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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최문순 도지사.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최문순 도지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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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가 웃었다. 강원도청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주민들도 웃었고, 도지사도 웃었다. 주민들과 도지사가 오래간만에 손을 잡았다. 주민들이 도지사를 둘러싸고, 예전에 보지 못했던 화사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강원도 내 골프장 반대지역 주민들이 노구를 이끌고 강원도청 현관 앞 아스팔트 위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406일째 되는 날이다.

13일, 오후 1시 30분. 이날 강원도청 안에서는 도청의 오랜 숙원 사업(?) 중에 하나인 노숙농성장 철거 행사가 있었다. 지난 12일 강원도가 도내 장기 민원을 야기하고 있는 골프장 문제에 대해 "전면 재검토할 것"을 발표하고 나서 딱 하루가 지나고, 주민들이 스스로 철옹성이나 다름 없었던 농성장을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농성장 철거는 짧은 시간에 이뤄졌다. 농성장은 비닐과 스티로폼을 걷어내는 걸로 금방 끝났다. 그 안의 이불이나 전기밥솥·온열기 같은 일상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을 정리하는 데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이 걸렸다. 농성장은 406일을 버텨온 것치고는 지나치게 허술했다. 그 허술함으로 인해 이날 농성장을 철거하는 데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농성장에서는 그동안 홍천군 구만리와 강릉시 구정리 등 강원도 내 일곱여 개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서 왔다. 농성 주민들은 대부분 70~80세가 넘은 노인들이다. 이들은 겨울에는 혹한에 시달리고 여름에는 폭염에 탈진할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며 "이 자리에서 쓰러져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농성을 접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왔다.

최문순 도지사(등을 보이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는 농성 주민들.
 최문순 도지사(등을 보이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고 있는 농성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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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직전의 노숙농성장. 이런 모습으로 406일을 버텼다.
 철거 직전의 노숙농성장. 이런 모습으로 406일을 버텼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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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꽃이 피기까지 감내해야만 했던 길고 힘든 시간들

농성장 철거에 들어간 골프장 반대 주민들.
 농성장 철거에 들어간 골프장 반대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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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을 철수하기까지는 참으로 지난한 세월이 흘렀다. 골프장 반대 주민들은 노숙농성을 하면서도 강릉과 춘천과 서울을 오가며 숱한 집회를 열었다. 그런데 지난 해 최문순 도지사 도정 초기, 골프장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었던 강원도가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는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골프장 반대 주민과 강원도청 사이에 갈등이 격화됐다. 그 바람에 초기 관과 민 사이에 원활하게 진행되던 소통이 최근에는 거의 단절 상태에까지 도달했다. 그러다 최근 골프장 반대 주민들과 면담 자리를 마련한 문재인 대선후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인 이학영 의원 등이 최문순 도지사를 만나 원만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문 후보는 골프장 반대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보태 강원도에 협조 요청 의사를 전달했다. 여기에는 '대통령 당선 후 골프장 인허가 관련 기관에 대한 특별감사 추진'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 후 최문순 도지사가 문 후보와 골프장 반대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12일 '골프장 문제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리면서, 2013년을 넘어 또 한 번 겨울을 보낼 위기에 놓여 있던 농성장을 철거하는 단계까지 이른 것이다. 물론 이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골프장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린 최문순 도지사는 이제 오래전 인허가가 완료된 골프장 문제까지 '전향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이날 농성장 철수 현장에 모습을 보인 최문순 도지사는 그동안 도청 현관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노숙농성장을 바라보는 자신의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주민들을 향해 "여러분 정말 오랫동안 고생했다, 추운데 (골프장 문제를) 빨리 해결해주지 못해 죄송하다"며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 빠른 시일 안에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비닐 천막을 들어내면서 드러난 노숙농성 주민들의 잠자리.
 비닐 천막을 들어내면서 드러난 노숙농성 주민들의 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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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또 다른 출발점에 서 있는 주민들

강원도 골프장 반대 주민들을 응원하는 강원대 학생들의 지지 메시지.
 강원도 골프장 반대 주민들을 응원하는 강원대 학생들의 지지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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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노숙농성장을 철수하기에 앞서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는 노숙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원도 내 골프장 문제 해결 의지와 입장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비록 '골프장 전면 재검토 약속'이 최문순 도정 초기로 돌아간 것이라는 의견이 없지 않지만, 지금은 그 의지가 사뭇 다른데 감사와 환영의 뜻을 표했다.

대책위는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강원도청 노숙 406일째, 풍찬노숙을 시작한 지 1년을 훌쩍 넘긴 오늘 골프장 피해 주민들은 한 줄기 희망을 보았다"고 말하며 "거짓과 부정, 회유와 협박 그리고 한겨울 혹한과 한여름의 폭염을 이겨내며 노숙장을 지켜온 주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는 말로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대책위는 이날 강원도의 골프장 전면 재검토 약속이 이제 또 다른 새로운 시작과 또 다른 싸움을 의미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강원도에서 골프장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는 결코 깃발을 내리지 않겠다는 각오다.

대책위는 기자회견문에서 "오늘 강원도청 앞 노숙농성장에서 철수하지만 골프장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주민들의 싸움을 계속될 것"이라며 "주민들의 삶터를 빼앗고 대대손손 물려온 자연환경을 거짓과 부정을 동원해 파괴하려는 토건세력들과는 앞으로도 타협 없이 싸워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노숙장 철거 직전에 열린 강원도청 앞 기자회견.
 노숙장 철거 직전에 열린 강원도청 앞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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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는 "강원도가 밝혔듯이 앞으로의 (골프장 문제 해결과 관련한) 모든 행정 절차는 지역주민·시민사회단체·전문가들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진행돼야 할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리고 "골프장 현안이 당 차원에서 약속한 공약"임을 상기시킨 뒤, 민주당에 "최문순 도지사가 골프장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협력하고 지원할 것"을 요청했다.

문재인 후보 역시 이날 골프장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대통령에 당선되면 골프장 인허가 과정에 관련된 기관들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할 것"과 "강원지역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문 후보는 "골프장 건설로 인한 생태계 파괴 등의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강화"할 방침이다.

문 후보는 또 주민들에게는 "해결이 늦어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을, 그리고 최문순 도지사에게는 감사의 말을 전했다. 문 후보는 "최문순 도지사가 강원도 내 골프장 문제에 대한 인허가 등 전반적인 과정과 절차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이를 위한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것에 깊이 감사한다"며 "도지사의 결정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노숙농성장은 철거됐지만, 강원도에서 불탈법 골프장이 사라지는 날까지 골프장 반대 투쟁은 계속된다.
 노숙농성장은 철거됐지만, 강원도에서 불탈법 골프장이 사라지는 날까지 골프장 반대 투쟁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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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원도 골프장, #노숙농성장, #문재인, #최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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