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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은 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그 생각이 올바를 때, 역사의 흐름은 퇴보하지 않는다. 미래를 약속하는 언어들이 출렁이는 2012년, 온 지구를 가로질러 30여 개국에 선거가 있다. 변화의 시기, 한 생각은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힘의 논리로 억압하지 않는 생명의 순환을 이어가고자 <오마이뉴스>는 세계의 지성들을 만난다. 그들의 통찰력을 빌어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내면의 지혜를 깨우려 한다. 한 생명이 밝아지면 세상은 그만큼 희망을 얻기 때문이다. '깨어나자 2012' 인터뷰 시리즈는 그 노력의 하나다. [편집자말]
코넬 웨스트 교수
 코넬 웨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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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유니언 신학대 입구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유니언 신학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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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4일 오후 3시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유니언 신학대에서 코넬 웨스트 교수를 만났다. 유니언 신학대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신학교로 기독교와 다른 종교와의 소통을 이끄는 중심이다.

코넬 웨스트 교수는 만나자마자 한국과 관련한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코넬 웨스트 교수의 언어는 늘 화려하고도 바늘 끝처럼 정확하다. 그러나 그가 꺼낸 한국에 대한 말들은 지극히 평범한 단어였다. 하지만, 극과 극의 감동과 아픔이 전해졌다. 첫번째는 완벽한 한국어 발음으로 건넨 "민중"이라는 말과 우리 민중에 대한 찬사였고,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은 "한국 대통령 선거에 독재자의 딸이 나왔다며?"였다.

'독재자의 딸', 대한민국의 대표적 정치 지도자를 서구 지식인들은 이름 대신 독재자의 딸로 인식하고 있었다. 앞서 만난 석학들도 그녀의 아버지 시대를 기억하고 있었고, 독재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독재자의 딸'이라는 호칭을 들으니 참담했다. 대선이 다가오면서 서구 언론에 보도되는 한국의 한 단면과 마주하는 것이라 직감했기 때문이다. 혹시 그 후보가 당선된다면, 세계 언론은 마치 아민의 딸, 마르코스의 딸, 밀로세비치의 딸이 대통령이 된 것과 같은 상황으로 우리를 인식하는 건 아닐까?

물론, 코넬 웨스트 교수의 한국에 대한 시각은 놈 촘스키 교수의 "한국의 지난한 민중투쟁의 힘이 세계 민중을 깨웠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는 당부처럼,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을 갖고 있다. 그는 한국 현대사는 세계 민중의 역사 속에서 희망의 불을 밝힐 모델이라고 했고, 신자유주의 질서 또한 한국의 민중이 미국보다 앞서 타개해 나갈 것이라 기대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야말로 가장 영웅적이고 용감한 이들"

코넬 웨스트 교수
 코넬 웨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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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께서는 제게 인사를 건네며, "코리아 '민중'은 정말 대단해요"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한국의 '민중'을 아느냐고 묻자, "고난에 저항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블루스맨"이라 했구요. 교수님의 대답에서 한국인인 제가 오히려 뭔가를 놓치고 살고 있구나 하는, 마치 숙제를 잊고 한눈 팔다 들켜버린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국 민중의 무엇이 교수님을 자극했습니까?
"한국 사람들의 역사죠. 참으로 많은 제국주의와 마주했던 과정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특히나 일본 제국주의는 참으로 추하고 악랄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은 등을 곧게 폈어요. 어떤 고난에도 다시 일어나 싸웠습니다. 상처 투성이, 멍 투성이, 온갖 흉터를 남겨가며 끊임없이 싸웠어요. 그리고, 지금도 한국전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상당히 많은 영역 속에서 영웅적입니다."

- 독재를 이겨내야 했던 현대사죠.
"(그 독재는) 군사정권이죠. 같은 일은 북한에도 있구요. 자, 그럼 이제 한국의 노동계급에 대해서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해 볼까요. 한국의 노동자들이야말로 현대사회 모든 노동계급 중 가장 영웅적이고 용감한 이들입니다. 조직했고, 파업했고, 총파업으로 연대해 일어나 저항했습니다. 그들에겐 장엄함이 묻어납니다. 그들이 바로 한국 산업화와 번영의 도시를 일군 주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력을 갖고 있는 이들은 농촌에서 모여들자마자 순식간에 산업의 규율 속으로 던져졌습니다. 그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킬 보호구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답을 노동운동 속에서 발견한 거죠."

- 앞서 인사하며 민중을 말할 때, 교수님께서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요즘 우리(한국)는 우울합니다. 과거의 연대도 많이 느슨해졌고, 일자리도 부족한데다 신자유주의의 질서에 따라 노동시장이 너무나도 불안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네, 불완전 고용을 양산했어요."

- 심지어 고용 상태라고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워킹 푸어(working poor)입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고용 조건은 갈수록 고약해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미국은 빈곤에 처해 있는 어린이가 전체의 22%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자 나라에 말이죠. 수치스럽습니다. 미국의 1%가 전체 42%의 부를 가지고 있고, 그들은 100대 부자 1억5000만 명이 갖고 있는 돈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있어요. 부와 불평등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한국도 신자유주의 질서를 갖고 있죠. 그런 곳에서는 최상위 1%는 아주 잘 살지만, 중간에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추락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으로 자꾸만 밀려가게 됩니다. 이는 지구적 현상이고 한국 역시 미국처럼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 제국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위태로운 실험

- 교수님께서 빈곤 투어에서 말하는 "부자와 미국의 나머지 사람들(The Rich and The Rest of US)"라는 단어가 인상적입니다. 우리 사회는 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분리해서 바라보는 시각이 있어왔는데, 실상은 부자가 아주 특별한 존재죠. 소수이구요. 나머지는 당연히 한 묶음인데, 마치 가난은 개인의 노력이 부족한 듯, 절약하지 못한 결과인 듯, 특히 거리와 화면에 비춰지는 풍요 때문에 빈곤을 특수한 상태, 감춰진 상태처럼 소외시켰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소수의 부자 말고는 다들 같은 처지입니다. 미국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미국 제국과 USA라고 불리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금 위태로운 실험이 벌어지고 있고, 이 실험이 아주 깊은 쇠락의 길로 이끌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일 꼭대기에 재벌과 함께하는 소수가 지배하는 정치가 있습니다. 직장인의 월급은 35년 동안 거의 변한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평균 노동자와 35년 전의 평균 노동자가 똑같은 금액을 벌고 있어요. 그런데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이 버는 돈은 600% 늘어났습니다.

생산성이 증가했죠. 노동조합이 약해지면서 노동이 무방비 상태로 되었습니다. 500만 제조업 일자리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때문에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기에다 환태평양 전략적 경제동반자협약(Trans-Pacific Partnership)까지 있어 모두 아시아로 나가버렸죠.

다국적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지구를 여행합니다. 첫번째는 멕시코 라틴아메리카였고, 지금은 아시아예요. 이 여파로 미국의 문화는 순각적인 쾌락에만 사로잡히게 됐습니다. 자극, 성적 충동, 연예인 모방 등 이런 문화적 공격을 퍼붓습니다. 중요한 일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한눈 팔고 몽유병자처럼 굴도록 무감각을 강요합니다.

결국 세상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공공의 이익에 대한 관심이나 삶과 죽음, 슬픔, 환희와 고뇌에 대한 인식은 마비되고 소비자로서 소비하는 데로 빨려들어가고 있죠. 이 결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치의 정신질환과 우울증, 영아 사망률, 자살률, 집단 감금률과 불평등을 겪고 있습니다."

- 요즘 들어 고도로 산업화된 곳에서는 '치유(healing)'라는 단어가 유행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우리는 현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마치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양 행동하는, 그렇게 거부하는 상태로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요. 정면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거리로 나가야 하고, 감옥에도 가야 합니다"

그의 정신세계에 많은 영감을 준 마틴루터 킹 주니어의 사진이 그의 책상 머리맡에 걸려 있다. 인종 문제와 신자유주의 속 빈곤의 문제, 그리고 노동 계급의 정치세력화 등은 킹 목사로부터 이어지는 사랑의 마음으로 그를 통해 뜨겁게 퍼진다.
 그의 정신세계에 많은 영감을 준 마틴루터 킹 주니어의 사진이 그의 책상 머리맡에 걸려 있다. 인종 문제와 신자유주의 속 빈곤의 문제, 그리고 노동 계급의 정치세력화 등은 킹 목사로부터 이어지는 사랑의 마음으로 그를 통해 뜨겁게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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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면의 혁명을 말하는 건가요?
"인식의 문제입니다. 알아차리는 문제이지요. 심리적, 도덕적, 정신적 자아를 성장시키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조직되기도 하고, 서로 손 맞잡고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일부는 거리로 뛰쳐 나가야 하고, 일부는 감옥에도 가야 하고, 그리고 누군가는 정치인들을 압박해야 해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민중을 이해했습니다. 아주 깊고 깊은 저 심연으로부터 받아들였죠. 고통받는 이들, 바로 우리의 그 굽은 등을 쫙 펴주고 깨어나게, 정신 똑바로 차리게 해줬어요. 그리고 우리 민중들은 다른 이들을 돌아봤고, 함께 연대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들이 나아가는 변혁의 중심에는 바로 사랑이 콱 박혀 있어야 하는 거예요."

-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종의 희망 같은 기운이 있었습니다. 그가 세계를 위해서 뭔가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교수님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오바마가 이겼을 때, 우리는 모두 대단한 희망을 가졌죠. 아주 깊이 뿌리박힌 백인 우월주의가 있는 미국에서 흑인에겐 상징적 승리요,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슬픈 현실은 그가 경제 조언자를 월스트리트에서 뽑아올렸다는 겁니다. 결국 우리는 다수를 아우르는 주류 정부가 아니라 월스트리트 정부를 갖고 말았습니다.

오바마가 월스트리트 사람들을 선택했을 때, 월가 사람들은 16조 달러를 얻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 동안 부어온 집 대출 상환금마저 날리고 쫓겨났습니다.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가 잘못된 거죠. 그의 군국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바마는 마틴 루터 킹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킹은 베트남 전쟁에 끼어든 미국을 비판하며 돌아가셨는데, 바로 베트남에서 있었던 미제국주의의 무고한 살상과 네이팜탄을 정면에서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킹을 존경한다는 오바마의 군국주의는 살상용 무인항공 조종 폭탄을 더 늘렸고, 그 속에서 무고한 시민들도 죽었으며, 아프카니스탄도 전쟁에 휩싸였습니다. 그가 이라크에서 전쟁을 종식시켰지만, 아직도 수천명의 용병이 거기에 있습니다. 미국은 6억8500만 달러를 이라크에 있는 대사관을 지키느라고 썼어요.

산업재해를 입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안전위생국이 쓰는 돈은 5억8000만 달러입니다. 결국 산업재해를 입은 미국 노동자들에게 줄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미 대사관 지키는 데 쓰는 겁니다. 이것이 전쟁에 있어서 우선순위예요. 그러니까 오바마는 마틴 루터 킹과 같은 선지자적 전통에서 왔다고 여겨졌지만, 결국 그의 마무리는 신자유주의 정치가로 완성된 겁니다. 모든 신자유주의의 흐름과 함께 하며, 아직도 월스트리트에 너무나 심각하게 종속되어 있는 긴축재정을 하고 있습니다."

- 이번 미국 선거가 이런 시장 중심 경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재벌과 함께 하는 금융과두 정치에서 보수주의자인 롬니를 선택하느냐, 신자유주의 버전의 오바마를 선택하느냐 하는 상황입니다."

'보수 신자유주의' 롬니 vs. '리버럴 신자유주의' 오바마

- 교수님께서는 '제3의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은 세 명의 후보가 주요하게 각축을 벌이고 있고, 여기에 진보 정당들과 다른 무소속 후보가 나섰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정권을 바꾸기 위해서 야권이 단일화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미국은 의원내각제 시스템이 아니라 다양한 후보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완전한) 양당제는 아니죠. 그리고 미국인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무소속 상원의원이 있습니다. 버몬트 주의 버니 샌더스입니다. 그는 사회주의자이고 최고의 상원의원이에요. 아주 중요한 인물이죠. 텔레비전에서 그의 활동을 볼 수 있어요. 버니 샌더스는 기업이 휘두르는 힘, 기업의 탐욕, 일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노후된 학교 시스템, 새로운 흑인 차별 정책인 감옥 산업단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의회에서 미국의 실상을 드러내고 있고, 양당 시스템에서 한 걸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이에요.

민주당과 공화당, 이 둘의 목을 돈이 조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금융개혁 운동을 해야 해요. 정치에 들어가 있는 엄청난 돈을 빼내와야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했던 선거 방식인 '노 머니 노 광고(No Money No Advertisements)'를 해야 하고, 투표하지 않으면 벌금 물려야 합니다. 호주는 90% 이상이 투표를 해요. 그런데, 미국은 48%죠. 우리가 아주 아주 빨리 깨어나지 않으면, 모든 민주적 요소를 잃게 되는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버락 오바마가 확실히 롬니보다는 낫다고 믿지만, 그도 아직 큰 돈 줄인 신자유주의 버전에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 선거 때가 되면, 사람들은 '차악'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차악은 절대 악보다 더 위험한 것일까요?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죠. 그렇지만, 만약에 (미국 대선에서) 롬니가 이긴다면, 실제 생활 속에서 가난한 이들에게는 대단히 파괴적이 될 겁니다. 오바마가 이긴다고 해도 서민들에게는 아주 아주 힘든 길이죠. 하지만, 보다 적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거나 생활 터전을 잃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대참사와 재난 사이에 놓인 선택인데, 재난이 대참사 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요?"

-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밀리고 밀려가는 상황이 반복되는 한계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지금 현재 이 체제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아요. 이 체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실패작입니다."

(☞ '깨어나자 2012 : 석학을 만나다 6-②'로 이어집니다.)


태그:#코넬 웨스트, #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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