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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미사가 열리는 영남루 앞에 모인 밀양 사람들.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금요미사가 열리는 영남루 앞에 모인 밀양 사람들.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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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전기 많이 쓰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지난 26일 저녁, 경남 밀양 시내에 있는 영남루 입구에서 어김없이 금요미사가 열렸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고 평화를 비는 미사다. 미사가 끝난 뒤 사회자가 서울에서 온 손님들을 소개했다. 얼떨결에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는데, 대도시에 사는 '원죄'를 의식하며 사는 탓인지 저런 인사말이 튀어나왔다. 노인들은 촛불을 흔들며 웃음소리로 화답했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날 저녁, 촛불을 손에 들고 싸늘한 돌계단에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자 마음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었다.

26일 아침, 나는 서울역에서 밀양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여성환경연대에서 마련한 밀양지킴이 방문에 동행하는 길이었다. 올해 1월,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소식을 듣고 밀양에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9개월 만이다.

공권력을 등에 업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초고압 송전탑 공사에 맞서 죽음을 선택한 한 시골 노인의 이야기가 손톱 밑의 가시처럼 잊을 만하면 자꾸 마음을 찔렀다. 결국 그 '따끔따끔함'이 서울에 사는 평범한 20대 여성인 나를 밀양으로 가는 열차에 타게 만들었다. 이치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계절이 두 번 지나 창밖으로는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이 한창인데, 밀양의 사정은 크게 나아진 게 없다.

언덕 위 공사부지에 올라가 내려다본 모습. 농성장 뒤로 파헤쳐진 땅이 보인다.
 언덕 위 공사부지에 올라가 내려다본 모습. 농성장 뒤로 파헤쳐진 땅이 보인다.
ⓒ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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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3대 오지, 바드리마을 농성지를 지키는 '질긴' 사람들

우리가 찾아간 곳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평리의 바드리마을이다. 바드리마을은 밀양의 3대 오지마을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첩첩산중에 있다. 26일 오후, 밀양에 도착한 일행은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자 작은 비닐하우스가 나왔다. 오늘 밤 주민들 대신 불침번을 서기로 한 바드리농성장이다. 농성장 바깥의 간이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던 모녀가 일어나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요즘도 날마다 한 차례씩은 한전 사람들이 왔다 갑니더. 오늘 아침에도 와서 포클레인을 너무 오래 저래 뒀다고 시운전 한 번만 해본다 카길래 절대 안 된다고 막았습니더."

농성장 뒤쪽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마구 파헤친 공사 현장이 보였다. 한쪽 구석에 포클레인 한 대가 도망치면서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처럼 팽개쳐져 있었다. 여자 둘이서 한전 직원을 상대하기 무서울 것 같은데, 아주머니는 아주 씩씩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딸은 집에 다니러왔다 엄마를 따라나선 눈치였다.

공사 부지는 농성장 반대편 언덕 위에도 있었다. 땅을 파헤치면서 드러난 나무 뿌리와 바위들을 딛고 언덕 위에 기어 올라가니 마을을 감싸 안은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드리마을은 신고리 원전에서 오는 송전선을 밀양에서 가장 먼저 이어받아 수도권에 전해주게 된다. 밀양 송전탑 반대 '전투'의 최전선인 셈이다.

농성장 뒤편의 공사현장. 한쪽에 포클레인이 보인다.
 농성장 뒤편의 공사현장. 한쪽에 포클레인이 보인다.
ⓒ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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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트럭이 농성장 앞에 멈춰 서더니 인상 좋은 중년 부부가 내렸다. 서울 손님들이 하룻밤 농성장을 지킨다는 소식을 듣고 담요를 가져다주러 온 것이다. 챙겨온 반찬을 냉장고에 정리하면서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설명하신다. 수도가 없기 때문에 물은 마을에서 떠 와 큰 통에 채워놓고 쓴다. 가스와 전기는 다행히 얼마 전부터 끌어와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은 농성장 주변에 펼쳐진 드넓은 대자연이다. 

이들은 동네 어르신들을 태워 미사에 가야 한다며 일행보다 먼저 출발했다. 옆 동네에서 지원 나온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차에 타면서 "질긴 놈이 이긴데이!"라고 소리친다. 오랜 농성에도 지치지 않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긍정적인 마인드야말로 '질기게' 싸우는 데 중요한 비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제발 화장실에 가지 않게 해주세요

농성장에 강정마을회와 2012생명평화대행진이 방문했을 때 가져온 펼침막이 붙어 있다.
 농성장에 강정마을회와 2012생명평화대행진이 방문했을 때 가져온 펼침막이 붙어 있다.
ⓒ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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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번쩍 눈이 떠졌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보니 자정이 조금 넘었다. 아랫배가 팽팽하게 당겨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다. 날이 밝을 때까지 제발 화장실에 가지 않게 해달라고 그렇게 빌었건만, 너무 걱정한 탓인지 도리어 잠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대로 다시 잠들 수는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곤히 잠든 일행을 밟지 않게 조심조심 출입문까지 가서 손전등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강한 요의 때문인지 생각보다 무섭지는 않았다. 서둘러 볼일을 본 뒤 올려다본 하늘에 달무리가 진했다.

들어와서 다시 누웠더니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밤 내가 이곳에서 불편하게 잠을 자는 대신 마을 사람 몇은 집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밀양에만 아홉 개의 농성장이 있다. 농성장 한 곳에서 적게 잡아 세 명이 밤을 보낸다고 쳐도 날마다 스물일곱 사람이 이렇게 집을 떠나 불편한 잠을 자야 한다. 그런 생활이 벌써 2년이 넘었다.

국정감사 때문에 한전이 공사를 중단해서 지금은 밤에 잠이라도 잘 수 있지만, 그 전에는 이 산속에서 그야말로 '불침번'을 서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2년 동안 칠흑 같은 밤에 볼일을 보러 다녀오며 달을 올려다봤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아득했다.

어둠 속에서 윙 하고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전기장판 덕분에 잠자리는 뜨끈뜨끈했다. 이곳에서도 이렇게, 전기를 쓰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는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은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어 생긴 일일 뿐,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건설하는 일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눈으로 보면, 극단적으로 이 산속 농성장에서 전기를 끌어와 불을 밝히고 냉장고를 돌리는 것도 비난받을 수 있다. 당신들도 전기를 쓰면서 왜 당신들 땅에는 핵발전소 또는 송전탑을 세우지 못하게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을 지키는 사람들은 전기를 쓰지 말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내 땅이 아니라 남의 땅에 송전탑을 세우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라고 믿는다. 우리에게 과연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한지, '어떤' 에너지를 쓸 것인지 고민하는 진지한 논의로 이어질 때, 이 오지마을의 투쟁이 진정 '값 있게' 되는 게 아닐까.

방문한 단체들이 가져온 펼침막이 농성장 옆 나무에 걸려 있다.
 방문한 단체들이 가져온 펼침막이 농성장 옆 나무에 걸려 있다.
ⓒ 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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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추운 겨울을 비닐하우스에서 보내지 않기만을 빌 뿐

다음 날 아침, 비닐하우스를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어젯밤 달무리가 유난히 진하더니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농성장 문으로 내다보이는 마을 길에 안개가 자욱했다. 비를 맞으면서 통에서 물을 떠 고양이세수를 마치고 짐을 챙겼다. 교대는 오전 10시. 주말이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온다고 한다.

그때 차 한 대가 올라오더니 농성장 뒤편에 멈췄다. 교대하러 온 대학생들인가 싶어 나갔던 일행 한 분이 고개를 저으면서 들어왔다.

"어르신 한 분인데, 줄자 들고 뒤쪽에서 측량하시던데요."
"뭐? 한전 사람 아니야? 그런 사람 막으라고 우리가 이렇게 있는 건데!"

밖으로 뛰어나가는 일행들을 따라 정신없이 나가보니, 작업복 차림의 할아버지가 농성장 뒤편에서 줄자로 땅바닥을 재다 우리를 쳐다봤다.

"아, 어제 미사에서 봤던 사람들 아이가."

우리를 알아보고 수줍게 웃으신다. 머쓱해진 일행은 웃으면서 이 비 오는 날 뭐하시냐고 물었다. "겨울 되면 추우니까 온돌방을 만들 거다"라는 대답을 듣고 입이 떡 벌어졌다. 대체 이분들은 어디까지 각오가 돼 있으신 걸까. 일행 중 한 분이 온돌방이 완성되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농사짓고 내 일 하면서 남는 시간에 조금씩 할 거라 언제 다 만들어질지는 모르겠다"며 활짝 웃으셨다.

할아버지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비 내리는 바드리마을을 떠났다. 다시 이곳에 찾아올 수 있을지, 나는 차마 기약할 수 없었다. 어서 이 문제가 해결이 되어 노인들이 추운 겨울을 비닐하우스에서 보내지 않기만을 빌 뿐이다.


태그:#밀양 송전탑, #한국전력, #바드리마을, #신고리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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