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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7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시민들이 영화 <유신의 추억>을 보고 있다.
 23일 오후 7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시민들이 영화 <유신의 추억>을 보고 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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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중학교 3학년이던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유신헌법'도 함께 제정됐다. 학교에서는 새로 제정된 헌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두 달 앞둔 때였다. 고입 시험에 대비해 그동안 외워왔던 기존 헌법은 무용지물이 됐다. 유신헌법으로 시험공부를 다시 해야만 했다.

유신헌법을 공부할수록 그의 궁금증은 커져갔다. 가장 이상한 건 대통령 임명권 관련 내용이었다. 유신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사법부와 입법부의 임명 권한을 지닌다. 사법부와 행정부는 청와대로부터 독립된 기구라고 규정한 기존 헌법과는 다른 대목이었다. 선생님에게 물어봤지만 '그냥 그렇게 알면 된다'는 답만 돌아왔다.

23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영화 <유신의 추억 - 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총감독 이정황)을 보던 임창수(56)씨는 유신 시대를 이렇게 회상했다. 임씨는 "당시 유신 때문에 입시 공부를 다시 하느라 정말 애 먹었다"며 "이런 유신이 선포된 지 40년 밖에 안 지났는데 벌써 세상에서 잊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신문 검열' '불심검문'...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 유신 때는 일어났다"

이날 오후 7시 시청광장에는 임씨를 포함한 150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독재, 시대를 넘은 공감' 만민공동회에서 상영하는 영화 <유신의 추억>을 보기 위해서다. 만민공동회는 '유신 등의 주제를 두고 만 명의 시민들이 모여 만 초 동안 이야기하자'는 취지로 열린 행사다. <유신의 추억>은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비상조치를 선포하면서 시작된 '유신 체제'를 되짚는 영화다.

행사 취지대로, 시청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삼삼오오 둘러 앉아 영화를 봤다. 특히 40~50대의 시민들은 영화 장면을 가리키며 각자가 겪은 유신시대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 동문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온 엄주웅(56)씨는 "유신체제 때문에 기자란 꿈을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대학 시절 신문사 기자였다. 신문사에서 신문을 완성하면 학교 총장에게 검사를 맡아야만 했다. 유신체제와 관련해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내용이 발견되면 총장은 즉시 '배포 중지'를 명령했다. 이처럼 앵무새같이 받아써야만 기사를 낼 수 있는 현실이 싫었다." 

'원풍모방'의 노동자였던 양승화(56)씨는 "그때 경찰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하철역에서 불심검문을 하며 지나가는 시민들 가방을 전부 뒤졌고, 이상한 게 발견된 사람은 즉시 경찰서에 연행했다"며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유신 시대에는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양씨가 몸담았던 회사는 1980년대 박정희 정부로부터 노조 탄압을 받은 바 있다.

"유신, 목적은 옳았다? 목적·수단 둘 다 더러웠다"

유신 시대를 겪은 영화 관람자들은 20대들이 당시 역사를 제대로 알기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백완승(56)씨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유신의 목적은 옳았으나 수단이 정당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는데, 유신은 목적과 수단 둘 다 더러웠다"며 "1인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을 선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황선금(58)씨는 "당시 유신 헌법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권리가 제약받았다"며 "유신은 절대 국민을 위한 게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만민공동회에는 영화를 보러 온 20대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학생 이아무개(22)씨는 "그동안 유신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추상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당시 인혁당 사건 상황을 자세히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현정(26)씨는 "단순히 '유신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보다 당시의 영상을 보여주는 게 좋은 것 같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만민공동회는 '유신잔재 청산과 역사정의를 위한 민주행동'(이하 민주행동)이 지난 17일부터 진행 중인 '10월 유신 40년 맞이 집중행동 주간'의 일환으로 열린 행사다. '10월 유신' 집중행동 주간은 오는 28일까지 계속된다. 


태그:#유신의추억, #박정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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