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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생각의 선(Lines of thoughts)'이었다. 7일 서울 인사동 공예디자인진흥원 KCDF 갤러리에서 열린 박지숙 서울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의 작품 전시회, 연필·색연필·파스텔 등을 이용한 드로잉 20여 점은 수많은 '선'으로 다양한 형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박 교수는 "시작도 끝도 없는 연결, 그로 인한 변화와 역동성을 표현한 것"이라면서 "서로 연결 안 된 것이 없지 않나. 그 모습은 신경망 또는 우리가 사는 도시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점이 연결돼 선을 만든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이 함께 떠올랐다.

그 '선'을 따라다니며 작품 하나 하나를 카메라에 담는 외국인이 있었다. 울릭 홀스만(Ulrich Horstmann) 파버-카스텔 아시아태평양 담당 매니저, 이날 이 전시회는 독일의 세계적인 필기구 회사, 파버-카스텔이 주관한 것이었다.

1844년에 직원 보육 지원한 회사

7일 서울 인사동 공예디자인진흥원 KCDF 갤러리에서 파버-카스텔 주관으로 열린 박지숙 서울교대 교수의 작품전시회 '생각의 선'. 박지숙 교수가 울릭 홀스만(Ulrich Horstmann) 파버-카스텔 아시아태평양 담당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7일 서울 인사동 공예디자인진흥원 KCDF 갤러리에서 파버-카스텔 주관으로 열린 박지숙 서울교대 교수의 작품전시회 '생각의 선'. 박지숙 교수가 울릭 홀스만(Ulrich Horstmann) 파버-카스텔 아시아태평양 담당에게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 아프리카 미술 아트디렉터·사진작가 고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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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버-카스텔의 '시작점'은 까마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만날 수 있다. 1761년이니 지금으로부터 251년 전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영조 38년, 세손 정조가 혼례를 올렸던 그 해 탄생한 회사다. 장식장을 만들다 연필 생산으로 업종을 바꾼 장인 카스파르 파버부터 현재 안톤 볼프강 그라폰 파버-카스텔 백작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초로 육각 연필을 개발한 그들의 가업은 8대째 이어지고 있다.

그 많은 세월 동안 그들이 만든 연필로 또 수많은 이들이 세상에 수많은 '선'을 그려냈다. 그들 중에는 빈센트 반 고흐, 도널드 덕을 스타로 만든 만화작가 칼 바크스, 세계적인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등이 있다. 덕분에 파버-카스텔은 '명품'으로 통한다. 하나에 30만 원을 호가하는 연필도 있다.

하지만 파버-카스텔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가 '가격'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안톤 볼프강 백작의 표현을 빌리면 "과도함과 과시를 부추기는 말, 조금은 미심쩍은 개념의 '럭셔리'란 단어"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힘은 자신들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선'에 있다.

그 '선'의 일단은 1844년에도 마주할 수 있다. 파버-카스텔이 연금제를 도입하고 사내 건강보험을 시작한 해이자, 직원 사택과 직원 자녀를 위한 보육과 재정 지원 제도를 마련한 것이 그 때였다고 한다. 지금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그들이 얼마나 진보적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고 명품 생산 위해 브라질에 소나무 숲

화장용 연필을 비롯 고품질 연필과 드로잉 용품을 생산하는 바이에른 북부 게롤즈그룬 공장. 1861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노란색은 행정부서, 빨간색은 연료시설, 파란색은 생산공장이다.
 화장용 연필을 비롯 고품질 연필과 드로잉 용품을 생산하는 바이에른 북부 게롤즈그룬 공장. 1861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노란색은 행정부서, 빨간색은 연료시설, 파란색은 생산공장이다.
ⓒ 파버-카스텔 250주년 기념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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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파버-카스텔은 최근 국내에서도 주목받은 바 있다. 지난 6월 열린 제3회 명품창출포럼에서 좋은 연필을 만들기 위해 1980년대 중반 브라질에 대단위 소나무 숲을 조성한 사실이 소개된 것. "단기적인 수익 창출보다는 최고의 명품 연필을 만들기 위한 장기투자"란 평가가 뒤따랐다.

처음 심은 소나무를 목재로 쓰려면 15∼20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눈앞의 이익만을 생각해서는 어려운 선택이다. 파버-카스텔에 따르면 "매년 수 백만 그루의 리기다 소나무 묘를 심고 있으며, 이들 숲은 국제산림인증(FSC)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조성 숲의 30%에 달하는 산림은 자연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잘 조화시킨 '명품 사례'인 셈이다.

2000년 3월 독일금속노조와 비준한 파버-카스텔 사회 협약 또한 기업으로서 사회 안에서 '연결 고리' 역할을 어떻게 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국제노동기구(ILO)가 권고하는 고용과 노동조건을 자발적으로 서약한 것으로, 이 협약에는 아동 노동 금지, 위생적이고 안전한 노동환경 보장, 국적·성별·종교·인종을 불문하는 평등한 기회와 대우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현재 파버-카스텔은 독일, 오스트리아, 브라질,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페루,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10개국에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브라질 공장의 직원 숫자는 2,8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기업으로서는 부담스러운 협약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라마다 다른 노동 조건을 당연히 여기는 일부 기업들의 행태와 비교한다면, '글로벌'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 "건강한 돈을 원한다"

파버-카스텔 대표 안톤 볼프강 그라폰 파버-카스텔 백작
 파버-카스텔 대표 안톤 볼프강 그라폰 파버-카스텔 백작
ⓒ 파버-카스텔 250주년 기념 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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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희가 성공 신화를 이어올 수 있었을까요? 그저 열정적으로 일했을 뿐입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고객의 바람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동시에 우리의 모토에 충실해 왔을 뿐인데, 이 모토는 앞으로도 늘 저희 회사를 이끌 것입니다.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 하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안톤 볼프강 백작, 250주년 기념 책자에서)

파버-카스텔의 기업 철학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 하자'가 성공비결이라면, 둘째, '건강한 돈을 원한다'란 말에는 성공의 원칙이 담겨 있다. 대규모 숲 조성이나 자발적인 노동 조건 개선 등이 어느 날 갑자기 결정된 것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하는 철학이다.

전시회에서 만난 울릭 홀스만 아시아태평양 담당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결국 창의성을 높이고 이는 이노베이션(혁신)으로 이어지게 된다"며 "파버-카스텔의 기업 철학과 이념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가 파트너쉽의 첫 번째 조건으로 우리는 길게 본다. 2대나 3대가 지나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파트너쉽 사례가 실재한다"고 말했다.

파버-카스텔 한국지사, 코모스유통도 그런 관계에 속한다. 1987년에 '인연'을 맺었다고 하니, 올해로 25년째다. 코모스유통은 다양한 문화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올해 3월에는 보타니컬 아트(식물 세밀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독일 현지에서 전시회를 통해 소개했으며, 7월에는 아시아에서 개최되는 가장 큰 애니메이션 축제 SICAF에도 참가했다. 그 외 어린 왕자 한국 특별전, 국제여성영화제 등에 협찬이나 후원 형태로 참가했다. 해마다 매출의 10% 가까이를 꾸준히 '지출'하고 있다고 한다.

연결의 진실..."돈은 내 것이 아니다"

파버-카스텔 제품은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박해일 분)가 사용하던 필기구로 '출연'했다. 사진은 이적요의 작업 공간
 파버-카스텔 제품은 영화 <은교>에서 이적요(박해일 분)가 사용하던 필기구로 '출연'했다. 사진은 이적요의 작업 공간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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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지출'은 당연한 것이다. 이날 박지숙 교수 전시회와 관련해서도 울릭 홀스만 아시아태평양 담당은 "단순히 소비자만을 위한 행사는 아니"라며 "(회사 입장에서도) 학생이나 작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시장의 이해도를 높이거나 미술계 흐름을 파악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행사다. 상품 개발 이념이나 철학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봉기 코모스유통 대표는 "보약 같은 행사"라고 표현했다. 이 대표는 "이런 전시회를 연다고 매출이 확 늘어날 수는 없다. 당장 이익을 생각해서는 하기 어려운 호흡이 긴 행사"라며 "금방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명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파버-카스텔의 철학이자 우리 회사의 방침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대표는 "사업하는데 가장 기쁜 순간이 오늘 같은 날이다. 어쩌면 이것이 사업하는 목적인지도 모르겠다"며 "돈은 내 것이 아니다. 버는 만큼 돌려줘야 순환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는 아까 박 교수의 말로, 다시 "전통이란 재가 아닌 빛을 살리고 지켜나가는 일"이란 파버-카스텔의 세 번째 기업 철학으로도 '연결'됐다.

"잘 경영되어온 가족 기업에는 지속 가능성, 사회적 책임, 근면이나 겸손, 진심과 같은 인간의 미덕을 포함한 좋은 가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 내려오는 태도에 있습니다. 스스로를 연결 고리로 보고, 성장을 생각하기 이전에 회사가 장기간 존속하는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안톤 볼프강 백작, 250주년 기념 책자에서)

스스로를 연결 고리로 여기는 대기업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기업의 자유라는 미명으로 '연결의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기업들이 여전히 많은 현실에서, 파버-카스텔이 보여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말 그대로 생각해 볼 만한 '생각의 선'임이 분명하다.

박지숙 교수와 작품전을 함께 관람하고 있는 이봉기 코모스유통 대표(왼쪽, 뿔테 안경 쓴 이)
 박지숙 교수와 작품전을 함께 관람하고 있는 이봉기 코모스유통 대표(왼쪽, 뿔테 안경 쓴 이)
ⓒ 아프리카 미술 아트디렉터·사진작가 고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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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파버카스텔, #안톤 볼프강, #박지숙, #이봉기,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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