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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북방한계선(NLL)은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린다. 1999년부터 네 차례의 해상 교전이 벌어졌고, 2010년에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전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사이에 남한에서는 NLL은 어떻게 해서든 사수해야 할 '영토선'이라는 인식이, 북한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무력화해야 할 '유령선'이라는 인식이 더욱 강해졌다.

또한 NLL은 남한 내부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적인 합의를 어렵게 하는 내부 갈등선이기도 하다. 대선을 앞두고 NLL을 둘러싼 첨예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최전방 경계태세 점검 방문 차 연평도에 방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최전방 경계태세 점검 방문 차 연평도에 방문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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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NLL과 같은 안보 이슈는 다른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성격이 짙다. 정수장학회 논란으로 박근혜 후보가 궁지에 몰리고 있고 내곡동 대통령 사저 특검이 본격 개시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어떻게 해서든 NLL를 띄우려고 하는 새누리당과 MB의 언행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다.

NLL은 또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을 서해에까지 끌어들인 국제적 갈등선이기도 하다. 2010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전을 거치면서 미국은 대북 억제를 이유로 서해의 출입 빈도와 강도를 높이고 있다. 서해를 자신의 앞마당으로 간주해온 중국의 반발 역시 거세지고 있다.

이처럼 NLL를 둘러싸고 남남갈등, 남북갈등, 미중갈등이 중첩되면서 'NLL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는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 출발점은 NLL에 대한 감정적이고 정략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역사적 진실을 직시하고 기존 남북한 합의를 존중하며 미래 지향적인 자세로 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데에 있다.

NLL의 역사적 진실은?

NLL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합리적인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NLL의 근원부터 정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정작 NLL를 설정한 미국의 1970년대 비밀문서를 추적해본 결과, NLL은 시작부터가 의문투성이다.

우선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NLL이 1965년 1월 유엔사령부에서 내부적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NLL이 1953년 8월 유엔사령관이 선포한 것이라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 유엔사 내부 지침에 해당되기 때문에 북한에게도 통보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미국은 'NLL이 영토선이 아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유엔사령부와 한국 선박의 작전금지선으로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NLL을 영토선으로 간주하는 것은 국제법은 물론이고 미국 해양법에도 위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은 NLL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까지 말했다.  

아울러 NLL를 둘러싼 남북한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간선'까지 검토했다는 점도 미국 비밀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중간선을 설정해 문제를 풀면, 남한은 서해 5도를 자유롭게 입출입할 수 있고 북한은 해주항을 보다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 남북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 1970년대 미국의 입장이었다. (관련기사: 노무현 부관참시할 생각말고 NLL 공부부터 해라)

이랬던 미국은 서해교전 발생 이후 NLL은 남북한이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면서 거리를 두고 있다. 아마도 미중 데탕트 시대에는 NLL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질 것을 우려했던 반면에, 중국과의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오늘날에는 중국을 견제하는 카드로 NLL 문제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 같다.

연평도 서쪽 해상에 배치된 해군 2함대 23전대 237편대 소속 고속정에서 장병들이 초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연평도 인근 해상은 1999년 제1연평해전에 이어 2002년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해역으로 2004년 남북 함정 간 무선통신 등 서해상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측 경비정의 잇따른 NLL 침범으로 긴장이 계속되는 곳이다.
▲ 서해 해군 2함대 연평도 서쪽 해상에 배치된 해군 2함대 23전대 237편대 소속 고속정에서 장병들이 초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연평도 인근 해상은 1999년 제1연평해전에 이어 2002년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해역으로 2004년 남북 함정 간 무선통신 등 서해상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측 경비정의 잇따른 NLL 침범으로 긴장이 계속되는 곳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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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기본합의서가 문제 해결의 출발점

그런데 NLL은 남북한 각자의 경제적·안보적 이익뿐만 아니라 국가의 자존심과 위신까지 걸려 있어 해결하기가 대단히 쉽지 않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NLL에 대한 남한의 경직성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여권의 입장처럼 NLL를 영토선이라고 주장할수록 이를 '유령선'으로 간주하는 북한의 반발을 야기하기 마련이다. 그 결과 남북관계 정상화는 더욱 어려워지고 군비경쟁 격화→ 군사적 긴장 고조→ 안보 딜레마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게 될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 능력을 저하하고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반면 야권의 입장처럼 NLL을 사수하면서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를 통해 긴장완화를 추구하겠다는 발상은 국내적으로는 호소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NLL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북한의 호응 여부가 극히 불확실하다는 문제가 있다. 2007년 10·4 선언으로 합의된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의 첫 사업에 해당되는 공동어로 지정이 기준선 설정의 문제로 합의에 실패했던 사례도 있었다.

그런데 NLL 문제 해결의 기본 방향을 담고 있는 남북한 합의가 있다. MB 정부는 물론이고 여야가 한 목소리로 계승하겠다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바로 그것이다. 기본합의서에는 기존의 관할 구역을 존중하되 해상분계선 설정을 협의하기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은 NLL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남한은 해상분계선 설정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 정신을 되살린다면, 북한은 NLL을 잠정적인 해상분계선으로 인정하고 남한은 해상분계선 설정 협상에 착수하는 것이 도리에 맞다.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민간 전문가들도 남북기본합의서의 이러한 내용을 널리 알려 초당적인 협력과 국민적인 합의 기반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차기 정부의 융통성이 생기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기약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blog.ohmynews.com/wooksik/ 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북방한계선, #N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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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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