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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중증환자다. 위암 4기로 항암 치료 중이며 지난 4개월간 요양병원에서 지냈다. 암환자만 입원할 수 있었던 그곳엔 대기자가 많았다. 늘어난 암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전문요양병원이 드문 탓이다. 오빠는 그곳에서 많은 암 환우들과 동일한 상처를 공유했다. 정서적 유대감은 힘든 상황일수록 더 큰 위로가 되어 서로를 보듬었다.

항암중인 환자가 대부분인 그곳에서 사람들은 단체로 산을 오르거나, 차를 타고 나가 외식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울리며 서로의 상태를 나누며 공유했다.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도 벌어졌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도 있었고, 긍정의 에너지로 분위기를 주도하던 사람이 걷기조차 힘든 상태로 악화되는 모습을 봐야했다.

그중 간암 말기인 김정태(가명)씨는 비급여인 약을 사기위해 한 달에 300만 원을 부담해야 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상태가 더 악화돼야 건강보험(50%)이 적용돼 150만 원에 약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 그는 이미 말기 암인 환자인데도 말이다. 암과 함께 짊어져야 할 경제적 부담은 절망을 안겨다 줄 뿐이다. 그곳의 침묵은 때로 슬픔과 동일한 언어로 사용됐다. 이 같은 의료정책을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박근혜 후보의 의료공약, 문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방송국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에 앞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후보는 4대 중증질환(암,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 희귀난치성질환) 100% 보장과 소득수준별 본인부담 상한제를 의료공약으로 내걸었다. 중증환자의 경우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아 치료비의 5%만을 개인부담 한다. 만약 박 후보의 말대로 치료비 100%를 보장받는다 하더라도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고비용이라도 개인부담을 해야 한다.

본인부담이 5%라 해도 뒤따르는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암환자의 경우 5%내에서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너무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항암이 어려운 환자나 항암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는 더 나은 치료법이 개발 됐음에도 보험적용이 되지 않는 고가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5%의 본인부담제에도 가계가 무너지는 것은 결국 비급여로 행해지는 고가의 신기술 치료법을 받은 경우인 것이다. 남편이나 부모 자식을, 가족을 잃는 것은 경제적 빈곤보다 견디기 힘든 문제이니 말이다.

누구나 늙고 병들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의료정책과 상관없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은 보통 이상의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가진 자'들은 건강보험 혜택의 간절함을 그리 크게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임기 중에 남편이 간암 선고를 받았던 장관 출신 정치인의 경우가 그렇다.  당시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300만 원을 줘야 했던 항암제를 복용했으며 그것마저 여의치 않자 양성자 치료를 받았다. 양성자 치료는 한 달에 2000만 원이 드는 비급여 항목이었다.

이렇듯 어떠한 치료에 얼마의 비용이 들던 '가진 자'들에게는 부담이 적다. 하지만 2000만 원이 없는 일반 서민의 경우라면 그보다 더 획기적인 치료법이 개발됐다 하더라도 치료비를 감당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지난 11월 29일 경남 진주시 진주의료원을 방문해 보호자없이 병원에서 운영하는 병실을 찾아 환자를 위로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의료공약은 다르다. 문 후보는 비급여의 전면적 급여화와 본인부담 100만 원 상한제를 의료공약의 핵심으로 들고 나왔다. 1년 예산 규모가 얼마가 되는지 일반 국민은 잘 알지 못한다. 오로지 국민을 위해 쓰인다는 사실 밖에는.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이것이다. 선거는 국민을 위한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며, 그것은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느냐에 따라 첨예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난 의료정책을 잘 알지 못한다. 일개 서민으로 살다가 중증환자의 보호자가 된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는 생명이 걸린 문제라는 사실만을 알 뿐이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예산에 제한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명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돈 때문에 최선의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이 존재한다. 보험적용이 되는 5% 내에서의 치료로 부족한 환자들은 넘쳐난다. 그들에게는 비급여로 행해지는 개선된 치료가 필요하다. 지금 이 시각, 항암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치료를 받기 위해 한 달에 수백 아니, 수천만 원의 돈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다.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들에게 만이라도 개발된 현대의학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이 시급하다.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비급여의 문제를 4대 중증질환으로 국한시켜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질병이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치료비로 가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의료법 1조에는 "환자는 자신의 건강보호와 증진을 위하여 적절한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를 갖고, 성별·나이·종교·신분 및 경제적 사정 등을 이유로 건강에 관한 권리를 침해받지 아니하며,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제 결전의 날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모두에게 주어지는 투표권. 유일하게 공평한 그 권리를 사용해야 할 때다. 의료정책은 생명이 걸린 문제다. 그것이 빈부격차에 따라 결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다. 


태그:#중증환자 , #의료정책,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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