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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방자치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반쪽 자치'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재정권과 인사권 등이 여전히 중앙정부에 있기 때문에 중앙집권체제의 폐해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대선을 앞두고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과 공동으로 지방자치제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진행한다. 김윤식 경기도 시흥시장이 보내온 글을 전재한다. [편집자말]
나는 경기도 시흥시 하상동 주민이다. 시흥시에서 20년 살고, 결혼하고, 아이 나서 키우고 살고 있으며, 2009년 4월부터는 시흥시장을 하고 있다. 20년을 산 반 토박이답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중에는 기쁜 일도 많이 있지만 가슴 아프게 새겨들어야 하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시장'이 된 이후부터는 대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답변을 기대하고 하는 말이 많다. 하지만 당장의 상황 모면을 위해, 혹은 다른 이유로 막연한 기대감을 주는 답변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거짓 약속은 결국에는 시민들과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 키우기 힘들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달라'는 말에는 쉽게 대답하기 힘들다. 보통의 99% 국민들에게 절실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곳곳의 지방 정부에서 외치는 '무상보육 못하겠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선언그 이상이다.

'모두가 잘 살자'는 아름다운 정책이 난항

지난 3월 정부의 영유아 무상보육 대폭 확대 결정에 테마주가 상승세를 이어가는 등 한쪽에서는 호황을 누렸지만, 재정이 열악한 지방정부들은 예산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사실 '모두가 잘 살자'는 아름다운 정책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예정된 일이였다.

무상보육정책은 지방정부가 전체 보육예산의 약 37%를 부담하는 '매칭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정부는 예산확보 과정에서 지방정부와 전혀 논의 없이 확대했다. 소득 하위 70%의 0~2세 영유아에 대한 무상보육 정책을 전 계층으로 확대하면서 소요 예산 7000억 원 중 3280억 원이 지방정부의 몫으로 떨어졌다.

나아가 정부는 제도 시행 후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동의 수가 늘어날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무상보육시행 이후 무상보육 아동은 57%가 증가했으며, 올해 취학 전 아동이 유치원에 입학하는 비율을 60%라고 가정했을 때 7000억 원의 예산이 모자라는 상황이다.

이에 지방정부는 첫 시행된 3월부터 '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현실'을 이야기해왔다. 당장 지난 3월 전국 시도지사협의회는 재정 마련이 어렵다는 공개 항의서를 발표하고, 6~7월이면 사업 자체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7월에는 시흥시를 비롯한 경기중부권행정협의회 소속 단체장들이 0~2세 영유아 무상보육과 관련 실질적 대책 없으면 중단이 불가피하다며 중앙정부에 재정 마련을 촉구했다.

9월에는 민선5기 시장·군수·구청장들의 연구모임인 목민관클럽의 지방재정난 해결 촉구 기자회견도 있었다. 최근에는 서울시구청장협의회가 내년 예산안에 0~2세 무상보육 추가부담 편성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예산 없이 '사업'만... 재정 부담은 날로 더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월 1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누리과정 확대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임종룡 국무총리실장, 오른쪽은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정부는 이날 내년부터 3~4세 아동까지 무상보육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월 1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누리과정 확대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임종룡 국무총리실장, 오른쪽은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정부는 이날 내년부터 3~4세 아동까지 무상보육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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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중앙정부는 예비비 사용, 추경예산 편성, 지방채 이자 보전 방안 등을 보육료 지원예산 고갈대책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지방정부의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분권'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상보육 논란에서 보듯 중앙정부는 지방분권 차원에서 복지사업 이관을 추진하고 있지만, 예산 없이 사업만 내려보내 지방정부의 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조세수입 구조는 8:2인 데 반해 지출구조는 4:6이다.

수입은 없는데, 쓸 곳은 많다는 얘기다. 이러한 악순환으로 지난 20년간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1992년 69.9%에서 2011년 51.9%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절반 이상의 지방정부가 공무원 월급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지방재정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사회복지비 부담은 날로 더한다. 지방정부 예산 대비 사회복지 분야 예산 비중은 19%(2010년 기준)로 예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10년 지방정부 예산은 139조8565억 원이며 사회복지분야 지출총액은 26조5342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지방자치단체 총 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10.0%인 반면 사회복지분야 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22.6%로 총 예산 증가율의 2배에 이른다.

대선후보 '0~5세 아이에 대한 무상보육' 공약

이러한 상황에서 유력 대선 후보들은 약속이나 한 듯 0~5세 아이에 대한 무상보육을 공약했다. 잘 알다시피 사회복지 정책은 그 성격상 한번 시행하면 축소나 후퇴가 쉽지 않다. 5세까지 무상 보육, 무상 교육 확대, 의료비 상한제 등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복지 확대 공약대로라면 지금 연간 100조 원 가까운 복지 예산을 해마다 30조 원 이상 더 늘려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 한국의 대선 후보들과 비슷한 복지 확대, 예산 대책을 제시하며 집권한 일본 민주당 정부가 결국 세원에 쪼들려 주요 복지 정책을 취소하고 사과한 것만 보더라도, 더 확실한 재원 마련과 실행 방안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의 0~5세 영유아에 대한 전반적 무상보육 시행은 최근의 보편주의 복지 담론과 맞물려 상당히 의미가 큰 사건이다. 1990년대 영유아보육법 제정 이후, 보육료지원 정책은 저소득층 아동과 장애아 보육료 지원으로부터 차등보육료 지원의 확대, 농어촌 영유아 보육료 및 0~2세아 기본보육료(보조금) 지원, 나아가 소득계층 하위 70% 대상 보육료 무상지원과 5세아 무상보육 등으로 확대됐다.

2012년에는 0~2세 보육영아 전체를 대상으로 무상보육이 시행됐고, 2013년의 3~5세아 무상보육까지 시행되면 우리나라는 0~5세 영유아의 대한 전면적 무상보육 제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무상보육'이라는 이름으로 돌출된 '분권' 문제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7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올해 시작된 0∼2세 영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이 예산 고갈로 중단 위기에 처한 것과 관련, "이런 상황까지 간 것에 대해 정부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7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올해 시작된 0∼2세 영아에 대한 전면 무상보육이 예산 고갈로 중단 위기에 처한 것과 관련, "이런 상황까지 간 것에 대해 정부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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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무상보육 논란은 여야와 중앙정부간의 싸움도,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를 논하는 문제도 아니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지방분권 문제의 다른 이름이다.

우선 무상보육 등 시민의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복지정책을 위해서는 안정적 재원확보가 시급하다. 먼저 중앙정부 사업을 지방으로 이양해 국비를 보조하는 분권교부세율을 인상하여 지방정부가 겪고 있는 재정 부담을 일시적으로나마 덜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국가 차원에서 보장해야 할 생존권적 기본권에 해당하는 사안은 국고 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영유아 무상보육사업 등 사회복지 분야 국고보조율을 현행 52%에서 80%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도 필요한 사항이다. 덧붙여 보육정책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사나 보육교사의 처우와 근무 환경을 개선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국세를 지방세로 대폭 전환, 국고보조금과 지방교부세 등 의존재원 중심의 지방재정 구조를 지방세 중심의 자주재원 구조로 개편해야 한다. 또한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세목과 세율을 결정할 수 있는 재정 자주권 확보 등 완전한 지방자치를 위한 재정분권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의 가치와 본질 회복을 위한 관련법의 제·개정도 필수 항목이다. 특히 지방정부의 자치사무 규정과 같이 지방자치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법령이 우선한다는 단서조항으로 지방자치를 제약하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프랑스처럼 지방분권국가의 이념을 명기한 헌법 개정까지 추진되어야 한다.

아무리 법제도적으로 자치권이 부여돼 있어도 재원의 자력조달이 어렵다면, 재원을 지원해주는 존재(중앙정부)로부터의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자치조직권과 자치인사권 확보, 실제 실행력을 갖는 대통령 직속 또는 대통령이 위원장인 위원회 설치, 수도권의 합리적 관리, 청와대 내 분권담당 수석실 등 분권 추진 및 실행기구 마련 등의 의제들도 힘써야 할 과제다.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3차 산업혁명>에서 앞으로 협력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경제 및 정치 권력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중앙집권적) 계급 조직이 사라지고 사회 전반에 걸쳐 교점 중심으로 조직되는 수평적(분권 네트워킹) 권력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이미 새로운 시대는 시작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윤식 기자는 경기도 시흥시장입니다.



태그:#지방분권, #김윤식 시장, #시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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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이후 지난 25년간 자치와 분권의 헌법정신을 실현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경주해 온 분권국가세력은 2012년 대통령선거를 맞이하여 이와 같은 헌법적 제약을 과감하게 돌파할 것을 국민들 앞에 제안한다. 제안의 골자는 헌법 전문과 제1조의 개정을 통하여 자치와 분권의 헌법정신을 천명하고, 그 기조 위에서 헌법 제8장 ‘지방자치’의 전면적인 개정을 통하여 분권국가의 체제를 명실상부하게 갖추자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중앙집권적 정치세력은 지난 수년 간 헌법개정논의를 독점해왔음에도 중앙권력 내부의 분배구조를 둘러싸고 무익한 논쟁만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분권국가세력은 이처럼 소모적인 권력구조개편론을 중앙집권주의를 강화하려는 권력놀음으로 비판하면서 차제에 이를 과감히 우회하여 지방자치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원포인트 헌법개정을 달성함으로써 국가혁신, 지역혁신의 일대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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