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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 총회 자료집 겉 표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조합원 총회 자료집 겉 표지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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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탑농성장에서 전 조합원 총회가 11월 10일 오후 5시부터 있으니 참석하여 주십시오.'

지난 10일 오후 11시. 저는 버스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한 24시간 편의점에서 알바를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원인 저는 조합원 총회에 가볼 수 없었지요. 저는 현대자동차라는 대기업이 이미 12년 전부터 불법파견으로 노동착취를 일삼아왔다고 여깁니다. 제가 현대차 사내 하청에 들어가 일하기 시작한 때가 2000년 7월 3일이었거든요.

지난 1998년 IMF를 이유로 현대차 노사는 16.9%선에서 사내하청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합의한 바 있습니다. 합의 후 현대자동차는 1만여 명의 정규직 노동자에게 노란봉투를 돌립니다. 그 노란봉투를 받은 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정리해고 됩니다. 현대차는 그렇게 2년 만에 정규직 1만여 명을 정리한 후 2000년 초부터 희망 퇴직 받은 관리자에게 하청업체 자리를 내줍니다. 그렇게 100여 개가 갑자기 생기면서 업체마다 하청노동자를 모집합니다. 그렇게 현대차 사내업체가 형성되었고, 100여 개 업체에 1만여 명의 하청노동자가 정규직과 섞여서 일하게 됩니다.

4년 후 노동부는 그렇게 형성된 사내업체를 두고 모두 불법파견업체라고 규정짓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현대차는 불법파견 문제로 오늘날까지 시끄럽습니다. 6년 논쟁 끝에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에서 '현대차는 불법파견 대기업'이라고 판결내렸고, 2012년 2월 23일 같은 취지로 최종판결이 났습니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대국민 사과는커녕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무차별 탄압으로 일관합니다. 수백 명 징계해고, 수백억 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 임시고용한 외부 경비병으로부터 집단 폭력도 당해야 했습니다. 하다 못해 현대차는 노조간부를 사내에서 납치하여 방어진 꽃바위 근처에 버리고 달아 나기도 했으며 "현장범을 잡았다"고 경찰서에 가 넘겨 주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사내에서 조합원을 만나고 노조사무실로 가던 비정규직노조 대표를 경찰이 현대차 경내에 들어가 강제 연행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법원은 검찰이 낸 구속영장 신청을 받아 들이지 않아 풀려나는 헤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쓴 웃음밖에 나지 않는 상황을 직접 목격하면서 '이런 나라가 다 있나'라는 회의마저 생겼습니다.

철탑농성 26일차를 알리고 있다.
 철탑농성 26일차를 알리고 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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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8시. 편의점 근무를 마치고 바로 조합원 총회를 한다는 철탑 농성장으로 가보려 했지만 금요일 밤, 토요일 밤 알바를 하다보니 몸이 피곤해서 거기까지 갈 여력이 못되었습니다. 집으로 가서 쉬고 싶었습니다. 잠을 좀 자고 나서 오후 2시께 일어나 가보자 하며 누웠습니다. 알람 소리에 깼지만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앉아 졸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후 2시 30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는 철탑으로 향했습니다.

철탑으로 가기 위해 현대차를 지나는데 지난 밤에 내린 비와 강한 바람으로 며칠 전만 해도 무성했던 가로수 은행잎은 모두 떨어져 있고 앙상한 가지만 즐비했습니다. 담벼락 높이는 공사를 하더니 두 배는 더 높아 보였습니다. 큰 길로 5개의 큰 문이 있는데 튼튼한 이중 자바라 문으로 무장한 채 닫혀 있었습니다.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불법파견 투쟁을 하면서 만들어진 풍경들입니다.

버스에서 내린 저는 철탑까지 걸어갔습니다. 높은 철교 옆에는 다른 철길을 만들려는지 공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철길 공사장과 현대차 주차장을 분리해 놓은 분리대를 지나면 큰 현대차 주차장이 있습니다. 서너 개의 대형 철탑 중간에 있는 철탑, 그 철탑에 상공에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올라가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200미터는 넘어 보이는 철탑의 25미터 정도 되는 지점에 철 구조물로 만든 발판을 엮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입구 50여 미터서부터 여러가지 현수막이 물결치고 있습니다.

최병승,천의봉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철탑농성중 땅에서 하는 총회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최병승,천의봉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철탑농성중 땅에서 하는 총회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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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강하다. 반드시 승리한다'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25미터 높이에서 먼저 보였습니다. 오후 3시 넘어 가보니 밤을 새우고 남아있는 조합원과 연대하러 온 분들이 재밌는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오전까지 내리던 비가 멈추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쳤습니다. 잠시 후 모든 일정이 끝나고 뒷풀이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밤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인터뷰가 가능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2003년에 입사하여 2005년부터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이었다는 박아무개씨를 만났습니다. 그는 40살이고 6살된 자녀가 있는 가장이었습니다. 먼저 조합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정불화는 없었는지, 업체의 회유 같은 것은 없었는지 알아봤습니다.

"아내는 걱정이 많죠. 제가 가장이니까 혹시나 잘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제일 크죠. 아내에겐 걱정말라고 늘 말합니다. 이미 대법원에서 최종판결 났으니 우리의 불법파견 투쟁은 정당성이 있다고요. 지금은 많이 이해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에서 판결난후 아내도 상당히 희망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업체 사장은 이대로 가면 해고된다, 최병승과 조건이 다르다, 법정 소송 걸었어도 너희들은 안 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를 앞세워 노조 탈퇴하라하고 집단소송 철회하라 합니다."

그는 처음 노조가입 때는 멋도 모르고 활동에 나섰다고 합니다. 대법원 판결후 불법파견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되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어떤 이유로 노조활동에 가담했는지 궁금했습니다.

"4~5년에 한번씩 신차가 나오는데요. 정규직과는 달리 비정규직인 우리에게는 일 배분에 대한 아무런 결정권이 없었습니다. 그게 화가 났습니다. 노동 강도도 차이가 많이 났고요. 하청업체라 아래로 보는 느낌, 분위기를 수도 없이 겪었거든요. 차이도 심하고 차별도 심해서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을 하게 된 거지요. 현대차에서 비정규직으로 10여 년 다니다 보니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절로 생각났습니다. 작은 못된 짓은 강력하게 처벌하면서도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기업 총수에 대해서는 10여 년 넘게 불법파견으로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를 차별해온 죄가 큰데도 죄를 묻지 않는 현실에 화가 납니다."

그는 "개별 노동자는 힘이 약하지만 뭉치면 힘이 생기지 않느냐"면서 자신도 그런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또 "현대차의 치사함을 많이 목격했다"면서 "정몽구 회장이 결단하면 간단히 해결 될 문제"임을 강조했습니다. 이어 "모든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서 나온 성과인데 혼자 독식하면 되겠느냐"며 "존경받는 기업주가 되기를 바란다"고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밤에는 현대차 재벌 화형식을 했어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박현제 지회장이 불법파견 철폐 모형에 불을 지르고 있다.
▲ 불법파견 철폐 화형식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박현제 지회장이 불법파견 철폐 모형에 불을 지르고 있다.
ⓒ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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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에는 어떤 행사가 진행됐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한 열성 조합원이 말했습니다.

"어제 저녁엔 분임 토의를 했어요. 지회 방침에 대한 조합원 의견을 물었어요. '현장파업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첫 질문이었어요. 철탑에 있는 두 동지가 말했대요. '대법판결 상회하는 협상결과 나오지 않으면 철탑 안내려간다'고. 두 번째 주제가 신규채용 반대 정규직 전환에 대해 이야기해보라는 것이었고요. 세 번째가 불참조합원 징계에 대한 의견 접수 등이었어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현장파업으로 가자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러자면 지금 조합원만 가지고는 어려움이 있으니 비조합원을 조직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라고 의견이 모아졌어요."

그렇게 모인 조합원은 공장별, 조별로 나누어 토론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토론 발표후엔 플랜트 노조의 투쟁 영상을 보여주었고 그 후 불법파견 철폐 화형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새벽 2시쯤 화형식이 있었어요. 현대차에서 비상이 걸렸다고 해요."

옆에 있던 정규직 조합원이 말했습니다. 불법파견 철폐 화형식 하는데 현대차에서 왜 예민하게 반응하나 하고 의아했습니다. 이후 보내온 사진을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로봇 모형으로 만들어진 종이위에 현대차 대표 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분노의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해가 갔습니다.

비정규직 노조는 천막을 수십동 임시로 빌려 설치했다.
 비정규직 노조는 천막을 수십동 임시로 빌려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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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풀이를 끝으로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총회 일정은 모두 끝났습니다. 뒷풀이를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철탑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최병승씨의 목소리였습니다. 알아보니 그시각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영상통화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그 영상통화에 연사로 나서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는 마치 우리에게 소리치는 것처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해, 부당함에 대해 열변을 토해내는 듯했습니다. 잠시 후 철탑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어두워지니 다시 냉기가 가득한 바람이 몰아칩니다. 바람이 강하게 부니 모두들 철탑 위는 얼마나 추울까하고 걱정합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어떻게 해결되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모여서 하룻밤 지내니 참 좋았습니다. 난로도, 전기도 없는 저 철탑 위는 밤만 되면 얼마나 추워질까요. 두 사람이 자기만을 위해 저렇게 철탑 위에 올라가 고생하는 거 아니잖아요. 비정규직 모두를 위한 일이잖아요. 다른 비조합원들도 그런면을 좀 알아주셨으면 해요. 모두 나서서 공장을 세워 생산 타격 투쟁을 감행해야 해요. 그래서 하루빨리 웃으며 내려올 수 있게 해야 해요. 그게 우리 몫 아닐까요? 하루 전에 우리 노조 대표를 구속시키려 음모 꾸미는 짓봐요. 언론에는 불법파견문제 해결하겠다면서도 뒤로는 여러가지 꼼수를 부리고 있잖아요."

1박 총회를 하는 한 비정규직 노조원이 철탑을 응시하고 있다.
 1박 총회를 하는 한 비정규직 노조원이 철탑을 응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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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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