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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다리 벽에 그려진 순례자 초상에서 포즈를 취하는 존.
 굴다리 벽에 그려진 순례자 초상에서 포즈를 취하는 존.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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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이라고 해서 늘 환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거운 짐, 처지는 걸음, 차가운 날씨는 꽤 자주 감정을 소모시킨다. 기계적인 미소로 대변되는 위태로운 평화는 마치 부푼 풍선 같아서 지나친 농이나 거북한 행동 하나가 타인의 거룩한 하루를 망칠 수도 있다. 이럴 때 순례자는 이기심과 상의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모두가 힘들다면 차라리 자신이 더 힘든 편을 택하는 게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 된다.

다행이다. 다들 자신을 손해 볼 줄 아는 인격체들이다. 동행자 중 누구라도 발걸음을 멈춰 세우면 가장 가까운 이가 컨디션부터 체크한다. 누구나 "괜찮아?" 이 한 마디가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작은 관심과 위로·격려에 참았던 감정이 복받칠 때가 있다. 경쟁사회 속 인간들은 아픔을, 약함을, 상처를 표현할 솔직한 감정의 절제를 강요당하고 있었다. 때문에 "힘내!" "가방 이리 줘" "쉬었다 가자" 등으로 돌아오는 반응은 '존중'의 의미로 낯설게 받아들여진다. 승자독식 사회에서는 감히 꿈꿀 수 없는 동행이다. 

오랫동안 삶의 한 방법에 있어 가장 숭고함에도 가장 드문 일들이 카미노에서는 상식이 된다. 분명 나 때문에 걷는 길인데 남을 위해 걷게 된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그것이 나를 위한 힐링이었음을 깨닫는다. 나를 찾는 이가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찾아갈 사람이 없을 때를 말하는 것이 외로움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끔찍하고도 지독한 불행 아닐까. "괜찮아?" 이 한 마디는 열아홉 진부터 일흔셋 안젤로까지 모두에게 동일하게 필요한 평화의 메시지다. 

도대체 야고보가 걸었던 길은 어디일까

옥수수 수확은 이미 끝났다. 농부도, 땅도 잠시 휴식을 취하는 때.
 옥수수 수확은 이미 끝났다. 농부도, 땅도 잠시 휴식을 취하는 때.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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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첨탑 주위로 황새 둥지가 만들어진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한다.
 교회 첨탑 주위로 황새 둥지가 만들어진 것을 여러 차례 목격한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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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레온을 출발, 묵묵히 노란 화살표만 따라 걷는다. 레온과의 작별을 고하는 베르네스가 다리(Puente de rio Bernesga)를 지나자 갈림길이 나온다. 먼 거리를 돌아갈 걱정에 문군은 120번 도로 쪽 카미노를 택한다. 역시나 삭막하고 딱딱하다. 자욱한 안개와 먼지가 뒤섞여 시야는 흐리고 눈과 발은 피로하다. 중간에 말라버린 밀밭과 옥수수밭을 지난다. 농부의 수고로운 땀이 잠시 멈춰 있는, 다음 수확을 위해 휴지기에 들어간 상태다. 교회 첨탑에는 둥지를 튼 새들이 있다. 갈래 길이 나올 때마다 '도대체 야고보가 걸었던 길은 어디일까?' 문군은 생각하며 한참을 걷는다.

'이럴 수가!'

그저 놀랍다. 이토록 재미없는 구간도 흔치 않을 것이다. 대자연을 벗삼아 걸으며 물아일체가 될 수도, 순례 동지들과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소박한 정을 나눌 수도 없는 문군은 그 무자비한 지루함에 망연자실이다. 가끔씩 지축을 흔드는 트럭의 운행과 그것이 배설하고 가는 먼지바람, 소형차들의 앙칼진 클랙슨 소리는 내면에 대한 고찰 의욕을 사정없이 꺾어놓는다. 

직선주로를 택한 문군은 일찌감치 알베르게에 도착, 이어폰을 꽂고 휴식을 만끽한다. 질풍노도의 시절, 이유 없는 반항조차 존재의 미학으로 승화되던 그때. 거친 감정 속에서도 한 줄기 순수함이 찬란하게 꿈틀대고는 했다. 공상이별의 환상을 심어준 신승훈·윤상·윤종신·이승환·푸른하늘의 발라드들은 이제 '노땅'의 한 쪽 가슴에서 추억만 자극할 뿐이다. 그들은 한물갔고, 대세는 '성발라'가 아니겠냐며 성시경 '옵하'(오빠) 생각에 홍조를 띠며 핀잔주던 순례동지 재희가 어쩐지 얄밉다. 내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이 퇴물취급 받기엔 그녀와 나는 고작 2주차 친구일 뿐이다.

헉, 잠잘 곳이 없다고?

문을 굳게 닫은 공립 알베르게. 겨울 카미노는 숙소 정보를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을 굳게 닫은 공립 알베르게. 겨울 카미노는 숙소 정보를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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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알베르게는 겨울철이라 운영을 하지 않는단다. 삽시간에 모여든 순례자들은 굳게 닫힌 문을 확인하며 문군을 나무란다. 어째서 그리 태평하게 기다리고만 있었냐며. 그들은 30분 전의 문군처럼 알베르게 정보가 달리 나와 있어 당황하고 있다.

하지만 문군은 짐짓 미소를 지으며 다음 마을인 산타 마리아로의 행군을 알린다. 마을 사람을 통해 확실한 정보를 입수했기에 여유만만이다. 그제야 순례자들도 다시 안정을 찾는다. 추운 날씨에 식량의 부재는 그저 헛스윙 삼진쯤의 아쉬움이겠지만 숙소의 부재는 투아웃 만루에서 견제 아웃 당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이다. 

'귀요미' 새끼 고양이들이 반가이 맞아준 산 마르틴(San Martin)의 사설 알베르게는 일단 가격이 저렴해 마음에 든다. 햇살이 남아있는 시간에 빨래와 샤워를 하고 그래도 남는 시간은 내려받은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깔깔거린다.

산 마르틴 알베르게에 순례자가 그려놓고 간 그림. 익살스런 표정이 인상적이다.
 산 마르틴 알베르게에 순례자가 그려놓고 간 그림. 익살스런 표정이 인상적이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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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 숙소에서 만난 귀여운 고양이.
 알베르게 숙소에서 만난 귀여운 고양이.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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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순례자들이 흩어진 터라 묵는 인원도 별로 없다. 방명록을 훑어보니 이곳을 지난 순례자들의 일기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나와 다른 이들이 나와 다름없는 감정을 느끼고 공유한다는 것에 가슴 한쪽이 훈훈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 세 가지는 새로 산 차에서 처음 들려오는 달가닥거리는 소음, 깜깜한 침대 주변의 모기 한 마리, 그리고 맞장구치는 같은 편의 목소리일 것이다. 그들의 진심이 문군 안에 크게 울리는 듯하다. 그는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다.

한쪽 벽에 설치된 현수막에는 치열했던 지난 월드컵 축구 경기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경기 때마다 맥주와 1유로 내기를 했나 보다. 낙서만 봐도 흥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순간만큼은 자국의 명예를 걸고 서로가 적이 됐을 것이다. 승리한 자의 환호, 패배한 자의 절망이 현수막 가득 서려 있다. 본선 토너먼트 16강에서 멈춰버린 태극기의 선을 보자니 조건반사적으로 안타까움이 터져 나온다. 문군의 머릿속엔 우루과이 전 당시 이동국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현수막엔 온통 스페인 우승의 축하 메시지가 느낌표 백만 개와 함께 적혀있다.

작은 사람에게는 큰마음 들어갈 자리가 없다

봄이 오는 것만 같은 따스한 날에 어느 집 창문.
 봄이 오는 것만 같은 따스한 날에 어느 집 창문.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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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히 맞은 이른 저녁, 순례자들에 의해 또 한 번 이벤트가 진행된다. 돼지갈비와 스파게티로 문군에게 저녁 메뉴를 대접해 주는 것이다. 놀란 문군에게 가볍게 던지는 그들의 변.

"새삼스럽게 뭘, 오늘은 진짜 당신 생일이니까요."

배려하고 싶어 안달이 난 카미노의 이 사랑 앞에 어느 누가 감동받지 않을 수 있을까. 순례자들의 속정에 이렇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 송구스러운 문군은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를 감격에 젖어든다. 작은 사람에게는 큰 마음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허나 순례를 하면서 배려하다 보면 누구나 마음의 키가 커지게 마련이다. 그 큰마음이 큰 사랑을 만들고, 그 큰 사랑이 분명 큰 사람을 만들 것이다. 카미노의 그림자가 커 보이는 것이 서쪽 하늘에 지는 붉은 태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에는 2012년 1월 29일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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