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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5일 밤 11시 국정감사를 위해 월요일을 불태우고 있는 의원회관 신관
ⓒ 박선희

"묻는 말에만 대답하세요! 그래서 한다는 겁니까? 안 한다는 겁니까?"

장관을 당황하게 하는 국회의원의 날카로운 외침. 매년 10월마다 국정감사장에서는 입법부의 창과 행정부의 방패가 부지런히 부딪친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국회는 1년 동안 정부가 잘 운영됐는지 요모조모 뜯어본다. MBC 파업이나 삼성 직업병 문제 등 사회이슈에 대해 잘 대처했나 감시한다.

국회 내 16개의 상임위와 2개의 특별위별로 감사기관을 배분해 진행하는 국정감사가 지난 4일부터 오는 26일까지 장장 22일간 위원회별 일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나도 지난 4일부터 19일째, 국회의원의 창을 만들고 날카롭게 갈아주는 의원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국정감사 step1. 밤이 돼도 불 꺼지지 않는 의원회관

"국회의원실에서 알바 할 사람? 휴학생만 된대."

계기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라 온 저 한마디 때문이었다. 나는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한 상태였고, 추석 이후 어떠한 계획도 없어 막막했다.

"저 할래요! 저 시켜주세요."

단체 채팅방에서 단 1초 만에 응답한 잉여력과 스피드로 나는 지인에게 국회의원실 '국정감사 도우미'로 추천되었고, 추석이 지나자마자 면접을 보고 출근하게 됐다.

'인턴도 아니고 알바인데 뭐, 커피타고 복사하고 전화받는 일 빼면 문서정리면 되겠지'라고 쉽게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다. 첫 출근한 날 나는 하루종일 자리에 앉아 일만 했고, 그래도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남겨두고 오후 9시에 퇴근했다.

"선희씨, 급한 거 아니니까 오늘은 일찍 퇴근해~"라는 말과 함께.
그때도 의원실에는 여전히 6명 넘는 사람들이 남아 한창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은 노동정책보좌관을 보조하는 간단한 업무였다. 의원실에서는 수석보좌관, 정책보좌관, 비서관, 인턴 등 다양한 직급이 다양한 업무를 나눠하는데, 특히 정책보좌관은 의원의 입법활동이나 정책활동을 지원한다. 국정감사가 이 입법활동과 정책활동의 결과를 보여주는 큰일이기도 하고, 다른 때 보다 발언이 더 크게 이슈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정책보좌관들은 이 기간이 가장 바쁘다.

국정감사를 위해 각 의원실은 한두 달 전부터 준비하고 자료를 요청하는데, 나는 이렇게 받은 자료를 신속히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가공하는 일을 맡았다. 사실 말로는 간단하지만 내용은 간단치 않았다. 이행강제금, 타임오프제, 취업규칙, 모성보호 ……. 어떤 제도인지도 모르는데, 노동부에서 제공받은 현황을 토대로 제도가 잘 시행되고 있는지, 문제는 없는지 살펴보는 게 내 임무였다.

관련법과 제도를 공부하랴, 시행이 잘 되는지 부족한 점이 없는지 검색하랴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고도 야근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제도와 문제점을 알고 있어도 실제 현황과 수치를 이용해 증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자료 안에 새로운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문제인줄 알았는데 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말단 알바도 야근을 하고, 새벽이 지나도록 의원회관이 밝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정감사 step2. '잘봐달라' 피감기관, 자료제출 요구엔...

▲ 의원실 내 내자리 왼쪽에 쌓여있는 것은 검토해서 정리해야할 자료들, 포스트잇에는 자료에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전화할 담당자 연락처가 적혀있다
ⓒ 박선희

국정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일주일. 의원실 분위기나 야근, 내가 맡은 업무에도 익숙해졌지만 적응이 안 되는 게 딱 한가지 있었다. 바로 감사 대상기관의 단체 방문. 한 번은 자리에 앉아 일하고 있었는데,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의원실로 줄줄이 들어오는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어정쩡한 자세로 반쯤 일어났다. 의원실을 금방 메운 검은정장 차림의 사람들은 "피감기관에서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조직적으로 인사를 했다. '내가 인사 받을 사람은 아닌데...'라는 생각에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우리 의원실이 소속된 환경노동위 대상기관인 환경부와 고용노동부의 산하 기관만 해도 50개나 된다. 어떤 행정부처는 산하기관이 너무 많아서 몇 년째 국정감사 때 질의받은 적이 없을 정도란다.

이 많은 산하기관을 하루에 8-10개씩 나눠서 국정감사를 치르는데, 대개는 따로 한두 명씩 찾아와서 요청했던 자료를 제출하고, 보좌관과 인사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국정감사를 짜고치는 고스톱으로 여겨선 안 된다. 겉으론 웃고 있지만 한쪽은 치부를 숨기기 위해, 한쪽은 치부를 드러내기 위해 야근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원실에서는 사전에 요청한 국감자료를 토대로 해당기관이 사업이나 운영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한다. 이 자료를 볼 때 보내온 자료가 충분하다면 문제가 없지만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의도대로 자료가 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원하던 자료가 아예 없는 수도 있다. 이 때 부족한 자료나 더 알고 싶은 내용에 대해 '자료제출'을 요구하는데 대상기관도 여러 의원실로부터 한꺼번에 자료요청을 받다보니 부하가 걸려 원하는 자료를 원하는 때에 받기는 쉽지 않았다.

국정감사 step3. 세상을 바꾸는 방법

▲ 국회의사당 점심먹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산책을 하기도 한다. 볕이 좋아 주말엔 주변에서 놀러오는 사람도 많다.
ⓒ 박선희

의원실은 기본적으로 국민들의 민원을 받고, 그 문제를 정책이나 법으로 만드는 일을 지원하기 때문에 국감기간에도 민원전화가 많이 온다. 이 중에는 국감기간에 더 빛을 발해 국감장에 증인이 되어 문제해결을 촉구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의원 지지자나 의원을 욕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오기도 한다.

하루는 의원실 사람들이 모두 국감장 지원을 나가 전화 받을 사람이 없을 때 전화가 왔다.

"아 내가 몇 마디하고 싶어서 전화를 했는데 이정희씨의 NLL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의원실로 전화한 거 맞으시죠?"

머리를 망치로 맞은 기분, 이 분 전화를 잘 못 하신거 아닌가? 전화를 받고 약 10분간 "네네,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의원실을 대표해 이야기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서… 네네."를 반복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의원의 활동이 맘에 안들고 분에 못 이겨 전화해 쌍욕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일에, 민원에 치이니 정신도 몸도 힘든데 왜 국회에서 일할까? 트위터 계정 '국회 옆 대나무숲'을 읽으면서도 한참 생각했다. 몇날 며칠 밤을 새며 일해도 ○○○의원이 한 일이 되어버리는데 왜? 그때 내가 정리했던 자료가 기사화된 것을 보게 됐다. 어느 기관이 가장 많은 강제이행금을 부과받았나 정리했던 것이었다.

"나중에 이 자료들이 보도된 거 보면 가슴이 찡할 거야, 그게 마약이라고 마약."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노동정책보좌관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기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밤새 내 생각대로 정리한 자료를 보고 누군가는 동의하는구나, 함께 바꾸자고 나서기도 하겠구나.

'이렇게 세상이 조금씩 변해갈 수도 있겠구나'


태그:#국정감사, #오마이프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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