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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를 위한 집이 생기고 서울 떠날 날이 가까우면서 지난 2주 마음앓이를 했다. 무려 16년이다. 십대와 이십대, 삼십대의 내가 뜨겁게 살아낸 시간. 원하던 삶에의 기쁨과 설레임 앞에 딱 그만큼 서운하고 안타깝고 시린 내 맘을 나조차 뒤늦게 감지했다. 

북촌을 거닐며 '채움'을 공부하다 

북촌 한옥마을을 거닐다
 북촌 한옥마을을 거닐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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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간 주말을 이용해 북촌 한옥마을을 찾았다. 본래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체험해볼 참이었으나 첫째 1인 최소 5만 원에서 8만 원에 육박하는 숙박료가 부담스러웠고, 둘째 마을 전체가 한 옥 한 채의 내부와 다르지 않단 생각에 마음 가는대로 구석구석 둘러봤다.

가을이 당도한 북촌을 걸으니 오래 사귄 벗의 속내를 뒤늦게 마주한 듯했다. 여타 다른 이유로 다녀가긴 했지만 이번처럼 북촌 보기를 이유로, 한 길 한 길 마음을 내어 둘러본 건 처음. 아름다운 길 하나, 집 하나, 담벼락 하나에서 조근조근 이야기가 들렸다.

북촌 한옥마을은 이미 서울의 유명 관광지가 됐지만 동시에 대부분 주민들의 생활터전이다. 그래서 관할시와 구에서는 '침묵 관광'을 당부하고 있지만 반나절 넘게 다니며 목격한 방문객들은 그닥 협조적이지 않았다.

비단 소란스러움이 싫어서라기 보다 그저 맘따라 걷다 보니 대부분 혼자 걸었다. 처음엔 안내지도를 따르려 했지만 익숙지 않은 지도 보기에, 사방이 길인데 그 속에서 길을 찾는 게 성가셔서 그마저도 그만뒀다. 그러자 작은 풍경이 고개를 들고, 그 안에 생활이 보였다.

북촌 한옥마을 속 풍경
 북촌 한옥마을 속 풍경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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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긴 철계단 아래 한 사람 서기도 좁은 골목, 그 길을 채운 제각각 생긴대로 어엿한 가게들, 하얀 빨래가 눈부신 마당에 홀로 앉은 고양이, 그 자체로 멋스럽고 고운 녹슨 창틀, 담벼락, 장독대, 어디고 편히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옅은 온기가 느껴지는 정적.

생각했다. '채움'이란 돈을 들여 말끔하고 보기좋은 물건으로만 하는 게 아니구나. 원래 있는 것에 시간이 쌓이고 정성을 더하며 매일매일 누군가의 삶이 녹아내리면 그 채움이 빛처럼 번지는구나. 대로변에 선 재래식 변소 문도 곱게 색을 칠해 꽃을 틔우니 저리 예쁘구나.

이제 얼마지 않아 고향에 내려가 나의 게스트하우스 채우기를 시작할 것이다. 당장은 침대, 탁자, 간판 뭐 하나 더할 여력이 없다. 아마도 한동안은 나의 체온과, 내가 끓여서 먹는 물과 차의 향기가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기꺼이 이부자리만으로도 족하다며 숙박을 예약한 손님들이 있으니 곧 그들의 체온과 이야기와 기억도 더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게스트하우스다운, 그리고 나다운 공간이 만들어지겠지. 귀향, 열흘 전이다.

북촌의 '복정터'와 '다사리아'에 소원돌 두 개

네 번째 소원돌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서울 용산에 사는 엄혜진(35) 님과 이메일로 소원만을 전해주신 이민용 님이다. 엄혜진 님은 NGO 단체에서 활동 중에 인연 맺은 인물로 '어메이징'이란 별칭처럼 아시아 소외계층을 위한 사업들을 놀라운 집념으로 펼치고 있다.

여덟 살 연하 남편과 신혼을 보내고 있는 그의 소원은 내년에 예쁜 딸아이를 갖는 것. 북촌 한옥마을을 걷던 중 우연히 발견한 '복정터'란 곳에서 소원 빌었다. 조선시대 물이 깨끗하고 맛이 좋아 궁중에서만 사용했다 하며, 대보름에 밥을 지어 먹으면 행운이 깃들었다고. 작은 동굴 속 맑은 우물이 어머니의 양수를 연상케 했다.  

엄혜진 님의 소원돌. '내년에 꼭 예쁘고 건강한 딸 낳길'
 엄혜진 님의 소원돌. '내년에 꼭 예쁘고 건강한 딸 낳길'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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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용 님은 어디선가 본인 기사를 읽고 메일을 보내신다 했다. 당신의 소원 역시 '퇴직 후 여행자들을 위한 편안한 집을 만드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내가 만드는 게스트하우스와 강릉 강문에 있는 '감자려인, 숙이'의 성공을 통해 당신 꿈의 롤모델이 생겼음 한다 했다.

이민용 님의 소원은 북촌의 '강력 맛집'으로도 소개하고픈 '다사리아'란 닭꼬치 가게에서 빌었다. 간판도 없이 사람 너댓 명 들어서면 꽉 차는 곳이었다. 하지만 깔끔하고 아늑한 자리에서 시원한 생맥주 한잔과 함께 먹은 닭꼬치 맛은 진정 환상적이었다.

게다가 더욱 인상적이었던 건 주인 아주머니의 친절. 본의 아니게 두 식탁 중 하나를 본인 혼자 차지하고 있었는데 곧이어 둘셋 되는 손님 무리가 들어왔다. 합석을 요청하거나 은근 눈치를 주리라 생각했지만 아주머니는 1초 망설임 없이 "자리가 없어요. 죄송해요" 했다. 

그리고 한 손님이 좁은 통로벽을 걷다 간판을 떨어뜨렸는데 곧바로 손님의 안녕부터 챙겼다.

"안 다치셨어요?"
"저는 괜찮은데 얘가(간판) 다친 것 같아요."
"괜찮으심 됐어요. 얘 다친 건 제 팔자죠."

미안하고 머쓱해하던 손님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내 게스트하우스를 찾을 여행자들에게도 저리 친절하면 좋겠다 싶었다. 받는 이도, 주는 이도, 보는 이도 편안하고 기분좋은 친절. 비록 홀로 앉아 있었지만 기꺼운 맘으로 건배를 제안할 수 있었다. '이민용 님과 우리 모두의 꿈을 위하여!"

이민용 님의 소원돌. "우리 모두의 소원을 위해 건배"
 이민용 님의 소원돌. "우리 모두의 소원을 위해 건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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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다섯 번째 '소원돌 프로젝트' 장소는 제주도입니다. 소원 접수 희망자는 페이스북 /2012activist 또는 /BangsasiGuesthouse, 이메일 gaegosang@naver.com을 통해 간단 소개와 소원 전해주세요.



태그:#북촌한옥마을, #한옥체험, #한옥게스트하우스, #방사시 , #북촌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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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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