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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인해 한일 외교적 마찰이 심화되던 지난 3월 일이다. 방사능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았지만 사내의 일부 구성원들이 우리 땅 독도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의무감 확산과 단합대회를 겸해 대마도 여행을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2박 3일간의 대마도 왕복, 숙식까지 30만 원선이라니


어…, 대마도? 눈이 번쩍, 귀가 쫑긋해졌다. 대마도야말로 우리의 흔적이 가장 많을 뿐더러 가장 가깝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 한번쯤은 가봐야 겠다고 벼르고 있지 않았던가? 특히 부산에서 배를 이용한 '저가' 패키지 대마도 코스는 해외여행 상품 중 최고 인기상품 중 하나다. 이번 여행은 전문여행사가 아닌 가이드가 자체 모집하여 가는 상품으로 2박 3일간의 대마도 왕복 뱃삯과 숙식, 차량, 가이드 팁까지 포함된 금액이 30만 원선이었다.

일본에 볼모로 잡혀간 신라 내물왕의 아들 미사흔(未斯欣)을 탈출시키고 처형당한 박제상, "왜놈들 음식은 결코 먹을 수 없다"고 끝까지 버틴 최익현, 1607년부터 200여 년 동안 12차례에 걸쳐 파견된 조선통신사의 흔적들…. 그것은 교과서와는 또 다른 자유와 새로움을 전해주며 꿈틀대던 나의 혼을 쏘옥 빼놓기에 충분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 시대 때 일본에 파견한 외교 사절단을 말한다. 새 장군이 취임할 때마다, 일본은 조선과 각종 외교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사절단을 교환했는데, 이를 통신사라 불렀다. 1429년(세종 11년)에 처음 파견되었고, 임진왜란을 계기로 단절되었다.
 조선통신사는 조선 시대 때 일본에 파견한 외교 사절단을 말한다. 새 장군이 취임할 때마다, 일본은 조선과 각종 외교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사절단을 교환했는데, 이를 통신사라 불렀다. 1429년(세종 11년)에 처음 파견되었고, 임진왜란을 계기로 단절되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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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18은행. 은행이름에 숫자가 들어간 이유는 1872년 실시된 국립은행조례에 의해서 인가된 허가번호를 그대로 은행이름으로 승계했기 때문이란다.
 일본의 18은행. 은행이름에 숫자가 들어간 이유는 1872년 실시된 국립은행조례에 의해서 인가된 허가번호를 그대로 은행이름으로 승계했기 때문이란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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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대마도는 정략결혼으로 대마도주 아들과 결혼한 덕혜옹주(고종황제의 딸)의 결혼기념비가 말해주 듯 곳곳에 우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말인 지게도 그대로 '지게'로 불린단다. 

드디어 3월 2일 오전 9시,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부푼 꿈을 안고 대마도로 향했다. 1층에 들어서니 바로 면세점이 보이고 좌석은 모두 편안한 시트로 꾸며져 있었다. 호화여객선 수준이었다. 높은 파도에도 지장 없이 운행이 가능했지만, 흐린 날씨 탓에 배가 조금 출렁거리니 사람들 몸도 이리저리 마음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참을 수 있었다. 이틀 후 돌아올 때의 기상상태가 조금 걸리긴 했으나, 처음 기분 같아서는 별다른 위협요인이 되지는 못했다. 모두 이쯤에서 고국에서의 일상 걱정쯤은 모두 싹둑 잘라내 버리겠다는 기분이었으니까.

'혹시나' 했던 우려는 현실로

그렇게 2시간 정도의 항해를 거쳐, 마침내 이즈하라항에 도착했다. 혹시라도 대마도에서 길을 잃는다면 국제미아 되기 딱 좋은 일본어 실력의 소유자인 나. 가이드의 일본어 실력만 믿고 있었건만 가이드조차 한 마디도 못 한단다. 어이없어 하는 일행에게 가이드는 유럽과 동아시아 트래킹전문 가이드라 그렇다나?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한 가이드의 일본어 실력이 이틀 후 우리의 발목을 잡을줄 꿈엔들 생각했으랴.

이틀간을 대마도에 머물며, '혹시나?' 했던 우려는 서서히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는 곳마다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도대체 봄에 무슨 비가 이렇게 내리며, 바람은 또 왜 이렇게 분다니?'하며 마음 편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아유모도시 공원-쯔쯔자키 해상공원-카마자카 전망대-시라다케 산-100엔숍-만제키바시 운하-미우타하마 해수욕장을 거치며 미각을 자극하는 산해진미와 원기회복을 돕는 뜨끈한 온천의 매력에 흠뻑 빠지는 것만으로도 근심걱정은 어느새 사라졌다.

대마도 시내 잡지 가판대에서 만난 티아라. 일본에서 티아라의 인기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대마도 시내 잡지 가판대에서 만난 티아라. 일본에서 티아라의 인기가 만만치 않아 보였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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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방 어디를 보나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담한 포구와 해안가 기암절벽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언제 어디서든 아름답고 풍요로운 풍경을 선사하니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구정화'의 기회다.

그야말로 제주도 왕복 항공료 정도로 2박 3일 동안 제주에선 누리기 어려운 이국의 정취를 누릴 수 있으니 이만한 기회가 또 있을까. 해발 500미터 정도인 대마도의 등산코스나 여행지에서 세계 유명 메이커들의 아웃도어 의류를 입고 두리번거리는 관광객 아무나 붙들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니 십중팔구는 한국 사람이다.

대마도의 가판대에서 만난 신문과 담배. 일본경제신문은 160엔(2100원), 담배는 410엔(5400원)이니 우리와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인다.
 대마도의 가판대에서 만난 신문과 담배. 일본경제신문은 160엔(2100원), 담배는 410엔(5400원)이니 우리와 비교할 때 큰 차이를 보인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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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투어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3월4일)이 출항이다. 그런데도 날씨는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비바람이 더 거세다. 혹시나 해서 부산의 지인에게 전화를 해보니 그쪽도 날씨가 아주 안 좋단다. 걱정이 된 우리 일행은 가이드에게 다음날 출항 여부와 선박편 최종 예약확인을 요청했다.

"아, 당연하죠! 오늘 몇 번이나 출항여부를 확인했어요. 아직까지는 지연이나 결항이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내일 가는 것은 걱정 마세요!"
"저기요… 가이드님, 일본어를 잘 못하시던데… 혹시 어디다 알아보신 거죠?"
"부산 선사에 직접 알아보고 또 다른 경로를 통해 이쪽 현지 여객선 터미널에도 알아봤다니까요." 

여객선 여승무원들은 쇼핑중... 배는 언제 떠나나

대마도 시청 부근의 쇼핑센터에서 선물을 준비하는 내내 내심 불안했다. 역시 몇 번이고 예약 확인을 했으니 걱정 말라는 가이드의 말을 그때 곧이곧대로 믿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슬슬 의심 가는 사건들이 발생했다. 쇼핑센터에서 우리가 타고 왔던 배의 여승무원들을 우연히 마주치게 된 것이다. 혹시 내일 부산으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을것이라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어, 우리가 타고 온 배의 승무원 맞으시죠? 그런데, 왜 출항은 안 하시고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아, 우리요? 오늘 폭풍주의보 때문에 배가 못 나갔어요. 그래서 우리도 쇼핑하러 왔어요."
"네??? 그럼 오늘 출항 예정자들은 어떻게 되었죠?"
"당연히 못 나갔죠. 내일 날씨가 좋아지면 오늘 못 나가신 분들을 우선적으로 모시기는 할 텐데... 우리도 더 이상 자세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아마 내일도 바람이 강해서 못 나갈 것도 같은데요?"
"......"

(숙소로 돌아와 가이드의 '탑승확실'이라는 호언장담에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며 대마도에 표류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잠을 설쳐야 했던 일들은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다음날 오전, 떨리는 마음으로 귀국 준비를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정보다 몇 시간이나 일찍 항구에 도착했건만 어제 승선하지 못한 여행객들과 오늘 오후에 나가기로 했던 사람들로 터미널은 인산인해였다.

곧 뱃고동을 울리며 부산 선사에서 준비한 임시 선박은 이들을 가득 태우고 떠났다. 알고 보니 오늘 결항을 우려한 다른 여행사들은 승선일정을 앞당겨 이미 예약을 변경했고, 오직 '하늘의 뜻'에만 의지하던 우리 일행은 '닭 쫓던 개' 울타리 넘겨다 보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항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다른 여행사들은 모두 하루전에 대처했지만, 일본어도 모르고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은 우리 일행은 결국 대마도에서 하루를 더 지내야 했다.
 결항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다른 여행사들은 모두 하루전에 대처했지만, 일본어도 모르고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은 우리 일행은 결국 대마도에서 하루를 더 지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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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금 떠난 배 이후의 모든 운항일정은 모두 취소란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들은 표를 구하지 못한 개인 여행자들과 우리 일행들뿐이었다. 다른 팀들은 모두 하루 전에 대처했지만, 일본어를 모르는 가이드는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이었다.

발은 묶이고... 일행들은 전세 비행기라도 부를 기세

확실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해준다던 굳건한 장담은 어디가고 가이드는 우리가 묻는 질문에 시원스러운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 두사람씩 부산 선사와 지인들에게 요청을 해보지만 전화하는 사람마다 말하는 사람마다 말이 다 달랐다. 가이드에게 대체 선박을 준비해 달라고 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안전을 최우선시하므로 그건 결코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그걸 아는 가이드가 그랬어?

아침부터 미리 준비하면 임시편 탑승도 문제없고 좌석까지 확보해놨다고 하더니…. 아, 결국 우리 일행은 하루 동안 대마도 올 로케이션 영화 '대합실'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여행사의 과실이 아니므로 보상을 기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더 웃긴 건 1일간의 추가 숙박비와 체류비를 내라는 요구였다.

그렇지 않아도 결항으로 인해 민감해진 일행들은 한 두 팀씩 이탈되고 있었다. 가이드를 믿지 못하겠고 특히 이렇다 할 대책도 정확히 내놓지 않으니 자체 행동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장 내일 1학기 개강 첫 강의가 있다는 교수님부터 바이어와의 미팅이 계획된 사장님은 전세 비행기라도 부를 기세였다.

여객선은 묶이고 모든 운항일정은 취소되고 말았다.
 여객선은 묶이고 모든 운항일정은 취소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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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하지만 가이드를 마지막까지 믿어보고자 했던 우리 일행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행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결국 다음날(3월5일) 승선하는데까지는 가까스로 성공을 했다. 폭풍주의보가 완전 해제되지는 않았지만 승객들의 거센항의에 부산 선사에서는 할수 없이 임시선을 투입하여 운행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그러나 승선의 기쁨도 잠시, 일행은 또 한 번 위기를 맞으며 걷잡을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억만금을 줘도 못할 목숨 건 지옥체험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뱃멀미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일인 줄로만 알았다. 태어나 한 번도 멀미를 해본 적이 없고, 특히 부산으로 돌아가는 배는 흔들림이 심한 일반적인 배와 비교한다면 호텔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만족스러우니 걱정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부산행 배를 탔다는 사실만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변기통 붙잡고 애원하던 나

출발 후 30여 분이 흐르고 망망대해에 들어서자 끝없이 거센 파도가 밀어 닥치기 시작했다. 배는 놀이기구 바이킹을 탄 것처럼 전후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부터 비상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여기저기서 뱃멀미 환자가 속출했다. 곧이어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고 '켁켁'거리며 객실과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더니 의식까지 잃는 사람이 생기고 말았다. 

처음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서히 몰려오는 뱃멀미에 승객들은 하나둘씩 고통스러워했다. 객실은 멀미와의 전쟁이 시작되자 하나둘씩 기둥에 몸을 기대고 가쁜 숨을 내쉬었고, 어떤 이는 큰 대자로 드러눕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다른 전정기관의 발달에 기인한 내 몸을 믿었었다. 아, 그런데 "나는 뱃멀미를 결코 안 함, 나 항구도시 출신임, 물론 바닷가에서 살았음…"이라는 호언장담은 어디가고 슬슬 몸이 이상해졌다. 난생 처음 겪는 이 기분, 속이 울렁이는 메스꺼운 이 묘한 느낌은 뭐지?

꿈인지 생시인지 비몽사몽, 복잡해진 뇌세포는 여기가 천국인지 지옥인지 구분도 못할 정도로 만들었다. 꼼짝없이 선실에서 '자연의 처분'만을 기다리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눈앞에는 거대한 집채 보다 더 큰 파도가 쉼 없이 밀려오니 실로 멀미로 인한 공포가 어떤 것인지 느껴졌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고, 정신은 하나도 없었다. 아, 변기통을 붙잡고 애원하며 울고불고 하는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토하는 사람들이 까만 비닐종이에 '우웩' 하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냄새는 물론 소리까지 들려오니, 나도 이젠 나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 먹은 산해진미를 모두 확인해야 했고, 위액 같은 쓰디쓴 물까지 나왔다. 이건 고통이 아니라 고문이었다. 뱃멀미는 생전 안 해봤으니 예전에 이 고통을 어찌 알았으리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몇차례 왔다갔다 하더니, 결국 완전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천재지변에도 '깔끔한 뒤처리'는 필수

지금 대마도하면 떠오르는 것은? 산해진미도 기암괴석도 아닌 결항의 분노와 지옥을 넘나든 뱃멀미의 고통뿐이다. 결항 한번, 뱃멀미 한번으로 너무 유난 법석을 부린다고 할지 모른다. 물론 기상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결항이 있을 수 있지만 가이드의 무책임한 발언들과 대처능력을 다시 떠올리자니 정말 치가 떨린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최선의 선택이라 할지라도 고객은 이에 대한 이해보다는 당장 마주친 불편함에 비중을 더 크게 두고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다. 불가피한 스케줄 변경이 이뤄질 시 '깔끔한 뒤처리'는 필수다.

곤경에 처했을 때 진가가 발휘된다는 말이 있다. 역시 곤경에 처했을 때 여행객을 대하는 태도가 그 여행사의 질을 나타낸다. 태풍이나 폭설 등 기상과 관련된 내용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행객들이 불이익을 당할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백엔숍도 '메이드인 차이나'가 점령했다. 꼭 주의해서 보고 사야한다. 괜찮은 것 선물하고 싶으시면 백엔샵은 피하라.
 일본의 백엔숍도 '메이드인 차이나'가 점령했다. 꼭 주의해서 보고 사야한다. 괜찮은 것 선물하고 싶으시면 백엔샵은 피하라.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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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모집에 의해 진행되는 여행패키지는 위기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하는데 분명히 한계가 따른다. 선박결항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가이드가 더 큰 문제에 대처하지 못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싸다는 것에 혹해 전문가이드라는 말만 믿고 1인에게 맡기려는 생각은 시간과 금전적으로 전혀 효과적이지 못하다. 반드시 믿을만한 여행사에서 합리적인 여행패키지를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나의 황당 해외 여행기> 공모 글입니다.



태그:#황당여행기, #일본, #대마도, #결항, #뱃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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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를 기존 언론들이 다루지 않는 독자적인 시각에서 누구나 공감하고 웃을수 있게 재미있게 써보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사, 저에게 맡겨주세요~^^ '10만인클럽'으로 오마이뉴스를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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