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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2000년 7월 초 현대차 사내하청에 입사하여 2010년 3월 15일까지 지금은 변속기 1부가 된 수동변속기 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작업했었습니다. 저는 처자식과 먹고살기 위해 잘리고 싶지 않았지만, 현대차 원청에서 새 공정 공사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강제로 정리해고했습니다. 정규직 노동자는 1년 유급휴가 주면서 우리는(비정규직 노동자) 왜 자르느냐고 항변도 해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당시 현자노조 간부들도 강 건너 불구경뿐이었습니다.

저는 2년 넘게 여러 곳을 전전하며 일용직으로 근근이 가족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이 났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금 비정규직 노조에 가입하였고, 집단소송도 해놓은 상태이며 비정규직 노조의 불법파견 투쟁에 기를 쓰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억울하고 대법판결이 저에게도 희망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기자 말-

울산,전주,아산 비정규직 노조 대표들.
 울산,전주,아산 비정규직 노조 대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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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청 노조 공동 6대 요구안 설명
 원하청 노조 공동 6대 요구안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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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금), 오후 5시에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철탑으로 갔습니다. 오후 6시부터 철탑에 올라가 있는 두 비정규직 노동자의 철탑 농성에 잠시나마 함께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날도 비정규직, 정규직, 정치하는 분들, 사회활동가, 학생, 관심 있는 시민, 다른 기업 하청노동자들이 모여서 31일째 되는 철탑 농성 촛불문화제를 열었습니다.

"저, 있잖아요. 내일(17일) 3차 포위의 날 행사가 진행되잖아요. 오후에 철탑에 올라가 하룻밤 같이 지내고, 그 소감을 <오마이뉴스>에 좀 올리고 싶은데 올라가도 될까요?"

철탑해방촌 DMZ... 어떤 분은 "디0라. 몽0 자0아"라고 해석했습니다.
 철탑해방촌 DMZ... 어떤 분은 "디0라. 몽0 자0아"라고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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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비정규직 노조 담당 간부를 찾아 그렇게 부탁해 보았습니다. 정말로 그러고 싶었습니다. 철탑 위에서 보는 아래는 어떨지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사방팔방 다 뚫려, 허공에 떠있는 상황과 같습니다. 위로 아래로 옆으로 세찬 바람이 몰아칠 때 그 추위가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했습니다. 저는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왜 올라갔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유는 알지만, 31일을 넘기고 있는 지금 두 노동자의 심경은 어떨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안된다고 하네요.

"지난번에 <한겨레> 기자 분이 올라갔다가 내려온 사실이 있어요. 그 후 철탑의 두 동지가 안전상 이유로 아무도 올려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변 동지."

어쩔 수 없죠. 못 올라가게 해서 좀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로 하는 현대차 포위의 날인데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원래는 토요일 밤 11시에도 24시 마트에서 아르바이트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다른 분께 부탁해 놓았습니다.

저는 철탑 농성장으로 가서 1박을 하기로 작심했습니다.

천의봉,최병승 비정규직 노동자. 손을 들어 승리하자고 외칩니다.
 천의봉,최병승 비정규직 노동자. 손을 들어 승리하자고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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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철탑 집회를 마치고, 집에 와서 쉬다가 밤 10시가 넘어서 마트로 아르바이트를 갔습니다. 오다 말다하던 비는 밤새 내렸습니다. 바닷가 옆이라 그런지, 바람도 많이 불었습니다. 철탑 위에서 고생하는 두 사람이 걱정되었습니다. 현대차가 대법원 법정에서 "현대차는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을 때, 법을 존중해 최병승씨만이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비도 내리고 바람도 부니, 현대차의 불법파견 불인정 노무관리가 미워졌습니다.

17일(토)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전 8시에 퇴근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 즈음에 일어나니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오후 3시 태화강역에서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쟁취를 위한 조합원 결의대회가 있습니다. 참석 바랍니다.'

노조 재산을 모두 현대차에 차압 당해서 투쟁기금 마련 포장마차를 했습니다.
 노조 재산을 모두 현대차에 차압 당해서 투쟁기금 마련 포장마차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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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시간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오후 3시 조합원 결의대회는 못 가고 저녁 7시부터하는 3차 포위의 날 행사에나 늦지 않게 가려고 몸을 일으켰습니다. 집을 나서니,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날씨가 매우 쌀쌀했습니다. 오후 7시가 다 되어 도착한 철탑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복작거렸습니다.

철탑 주변은 모두 현대차의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철탑 앞 50여미터 마주 보는 곳에 'DMZ'이라는 영어가 크게 그려진 무대가 꾸며지고 있었습니다. 철탑 쪽에는 '철탑 해방촌 문화제'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저는 'DMZ'이란 영어가 그것을 줄임말인 줄 알았습니다.

최병승, 천의봉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철탑에 올라가면서 3가지를 현대차에 주장했습니다. 첫 번째가 '불법파견 인정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가 '정몽구 회장 구속하라'는 것이며, 세 번째가 신규채용 중단하라'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 그 세 가지 사항을 줄여 만든 영어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젯밤 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응원엽서를 쓰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어젯밤 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응원엽서를 쓰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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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탑 옆에는 어려운 비정규직 노조의 활동비를 모으고자 하루 주점 포장마차가 열렸습니다. 현대차의 손배가압류로 조합 통장마저 차압당한 상태라 활동이 어려운 것을 이미 잘 아는 수많은 참석자들이 앞다퉈 투쟁기금마련위한 하루 주점을 이용했습니다.

또, 여러 노동단체에서 불법파견 투쟁기금으로 쓰라며 모금해서 보내오기도 했고, 어떤 분들은 고구마, 라면, 쌀국수와 같이 먹을 것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안면도 없는 그런 분들의 후원 덕분에 버틴다"고 박현제 지회장은 그분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진행된 3차 포위의 날 행사... 허리가 아픈지 어떤분은 옆으로 누워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진행된 3차 포위의 날 행사... 허리가 아픈지 어떤분은 옆으로 누워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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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철탑 고공농성장 앞에서 현대차 불법파견 중단 포위의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현대차 울산, 아산, 전주 수 백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참석했고, 전국에서 노동탄체와 시민단체, 대학생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누구는 1500여 명 된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2000여 명은 안 되겠느냐고도 말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단식 농성하거나 철탑에 올라 농성 중이어서 오지 못하는 노동자 대표는 영상으로 "현대차 불법파견 꼭 승리하고 건강하게 내려오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방송인 김미화씨도 응원 영상편지를 보내와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또, 철탑 위에서의 하루 생활도 동영상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약 30여미터 되는 철탑과 유일한 물품 연결 통로는 긴 끈이었습니다. 해고자들이 아침, 저녁으로 식사와 필요 물품을 끈에 매달아 올려주고 있습니다.

저는 잠시 철탑행사장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현대차 명촌문 담장 쪽으로 경찰 차량이 10여 대 세워져 있었고, 119 차량과 구급차도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무장한 채로 현대차 문 옆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공장 안에는 현대차 노무관리자가 서성거리며 철탑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현대차 포위의 날 세번째.
 현대차 포위의 날 세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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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경 비정규직 노조 대표단이 횃불을 들고 무대 앞에 섰습니다. 횃불의식이 끝나고 서울에서 왔다는 대학생들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를 항의하는 차원에서 서명도 하고 모금도 했다고 했습니다. 대표 학생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비정규직 노조 계좌 압류할 것이 아니라 10년 넘게 착취해 모은 정몽구 재산을 가압류 해야 합니다."

또 다른 대학교 학생도 나와서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도 비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바꾸어 보고자 나섰습니다. 철탑 투쟁의 승리가 곧 우리의 승리임을 확신하기에 우리도 함께하려고 내려왔습니다. 현대차의 불법파견 문제는 현대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반에 걸친 비정규직과 불법파견의 문제입니다. 힘들겠지만, 꼭 승리하여 정규직 전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 승리 다짐 횃불의식.
 불법파견 정규직화 승리 다짐 횃불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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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2시경 행사가 끝났습니다. 주변에는 잠자리용 천막이 수십 동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스티로폼과 은박지가 깔려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위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잠들기도 했습니다. 저도 자리에 누웠습니다. 누워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추워졌습니다. 밤이 되니 차가운 바람이 더 강하게 불어왔습니다. 대형 천막으로 바람막이라도 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철탑 위 두 노동자는 얼마나 추위에 떨며 이 차디찬 밤을 지새울지.

만장기를 들고 행진... 현대차 명촌 쪽문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토요 특근 마치고 일요일 아침 퇴근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만장기를 들고 행진... 현대차 명촌 쪽문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토요 특근 마치고 일요일 아침 퇴근하는 노동자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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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아산로 쪽 문 앞에서 불볍파견에 항의중인 참석자들.
 현대차 아산로 쪽 문 앞에서 불볍파견에 항의중인 참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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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일요일... 철탑농성 33일 차

아침 7시경 노동가가 크게 울려 일어났습니다. 밖에는 진보신당에서 준비한 '희망밥차'가 따끈한 국밥을 배식하고 있었습니다. 밥을 다 먹고, 마지막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여서 만든 수백 개의 대나무로 만든 만장기. 형형색색 천에는 갖가지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참석자는 모두 만장기를 들고 줄지어 현대차 명촌 문에서 아산로 쪽 문까지 행진했습니다. ㄱ 자로 꺾여 문이 두 개 있었습니다. 넓은 주차장에는 일요일 임에도 수 천대의 차가 서 있었습니다. 오전 8시가 지나서 아산로 쪽 문에 도착했는데, 야간 특근을 마치고 나오는 노동자가 많았습니다.

18일 오전 행사를 끝내고 비정규직 노조는 주변을 깨끗이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18일 오전 행사를 끝내고 비정규직 노조는 주변을 깨끗이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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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안에는 직영 경비인지 업체 경비인지 모르지만 20여 명 서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노조는 아산로 쪽 문에서 항의 집회를 잠시 한 후, 다시 되돌아 철탑으로 갔습니다. 갈 때는 사진을 찍느라 못 본 풍경이 보였습니다. 현대차 명촌 쪽에는 200여 미터 간격으로 철탑이 서너 개 있는데 그 중 아산로 문 쪽과 가까운 철탑이 다른 철탑과 달랐습니다.

그곳은 철탑으로 접근 못 하게 알루미늄으로 된 칸막이 공사를 해 둔 것이었고, 흉물스럽게도 바닥서부터 10여미터에 이르는 곳까지 철탑 4개 다리를 모두 철조망으로 칭칭 감아 놓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윗 쪽에는 빙 둘러 몇 겹으로 철조망을 설치해 놓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명촌 쪽문까지도 높은 여닫이문으로 튼튼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노동탄압, 착취는 할지언정 불법파견은 인정 못 하겠다"고 철탑에 설치된 철조망과 울타리가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현대차 노무관리가 불법파견된 비정규직 노동자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그 철탑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철탑에 오른 두 비정규직 노동자를 내려오게 하려면 불법파견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강제로 끌어내려야 할 것입니다.

아산로 쪽 철탑에 이렇게 흉물스런 장치를 해두었네요.
 아산로 쪽 철탑에 이렇게 흉물스런 장치를 해두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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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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