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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캠퍼스 벤치에 앉아서 사진 한 장을 찰칵
 학교 캠퍼스 벤치에 앉아서 사진 한 장을 찰칵
ⓒ 황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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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길거리를 지나다보면 외국인들과 흔히 마주칠 수 있다. 세계의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이 나라로 다가온 것이다. 이처럼 한국도 이제 다문화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여기, 인천의 한 대학교에는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으로 항상 씩씩하게 살아가는 잇쟈 나 마헬리 아순시온(Itza Nah Margelly Asuncion)이 공부하고 있다. 한국에 온 지 이제 4년이 다 되어가는 그녀. 그녀에게선 남미의 열정적인 모습도 느껴지지만, 한국인 특유의 정 많은 모습과도 퍽이나 잘 어울린다.

멕시코 한인 이민자 4세대 마헬리와 증조할머니

멕시코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한국. 마헬리는 왜 하필 멕시코에서 머나먼 한국으로 오게 되었을까?

사실 마헬리는 한국이란 나라와 인연이 깊다. 2008년, 마헬리가 한국의 땅을 처음 밟았던 날로부터 100여 년 전, 그녀의 증조할머니는 한국을 떠나 멕시코의 땅을 처음 밟았었다. 1905년 4월 4일, 한인 1033명은 영국 상선 일포드 호에 몸을 싣고 제물포항을 출발했다. "당시 할머니는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되었다고 하셨어요, 때마침 남미 어딘가로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대요, 할머니께서는 배가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단지 돈을 벌고 살기 위해서 무작정 제물포의 한 배에 몸을 실었다고 말했어요"라며 마헬리는 그녀의 할머니가 멕시코로 오게 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 놓았다.

그렇게 한 달여 뒤, 마헬리의 할머니와 한인들은 멕시코에 도착했다. 그들은 곧바로 메리다 일대 에네켄 농장 20여 개로 흩어졌다. 에네켄은 선인장의 한 종류로 알로에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데 섬유와 술의 원료로 쓰인다고 한다. 그렇게 에네켄 농장에서 4년간의 살인적인 계약노동이 시작된 것이다. 섭씨 40도를 웃도는 뙤약볕 아래서 견뎌야 했다. 살인적인 노동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도 많았다고 한다. 1909년 4년 동안의 계약노동이 끝을 맺었지만, 한인들은 돌아갈 나라가 없었다. 그들의 새로운 유랑생활이 시작된 것이었다. 당시 멕시코의 할머니는 멕시코의 작은 마을인 '렙반'이라는 곳에서 다른 한인들과 새로운 터전을 닦게 된다.

할머니의 땅, 한국행을 택한 이유

2008년도 한국에 막 왔을 무렵, 아직은 앳되어 보이는 마헬리
 2008년도 한국에 막 왔을 무렵, 아직은 앳되어 보이는 마헬리
ⓒ 마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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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헬리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할머니가 이룩한 '렙반'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쭉 살았다. 마헬리는 "렙반에서 쭉 자라면서 한국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어요, 그곳에는 저와 같이 한국인의 피를 가진 멕시코인들이 많았어요, 그들과 지낼수록 저는 더 많은 한국 사람들과 이야기 해보고 싶었어요"라며 "그래서 한국에 와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라고 한국의 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가 한국행을 택한 것에는 2002년 100살이 넘으신 나이로 돌아가신 증조할머니의 역할도 크다.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 한국에 대해서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기억은 온통 슬픈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할머니는 저에게 말하셨어요, 당신은 한국을 떠나 멕시코로 왔지만, 언젠가는 제가 멕시코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셨어요, 할머니는 제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아주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마헬리는 한국으로의 유학이, 단순한 언어와 문화공부가 아닌,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할머니를 대신해 한국이라는 나라와 화해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마헬리는 한국으로의 유학을 결정했다.

"부모님께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처음에는 부모님 두 분 다 반대를 하셨어요, 저는 태어나서 멕시코에서 쭉 살았었고, 한 번도 다른 나라도 나가본 적이 없었어요, 멕시코 내의 다른 도시로 외출을 할 때도, 절대 혼자인 적은 없었어요."

그녀는 부모님의 반대가 당연하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한국으로 떠나고 싶었던 제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어요, 이런 마음이 부모님께도 전달되었는지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한국으로 떠나도 좋다고 저의 한국행을 허락해주셨어요."

그렇게 마헬리의 부모님은 어린 딸을 홀로 한국으로 보내야 하는 근심과 걱정을 어느새 응원으로 바꾸었다.

이상한 한국 사람들, 정 많은 한국 사람들

한국 땅을 밟은 마헬리는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녀는 때론 문화적 차이를 느끼며 한국을 배워가고 있다.

"한국 사람들과 멕시코 사람들은 너무 달라요. 특히 성격 같은 것들이요.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조금 이상해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가, 또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요. 하지만 그들은 정이 많고 참 재미있어요."

마헬리는 한국의 음식 또한 사랑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음식은 정말 맛있어요. 특히 삼겹살, 막걸리, 김치, 불고기, 그리고 야식으로 친구들이랑 치킨에 맥주를 자주 먹는데 최고예요."

한국 사람들과 한국 음식들을 사랑하는 그녀를 보며, 그녀에게 한국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당시, 마헬리가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증조할머니의 나라라는 것뿐이었다.

"한국어를 하나도 몰랐어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학교를 다니고, 주변의 도움을 받고, 또 열심히 공부하면서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차근차근 배울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역시 공부는 어려웠다. 친구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여행을 다니며 즐기는 시간은 좋지만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고 마헬리는 털어 놓았다.

"교수님 말씀을 다 알아 듣기는 해요. 근데 두꺼운 전공 서적은 너무 어려워요. 온톤 모르는 단어 투성이에요. 리포트를 쓸 때에도 원하는 대로 글을 잘 쓰지 못하고 시간도 많이 걸려요."

한국어로 일상대화를 하고 티비나 영화 등을 보는 것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전문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대학교의 공부를 할 때마다 마헬리는 언어의 장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힘들어도 한국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는 마헬리의 책상 한 쪽에는 항상 한국어, 스페인어 사전이 놓여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그녀의 꿈

학교 캠퍼스를 거닐던 중 사진을 찰칵
 학교 캠퍼스를 거닐던 중 사진을 찰칵
ⓒ 황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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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유학 온 지 어언 4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 마헬리는 멕시코로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그런 그녀는 한국에서의 생활은 즐겁지만 때때로 외로움이 느껴질 때 가족들이 너무도 그립다고 말한다.

"가족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전화를 해요.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항상 궁금해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그녀는 이어 "저는 항상 가족들에게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요, 제가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절대로 내색하지 못해요, 괜히 부모님 마음만 더 신경 쓰이게 할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꿋꿋하게 서 있기 위해 혼자서 버티는 그녀의 속 깊은 모습에서, 그녀가 가족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또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꿈이 궁금했다.

"멕시코에서 제가 살았던 '렙반'이라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한국과 멕시코 혼혈아들이에요. 저와 같이 한국의 피를 가지고 있죠. 저는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일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 후 멕시코로 돌아가 회사를 차리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회사를 만들지, 어떠한 방법으로 그들을 도울 수 있을지는 마헬리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는 그 미래를 위해 지금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마헬리의 마음속에는 항상 한국과 멕시코라는 두 나라가 자리 잡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천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멕시코, #에네켄, #멕시코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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