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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5일장에서 만난 할머니, 가슴에는 신토불이 인증 명찰을 걸었다.
 정선 5일장에서 만난 할머니, 가슴에는 신토불이 인증 명찰을 걸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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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것들을 찍어야지 나 같은 쭈그렁탱이를 왜서 찍누?"
"할머니가 이 시장에서 제일 예쁘세요."

지난 17일 강원도 정선5일장을 찾았다. 구름처럼 몰린 관광객을 피해 시장 한가운데 좌판을 차려놓고 말린 산나물과 농산물을 팔고 있는 할머니께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신다.

"사진 찍지 말라"는 상인, 왜인지 궁금했다

정선5일장, 다양하고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원산지 표시가 없는 물건은 중국산인지 베트남산인지 출처가 불분명하다.
 정선5일장, 다양하고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원산지 표시가 없는 물건은 중국산인지 베트남산인지 출처가 불분명하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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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5일장은 2일과 7일장이다. 다시 말해서 매월 2일과 7일, 12일, 17일... 5일 간격으로 장이 선다. 산나물로 유명한 정선, 이른 봄에 뜯어 말린 다래나무순을 비롯해 취나물 등 묵은나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산나물을 파는 곳에 빼놓지 않고 진열해 놓은 것 중 하나는 곤드레나물이다. 왜 곤드레가 정선에서 유명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자연산 곤드레가 많이 나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다 보니 시장인근 식당은 온통 곤드레 비빔밥을 파는 식당뿐이다.

가을철 시골장터. 계절에 어울리게 무, 배추, 대추, 과일, 무말랭이, 산마, 늙은 호박, 서리태 등 다양한 농산물이 눈에 띈다. 그중에는 가까운 강릉 등지의 바닷가에서 가져온 해산물도 보인다. 또 호떡, 핫도그, 튀김, 올챙이국수 등 토속 즉석 음식 코너에는 늘어선 사람들로 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사진 찍지 마세요."
"왜요?"
"찍지 말라면 찍지 말지 웬 말이 많아!"

산마와 생강 등을 늘어놓고 판매하는 한 상인이 신경질적으로 반말하며 촬영을 막는다. 이유가 궁금했다. 다른 몇몇 상인들은 일부러 포즈까지 취해 주던데, 왜 이 분은 사진에 과잉반응을 보일까! 답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명찰을 달고 있는 상인과 그렇지 않은 상인.

"할머니처럼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과 명찰을 달지 않은 상인의 차이는 뭐예요?"
"그건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알면 돼"

할머니 말씀은 명찰을 달고 있는 상인들은 정선군이나 시장조합에서 인증받은 지역 주민으로 순수한 국산이나 토산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이고, 명찰을 달지 않은 사람들은 외지에서 온 상인들이란다. 때문에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은 물건은 중국산인지 베트남산인지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거다.

손님을 끌기 위한 호객행위도 없다

정선의 특산품, 곤드레나물
 정선의 특산품, 곤드레나물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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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장 상인들은 고객을 모으기 위해 물건을 흔들고, 흥정하지 않는다. 무뚝뚝하지만 촌스런 정이 담긴 정선 사람들. 하지만 시끄러운 곳도 있다. 100여 미터 길이인 정선5일장 중간쯤에 설치된 무대에서 들려오는 공연 소리. 입이 커서 눈에 금방 띤 예쁜 아가씨는 투박한 정선사투리를 섞은 유창한 말솜씨로 관객을 불러모은다.

그녀의 매끄러운 진행과 유머는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잡는다. '저러다 끝판에 약 파 거 아냐'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을 참 잘한다. 그런데 약을 파는 것은 아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역할인 듯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신청한 순서를 기다려 자신의 노래를 뽐낸다. 주위를 살펴보니 정선옥수수 막걸리며 전병, 녹두전, 배추전을 늘어놓고 파는 식당들이 보인다. 식당 주인은 내가 가게 안에 들어서도 공연 구경하는 데만 열중한다.

정선시장 성공 이유 있었네

정선5일장, 많은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정선5일장, 많은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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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시장은 100여 미터 직선 길이로 형성된 5일장과 한가운데 80여 미터의 길이로 조성된 재래시장이 T자 형태로 맞물린 구조다. 당연히 5일장은 외지 상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 토속시장은 순수 정선사람만을 위한 장터다. 어디나 그렇듯 정선 전통시장도 캐노피와 점포 리모델링 등 시설 현대화를 한 흔적이 보인다. 특이한 점은 5일장과 전통시장 분위기가 흡사해 그곳이 5일장인지, 전통시장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외지에서 온 상인들이 돈을 많이 벌던지 대박이 나던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저 사람들이 있어 그네들 가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된다'는 것이 그곳 지역 상인의 생각이다. 그런 곳에서 자신만을 위한 호객행위를 한다는 것은 타 상점에 피해를 주는 것일 수 있겠다. 그것이 정선사람들과 외지상인들 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질서라는 생각이 든다.

"그 집? 주인이 밥 먹으로 갔나 보네. 뭘 사려고요?"
"곤드레 한 뭉치만 살까하는데요."

건조한 산나물을 파는 점포에 들렀다. 주인이 없다. 그런데 옆에서 동종의 건조 산나물을 파는 아주머님이 (그 가게엔 지금 주인이 없다며) 자신의 가게로 나를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그 집 물건을 판매해 준다. 시골장터가 아니고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외래상인들을 몰아낸 전통시장은 망했다

5일장이 열린날 화천 전통시장 풍경, 정선과는 달리 지역 특산품이 없다.
 5일장이 열린날 화천 전통시장 풍경, 정선과는 달리 지역 특산품이 없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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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선시장을 찾은 건 화천 전통시장과의 비교 때문이었다. 화천전통시장과 5일장의 구조도 정선시장과 비슷한 T자형 구조였다. 즉 150여 미터 좁은 2차선 골목길에 5일장이 열리고 그 한가운데 100여 미터의 길이로 전통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통시장 상인들은 5일장 상인들에 대해 늘 불만이 많았다. (3일과 8일에 여는) 5일장이 서는 날이면 많은 지역사람들과 관광객들은 장을 찾았다. 그러나 5일장과는 달리 전통시장에는 그다지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았다.

결국 '외지에서 온 상인들이 지역에서 돈을 다 벌어간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급기야 1998년 5일장을 전통시장에서 멀리 떨어진 강변으로 내몰았다. 그렇게 되면 5일장을 찾았던 고객들이 전통시장으로 몰릴 줄 알았다. 결과는 5일장이 열리는 날, 강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지만 재래시장은 더 한산해졌다. 그렇게 12년이 지난 2009년, 전통시장 인근에 부지를 확보해 5일장을 다시 전통시장 부근으로 불러들였다.

그런데도 전통시장은 큰 변함이 없다. 원인이 뭘까. 정선시장에서 그 답을 찾았다. 지역 특산품과 토산품으로 진열된 정선전통시장과는 달리 화천시장은 공산품 일색이다. 전국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공산품이 진열된 시골 장터에 고객들이 찾을 리 없다. 또 진열된 상품을 매일 교체해야 신선함이 유지될 텐데, 안 팔린 물건을 다음날 그대로 매장에 내놓는다.

당연히 지역 주민들은 닷새를 기다려 5일장을 찾는다. 2000년대 대형마트와 경쟁을 위해 화천전통시장도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그러나 산골마을의 전통시장 현대화는 시골풍경도 없고, 도시적인 세련미도 없는 형태로 만들어 버렸다. 분명 시설은 현대적인데 상인의 마인드는 전통에 머물러 있다. 양복에 고무신을 신은 격이다.

전통시장 성공 여부 상인의 의지에 달렸다

화천 전통시장 앞, 이곳은 과거 5일장이 열리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해있다.
 화천 전통시장 앞, 이곳은 과거 5일장이 열리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주차장으로 변해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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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은 말 그대로 토속적이며 지역적인 산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화천 전통시장에는 지역 특산품이나 농산물이 거의 없다. 시장 주변의 식당도 특색이 있는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 한 곳도 없다. 닭도리탕이나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어디에 가도 가도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들뿐이다.

정선 전통시장의 경우 시골다운 특색있는 전통시장을 완성했다. 참여 대상들 또한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로 그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가져 나온다.

지난 가을, 화천은 토요시장을 열었다. 주말 도시민을 겨냥한 지역 농·특산물 시장이다. 처음 대여섯 명의 농촌사람들이 농산물을 내놓기 시작하더니 이젠 매주 토요일이면 3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양한 농·특산물을 가지고 나온다. "순수하고 따뜻한 시골의 인정을 덤으로 주자"는 것이 화천 토요시장 사람들의 소박한 각오다.  

"시골시장의 성패여부는 도시 시장이나 대형마트와는 달리 지역적 특색을 띠어야 한다. 또 상인들의 지나친 경쟁과 불친절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시골만의 고유한 인심 또한  상품이라는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정선태 화천군 토요장터 추진위원회 사무국장 말이다. 


태그:#정선군, #정선5일장, #화천군, #화천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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