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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다. 대한문 앞에서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 단식 들어간 지 오늘로 벌써 16일째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벌써 가을은 가고 겨울이 오는지도 모른다. 겨울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하는데, 쌍용자동차 문제는 국회에서 청문회만 했을 뿐 아직 해결된 게 없다.

울산 현대자동차에서는 벌써 1주일 넘게 고압 송전철탑에 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올라가 있다. 아슬아슬하게 철탑에 널판지로 2평도 채 안 되는 깔판을 만들어서 버티고 있다. 잠은 어찌 자고, 밥은 어찌 먹고, 대소변은 어떻게 가리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용역깡패들이 공장을 침탈한 뒤에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들고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홍종인 지회장이 공장 앞 다리 위 난간에 밧줄을 목에 걸고 올라갔다.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하늘 위에 망루를 짓고 올라가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대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완강하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외면하고 버티는 현대자동차, 용역폭력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사과와 처벌은 없고 복수노조를 악용하여 노조를 고립시키기에 혈안이 된 유성기업, 그리고 청문회에서 회계조작도 드러났음에도, 그리고 사회각계의 노력과 이어지는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죽음이 23번째에 도달했음에도 여전히 해고자의 복직을 하지 않는 쌍용자동차….

어디 그뿐인가. 며칠 전에 이런 게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코오롱 2801일, 콜트콜텍 2092일, 재능교육 1769일, YTN 해직 1476일, 국립오페라합창단 강제해산 1392일, 쌍용자동차 1250일, 전북고속 686일, 전북버스 226일, 유성기업 525일, PSMC(구:풍산마이크로텍) 357일, JW지회 246일, 골든브릿지증권 186일, 한진중공업 천막농성 139일, ING생명 85일(날짜는 그후 더한 숫자).

1년이 365일인데, 2년이면 730일, 3년이면 1065일인데, 이들 노동자들의 투쟁 날짜는 얼마나 더 쌓여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24일로 단식 15일을 맞은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24일로 단식 15일을 맞은 김정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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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1일, 2092일, 1769일... 쌓여만 가는 노동자들의 투쟁 날짜

여기 장기투쟁사업장들은 비정규직 사업장일 수도 있고, 정리해고 사업장일 수도 있고, 특수고용 문제로 싸우는 사업장일 수도 있다. 법이 잘못된 것이든, 제도가 잘못된 것이든, 악덕 기업주의 잘못이 있는 것이든 문제를 풀려고 했으면 이미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들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만 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버티고 있다. 이것을 해결해야 할 임무를 가진 정부도, 정치권도, 심지어는 법원도 모두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노동자들을 고립하기에만 혈안이 되어버렸다.

심지어는 법원의 판결도 깔아뭉개는 기업에 대해 이 나라의 정부와 정치권이 무언가 진정어린 조치를 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이 나라의 노동조합운동은 사분오열되어 있고, 노동조합 조직률도 어용노조까지 합쳐도 10%도 안 되니 무슨 힘을 쏟을 수도 없거니와 진보정당은 어렵게 국민들이 만들어준 정치적 입지를 패대기쳐서 깨부수어버렸다. 그러니 천막을 치고 거리에 나앉은 노동자들이 하늘로, 망루 짓고 올라가는 것은 어쩌면 예정된 순서일 것이다.

하늘로 목숨 걸고 올라가야 하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2009년 1월 20일이 떠올랐다. 용산에서 살자고 망루 짓고 올라갔던 철거민들이 25시간 만에 주검으로 내려왔던 날 말이다. 그 뒤로 용산과 같은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쌍용에서 유성에서, 그리고 올해 SJM까지 말이다. 국가폭력과 사적폭력까지 합쳐져서 노동자들을 진압하는 게 공식이 되어버린 지금, 노동권은 어디고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이 현실은 야만에 다름 아니다.

요즘처럼 끔찍한 죽음들을 곁에 두고 살았던 세상이 어디 있었던가. 부동의 OECD 1위의 자살률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불감증에 걸려 있다. 자살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불안한 일자리와 미래 때문이며, 결국은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탓에 벼랑에 내몰렸기 때문임을 굳이 자료와 통계를 들추어 설명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IMF 외환위기 이후에 "어어어" 하는 사이에 정리해고가 일상이 되었고, 항상적인 일자리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마치 갯벌에 소리 없이 차오르는 밀물과도 같다. 비정규직도 그 이전에는 없었거나 미미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900만 명 가까이 헤아리게 되어 고용 형태의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대체되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와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이 17일부터 울산 현대차공장 명촌중문 인근 9호 송전탑에서 정규직 전환 이행을 촉구하는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천의봉 사무국장이 송전탑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해고노동자 최병승씨와 천의봉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사무국장이 17일부터 울산 현대차공장 명촌중문 인근 9호 송전탑에서 정규직 전환 이행을 촉구하는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천의봉 사무국장이 송전탑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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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구하다 밥이 되어버린' 우리들... 그래도 밥 한번 함께 먹자

늘 그렇다. 내가 당하지 않는다고 침묵하거나 외면할 때 언젠가 바로 내 곁에 그 상황이 다가와 있다. 지금 비정규직이 아니라서,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아서 침묵할 일이 아니다. 노동자도 시민인데, 시민권을 박탈당한 시민의 처지로 곤두박질친 사람들의 문제가 결코 나와 다른 문제일 수 없다.

이번 주에는 이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집중적인 집회들이 준비되어 있다. 26일에는 송전철탑 농성 중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울산에 와 줄 것을 노동자들은 호소한다. 그리고 27일 토요일에는 서울역에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촛불행진이 열린다. 1천만 선언, 10만 촛불을 모으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집회에 마음을 모으고 몸을 보태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전국의 쫓겨난 사람들을 모아서 생명평화대행진단이 서울로 올라오고 있다. 오는 11월 3일이면 서울광장에서 도착하는 행진에도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행사가 26일 금요일 오후에 대한문에서 열린다. "밥 한번 먹자"는 이 행사에는 희망바자회와 희망콘서트와 함께 밥 나누기 행사가 열린다. 밥 먹고 살기 위해 노동하는 것인데, 밥도 먹을 수 없게 쫓겨난 사람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하는 행사다. 김정우 지부장이 단식 중이라서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모여보자. 단식 중인 그를 격려하고, 전국에서 힘겹게 농성을 이어가는 노동자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보자.

금요일 저녁에, 대한문에서 모여 밥 한번 제대로 먹자. 밥벌이 하다가 쫓겨난 노동자들, 이제 하늘로 망루 짓고 오르는 노동자들과 연대의 정을 진하게 나눠보자. 같이 밥 먹고 기운내서 연대해보자.

26일 개최되는 '희망 밥 콘서트' 포스터
 26일 개최되는 '희망 밥 콘서트' 포스터
ⓒ 희망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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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쌍용자동차, #희망식당, #김정우, #박래군,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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