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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도 역시 모텔은 여행 중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숙박시설 중의 하나다.
 제주에서도 역시 모텔은 여행 중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숙박시설 중의 하나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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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우연이었다. 전날 공식적인 세미나가 끝나고 며칠 더 묵을 요량으로 제주에 혼자 남았다. 숙소든 렌터카든 아무것도 예약된 건 없었다. 따라비오름을 내려와 어둠을 맞이했을 때 처음 숙소를 고민했다. 아니 고민이라기보다는 어디에서 잘까 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니 제주시에 모텔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대한민국 모텔이잖아.' 나름 긍정하며 검색에서 제일 먼저 나온 제주 시내의 한 모텔로 방향을 잡았다. 선입견만 없으면 모텔은 제주에서도 여행 중 이용할 수 있는 좋은 숙박시설 중의 하나다.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앞 식당에서 저녁을 대충 먹고 이내 골아 떨어졌다. 눈을 뜨니 다음날 아침…. 지도를 꺼내 여기가 어딘가 보았더니 일도동이었다. 모텔 창으로 '흑돼지거리' 임을 알리는 거대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일도동이라면 그 옛날 삼성혈에서 나온 양을나, 고을나, 부을나 세 신인이 활을 쏘아 각자 살 곳을 정하였다는 일도(一都), 이도(二都), 삼도(三都)와 관련이 있는 지명이겠다.

북두칠성의 일곱 번째 별인 요광성 자리를 알리는 표지석
 북두칠성의 일곱 번째 별인 요광성 자리를 알리는 표지석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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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랜 역사를 알려주려는 듯 골목 구석에는 '북두칠성 제칠도' 표지석이 보였다. 1900년 초 홍종시의 <제주고적도>에는 제주 성안에 점선으로 북두칠성 모양의 칠성대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삼성혈에서 나온 세 신인이 삼도를 나누어 차지하고 북두성을 본떠서 대를 쌓고 거처하였다고 해서 '칠성대'라 했다. 이곳은 그중에서도 제7도(第七圖)에 해당하는 '요광성(搖光星)' 자리다. 예전 탐라왕을 성주(星主)라고도 했는데 북두칠성을 항로지표로 삼아 바다를 누비던 탐라의 중심지로서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이다.

반대편으로는 흑돼지거리가 형성돼 있다. 밤에는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덮여 있더니만 이른 아침에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밤새 피워 올랐던 기름 냄새가 아직도 흥건하다.

밤이면 불야성인 흑돼지거리
 밤이면 불야성인 흑돼지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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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재래시장으로 방향을 잡았다. 굳이 동선을 그리지 않더라도 발길은 절로 산지천을 지나 동문시장, 오현단으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오현단에서 큰 길을 건너 관덕정과 제주목관아까지 들렀지만 말이다. 이 장소들이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는데 우연히 찾은 숙소로 인해 제주 도심을 아주 알차게 여행한 기분이 들었다.

제주시 산지천에 있는 신앙석의 비밀?

골목을 벗어나니 제법 넓은 광장이 나오고 산지천을 알리는 안내판이 나왔다. 산지천은 복개되었다가 2002년에 콘크리트를 걷어내면서 생태하천으로 새로이 돌아왔다. 예전엔 하천 하류의 산지포구에서 고기 잡는 모습을 '산포조어(山浦釣魚)'라 하여 영주(옛 제주)십경 중의 하나로 꼽았다.

다리 난간의 사람 조각이 굳센데 이는 중국피난선을 형상화한 듯하다. 멀리 재현된 중국 피난선이 보였다. 원형의 80% 크기로 재현된 피난선은 조망과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전 중국 피난선이 산지천에 정박하여 거주하면서 '꽈배기' 등을 판매하면서 중국 음식이 이곳을 통해 퍼지기도 했다. 육지와 왕래가 잦은 산지포구는 한때 제주 상권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1960년대에는 남수각에서 용진교까지 660m를 복개하여 상가건물이 형성되어 있었단다.

홍수 등의 재앙을 막기 위해 산지천 가운데에 세운 조천석
 홍수 등의 재앙을 막기 위해 산지천 가운데에 세운 조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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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한참 걷고 있는데 하천 가운데에 돌하르방 같은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궁금히 여기던 차에 다행히 표지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조천석(朝天石)'이었다. 홍수 등의 재앙을 막기 위해 하늘에 기원하던 일종의 신앙석이다.

옛날 산지천은 태풍이 불어오거나 큰 비가 내리면 홍수가 나서 늘 피해를 입던 곳이었다. 성안 사람들은 이곳 바위(경천암)에 조천(朝天)이란 조두석(俎豆石)을 세우고 해마다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를 올렸다고 한다. 1735년 제주에 부임한 목사 김정은 이 바위를 지주암(砥柱岩)이라고 명명했다.

산지천 아래 산지포구의 고기잡이는 '산포조어'라 불리며 영주십경 중의 하나로 꼽혔다. 멀리 다리 너머로 중국피난선이 보인다.
 산지천 아래 산지포구의 고기잡이는 '산포조어'라 불리며 영주십경 중의 하나로 꼽혔다. 멀리 다리 너머로 중국피난선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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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운데에 해병혼탑이 있다. 제주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이래저래 부침이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건너편에 동문시장이 보였다. 길을 건넜다.

중국산과 제주 옥돔의 차이, 여기선 간단해요

산지천 광장에서 길 건너로 동문재래시장을 알리는 큰 입간판이 보였다. 아치형의 대형 간판 앞에는 제주답게 돌하르방 두 기가 시장 입구를 떡하니 지키고 있다. 7시를 조금 넘긴 시간인데도 시장은 의외로 한산했다.

동문재래시장
 동문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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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제주답게 시장에 넘쳐나는 감귤들
 역시 제주답게 시장에 넘쳐나는 감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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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눈에 띄는 건 역시나 감귤이다. 상자에 가득 담긴 귤을 보고 있자니 '제주의 시장은 뭔가 다르구나' 절로 느껴진다. 황금빛을 내는 감귤이 시장의 아침을 훤히 밝힌다. 산뜻한 기분에 발걸음도 절로 즐거워졌다.

동문시장은 생각보다 꽤나 넓었다. 그저 그런 시장이겠거니 여겼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곳의 수산시장은 제법 알려져 있다. 그 유명세답게 수산시장은 온갖 해산물로 그득했다.

올레길이 동문시장으로 이어지면서 최근에는 올레꾼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식당 앞에는 올레꾼들에게 값싸고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저마다 현수막을 내걸었다.

제주동문시장은 1945년 해방이 되자 상설시장이 생기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1946년 모슬포에 국방경비대 제9연대가 창설되면서 육지에서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각종 상품의 대부분을 동문시장에서 공급하면서 번창했다. 그러나 1946년 3월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수많은 피해를 입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제주 상업의 중심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주동문시장은 수산시장으로 유명하다.
 제주동문시장은 수산시장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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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상징 흑돼지도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도 수입산 고기가 많다. 다행히도 원산지를 정확히 밝히고 있어 소비자는 제주산인지, 수입산인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리저리 시장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초콜릿을 건넨다. 감귤로 만든 초콜릿, 제주를 다녀올 때마다 선물용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구입했을 그 초콜릿이다. 초콜릿 몇 개와 함께 건넨 것은 명함이었다.

"잘 부탁해요. 택배도 되니까요."

얼떨결에 초콜릿을 받았는데 알고 봤더니 카메라를 보고 홍보를 부탁한 기색이었다. 아무렴 어떤가. 아주머니의 마음을 고맙게 받기로 했다. 시장 곳곳에는 이처럼 감귤과 제주 특산품을 파는 선물 가게들이 즐비했다.

동문시장에는 감귤로 만든 각종 선물과 특산물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동문시장에는 감귤로 만든 각종 선물과 특산물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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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은 분주했다. 특히 말린 생선을 마치 꽃잎을 펼친 것처럼 좌판에 늘어놓았는데 보기에도 퍽이나 예뻤다. 길게 열 지어 펼쳐진 모습이 이곳 시장만의 또 다른 장관이었다.

"모살치라요. 제주도에서 잡히는 거지요. 고질맹이라고도 해요. 이게 옥돔만큼 맛이 좋다오. 5마리에 만 원밖에 안 하니 얼마나 싸고 좋소."

옥돔이 아니냐는 여행자의 뜬금없는 물음에 아주머니가 딱하다는 듯 설명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보리멸'이라는 생선이었다. 주로 회나 초밥으로 먹으며 반 건조시켜 구이나 튀김으로 먹으면 고들고들한 맛이 좋다고 했다.

고질맹이라고도 하는 모살치가 꽃잎처럼 펼쳐져 있다.
 고질맹이라고도 하는 모살치가 꽃잎처럼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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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동문시장에선 국내산 옥돔을 이처럼 포장해서 팔고 있다.
 제주동문시장에선 국내산 옥돔을 이처럼 포장해서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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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돔도 좌판 이곳저곳에 눈에 띄었다. 단연 여행자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여기 포장된 건 제주산 옥돔으로 5마리에 4만 원이고 중국산은 4마리에 2만 원 내지 3마리에 1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어요. 국산과 중국산은 구별하기가 힘든데 이곳 시장에선 국산은 이것처럼 비닐로 진공 포장해서 판매하고 중국산은 바구니에 그냥 내어놓고 팔고 있어요. 알고나 사세요."

제주도 억양이 제법 섞인 주인의 말은 몇 번이나 물은 끝에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해준 덕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나니 시장기가 왔다. 시각은 이미 8시를 넘기고 있었다. 올레꾼들이 다녀갔다는 현수막을 보고 한 순댓집에 들어갔다. 고기를 듬뿍 넣은 순댓국은 푸짐했으나 조미료 맛이 강했다. 그래도 재래시장이니 이 정도로 까탈을 부릴 것은 아니었다. 한 그릇 든든히 먹고 오현단으로 향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제주동문시장, #산지천, #조천석, #중국피난선, #제주옥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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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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