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2월 23일 오후, 어느 외국인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를 받았다. 그녀는 페루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내가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을 친구로 신청한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내 페이스북 계정에 있는 외국인 친구는 몇년 전 강원도 화천을 방문한 대만 사람이 유일하다. 그녀가 나를 알게 된 경로야 어떻든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가 '알 수도 있는 사람'으로 등록된 사람을 친구로 클릭했기 때문인 듯하다. 

 

간단하게 몇마디 말하고 더는 대화진행을 이어가지 못했다. 밖에서 컴퓨터가 아닌 작은 스마트폰 자판을 이용해 영문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건 내겐 좀 벅찬 상황이다. 영문법을 떠올리며 철자가 맞는지 스마트폰을 확인할 때, 그녀는 내게 두 번, 세 번 문장을 보낸다.

 

그 말에 대답을 쓰고 있을 때 오는 또다른 질문. 그 사람이 답답해 할 것 같았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지금 친구와 중요한 미팅중이라고 핑계를 대는 거다.

 

그날 그녀가 내가 물은 것은 "한국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냐?" "지금 기후는 어떠냐?" "나는 28살인데 당신은 몇 살이냐?" 정도였다.

 

"나이는 당신보다 많은 52세입니다"라고 말했더니, 그냥 친구하잖다. 아마 어떤 종류의 친구로 정해야 할지를 알기 위해 나이를 물었던 모양이다.


"What time is there? and What are you doing now?"
"It's 11 o'clock AM. I'm working in my office."
"What? Also, it's a christmas Eve"

 

24일. 아침 11시 쯤 다시 메시지가 왔다. 내용은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일을 하느냐는 거다. 이건 종교와 관련된 전통이나 문화적인 차이로 볼 수 있는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그녀는 내게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때 무엇을 먹는지에 대해 물었다.

 

'평소와 같지... 먹긴 뭘 먹는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 그녀는 "터키에서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칠면조나 통닭을 굽거나 구운 돼지고기 요리를 해서 먹는다"고 말한다. 크리스마스에 무엇을 먹는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아 나는 "한국에서는 가족과 함께 약간의 맥주를 곁들여 통닭과 피자를 먹는다"고 했다. 굳이 시켜서 먹는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종교적으로 볼 때 크리스마스는 그 나라의 전통 명절일수 있다. 한국에서는 종교가 개신교나 천주교가 아닌 사람은 대개 휴일 정도로만 생각한다. 뭔가 해명을 해야할 것 같았다. 

 

"우리나라는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반반입니다. 따라서 불교를 나는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피자와 치킨도 직접 가족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게에서 배달을 시켜 먹습니다."

 

다행히 쉽게 이해를 했는지, 그녀는 더 이상 크리스마스와 관련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Morning을 moning로 써도 무슨 뜻인지 알더라

 


"What is your period in Korea?" 
"와~하하하하"

 

주위 사람들이 너무 크게 웃는다. 2년 전 화천군청 영어동아리 원어민 선생님 섭외를 위해 어느 학교를 찾아가 미국 출신 한 선생님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는 많은 한국인 선생님들이 있었는데, 원어민 선생에게 한 내 질문에 모두 큰 소리로 웃었다. 내가 처한 상황을 감지했던지, 그 원어민 선생은 "How long?" 하고 되물었다.

 

아뿔싸. "How long have you been in Korea"이라고 해야 하는데, 왜 금방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그 사람들 그렇게 큰 소리로 웃는 건 또 뭔가.

 

그 이후로 외국인과 간단한 회화라도 할 기회가 있을 때 옆에 한국 사람 한 명이라도 있으면 입을 닫아 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저도 한국사람들과 외국인이 같이 있는 자리에서는 절대로 영어를 쓰지 않아요."
"저는 그런저런 충격적인 경험이 있어서 그런데 선생님은 왜죠?"
"문법적으로 그 말이 맞니 틀리니, 스펠이 틀렸니 맞니, 그런 거 따지는 습성들 때문에 그래요. 왜 우리가 우리말을 할 때에 받침이 틀리거나 띄어쓰기를 잘못하는 것에는 그렇게 관대하면서 영어에 대해서는 인색한지 모르겠어요."

 

우연한 자리에서 처음 만난 어떤 사람과 나눴던 대화다. 그도 똑같지는 않지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나는 외국인들과 메시지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우리의 풍습을 알려준다는 게 나름 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심하게도 내가 쓴 단어를 보면 스펠링이 틀린 경우가 부지기수다. 스마트폰 자판이란 한계도 있겠지만, 몰라서 틀리는 경우도 많다. Morning을 쓸 때도 r을 써야 하는지 빼야 하는지도 헷갈려서 'Moning' 이렇게 쓴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상대방은 알아듣는다.

 

문법은 더 엉망이다. 어떤 특정한 동사 뒤에 동명사를 써야하는지 부정사를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잊은 지 오래다. 그래도 그들은 내게 '부정사를 써야 하는 상황에 왜 동명사를 썼는지'에 대해 비웃거나 따지는 것을 한 번도 못 봤다. 그가 내게 보낸 메시지를 통해 '아! 내가 잘못 썼었구나!' 정도로 생각하면 될 일이다.

 

"어제 일 때문에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이곳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좀전에 찍은 겨울 사진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립니다." 

"사실 저는 실제로 눈을 본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눈 내린 풍경의 그림을 받아본 것 또한 처음이구요. 덕분에 특별한 크리스마스가 된 기분입니다"

 

성탄절 아침, 밖에 나가 밤새 화천 읍내에 내린 눈 풍경사진을 하나 보내준 건데, 그녀가 그렇게 감동할 줄 몰랐다. 다소 문법이 맞지 않는 문장일지라도 한국 문화 전달과 페루라는 나라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알고 싶다. 인터넷이나 책에 소개된 것보다 생생한 정보 등을 이 사람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태그:#페루, #화천, #크리스마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밝고 정직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오마이뉴스...10만인 클럽으로 오십시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