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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강하다! 반드시 승리한다!'라고 적힌 붉은 현수막이 거센 바람에 펄럭인다. 31일째 농성 중인 최병승, 천의봉 동지가 얼굴이라도 내밀어줄까 싶어 철탑을 올려다 본다.
 '우리는 강하다! 반드시 승리한다!'라고 적힌 붉은 현수막이 거센 바람에 펄럭인다. 31일째 농성 중인 최병승, 천의봉 동지가 얼굴이라도 내밀어줄까 싶어 철탑을 올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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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국장이 현대차 울산공장 중문 주차장 철탑에 오른 지 11월 16일 현재 31일차가 됐다. 울산공장 포위의 날 하루 전인 16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철탑 농성장을 찾아 고공농성 중인 두 조합원을 전화로 인터뷰하고 농성투쟁을 지키고 보살피는 비지회 조합원들을 만났다. - 기자 말

지난 16일 오후 1시경,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중문 앞 주차장. 가까이 다가가자 높이 30m 가량 되는 송전탑 주변에 오색 깃발과 현수막들이 부쩍 눈에 띈다. 파란색 천막들을 넘어 철탑 농성장에 도착했다.

먼저 철탑 농성장을 올려다본다. 지상에서 20m쯤 높이 송전탑 중간에 철판이 놓여있고 그 위에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농성장이 보인다. 받쳐주는 힘이 괜찮을까 싶게 위태로워 보이는 농성천막에 붙은 붉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강하다! 반드시 승리한다!" 저 위에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두 동지가 31일째 지내고 있다.

철판 밑으로 지난 10월 17일 밤 한 시간여에 걸쳐 최병승, 천의봉 동지가 처음 올라 자리를 잡았던 15m, 20m 높이에 두 개의 나무 판자가 아직 남아있다. 혹시 얼굴이라도 내밀어줄까 싶어 밑에서 하염없이 올려다본다.

이곳 현대차 중문 주차장은 거센 바람이 분다.

"바람이 많이 부네요."

조합원들이 말한다.

"여기는 24시간 이래 바람이 불어요. 저기 저쪽이 바다에요. 울산 앞바다 아잉교? 지금은 그래도 (바람이) 덜한 편이에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투쟁조끼를 입거나 사복을 입은 조합원들이 드럼통에 피워놓은 난로 주변에 모여 있다. 인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비정규직회 상황실과 주방천막이 있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와 금속노조 깃발이 꽂힌 10여 동의 천막들이 농성장을 에워싸고 있다. 농성장 주변에는 수십개 현수막이 나붙었다.

"불법파견 자행하는 정몽구를 감옥으로,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 쟁취하자!", "자본의 기만과 폭력을 부수고 원하청 공동파업으로 달려가자!", "비정규직 철폐! 정몽구 구속!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 최병승 천의봉 동지 힘내라!"

위에 있는 동지가 냅다 소리 질러 누군가를 부른다. "OO야~!"
밑에 있는 OO씨가 위쪽을 올려다보며 대답한다. "왜?~"
위에서 내려오는 장난스러운 대답. "그냥 불러봤어!"
밑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웃는다.

철탑 바로 옆 철로를 지나는 기차가 최병승, 천의봉 두 조합원을 향해 힘내라는 의미로 경적을 울리고 있다. 한 조합원이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여기 철탑 농성장 지나면서 힘내라고, 연대의 의미로 저래 빵빵 해주는 거에요.”라고 말한다.
 철탑 바로 옆 철로를 지나는 기차가 최병승, 천의봉 두 조합원을 향해 힘내라는 의미로 경적을 울리고 있다. 한 조합원이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여기 철탑 농성장 지나면서 힘내라고, 연대의 의미로 저래 빵빵 해주는 거에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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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 바로 옆 철로를 지나는 기차가 길게 경적을 울린다. 그러자 철탑 위 두 동지가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든다. 밑에 있는 사람들도 기차를 향해 손을 마구 흔든다.

"저기요…. 왜 손 흔드시는 거예요?"
"연대에요.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여기 철탑 농성장 지나면서 힘내라꼬, 연대의 의미로 저래 '빵빵' 해주는 거예요."

맞다. 여기 농성장에 와서부터 바로 옆 철로를 기차가 지날 때마다 경적을 울린다. 20분 정도 간격으로 계속해서 기차가 지날 때마다 농성장 사람들은 일제히 손을 흔든다. 활짝 웃는 얼굴로. 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 연대의 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오후 2시30분쯤 고공농성 중인 최병승 조합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OOO입니다. 뭐 하고 계셨어요?"
"네, 트위터 하고 있었어요."
"두 분 오늘로 31일째 고공농성 중이세요. 건강상태는 어떠세요?"
"특별한 이상은 없어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이하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 인터뷰 전문은 아래 별도 기사로 게재)

드럼통 난로를 여기저기 손보느라 여념이 없는 한 조합원에게 말을 걸었다. 전홍주 조합원(34)는 지난해 2월 25일 해고됐다. 2010년 25일 파업 건으로 인한 징계해고다. 2006년 7월에도 표적해고를 당했고 당시 3공장 휴게실에서 생활하며 투쟁을 벌여 결국 두 달여 만에 복직됐다. 그가 두 번째로 해고된 지 벌써 2년이 가까워온다.

"현장이 많이 어려웠어요. 오랫동안 투쟁을 벌였지만 얻어지는 것은 없고 징계해고 등으로 어렵고 힘들어 조합원들이 많이 위축됐어요. 이 농성이 현장을 바꾸는 데 큰 몫을 했죠. 저는 철탑이 마지막 승부수가 아닌가 생각해요."

농성장 한쪽에 조합원들의 메시지가 담긴 나무 작대기들이 쌓여 있다.
 농성장 한쪽에 조합원들의 메시지가 담긴 나무 작대기들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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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조합원은 2004년 활동하면서부터 최병승 조합원을 개인적으로 알게 됐다. 그만큼 안쓰러운 마음이 더하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고 정말 분통이 터저요. 이렇게 하는데도 꼼짝 안 하는 현대차가 정말 밉죠. 그리고 두 동지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서요. 그동안 새 집행부가 들어선 후에도 조합원 결집이 잘 안 됐거든요. 지부 사업부 대표 대의원선거 때문에 2개월 넘게 교섭도 이뤄지지 않았고요."

전홍주 조합원은 농성을 통해 거점이 생기고 조합원을 모아내는 큰 힘이 생겼다고 말한다.

"최병승 조합원에게 정말 미안하고 내려올 때까지 안전하게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랄 뿐이에요. 전 사실 올라가고 나서 미안해서 전화도 못했어요. 저는 한 번도 희망을 버린 적이 없어요. 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해고 생활 2년을 버틸 수 있었구요. 이제 회사가 당황하는 게 보여요. 철탑농성으로 끝을 봐야 합니다."

문기선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법규부장은 한시도 농성장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씩 돌아가면서 올라가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밑에서 농성장을 지키는 사수조 조합원들의 마음이 다 이럴 것이다.

차 한 대가 주방천막 앞에 도착하더니 채소 등 온갖 식재료들을 쏟아놓는다. 17일 울산공장 포위의 날 주점을 열 계획인데 거기서 사용할 것들이다. 주방천막에서 주방장을 맡은 박두원 조합원(34)이 대파를 써느라 분주하다. 그 역시 지난해 2월 25일 징계해고된 해고자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뭡니까?"
"수제비요. 다음주부터는 (고공농성하는 두 동지) 다이어트를 시켜야 돼서 닭가슴살을 올릴 거예요. 닭가슴살에 양파, 당근, 브로콜리, 오이, 호박을 넣고 기름을 조금만 둘러 볶아 올려줄 거예요. 저 위에서 살이 찌면 안 되거든요. 브로콜리는 비타민도 많아서 좋아요. 소금이랑 후추 조금만 넣구요."

주방장은 2차 포위의 날 때부터 천막을 설치하고 고공농성 하는 조합원들과 사수조, 임상집 등 30여 명 내외 동지들의 하루 세 끼 밥을 한다. 밥과 국·찌개는 매끼 만들고 반찬을 조합원들이 가져온 것을 먹는다.

"된장찌개 끓여봤구요. 호박전도 만들어 봤어요. 위에는 반찬 두세 가지가 올려져 있고, 끼니 때마다 밥이랑 국물을 올려요. 맛있게 먹어주면 그걸로 기쁘고 보람되죠. 제 입맛이 좀 짜게 먹는데 다른 동지들 입맛에 맞게 하려고 신경을 써요. 전 혼자 살면서 제 밥도 안 해 먹던 사람인데 또 이렇게도 하게 되네요."

사복을 입고 모자를 쓴 한 천OO 조합원(42)은 오른손을 붕대로 매고 있다.

"어쩌다 다치셨어요?"
"두 동지들 올라갈 때 올려 보내주려고 작업하다가 손가락 두 개가 날아갔어요."

그는 손가락 끝에서 핀을 박는 수술을 받고 지금은 병가 중이다.

"최병승을 2003년도부터 알았어요. 같은 회사 소속으로 일하다 노조에 같이 가입했죠. 제가 노조를 알게 된 건 최병승 때문이에요. 협상이 어째 되던 상관없이 무사히 안전하게 내려오게 만들어야 해요. 그런 마음이 있어서 병원에 다니면서도 늘 여길 와요."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농성장 한켠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17일 울산공장 포위의 날 주점에서 파전을 만들 때 쓸 쪽파를 다듬고 있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농성장 한켠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17일 울산공장 포위의 날 주점에서 파전을 만들 때 쓸 쪽파를 다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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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조합원도 농성을 기점으로 현장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전한다.

"최병승 판결이 있고 우리는 불법파견이 맞아요. 협상 상대가 있고, 회사가 말을 안 들으니 전투를 치러야 해요. 저는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을 이기지 못하면 전체 비정규직 싸움도 끝장이라고 봐요. 우리는 현장을 조직하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도 올인해서 이 중요한 싸움을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지난 9월 이후 현대차 자본은 용역과 관리자를 동원해 울산공장 전역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도장부, 의장부를 비롯해 모든 공장 입구를 그들이 지키고 있어요. 우리가 점거할까봐 겁나는 거예요. 도장부 입구는 아예 대형 철판으로 막아놨어요. 현장에 가보면 놀랄 거예요. 이럴 때 우리가 더 밀어붙이면 이기지 않겠어요? 전 그래 봅니다."

강성용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

"회사는 이 문제가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요. 98년 이후 현대차지부가 투쟁하지 않았고 노조를 무력화시켰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정규직으로) 들어가면 자기네들이 어려워진다고도 하구요."

강 수석부지회장은 회사가 10차 교섭에서 실무교섭을 제안했다고 말한다.

"3지회가 논의해서 월요일까지 입장을 정리해 답변을 주기로 했어요. 이틀 전에 한겨레가 8년 만에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냈잖아요. 그걸 실무에서 풀어보려는 게 아닌가 싶어요. 기사 내용을 인정 못하면 반박보도를 요구하라고 해도 그건 안 한대요."

기자 인터뷰에 응하고 이것저것 농성장 상황을 챙기느라 현장을 분주하게 오가는 박현제 (40) 지회장을 만났다. 그는 제1공장에서 최병승 조합원과 함께 일하며 인연을 쌓았고 2005~2006년에는 지회장과 사무장으로 일하기도 해 최병승과는 형동생 같은 사이다.

"운동적으로 병승이가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어요. 노조 차원에서 2005년, 2006년, 2010년, 2012년 네 차례 투쟁을 했고, 2006년에는 단협도 만들었고, 나머지는 불법파견 투쟁이에요. 2012년 8월 투쟁은 오랜 시간 쌓여온 피로도가 있었고, 임단협이 분리되면서 조합원들이 받기 힘들어했어요. 저는 분리하는데 맞다고 봤지만요."

박 지회장이 전하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상황은 이렇다.

"현장이 어렵다고 들었다구요? 2010년 CTS 파업투쟁 이후 움직이던 동지들이 다 해고됐어요. 4월에 집행부가 들어선 다음에 8월에 라인을 끊고 지부와 교섭을 분리해 특별교섭 과정에서 피로도가 높아졌죠. 철탑 농성 후에 교섭이 더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생산에 타격을 주는 것도 못했지만 현장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어요. 동지들은 당장 내일이라도 투쟁할 수 있다며 준비하고 있어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화하라는 우리 요구를 교섭의제로 받을 수 없다고 회사는 말합니다. 노동부가 9234공정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했고, 대법에서도 두 번이나 확인했잖아요. 이건 사실 이행해야 하는 문제지, 지킬지 말지를 노사가 협의할 문제가 아닌 거에요."

그렇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외치며 8년째 투쟁을 이어왔다. 동시에 노사교섭을 통해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건지를 구체적으로 논의하자고 한다. 현대차는 이 문제가 교섭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사측이 지금 당장 법을 지키면 해결될 문제를 회피하고, 그걸 이행하라며 노동자는 철탑에 올라 30일 넘게 목숨 건 농성을 벌인다.

"이런 모순이 우리 현실입니다. 법에서 판결한 걸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가 강제하지 않아요. 편파적으로 법을 만들고 자신들 입장에 유리하게 실행하죠. 현대차는 명백히 불법파견을 했어요."

박 지회장에게 상급단체에 대해 바라는 것을 물었다.

"금속노조가 19일 대대를 합니다. 정리해고와 불법파견을 철폐하는 것이 금속노조 핵심사업이라고 알고 있어요. 선언적 의미 말고 총파업을 통해 현대차에게 법을 이행할 것을 강제해야 한다고 봐요."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그는 따끔한 현장의 소리를 전한다.

"민주노총이 힘없는 노동자들을 위해 힘을 발휘하는데 충실해 주면 좋겠어요. 민주노총이든 금속노조든 선거에만 매몰된 것 같아요. 노동정치도 중요하나 현장문제가 푸는 것이 오히려 노동정치도 푸는 길이라고 봅니다."

박현제 지회장은 고공농성 중인 두 동지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최병승, 천의봉 정말 좋은 동생들이에요. 빨리 내려오게 해야죠. 여기 천막에서 자는 것도 굉장히 추운데 저 위는 정말 춥거든요. 제가 체포영장 발부됐을 때 아주 좁은 곳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저렇게 하게 만들어 정말 미안해요. 그걸 보상이라고 하고 싶어서 주야간을 돌며 현장 조합원들을 만나고 있어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박현제 지회장.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박현제 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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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6시면 농성장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는데 16일은 비가 오락가락 하는 날씨 때문에 촛불이 취소됐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15일 있었던 10차 교섭 내용을 조합원들에게 알리기 위해 오후 6시 경 철탑 밑에서 교섭보고대회를 열었다.

민주노총은 철탑농성 32일차인 17일 울산 태화강역에서 '불법파견노동자 정규직화 쟁취 및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를 열고 철탑농성장까지 행진을 벌인다. 이어 농성 현장에서 3차 울산공장 포위의 날이 1박2일 일정으로 펼쳐졌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얼마나 더 고통 받기를 바라나"
[인터뷰] 최병승·천의봉 "우리는 강하다! 반드시 승리한다!"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장이 정규직 전환등을 요구하며 지난 10월17일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주차장 송전철탑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장이 정규직 전환등을 요구하며 지난 10월17일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주차장 송전철탑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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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노동자 정규직화 쟁취 및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와 3차 울산공장 포위의 날을 하루 앞둔 16일 현대차 울산공장 철탑 농성 현장을 찾아 31일차 고공농성 중인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장을 1시간 여 동안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농성장 하루 일과에 대해.
"보통 아침 6시 전후에 일어난다. 가장 추운 시간이 새벽 5시쯤부터 아침 10시쯤 해가 비치기 전까지 시간이다. 비닐로 바람막이를 해놓기는 했는데 그래도 많이 춥다. 그 시간에 바람도 더 많이 분다.

조합원들이 현수막을 들고 마이크로 외치며 출근투쟁을 하는 걸 여기서 지켜본다. 7시 40분 쯤 농성장으로 오는 조합원들과 인사를 하고 8시 30분 쯤 아침밥을 먹는다. 그리고 책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한다. 천의봉 사무장은 간부니까 여기 올라와서도 각종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오전 10시 쯤 되면 해가 비친다. 반가워 그 시간이 되면 일광욕을 한다. 야간조 일하고 나온 동지들이 와서 위아래에서 소리 높여 대화도 하고 전화도 한다. 낮 12시 30분에서 1시 사이에 점심을 먹는다.

각종 집회 발언을 전화로 하기도 하고, 잡지 등에서 청탁받은 글을 쓴다. 손으로 써서 촬영해 보내기도 하고, 메모장을 이용해 문자로 써서 보내기도 한다. 주문받은 분량을 다 못 채워보내기 일쑤다.

기자들과 전화통화로 인터뷰도 하고, 신문사 기자들이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서 낮 시간을 보낸다. 매일 저녁 6시 밑에서 촛불집회를 한다. 하루씩 돌아가며 촛불문화제 발언을 전화로 한다.

촛불을 정리한 다음에 저녁 7시 30분에서 8시 사이에 저녁밥을 먹는다. 그 다음에 천의봉 동지와 둘이서 같이 하루를 정리하는 토론을 하고 잔다. 천의봉 동지는 좀 일찍 자고 저는 밤 12시쯤 돼서 잠자리에 든다.

밤에 불빛이 필요하면 랜턴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불빛이 정말 간절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익숙해진 것 같다. 촌에서는 저녁밥 먹으면 그냥 자지 않는가. 사실 어두워지면 여기서 뭐 할 수 있는 게 없다. 생활양식이 변한 것 같다."

-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지만 태도변화가 느껴진다고 하는데.
"우리는 2004년 투쟁을 시작해 햇수로 9년째 하고 있으며, 불파 문제를 갖고는 2005년부터 8년째 싸워왔다. 이 기간 내내 현대차는 기본적으로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현대자동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대상과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를 또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 회사의 주장이다.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이 큰 산이라면 그 산을 넘어도 또다른 어려운 사안들이 있다. 저는 이 문제가 한꺼번에 단시간 내 해결될 거라고 보지 않는다. 비정규 노동자가 왜 그렇게 긴 투쟁을 해왔는지에 대해 알려져도 새로운 것이 또 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현대차는 이제까지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제야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본다. 실질적 교섭 등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새로운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아주 멀 수도 있다."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장이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주차장 송전철탑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최병승 조합원과 천의봉 사무장이 정규직 전환 등을 요구하며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 주차장 송전철탑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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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현장이 많이 어려웠다고 들었는데.
"투쟁하다보면 좋을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많다. 다양한 동지들이 노동조합에 모였으니 다양한 의견과 다양한 입장이 공존한다. 기본방향을 어떻게 갖고 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논의하는 것은 당연한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회사도 관리자를 동원해 간부와 해고자들을 회유했다. 내부적으로 분열시키고 어려움을 조장했다.

지금도 어려움이 없지는 않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어려움을 줄이고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우리 노조 동지들이 조합원총회를 하고 간담회를 했다. 지난주 350여 명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으로 믿는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다양한 토론을 통해 역동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본다. 저는 나쁘게만 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들이 하나의 안으로 잘 모아질 것이다.

실제 조합원들이 나오지 않는 것이 더 문제다. 8년에 걸친 긴 투쟁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 온 방향이 있는데 모든 동지들이 통일된 내용을 갖는다면 그게 오히려 성숙하지 못한 것이다. 8년의 경험 속에서 성장하면서 표현하기 시작하고 방향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그것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자존심을 지켜온 힘이라고 본다. 노조 입장에서 지도부와 다른 입장이 있음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을 경청하지 않으면 지도부 입장도 관철시킬 수 없다. 그것을 수용하고 의견을 말하고 우리가 이 정도를 해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결정하고 가면 된다. 그게 우리가 투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집들이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으며 분위기가 올라오고 있다. 당장의 조직력으로 나타나기는 힘들 것이다. 어떤 계기를 통해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현장에 가능성이 있고 힘이 있으며, 더 싸워야 할 과제가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우리 농성은 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고 본다. 공장 내 조합원 동지들은 지속적으로 자기 행위를 해야 한다. 현재의 우리 농성은 특별히 생산에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단시간 여론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현대차가 당장은 곤욕스러울 수 있으나 실제 정말로 곤욕스러운 것은 생산에 타격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생산에 타격을 주는 투쟁을 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느냐 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아직은 어려움이 있으나 잘 조직해서 공장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조차 무시하고 있다. 이들은 모든 사내하청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그 날까지, 비정규직이 철폐되는 그 날까지 투쟁하겠다고 한다.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조차 무시하고 있다. 이들은 모든 사내하청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그 날까지, 비정규직이 철폐되는 그 날까지 투쟁하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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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우리 조합원들이 밑에서 정말 잘 챙겨준다. 고마울 뿐이다. 사실 할 짓이 못 되지 않는가? 조합원들이 공장 일을 마치거나 새벽잠을 설치고 나와 매일같이 이 앞으로 모인다. 오늘 아침에는 우리 동지들이 언제까지 저렇게 찬바람을 맞으며 고생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현대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얼마나 더 고통을 받아야 최소한 상식적 수준에서라도 인정을 할까….

우리 노동자들도 정상적 생활을 해야 하지 않는가. 대법판결을 이행하라고 철탑농성을 한 지 오늘 31일째다. 우리가 여기서 안전하게 농성할 수 있도록 동지들이 지켜주니 저는 개인적으로 복 받은 사람인 것 같다.

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 올라와서 우리 노동조합도, 우리 동지들도 정말 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동안 수차례 파업을 하면서 징계도 많이 받았고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쳤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다. 같은 사안을 놓고 10년 가까이 투쟁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자기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저는 우리 동지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고, 그럴 거라고 믿는다.

15일 10차 교섭이 있었다. 회사는 대법판결은 인정해도 불법파견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불법파견은 아니되 불법적 요소는 있으니 그것을 제거하고 합법적 요소로 채워나가자는 것이다. 대법판결문에도 불법파견이라는 것이 명시돼 있는데도 말이다. 회사는 계속 자의적이고 뻔뻔스러운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얼마나 더 죽고 고통을 겪어야 상식적 수준에서라도 사과를 할지 모르겠다.

-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게.
"저는 노동조합이 조직적으로 결정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믿는다. 제가 여기 오르기 직전에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이 단식을 시작했고, 제가 고공농성을 벌이는 과정에서 유성기업지회 홍종인 지회장도 농성에 들어갔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초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정한 것들을 제대로 집행만 했더라면도, 약속을 책임있게 집행했더라면 이 노동자들이 그런 선택을 했을까 생각한다. 금속노조가 오는 19일 대의원대회를 한다. 우리 지회 소속 대의원들이 파업결의를 안건으로 만들어 올린다고 한다.

2010년 CTS 25일 파업 때도 총연맹 결정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투쟁을 책임있게 조직하지 못했다. 파업을 못하는 조건이라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결의하고 지켜야 단위노조가 실망하지 않는다. 그런 책임성 있는 자세로 조직을 운영할 때 조직이 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다. 결정한 것 만큼은 책임 있게 집행해야 한다. 각각의 문제를 지금처럼 접근해서는 안 된다.

- 새로 선출될 민주노총 7기 지도부에게.
누가 당선되던 약속을 지켜야 하고 그것이 우선이다. 선거 때가 되면 각각의 후보들이 거창하게 공약을 낸다. 그 중 정말로 지킬 공약이 무엇인지를 묻고 싶다. 현장 조합원들은 지도부가 지지를 호소하며 말한 공약을 지켜야 민주노총을 자기 조직으로 생각할 것이다.

최병승, 천의봉 두 조합원이 철탑 위에서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벌이며 손인사를 하고 있다.
 최병승, 천의봉 두 조합원이 철탑 위에서 목숨을 건 고공농성을 벌이며 손인사를 하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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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말한 최병승 조합원은 천의봉 비정규직지회 사무국장(31)에게 휴대폰을 넘겼다.

"추워진다고 걱정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겨울은 추워야 하지 않는가. 별다른 불편함은 없다. 2005년 철탑 농성 이후 현대차 자본은 울산공장 내 모든 철탑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철탑에 올라 농성을 벌이고 있다. 우리 조합원들이 꾸준히 문자도 보내주고 전화로 걸어온다. 그것이 이 위에서의 지루한 일상의 활력소가 된다. 공장에서 같이 일하던 일부 조합원들은 미안해서 전화도 못걸겠다고 한다.

현대차는 대법판결을 이행하라는 우리 요구와 투쟁에 대해 아직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최병승 개인에 대한 판결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언론에는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인정했다고 나오지만 사측은 교섭장에 나와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일부 언론의 이야기일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공방전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철탑농성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제 개인적 느낌으로는 현대차가 기존 입장과는 조금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회사는 불법파견을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신규채용 등의 방법을 쓰려는 것도 같다. 정규직화를 최소한만 하고 나머지는 다른 수를 쓰려는 것일 수도 있다. 사측이 말하는 신규채용 인원에 변화가 있는데 거기에 +알파를 할지도 모른다.

저는 민주노조운동을 그리 오래 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현장 조합원이었다가 임원으로 뽑혔다. 저는 이런 상황에서는 임금을 뛰어넘는 파업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는 파업을 말하고 뒤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뒤집는 그런 지도부가 아니고, 말이 아니라 직접 실천하는 지도부가 우리는 필요하다."

점심시간이 되자 철탑농성 중인 최병승, 천의봉 두 조합원을 위해 보자기에 밥과 국, 반찬 등을 담아 밧줄에 묶어 올려주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철탑농성 중인 최병승, 천의봉 두 조합원을 위해 보자기에 밥과 국, 반찬 등을 담아 밧줄에 묶어 올려주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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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노총 신문 온라인 <노동과세계>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현대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최병승천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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