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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못골시장의 명물 합창단 이름이 참 재미있다.
 수원 못골시장의 명물 합창단 이름이 참 재미있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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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의 공세로 전통 재래시장이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현상은 대도시와 지방의 작은 소도시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2003년 이후 7년 사이에 전통 재래시장은 178곳이 문을 닫았고, 기업형 수퍼마켓이 695곳 늘었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도 대형마트를 만나는 일은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런 대형마트의 세상에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전통 재래시장이 수원에 있다. 바로 수원의 팔달문 또는 수원천변에 있는 여러 시장들이 그곳. 전통의 팔달문 시장, 영동시장 앞엔 지동시장, 못골시장, 이름도 재미있는 미나리광시장이 모여 있다. 지난 27일, 1호선 전철 수원역에서 내려 아담하고 수수하게 흐르는 수원천을 따라 달리다 수원 화성의 팔달문 부근에서 상인들과 주민들로 북적이는 곳을 만났다.

오일장터처럼 북적이는 전통 재래시장

큰 오일장터 같이 북적이는 수원의 전통재래시장
 큰 오일장터 같이 북적이는 수원의 전통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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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외국인 손님들을 위한 고추들, 모양도 향도 이국적이다.
 이주 외국인 손님들을 위한 고추들, 모양도 향도 이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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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의 남쪽문 팔달문 앞으로 가니 수원역에서만큼이나 많은 남녀노소의 시민들이 인파를 이루고 있다. 왕이 만들었다는 유서 깊은 팔달문 시장과 영동시장이 다정하게 붙어있다. 번듯한 2층짜리 시장 안내센터가 입구에 있는 팔달문 시장 앞 광장에는 떡집에서나 하는 떡메치기 이벤트가 한창이다. 시범을 보인 떡집 아저씨보다 소리와 기세가 한 수 위인 어느 아주머니의 떡 치는 소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서서 구경하며 웃는다. 어디 멀리 오일장터에 온 것 같은 정겨운 풍경이다.  

정조 임금은 알고 있었을까. 화성을 건축하고, 버드나무를 심어 수원을 유경(柳京)이라 해 조선의 경제 중심지로 세우고 싶었던 그의 이상이 이렇게 이어지게 될 줄을. 팔달문 주변에는 다양한 상인들로 넘쳐나기 시작해 현재 수원에는 22개의 크고 작은 전통시장이 있다고 한다. 수원에 올 때마다 수원화성의 멋진 성곽길과 그 위용에만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이런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시장들을 미처 보질 못했다니...

팔달문, 영동 시장 건너편에는 지동시장, 미나리광시장, 못골시장이 다정하게 이어져 있다. 다른 지역들처럼 신도시며 대형마트들이 생기면서 손님들이 많이 줄었겠다 예상했는데, 주말이라 그런지 다행히 시장통에 사람들이 줄을 서서 지나간다. 지동시장 안에 크게 형성된 순대타운에 들어가 5000원짜리 순댓국밥으로 아침 겸 점심을 잘 먹었다. 더 안쪽 골목에는 잔치국수를 2000원에, 칼국수를 3000원에 파는 국숫집 앞에도 사람들이 줄줄이 대기 중.

지동시장엔 온갖 순대요리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순대타운이 있다.
 지동시장엔 온갖 순대요리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순대타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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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오일장터에서나 보던 뻥튀기 아저씨, 언제봐도 반갑다.
 시골 오일장터에서나 보던 뻥튀기 아저씨, 언제봐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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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과 시장 사이를 잇는 좁은 골목 풍경도 정답다. 커다란 뻥튀기 쇠철통도 반갑고 그 앞에 주르르 앉아 뻥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달방 있습니다'란 팻말을 걸어놓은 낙원 여인숙도, 이발사 아저씨의 자부심이 돋보이는 '황제 이발청'도... 지동시장 옆에 있는 미나리광시장은 처음에 간판을 잘못 본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이름이 눈길을 끈다. 상인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그런 질문할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예전에 이곳이 미나리의 산지여서 그런 이름이 생겨났단다.

조선 정조 임금이 수원화성을 건설하면서 만든 저수지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정겨운 우리말 '못골' 시장통에 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잠깐씩 정체를 할 정도로 사람이 북적인다. 사람들의 뒤통수를 구경하며 입구에 들어서자 머리 위의 플래카드에 눈이 간다. 이름 하여 '못골 줌마 불평 합창단' 재미있는 이름의 이 합창단은 못골시장뿐만이 아니라 지역 행사 때마다 초청받아 출연한단다. 못골시장은 문화 프로그램 등 각종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으로 시장이 살아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못골시장의 명물 반찬집답게 상인들이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
 못골시장의 명물 반찬집답게 상인들이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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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콩으로 만든 콩고기를 직접 보게 되다니.
 말로만 듣던 콩으로 만든 콩고기를 직접 보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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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이 직접 라디오 DJ가 되어 방송을 하는 '라디오스타'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1시간씩 시장의 소식을 전하고, 손님들의 불만을 일일이 공개하며 노래를 틀어주는 식으로 운영한다. 신문·방송 등을 통해 '라디오스타'가 소개되면서 직접 방송을 듣기 위해 손님들이 시장을 찾기도 한단다. 친하게 보이지만 실상 서로에 대해 몰랐던 상점 주인들도 '라디오스타' 덕분에 서로를 알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못골시장엔 젊은 상인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시장이 소문이 나면서 젊은 상인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가업으로 이어받겠다는 경우도 늘어났다고 한다. 가게를 예쁘게 새로 단장한 곳도 있고 '콩고기' 같은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 내놓은 가게도 눈에 띈다. 사람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어느 반찬집은 상인들이 모두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있어 새롭게 변모하려는 전통 재래시장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소담하게 흐르는 풋풋한 개천길, 수원천

수원화성의 성곽밑을 지나가는 이채로운 풍경을 지닌 수원천
 수원화성의 성곽밑을 지나가는 이채로운 풍경을 지닌 수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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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 벽화마을은 수원화성 바깥의 사람냄새나는 동네.
 지동 벽화마을은 수원화성 바깥의 사람냄새나는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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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동안 콘크리트로 덮여 있다가 올해 복개공사를 한 지동교 주변 수원천은 수원화성의 성곽 밑을 지나가는 이채로운 풍경을 지닌 아담한 하천이다. 수풀 가득한 사이로 오솔길 같은 좁은 수원천길을 달리다보면 수원화성 안의 행궁동과 성 밖에 있는 동네 지동의 갈림길을 마주하게 된다. 하천길을 잠깐 벗어나 지동 쪽으로 자전거 핸들을 돌린 이유는 지동에 벽화마을이 있기 때문.

아파트는 물론 3층 이상의 높은 건물이 드문 주택가이자 언덕 동네가 있는 지동은 수원 토박이들이 많이 사는 동네란다. 서울로 치면 재개발되기 전 풍경이 남아있는, 사람 냄새나는 곳이다. 요즘에는 골목골목마다 담벼락에 그려진 예쁜 그림들로 미소 짓게 되는 곳으로 변했다고. 본격적인 벽화골목의 초입격인 가게 '지동 슈퍼' 앞 평상에 잠시 쉬어가려고 앉았더니 목줄 풀린 동네 개 한마리가 여행자를 안내하는 가이드마냥 천천히 벽화 골목으로 걸어간다.

아파트에서는 가질 수 없는 예쁜 문패들도 벽화골목의 볼거리 중 하나
 아파트에서는 가질 수 없는 예쁜 문패들도 벽화골목의 볼거리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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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공부하는 젊은이들과 주민들이 그렸을 법한 재기발랄하면서도 소박한 그림들은 금이 가고 기울기도 한 집 담벼락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동네 한쪽 나무 밑 쉼터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할머니들에게서도 활기가 느껴진다. 절집 불상과 작은 교회 십자가가 가까이서 이웃하고 서 있는 골목을 설렁설렁 다니다 보면, 다른 동네의 벽화마을과 조금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골목들 끝에 다다를 때마다 보이는 수원화성의 성곽이 그것. 지동 벽화마을은 수원화성 동문인 창룡문과 맞닿은 동네였다.

벽화골목을 나오는 길에 어느 담장에 이채롭게도 그림이 아닌 시가 적혀 있어 가던 발길을 멈추게 된다. 서정주 시인의 시도 있었는데 내 눈길을 끈 건 어느 이름 없는 시인의 짧은 글이었다. 정말 이 동네에 살았을법한 어느 주민의 삶이 절절하게 표현된 시구에 마음이 먹먹해져 갈 길을 못 가고 한참을 벽 앞에서 서성였다.

"꼭두새벽 일어나 조반상 받고 혼자서 밥상머리 수저를 들면 사는 일 눈물겨워 목이 메이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나고, 어릴 적 떠나 버린 여동생 순이...(중략) 새벽녘 연탄가스 정다운 골목길 따라 뿌연 안개 털어내는 구두 발자국. 머잖아 이 마을에 눈이 내리면..."

상류인 광교 저수지쪽으로 갈수록 풋풋해지는 수원천
 상류인 광교 저수지쪽으로 갈수록 풋풋해지는 수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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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물든 광교산과 하늘을 가득 담은 광교 저수지
 가을로 물든 광교산과 하늘을 가득 담은 광교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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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동 벽화마을을 나와 다시 수원천길을 달려간다. 종착지는 수원천 상류에 있는 광교 저수지. 우거진 수풀과 버드나무들, 작은 산책길이 나있는 냇가에 가까운 하천이지만 소담하고 풋풋한 풍경이 좋다. 또, 하천가에 생겨난 모래톱에서 아이들이 모래장난을 하는 모습도 참 반갑다. 수원천길은 마침내 광교 공원과 광교 저수지의 길고 높은 둑을 만나면서 사라진다.

한가롭던 수원천길 분위기와는 다르게 광교 공원에 나들이를 나온 연인들과 가족들, 광교 저수지와 그 앞의 광교산에 산행을 하러 온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산과 저수지가 잘 어우러져 있는, 한 눈에 봐도 수원의 명소 중 하나임이 분명해 보인다. 애마 자전거를 공원에 묶어두고 광교 저수지가로 나있는 수변 산책로를 따라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아봤다. 큰 호수 속에 가득 담긴 가을 광교산과 하늘과 구름이 내내 발밑에 떠있다. 수원천 덕분에 정겨운 시장은 물론 수변길이 멋진 호수까지 알게 됐다.


태그:#자전거여행, #수원천, #지동벽화마을, #못골시장, #팔달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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