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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군 승전비' 뒤로 진흥왕 척경비가 보이는 풍경
 'UN군 승전비' 뒤로 진흥왕 척경비가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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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박물관 앞에서 바라본 고분군의 일부
 창녕박물관 앞에서 바라본 고분군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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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녕에는 '제2의 경주'라는 멋진 별칭이 따라다닌다. 그만큼 역사유적과 문화재가 많기 때문이다. 대표는 국보 33호인 진흥왕 척경비. 561년(진흥왕 22)에 건립되었다.

국가사적 80호, 81호로 지정되어 있는 교동 고분군과 송현동 고분군도 창녕에 유명세를 안겨준 역사유적지다. 1900년대 초기까지만 해도 150기 이상의 고분이 줄지어 분포되어 있어 장관을 이루었다는데, 무덤을 밀어 농지로 바꾸고 도굴을 하는 등 반문화적 인간행위 때문에 지금은 많이 작아지고 말았다. 그래도 창녕박물관을 거느리고 있는 이곳 고분군은 무덤 사이사이로 걷는 재미가 남다른 답사지로 각광받고 있다.

그 외에도 창녕에는 볼 만한 것들이 많다. 문화재자료와 유형문화재 등급은 제외하고 보물급 이상만 살펴보아도 술정리동삼층석탑(국보 34호), 술정리서삼층석탑(보물 520호), 탑금당치성문기비(보물 227호), 하병수 가옥(중요민속자료 10호), 관룡사의 대웅전(보물 212호), 약사전 석조여래좌상(보물 519호),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 그리고 화왕산성(사적 64호), 영산 만년교(보물 564호) 등이 있다.

수준급 문화재들이 읍내에 모여있는 창녕

우포늪의 '극히 일부'
 우포늪의 '극히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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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국보급과 보물급 문화재들이 거의 대부분 창녕'읍'에 몰려 있다. 창녕은 수준급 문화재들이 많기도 하려니와 읍내 한 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주차를 해둔 채 걸어다니면서 답사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래저래 창녕은 '제2의 경주'라 부를 만하다!

창녕읍 바로 옆에는 1억4000만년 전에 형성된 국내 최대의 내륙 습지도 있다. 그 유명한 '우포늪'이다. 우포늪은 1998년 3월 2일 국제습지보전협약인 람사르협약에도 등록되어 세계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 탓에 요즘은 창녕읍에 가서 우포늪도 갈 것인지, 우포늪에 가서 창녕읍까지 들를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 되었다.

전국의 무수한 탑들 중에서 국보로 지정된 것은 20여 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보탑, 석가탑, 감은사 탑, 분황사 탑, 미륵사지 탑, 정림사지 탑, 원각사 탑, 실상사 탑, 월정사 탑, 화엄사 탑, 고선사터 탑 등이 그들이다. 수몰된 탓에 경주박물관 뜰로 옮겨진 고선사터 탑을 제외하면 이름만으로도 어디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단한 국보들이다.

국보 34호. 석가탑에 견줘도 모자람이 없다는 평을 듣는 걸작이다. 그런데 이름이 좀 이상하다. '술정리동삼층석탑'이다. 그에 견주면 '석가탑', 얼마나 간명한가!
 국보 34호. 석가탑에 견줘도 모자람이 없다는 평을 듣는 걸작이다. 그런데 이름이 좀 이상하다. '술정리동삼층석탑'이다. 그에 견주면 '석가탑', 얼마나 간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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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경상남도 창녕군에 있는 '국보'탑은 이름이 '술정리동삼층석탑'이기 때문에 창녕 '읍내' 거주민이 아니면 결코 그것이 있는 위치를 가늠할 수가 없다. 타지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창녕군민이라 하더라도 읍내 아닌 다른 면에 사는 사람들은 술정리가 어디인지 알고 있을 개연성이 낮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다. '술정리동삼층석탑'이라는 이름은 이 국보탑 옆에 '술정리서삼층석탑'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작명이다. 하지만 아무리 국보탑 둘레를 살펴보아도 '서'탑은 없다. 탑은 혼자 서 있을 뿐이다. 둘이 있어야 하나는 '동'탑이 되고 다른 하나는 '서'탑이 되는데, 탑이 하나밖에 없으니 심지어 답사자 중에는 잘못 찾아왔나 싶어 스스로를 의심하는 지경에 빠지는 이도 있다.

안내판은 술정리동삼층석탑을 '크기와 조각 수법으로 보아 불국사 석가탑과 비교될 만한 통일신라 초기 석탑의 위풍이 있는 아름다운' 탑이라고 소개한다. 술정리동삼층석탑이 전국 20여 기 '국보'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등극한 근거를 해설해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뿐인 탑을 '동탑'이라 부르다니

안내판 전문을 새로 읽으면서 탑 이름에 문제가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이 탑은 이중기단 위에 삼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크기와 조각 수법으로 보아 불국사 석가탑과 비교될 만한 통일신라 초기 석탑의 위풍이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1965년에 해체 수리 과정 중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용기가 발견되었다. 현재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으나 탑이 크고 짜임새가 장중하며 훤칠해 기품 있게 보인다. 이 탑의 명칭에 동(東)자를 붙인 것은 한 절터 안에 두 개의 탑이 세워져 있어서가 아니고, 술정리에 두 개의 탑이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현재 탑의 높이는 5.75m이다. 

안내판의 해설도 이 탑의 이름이 잘못 붙여졌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한 절터 안에 두 개의 탑이 있어'야 동탑과 서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술정리에 두 개의 탑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술정리'서'삼층석탑은 500미터 이상 떨어져 있다. 만약 두 탑이 동일한 절 소속이었다면 누가 감히 황룡사를 동양 최대 사찰이었다고 말할 것인가. 거의 붙어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도 서로 다른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까지는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창녕의 두 탑을 동탑, 서탑이라 부르는 것은 명맥한 오류다.

국보 34호 경남 창녕읍의 '술정리동삼층석탑'
 국보 34호 경남 창녕읍의 '술정리동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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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은 진흥왕이 척경비를 세울 만큼 중요한 땅이었다. 그래서 신라인들은 석가탑에 버금가는 이 국보탑을 창녕에 세웠을 것이다. 결코 신라인들은 '술정리'에 국보탑을 세우지 않았고, '교상리'에 진흥왕 척경비를 건립하지 않았다.

이 탑은 술정리를 대표하는 탑이 아니다. 술정리동삼층석탑을 '창녕탑' 정도로 간략하게 바꿔불러야 한다. '국보'에 어찌 마을이름을 붙이며, 그것도 500미터 이상 떨어진 다른 탑과 묶어서 '동'탑이라는 꼬리표까지 덧붙인단 말인가.

술정리서삼층석탑
술정리서삼층석탑
 술정리서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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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탑에서 대도로를 건너 다시 한참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보물' 탑이 한 기 서 있다. 술정리서삼층석탑이다. 안내판의 해설을 읽어본다.

현재 높이 5.1m의 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삼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이다. 기단부의 제작과 전체적인 조각 수법은 국보 34호인 술정리동석탑에 비해 다소 떨어지며, 제작 연대도 다소 늦은 것으로 보인다. 술정리동삼층석탑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어 같은 절의 탑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탑에 서(西)자를 붙인 것은 술정리동삼층석탑과 같은 행정구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서탑의 해설에도 역시 두 탑의 이름이 잘못 붙여졌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같은 행정구역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동탑, 서탑이라고 명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행정구역'이 아니라 '같은 절'일 때라야 동탑, 서탑으로 부를 수 있다는 원칙을 무시한 잘못된 작명의 결과이므로 술정리동삼층석탑과 술정리서삼층석탑에 들어 있는 '동'과 '서'는 삭제해야 마땅하다.

대안을 제시한다면, 술정리동삼층석탑은 '창녕탑'으로, 술정리서삼층석탑은 '창녕 제2탑'으로 부르는 것이 어떨까.



태그:#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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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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