안내소로 향한다.

안내소 바로 옆에는 고풍이 물씬 풍기는 멋진 호텔이 있다. 넓은 라운지에 들어서니 창밖으로 그랜드 캐니언의 장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장 멋진 곳에 지은 고급스럽지 않으면서도 주위 풍경과 어울리는 호텔이다.

라운지 바로 옆에서는 나이 많은 여자 안내원이 관광객에게 국립공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외국인이라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지만, 환갑은 훌쩍 넘어 보이는 할머니다. 나이는 많지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야외에서 젊은 관광객을 앉혀놓고 그랜드 캐니언을 소개하고 있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일까? 나이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미국 사회가 부럽다.

이곳은 북쪽 그랜드 캐니언에서 전망이 가장 좋다는 Bright Angel point이라는 곳이다. Bright Angel? 밝은 모습의 천사라고 번역할 수 있을까? 끝없이 펼쳐지는 그랜드 캐니언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이곳에서 어찌 천사의 밝은 모습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곳에서 콜로라도 강이 흐르는 제일 깊은 골짜기까지의 깊이가 6600피트, 2000미터가 넘는다고 하니 한라산보다도 깊은 골짜기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수천 길 낭떠러지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다. 안전한 난간이 모든 곳에 설치되어 있지 않아 위험할 정도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곳에서 떨어져 죽은 관광객이 있다고도 한다. 오금이 저릴 정도의 낭떠러지 옆으로 난 길을 조심스레 걸으며 카메라에 경치를 담는다.

브라이트 엔젤 포인트에서 바라본 노스림의 절경
 브라이트 엔젤 포인트에서 바라본 노스림의 절경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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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근처에서 캠프파이어를 한다고 하기에 찾아 나선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캠프파이어가 아니다. 자그마한 야외무대 옆에 모닥불 피어 놓고 이곳에 사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슬라이드를 보여주면 해준다. 골짜기가 2000미터나 되므로 더운 지방에서부터 추운 지방에 사는 동물까지 종류도 다양하다고 한다.

박쥐 얼굴은 왜 못생겨야 하는지, 독이 많은 방울뱀이 살고 있지만 사람을 미리 피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등등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른, 아이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능숙하게 설명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야생 동물이 갖가지 공해에 시달리는데 불빛 때문에 생기는 오염(light pollution)도 심각하다는 것이다.

텐트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조용하다. 조금 떨어진 가게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아련하다. 예전에는 아름답게만 보였던 깊은 산 속의 밤하늘을 헤매는 희미한 불빛이 다른 동물에게는 공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지구는 인간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병풍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노스림의 또다른 풍경
 병풍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노스림의 또다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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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미국, #그랜드 캐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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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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