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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회사에 다니는 A대리는 얼마 전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됐다. 회식이 끝나고 혼자서 한 차례 더 술을 마신 그는 기어코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다 음주단속에 적발된 것이다. 적발 당시 혈중 알코올농도는 0.163%, 말 그대로 만취 상태였다. 순순히 순찰차에 오른 그가 난생 처음 겪은 이날의 사건은 어쩌면 씻을 수 없는 인생의 오점이었다.

그런데 핑계가 가관이다.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는데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기다리다 술이 조금 깨는 것 같아 직접 운전을 하게 됐단다. 초범이긴 하나 혈중 알코올농도가 취소 수준이라 이달 중 약식명령으로 수백만 원의 벌금이 부과될 예정이고 향후 1년간은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게 됐다.

회사의 업무상 여러 곳의 현장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그에게 사규를 들이대며 자진퇴사를 유도하기에는 너무 가혹했다. 최대한 선처하는 선에서 당분간 내근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만취 상태로 운전한 A대리, 왜 당당하지?

회사의 구제 이후 그는 처음엔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크게 후회하는 듯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니 본전 생각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는지, 어느새 당당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며 음주운전 행위에 대해 죄의식이 줄어드니, 오히려 현장에서 '빽'(?)을 동원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아마 개인적으로 '재수가 없어' '잘못 걸린' 것으로 축소해석하고 싶은 것 같다.

이제는 한 술 더 떠 회사의 구제는 당연한 조치였고, 또 한 번의 구세주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어디서 들었는지 대통령 선거 이후 새 정부가 내놓을 특별사면을 미리부터 기대하는 눈치다.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사람들이 지난 몇 번의 정권교체 이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음주운전 구제관련 업무를 대행하는 기관과 인터넷동호회 카페 등을 통해 사면 여부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중이란다.

몇 년 전, 음주운전 운전자에 의해 주차해 둔 내 차량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몇 년 전, 음주운전 운전자에 의해 주차해 둔 내 차량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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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곧 운전면허 취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알아보니 이번 대선 끝나고 대통령 취임기념으로 사면 단행하면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나 정지 처분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운전대를 잡을 수 있게 된다던데요?"
"누구 맘대로?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쯧쯧…."
"그래도, 사면 가능성은 언제든 열려 있는 거 아닐까요?"

A대리가 이렇게 기고만장하게 된 데는 지난 2005년 광복절에 무려 422만 명이라는 최대 규모의 사면을 단행한 것에 기인한다. 이후 광복절은 일제 강점기 해방과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이 아니라 특별사면을 기다리는 날로 변질되고 말았다. 특히 음주운전을 통해 면허가 취소된 이들은 더욱 그러했다.

특별사면이란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형벌권 자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시키는 것을 뜻한다. 8.15 광복절과 대통령 취임 등을 기념한 특별사면이 대표적인데, 대상자의 대부분이 교통법규 위반 사고자들이다. 특히 50여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3월, 550만 명이라는 대규모의 특별사면을 단행한 바 있으며, 당시 음주운전, 측정불응, 무면허에 심지어 뺑소니까지 사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지난 2008년 6월 4일, 2009년 8월 15일 두 차례에 거쳐 운전면허취소 및 정지, 벌점 등 행정처분을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대대적인 사면이 시행된 바 있다. 1998년보다는 사면대상을 축소했지만, 2009년에는 사면 대상자 152만 7000명 중 약 150만 명이 교통법규 위반사범이었다.

지난 10년간 음주운전, 무면허운전, 교통법규 위반으로 벌점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대사면이 시행된 해는 2002년, 2005년, 2008년, 2009년으로 대략 3년에 한 번씩 대사면이 이루어졌다. 2002년은 월드컵 4강 이후 국민적 대통합을 이유로, 2008년은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으로, 2005년과 2009년은 8.15광복절을 기념하여 대사면이 시행됐다.

음주 운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야말로 한국사회를 세계 최고의 교통사고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한 주범이다.(자료사진)
 음주 운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야말로 한국사회를 세계 최고의 교통사고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한 주범이다.(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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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2013년에도 대사면이 될까? 음주운전으로 행정처분을 받고 있는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올해 대통령선거 이후 과연 사면이 이뤄질 수 있는지 여부다.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는 하지만 야당과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쉽게 예상하기는 어렵다. 결국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다고 해서, 2013년 새 대통령이 취임한다고 해서 음주운전 관련 특별사면을 시행할지는 현재로서는 누구도 알 수 없다.(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후 3년 만인 2005년 음주운전특별사면을 시행했다)

그동안 음주운전에 대한 사면은 '강력처벌-특별사면'의 수순으로 남용하여 법의 형평성, 사법적 평등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말았다. 설령 술 먹고 운전하다 면허가 취소돼도 정부가 알아서 다 사면해주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었겠는가? 어디 그뿐인가, 그나마 국민 생활에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음주운전 단속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공공연하게 대선이후 대대적인 사면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음주운전을 일삼는 경우도 있다 한다.

인간 살상 흉기 음주운전, 사라져야

'어이, A대리! 혹시 아직도 사면을 바라고 있나? 지금이라도 꿈 깨시게. 불가피한 음주운전이란 세상에 없다네. 정말로 앞으로는 음주운전 절대 하지 말게나. 그러다가 한 방에 훅 간다네. 음주 운전자 뿐만 아니라 죄없는 운전자까지... B부장은 집이 근처고 C과장은 집이 멀지만, 음주운전의 끝은 같았다네. 허황된 꿈 버리고 1년 동안 차분히 준법의식 함양하며 기다리다가 다시 면허 신청하길 바라네.'

박근혜· 문재인 후보에게도 간곡히 부탁한다. 제발 사면권을 남용하지 마시라. 빈번한 사면 등 음주 운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야말로 한국사회를 세계 최고의 교통사고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한 주범이다. '생계 보호와 국민 화합'이라는 명분은 허울에 불과할 뿐이다. 혹시라도 취임 기념으로 특별사면은 결코 남발하지 마시라. 음주운전해도 특별사면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부디 도로 곳곳에서 인간 살상 흉기인 음주운전은 사라져야 한다. 음주운전으로 피해를 당한 가족들의 눈물을 절대 잊지말아야 한다. 이번 대선만큼은 '이번에 음주운전에 걸렸어도 다음 사면때까지 안 걸리고 잘 버티면 된다'는 법 경시풍조를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표를 의식해 음주운전자에 대한 특별사면을 밥먹듯 벌이는 악습은 고쳐져야 한다.


태그:#음주운전, #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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