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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선거종합상황실에서 축하꽃다발을 건네받은 뒤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선거종합상황실에서 축하꽃다발을 건네받은 뒤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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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가 보수에게 패배했다. 득표율 격차는 3.6%P, 간발의 차다. 하지만 충격의 강도는 바둑으로 치면 만방으로 패하였던 2007년보다 더 크고, 후유증도 길게 갈 전망이다. 최초로 과반 득표한 대통령 탄생이라는 사실이 말해주듯, 보수와 진보가 단일 후보를 내세우고 진검 승부를 하였기 때문이다. 격차는 작지만 패배의 핑계를 돌릴 만한 일말의 건더기도 없는 패배가 되었다.

왜 졌을까?

일단 상황을 복기해보자.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기간을 앞두고 안철수 전 후보가 지원 유세에 나서면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바짝 뒤쫓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일부 조사에서는 문 후보가 박 후보를 앞서기도 했다. 진보 세력은 선거 승리에 큰 희망을 걸었다. 여기에 투표율 72%가 넘으면 문재인 후보가 유리하다는 가설이, 이른바 정치평론가들의 합의된 의견이 나오면서 선거 당일에는 섣부른 승리가가 터져 나오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냉철히 보자면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갈 때부터 약 3%P의 격차는 크게 바뀌지 않고 선거 결과로 이어졌다. 그동안 여론조사가 요동을 치기는 했으나 큰 틀에서는 바뀐 것이 없다. 진보 세력의 결집이 일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났으나, 그것은 선거 막바지에 흔히 나타나는 '51 대 49' 현상에 불과했다. 승패의 뒤바뀜과는 상관이 없는 뜻이다.

먼저 진보세력의 지역적 한계를 들어야겠다.

이번 선거에서도 호남은 유감없이 90% 안팎의 지지를 야권에 보냈다. 대구경북은 80% 안팎, 부산경남은 60%가 넘거나 육박하는 지지율을 박근혜에게 보냈다. 여기만큼은 아니지만 충청과 강원이 역시 박근혜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결국, 서울을 제외하고 문재인 후보가 승리를 거둔 곳은 호남이 유일하다.

물론 희망의 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재인 후보는 PK지역 특표율을 30% 후반까지 끌어올렸다. 소중한 성과지만 전체적인 판세, 그것도 엄연한 패배라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대한민국 진보 세력이 '박정희 프레임'을 넘어 서기에는 힘이 아직 부치다는 현실이 더해진다. 박근혜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었고,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다. 박근혜가 박정희라는 프레임을 대표하고, 문재인이 김대중-노무현 프레임을 대변한다는 건 누가 뭐래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 대결에서 졌다는 것은 진보세력이 박정희 프레임을 넘어설 만한 내공을 아직 갖추지 못했음을 확실히 증명한다.

개인적으로는 충청 지역의 패배가 무척 안타깝다. 김대중 대통령은 'DJP 단일화'로 충청지역의 지지를 끌어냈고,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카드로 충청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는 충청에서 표를 얻을 그 무언가가 없었다. 박근혜 후보는 세종시를 지켜냈다는 명분을 가졌고, 충북 옥천이 고향인 육영수의 딸이다. 야권은 뻔한 핸디캡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극복할 방법을 강구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효과적으로 중도층을 견인하지 못한 점도 아쉽다. 왜냐하면 'PK지역에서 40% 지지 확보'와 수도권 중도층의 압도적인 지지로 대선을 승리한다는 '공식'에서 수도권의 압도적인 지지가 빠졌기 때문이다. 문 후보는 서울에서는 승리했으나 인천, 경기에서 패했다. 결국 지방에서 손해 본 표들을 수도권에서 벌충하지 못했다.

19일 밤 대선 패배를 인정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새 정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19일 밤 대선 패배를 인정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새 정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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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수도권의 민심은 전국의 민심이 모자이크처럼 어우러져 나타난다. 지역적 표심이 수도권이라고 해서 전혀 없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전국적인 지방에서 지고, 수도권의 표로 이를 벌충한다는 가설은 현실화시키기 쉬운 전략이 아니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한계를 인정해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온다. DJ는 DJP를 하였고, 노무현은 특유의 돌파력으로 PK지역 30%대 득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섞어서 대권을 잡았다. 즉 승리는 했으나 지역구도의 불리함을 구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행히 진보의 역사에 희망스러운 점이 이번 선거에도 있다. 영남 지역의 강고한 지역주의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누그러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전국적인 판세에서 3%P 남짓의 격차는 크기는 하지만 조금만 힘을 키우면 넘을 수 없는 벽은 아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진보 세력은 젊은층의 지지를 확실히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젊은층의 지지는 미래의 희망이 그만큼 밝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에게 꾸준한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세력을 갈고 닦는다면 충분히 지지의 외연이 확장될 것이다. 또 386세대가 고령화되면서 뜻하지 않게 50대 초반의 고령층에서도 만만치 않은 지지세가 있음을 확인했다. 현재의 노력들이 더해져 가까운 미래가 왔을 때에 충분히 보수 세력을 제압할 구조적인 힘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인물들을 키워나가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만든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박근혜 후보가 이번에 사용했다. 문재인 후보는 학습 능력이 뛰어났지만, 오랜 기간 준비한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야권의 정통성 있는 인물 중,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차근차근 쌓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 단기간의 승부가 아닌 준비된 승부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인물 중, 오랜 기간 학습하고 훈련한 후보는 부족했다. 물론 스스로는 충분히 대통령을 할 역량이 된다고 판단하겠지만, 그것은 국민들이 판단할 부분이다. 이제는 오랜 기간 국민들에게 검증받은 인물을 내세우는 진보 세력이 되어야 한다. 혜성처럼 등장하는 구세주가 아니라 준비된 후보들의 타순을 정해서 화수분 야구와 같은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진보의 역사를 새롭게 쓴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은 이 세상을 떠났다. 아직 우리에게는 그만한 카리스마를 가진 대통령 후보가 없고 키워내지도 못했다. 하지만 찾아보면 훌륭한 싹들을 발견할 수 있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처럼 너무 한 번에 얻으려고 하지 말고, 차근차근 차기를 준비할 수 있는 후보군들이 커갔으면 한다. 

우리는 2012년 대선을 통해 단기적인 역사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한동안 우리는 박정희의 역사가 대한민국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장의 심리적인 공황을 넘어서 해직 당한 기자들과 대자본의 횡포에 신음하는 중소 상인들, 내일이 불안한 비정규직들 모두에게 힘든 5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60~70년대의 '박정희 프레임'은, 21세기에는 가당치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단기간의 패배는 있을지언정, 대한민국의 긴 역사에서 진보에게 역사적 복권의 기회는 다시 올 게 분명하다.

그 기회가 다시 왔을 때, 진보 세력이 국민의 신임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아직 진보세력에게 맡겨진 역사적 책무는 끝나지 않았다.


태그:#18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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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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