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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탑농성 40일차. 저는 그날 철탑농성장에서 잠들었습니다.
 철탑농성 40일차. 저는 그날 철탑농성장에서 잠들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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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일요일, 그날은 제 어머니의 68번째 생신날이었습니다.

"큰 아들, 내일 어미 생일인데 안와보나?"

전날 전화가 왔었습니다. 저는 금요일 밤, 토요일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편의점 알바를 합니다. 철탑농성이 시작되고 철탑농성장 지키기 천막에서 하룻밤 지내보고 싶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철탑농성장에서 지내기로 설정한 날이 25일 일요일 밤이었습니다. 금요일, 토요일은 편의점 알바 때문에 할 수 없었고 일요일 밖엔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요일 밤 철탑농성장 천막에서 자고 월요일 아침 일어나 바로 일용직 근무를 가기로 했던 것입니다.

철탑농성에 집중하고 있는 중이라 어머니 생신날을 잊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전화에 "못간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어머니 만나면 같이 식사라도 해야 할 것인데 그럴 돈이 없었습니다. 시간 없고 돈 없다면서 못간다 하니 어머니는 많이 섭섭하신가 봅니다. "맘대로 하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재혼하신 어머니 보다 같이 사는 가족의 생계 문제가 더 걱정인 저로서는 요즘 온통 철탑농성장에만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또, 저는 어려서부터 생일상을 받아 본 일이 별로 없어서 생일에 대한 중요성을 알지 못합니다. 저는 설날이 생일이라 생일상을 별도로 받아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생일 차림에 대해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25일 일요일 오전 알바 근무를 마치고 집에서 쉬었습니다. 오후 5시경 일어나 집안일을 거들어 주고 6시경 철탑으로 향했습니다. 명촌다리 건너기 전 버스에서 내려 굴다리를 지나 철탑으로 갑니다. 머리위로 철길을 지나면 왼쪽 200여 미터 지점에 철탑농성장이 있습니다. 서너개의 철탑 주변은 현대차 직원의 대형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100미터 쯤 지나는데 회색 승합차 한 대가 엔진을 켜 놓은 채 철탑농성장 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낌 새가 수상해서 안을 보니 차량 안엔 사람이 보였습니다.

"저기 저 차량은 왜 철탑농성장을 향하고 있는지 알아요?"

철탑농성장에 있는 비정규직 노조 간부에게 물으니 철탑농성 후 어느날부턴가 24시간 철탑농성을 감시하는 차량이라 합니다. 철탑농성장엔 수십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농성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철탑농성장 앞엔 화롯불 통 하나가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앉아 불을 쬐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더러 이시간에 웬일이냐고 묻는 비정규직 조합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오늘 여기서 하룻밤 보내려고 왔어요. 저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해서 내일 아침 출근 투쟁은 못 참석하겠네요."

조합원은 이해한다면서 밤도 늦었으니 자러 가자고 했습니다. 잠시 더 이야기 나누다 들어 가려는데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 맞으면 안 될 물품을 천막 안으로 넣어 놓은 후 그 조합원을 따라 천막으로 갔습니다. 밖엔 비도오고 바람도 불어 추웠는데 천막안으로 들어서니 아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닥엔 두꺼운 스티로폼이 깔려 있고 그 위에 침낭과 이불이 놓여 있었습니다.

"각 공장별로 돌아가면서 철탑사수조가 운영됩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잠자리가 널널 할 겁니다."

조합원은 저에게 잠자리를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잠잘 준비를 하였습니다. 철탑 천막에서 자려고 단단히 준비해 갔습니다. 밤에 비온다는 소식에 우산도 준비해 갔습니다. 자정이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누워서 파란 천막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천막 문 틈 사이로 바람이 새어 들어 왔습니다. 찬 기운이 천막 안에 가득해 졌습니다. 천장에선 비 떨어지는 소리가 후두둑 거리며 시끄럽게 들려왔습니다. 천막안에서 잠자리에 누워 있자니 어린시절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천막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어 더 추운 거 같았습니다.
 천막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어 더 추운 거 같았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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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 다 되어 가네요. 국민학교 4학년 시절. 부모님은 월세낼 돈이 없었습니다. 1년이 넘게 월세가 밀리니 집주인에게 쫓겨나게 됩니다. 마침 전하동 일대 조선소 공장이 생긴다고 길 확장공사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돌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기술자가 서부동 야산에다 천막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산에서 소나무를 잘라 집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천막을 제조해 씌웠습니다. 바닥엔 볏단으로 만든 가마니를 깔았습니다. 이불은 쓰던 누더기 이불을 가져다 썼습니다.

지금처럼 날씨가 추웠습니다. 비오면 빗소리가 지붕위에서 요동을 쳤습니다. 바람불면 문이 펄럭이며 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불속에 있어도 오들오들 떨면서 새우잠 자기 일쑤였습니다. 철탑농성장에서 자는데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비가 쏟아지니 지붕위로 빗소리가 요동쳤습니다. 바람부니 천막 문이 펄럭이며 천막안으로 바람이 불어 들었습니다. 누워 있자니 점점 등짝이 차가워 졌습니다. 새우잠을 잘 수밖에 없을 거 같았습니다. 거기에 가끔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게다가 자동차 주행장 옆인지 자동차 주행시험 하는 것인지 밤새 붕붕 거리며 엔진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그렇게 밤을 지새고 월요일 오전 6시 30분경 일어나 조용히 철탑농성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생계비 벌러 일용직 일자리로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나라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50여 년 살면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말을 검찰, 경찰, 장관, 대통령으로부터 너무도 많이 들어 왔습니다. 노동자로 살아온 제가 겪은 공권력의 법과 원칙은 우리 노동자에게만 엄정하게 대처한 거 같습니다. 현대차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불법으로 노동착취를 당해오고 있지만, 오히려 법 집행은 노동자에게 화살이 겨냥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어째서 공권력과 국가권력자는 노동자에겐 진짜 호랑이로 군림하고 재벌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겐 종이 호랑이가 되는지 이해불가 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두사람이 땅에서 30여 미터나 높은 철탑 위로 올라가 있습니다. 불법파견 중단하라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체불임금 지급하라고, 대법 판결 인정하고 이행하라고 철탑위에서 주장합니다. 두 사람은 고생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40일 째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차가 당연히 인정해야 할 대법판결을 인정하지 않아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도 같이 철탑 아래서 고생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회사쪽이 하루속히 대법판결을 인정하고 이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철탑농성은 계속됩니다.
 철탑농성은 계속됩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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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현대자동차, #불법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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