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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무소속 대선 후보
 김소연 무소속 대선 후보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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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정문에 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정치희망버스'다. 문이 열리자 '세상을 뒤엎는 노동자 대통령'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주황색 선거운동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렸다. 회사 쪽 관계자들이 주의 깊게 지켜봤다. 곧 키 163cm의 여성 노동자가 내렸다. 그의 어깨띠엔 '기호 5번 김소연'이라고 쓰여 있었다.

김소연(42) 대통령 후보는 가산디지털단지가 구로공단으로 불리던 1992년부터 20년간 노동자로 살아왔다. 2005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잡담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해고를 당하자, 노조위원장으로서 55일간의 공정점거파업을 이끌었다. 그는 구속과 94일 단식 끝에 투쟁 시작 1895일 만인 지난 2010년 11월 해고자들의 직접 고용을 이끌어냈다. 그는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됐고, 어느새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 나타났다.

투쟁사업장과 공장은 김 후보의 유세장이다. 그는 이날 버스·트럭 제작 라인에서 노동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다다다~' 임팩트 렌치(볼트·너트를 조일 때 사용하는 공구) 소리와 육중한 기계음은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해 출마했다"는 김 후보의 외침을 막을 수 없었다.

현대차 전주공장 전직 정규직·비정규직 노조위원장들이 김 후보를 안내했다. 노동자들은 운전하던 지게차나 제작하던 버스에서 내려와 김 후보에게 인사를 건넸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외치거나, "나온 후보들 중에 가장 예쁘다"며 덕담을 하기도 했다. 공장 곳곳에는 김소연 후보 지지성명서가 나붙었다.

김 후보는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합당하고, 그 뒤에 내부 갈등으로 분당으로 이어지면서, 현장에는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진보정치가 사라졌다', '정치인은 다 똑같다'는 냉소가 흘렀다"며 "하지만 기륭전자 투쟁기금 모금을 위해 이곳에 여러 번 방문한 적이 있고, 노동자 대통령 후보에 동의하는 분들이 많아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 4시 40분에 일어나 전남 목포 삼호중공업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고, 버스에 올라타 2시간 30분을 달려 오전 11시 현대차 전주공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노동자들과 만났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후, 전라북도의회에서 버스노동자 파업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후 부지사 면담 후, 노동자들의 고공 농성장을 방문했다. 강행군에 나선 김소연 후보를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인터뷰했다.

"선거 때만 찾아오는 정치인들 욕했는데... 지금은 즐긴다"

김소연 무소속 대선후보가 정치희망버스 '엎어버스'를 타고  4일 오전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을 방문했다.
 김소연 무소속 대선후보가 정치희망버스 '엎어버스'를 타고 4일 오전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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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행군이다. 밥은 잘 챙겨먹나?
"보통 오전 5~6시에 일어나 선거운동을 하고, 자정쯤 숙소에 들어간다. 와달라는 곳이 많다. 투쟁사업장에서 자고, 노숙을 한 적도 있다. 숙소에서 그날 선거운동을 평가하고 다음날 선거운동을 준비한 후 새벽 2~3시에 잠에 든다. 하루 3시간밖에 못 자고 있다. 바쁘다보니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 오늘 아침은 휴게소에서 핫도그로 때웠다."

- 선거자금은 어떻게 모았나?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십시일반 후원을 받았다. 목표는 10만 원 후원자 1만 명을 조직해 10억 원을 모으는 것이다. 후보 등록 전 이미 4억 원 이상을 모았다. 3억 원은 기탁금으로 냈고, 1억 원은 공보물과 현수막을 만드는 데 썼다. 기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 얼마나 득표를 하는 것이 목표인가?
"따로 없다. (웃음) 김세균 서울대 교수는 '10만 표를 모으면, 100만의 힘이 될 것이고, 100만 표를 모으면 1000만의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 마음을 잘 표현한 것이다. 득표도 중요하지만, 연연하지 않겠다. 대선 투쟁을 통해 싸울 수 있는 힘이 키우고 우리의 요구를 쟁취하는 데 힘을 쏟을 것이다."

구속과 단식으로 상징되는 투쟁 노동자인 그가 어떻게 대통령 후보가 됐을까? 진보정당의 몰락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 후보는 "2000년 민주노동당 창립 멤버였다,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10명을 배출했을 때 '노동자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기뻤다"면서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투쟁사업장보다는 조기축구회와 향우회를 찾았다, 현장 투쟁보다는 의석수 늘리기에만 신경썼다, 씁쓸했다"고 말했다.

- 노동자 후보를 생각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인가?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12월 국민참여당과 합당했다. 국민참여당은 노무현 정부 때 비정규직법을 만든 세력 아닌가. 바로 탈당했다.  4·11 총선 때 그렇게 만들어진 통합진보당조차 민주통합당과 야권연대를 했다. 찍을 후보가 없었다. 현장 노동자 사이에 양대 보수 정당과 무너진 진보정당 말고 새로운 노동자 정당을 만들자는 공감대가 싹텄다. 이어 5월부터 본격적으로 노동자 대통령 후보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 11월 11일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 뽑혔다.
"다른 투쟁사업장 노동자는 집행유예와 자격정지 때문에 출마할 수 없었다. 단식 중인 김정우 쌍용차노조 지부장은 현실적으로 출마가 불가능했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노동자 대통령 후보가 되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단독 후보로 추천됐다. 처음에는 부담이 무척 컸다. 하지만, '투쟁하고 구속되는 대통령 후보가 되자'는 생각에 받아들였다."

- 주변 반응은 어땠나?
"노동자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 1117명 중 1115명이 찬성했다. 단 2명이 반대했는데, 기륭전자 노조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웃음) 기륭전자에서 투쟁하느라 6년간 고생했는데, 또 고생을 할 거라고 걱정들을 많이 해줬다."

- 대통령 후보가 된 지 3주가 지났다. 대통령 후보라는 자리가 어떤가?
"투쟁할 때는 선거 때만 찾아오는 정치인들을 욕 했었다. 지금은 유세하러 다니는 사람이 됐다. (웃음) 사람들을 만나 악수하고 인사하는 게 아직도 어색하다. 처음에는 유세했을 때는 인사만 겨우 했다. 이제는 노동자들을 만나 악수도 하고 소개도 한다. 즐기고 있다."

"정리해고·비정규직법 등 '살인법'은 단 하루도 유지 못해"

김소연 무소속 대선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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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후보는 '공약'을 달고 다닌다. 어깨띠에는 노동자의 땀과 부산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에서 정리해고에 반대해 309일 고공농성을 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상징하는 소금꽃이 그려져 있다. 소금꽃 그림 위에 강정마을, 비정규직, 용산참사, 원자력발전소를 상징하는 배지와 에이즈 감염자 인권을 상징하는 '레드 리본'을 달았다.

그는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강조하고 있다. 관련 법·제도 폐지를 주장한다. 그에게 '정리해고 요건강화가 더 현실적인 대안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렇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에서 파견법을 도입할 때, 제조업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양산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파견법 도입 이후, 제조업에서는 법망을 피해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됐다. 또한 쌍용차에서는 정리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 23명이 목숨을 잃었다. 작년 한 해 정리해고로 길거리로 내몰린 이만 10만 명이다. '살인법'은 단 하루도 유지할 수 없는 것 아닌가."

- 비정규직 철폐는 다른 후보들도 주장한다. 박근혜 후보조차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을 폐지하고 주장한다.
"새누리당은 19대 국회 개원 1호 발의 법안으로 사내하도급법을 내놓았다.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법안이다. 또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는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다. 진짜 심각한 것은 재벌 등 사기업의 비정규직 문제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는 재벌을 말하지 않는다. 진짜 비정규직 철폐를 말하려면,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부터 손대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지만, 노동이 없다. 단일화 TV토론에 나가서 쌍용차 정리해고나 현대차 비정규직에 대해 말 한 마디 꺼내지 않았다. 경제민주화는 립서비스 아닌가."

"박근혜가 대통령돼도, 노동자 무시 못할 것"

김소연 무소속 대선후보가 4일 오전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버스부분 시설에서 노동자와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소연 무소속 대선후보가 4일 오전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버스부분 시설에서 노동자와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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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당은 이번 대선에서 '진보적 정권교체'를 강조하고 있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전 대통령 후보는 이미 사퇴했다. 사퇴하고 단일화에 나서라는 주문이 많을 것 같다.
"선거사무소로 문재인 후보 지지자라면서 항의전화가 많이 온다. '비정규직이 무슨 돈 있다고 나왔냐, 새누리당이 돈 대준 것 아니냐', '단일화 하라'고 한다. 또한 주위 많은 분들이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지만, 이번에는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는 우리는 '기대는 정치'를 할 수 없다. 박근혜·문재인 후보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우리 길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정권교체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나?
"정권교체의 미래가 어떠한지는 민주당이 집권여당으로 있는 전북 노동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전북고속 파업 문제는 700일이 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의지만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이미 민주당 정부 10년을 경험해봤다. 김대중 정부 때 경제위기라며 정리해고와 파견법을 도입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비정규직법이 만들어졌다. 기막힌 일이다. 노동자들이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한 것이다. 노동자가 힘을 갖지 않는 한, 그러한 현실은 반복될 것이다."

- 노동자들 사이에서 박근혜 후보 당선만은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기 많이 나온다. 고민이 클 것 같다.
"유신의 잔재이자 독재의 딸인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문재인 후보도 아닌 것 같다. 대구에서 한 사람이 제게 '찍을 사람이 없어서, 1992년부터 투표를 안 했다, 하지만 이번에 부재자투표 신청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찍을 후보가 없어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을 투표장에 끌어내는 것은 의미 있는 일 아닌가. 이 또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다."

-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노동자들에게 비우호적인 환경이 지속되는 것 아닌가?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처럼 노동자들을 짓밟을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어서, 박근혜 후보가 비정규직 철폐를 얘기하고 있다. 투쟁의 힘이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철폐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표가 많아지고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노동자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 '표는 세상을 바꿔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투쟁만 앞세우고 현실 정치의 기능을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국회의원이 많아야 입법 발의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했다. 하지만 반대로 원외 투쟁의 결과물로 의석수를 확보한 것 아닌가. 또한 10년 전 우리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이 외칠 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 새누리당조차 비슷한 공약을 내걸었다. 우리가 싸우지 않았다면 그런 정책을 냈겠나. 기륭전자 투쟁할 때도 모두 포기하라고 했다. 포기했다면 희망도 없었다. 이번 대선 투쟁이 새로운 노동정치의 시작이다. 대선 이후에도 말이 아닌 몸으로 하는 정치를 계속 하겠다."

김소연 무소속 대선후보가 4일 오전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유세를 마치고 한 지지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소연 무소속 대선후보가 4일 오전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용암리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유세를 마치고 한 지지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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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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