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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2개월 동안 김연아 동상 심층취재를 하면서 특종 보도를 했다.
 기자는 2개월 동안 김연아 동상 심층취재를 하면서 특종 보도를 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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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김연아 동상'을 <오마이뉴스>에 첫 보도한 것은 지난 7월 6일(<김연아 조형물 하나에 5억... '혈세낭비' 공방>)이다. 5억짜리 김연아 동상이 '혈세낭비' 사업이라는 군포지역 시민단체의 주장을 담았다. 이 기사는 문제 제기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제보가 이어지고 관련 자료들이 속속 확보되면서 심층 취재로 이어졌다.

'김연아 동상' 두 번째 보도 시점은 지난 9월 21일(<5억짜리 김연아 동상, 황당설계로 혈세 낭비>)이다. 기자의 불충분한 취재와 왜곡된 확신이 때로는 오보를 낳으면서 민형사상의 책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두 번째 보도는 폭로성 기사로 충분한 취재와 자료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보도 불가능한 기사였다. 특종 보도였지만 위험성도 있었다.

보도 직후, 김연아 동상을 설계 제작한 조각가 권아무개(47세)씨는 억울함을 호소했고, 권씨 자문 변호사는 기사를 내리지 않으면 법정에서 만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기자는 김연아 조형물 관련 자료를 상당히 확보했다. 취재 초기엔 시치미를 떼던 시공업자와 관계 공무원들도 불법 시공을 시인했다.

권씨 측의 압력이 불쾌하긴 했지만 위축되지 않았던 것은 충분한 취재와 자료 확보 때문이다. 조각가 권씨가 요청해서 만났다. 혹시라도 억울함을 끼쳤을까 싶어서였다. 있다면 적극 반영하려고 했는데 뒷받침할 근거와 논리가 빈약했다. 실익이 없어서 그랬는지 권씨 측의 법적 대응은 없었다. 언론의 영역은 보도, 거기까지다. 사건의 최종 판단은 검찰과 감사원 등 국가기관의 몫이다.

<오마이뉴스> 첫 보도 이후에 SBS 등의 방송과 '조중동' 등의 일간지, 인터넷과 지역 언론 등의 수십 개 언론사가 김연아 동상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언론 보도로만 치자면 군포 이래 가장 큰 사건이다. 그로부터 한 달 가까이 시간이 지났다. 숨을 죽이고 있던 군포시가 언론과 시민의 관심이 멀어진 틈을 타서 역공에 나섰다. 하지만 명백한 증거물인 김연아 조형물이 군포시 산본동 철쭉동산에 설치돼 있어 사건의 왜곡은 원천 불가능하다.

업자와 조각가, 누군가를 위한 '김연아 조형물'이었다

설계대로 제작, 시공, 설치되지 않은 김연아 조형물.
 설계대로 제작, 시공, 설치되지 않은 김연아 조형물.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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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군포시장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을 가졌다. 시장이 기자회견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명칭 문제였다. 김연아 동상의 공식 명칭은 '철쭉동산 주변 경관조성 조형물'인데 '군포시 비리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군포비대위)가 김연아 선수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사건을 부풀리려고 '김연아 동상'이라고 명칭을 임의 변경했다는 것이다.

'김연아 유명세'를 이용한 당사자는 군포시다. 군포시는 35억 원이 소요되는 '주요관문 경관조성사업' 계획을 2009년에 세웠다. 그 중에서 15억4000만 원을 들여 김연아 조형물을 3개 세우려고 했다가 군포시의회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김연아 조형물 실시설계 용역이 미리 발주되면서 김연아 조형물이 부득불 추진됐다. 시민들을 위한 사업이었다면 시의회의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었을까.

시민을 위한 사업이라면 투명하고 합리적이어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조형물의 주인공인 김연아 선수 측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이다. 김연아 선수 측은 2011년 김연아 거리조성 사업이 논란이 되자 군포시에 사업 중단을 요구했다. 군포시는 김연아 선수 측의 반대가 예상되자 동의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추진했고 결국엔 '김연아를 닮지 않은 김연아 동상'을 탄생시켰다.

군포시는 시민단체와 전문가 등의 참여를 차단시켰다. 전문가는 조각가 권씨 혼자였다. 실시설계 용역에서부터 '마스터 플래너'로 참여한 권씨는 이 사업에서 가장 큰 수혜자다. 군포시는 시장과 공무원, 시의회를 상대로 4회에 걸쳐 용역보고회를 가졌기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용역보고 과정에서 편법 설계로 예산이 부풀려지고, 제작 불가능한 설계의 문제점은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전문가나 시민단체가 참여했다면 불법 조형물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8월 15일 경기도 파주에 조성된 고(故) 장준하 추모벽(조형물) 전체 공사비는 2억5000만 원이다. 김연아 조형물 공사비의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시민과 전문가들로 추진위원회가 결성됐고, 파주시는 추진위의 결정에 따른 실무적 역할을 맡았다. 민관 협력으로 추진된 장준하 추모공원 1단계 조성사업은 투명한 절차와 합리적인 역할 분담을 통해 사업 취지를 충족시켰다. 검증 장치가 있고 없음에 따라 사업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을 두 사업은 보여준다.

김연아 동상은 공무원과 시장의 몫이었다. 김 시장은 설치 위치를 '산본IC'에서 '철쭉동산'으로 변경시켰다. 자신의 역점사업인 철쭉동산에 김연아 조형물을 유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시민 눈높이를 맞추지는 못했다. 김연아 동상은 10.3m 높이에 설치됐는데 목을 길게 빼도 조형물 전체 감상이 어렵다. 전체를 감상하려면 100m가량 떨어져서 봐야 한다.

한적한 장소에 설치한 것도 문제다. 시민을 위한 조형물이라면 접근이 용이한 장소에 설치됐어야 했다. 군포시는 주변 경관 조성이란 미명 아래 5억 원을 쏟아부었다. 군포시의 올해 재정자립도는 74.2%로 경기도 재정 자립도 61.7%보다 높지만 혈세를 낭비할 정도로 재정이 튼튼한 것은 아니다. 조각가들은 김연아 조형물에 대해 시민을 위한 조형물도, 5억짜리도 아니라고 비판하고 있다. 김연아 조형물 조성사업은 시민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시공업자와 조각가 그리고, 누군가를 위한 사업이었다.

검찰 vs 감사원 중 누가 먼저 진상규명할까?

군포시의 5억짜리 김연아 조형물은 혈세낭비 사업이었다.
 군포시의 5억짜리 김연아 조형물은 혈세낭비 사업이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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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조형물이 '논란'과 '설전'으로 번지고 있다. 진상을 규명하려는 시민운동과 방어하려는 군포시의 충돌이다. 진실의 실체는 여론에 의해 갈릴 것이다. 문제는 진실이 왜곡되면 불신이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고 거짓이 이기면 강물처럼 흘러야 할 정의는 목이 탈 것이다. 거짓이 진실을 덮는 사회는 불행하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라고 검찰과 감사원은 존재하는 것이다.

군포비대위는 검찰이 그 소임을 소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할 검찰인 '수원지방검찰청안양지청(이하 '검찰') 관계자에게 김연아 조형물 관련 자료를 이미 제공했는데도 수사를 외면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최근에 불러서 방문했더니 수사의지는커녕 고발하라고만 종용하더라는 것이다. 군포비대위 관계자는 "검찰의 고발 종용 의도가 불순해서 고발하지 않았다"면서 "검찰은 고발을 해야만 수사하는 기관이냐"고 반문했다.

군포비대위 관계자의 반응이 지방 권력자를 상대하다가 생긴 피해의식 때문인지 검찰에 대한 불신이 원래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검찰이 불신의 원인을 제공한 것 같다. 검찰에 관련 자료를 제공하고, 검찰이 수사를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는다면 누가 신뢰하겠는가. 검찰 관계자는 15일 "(김연아 조형물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다"면서 "밀린 사건이 많아서 수사 진행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진상규명에 책임이 있는 국가기관이다. 국민들은 의혹과 설전이 아닌 진실을 원한다. 밀린 사건 때문에 국민의 관심 사건을 손대지 못하고 있다는 검찰의 해명을 국민들이 납득할지는 미지수다. 감사원이 김연아 조형물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국가기관이 '진상규명'이란 서비스를 먼저 제공하는지 두고 보자. 국민의 신뢰는 거저 생기지 않는다.

군포시는 진상조사단 구성에 나서라

11일 기자회견 중인 김윤주 군포시장
 11일 기자회견 중인 김윤주 군포시장
ⓒ 윤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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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주 시장은 김연아 동상은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시민단체가 언론에 제기하면서 군포 이미지를 추락시켰다며 군포비대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논란이 된 ▲ 실시설계용역 수의계약 문제 ▲ 편법설계 문제 ▲ 예산낭비와 비리의혹 ▲ 불법 제작과 시공 등에 대해서는 일절 해명하지 않았다.

김연아 조형물은 의혹 수준이 아니다. 편법설계와 불법시공 등의 실체가 드러났다. 그래서 시장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진상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알고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만일 알고 그랬다면 행정 책임자로서 도덕성 해이가 심각하다. 군포 이미지를 추락시킨 주범은 시민단체가 아니라 불투명한 사업방식으로 혈세를 낭비한 군포시다.

'김연아 동상'이냐 '철쭉동산 주변 경관조성 조형물'이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군포시가 취할 태도는 궁색한 해명과 억지 주장이 아니라 김연아 선수 측과 군포시민에게 잘못을 고백하며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 설전이 예상되는 공개토론보다는 공정한 진상조사와 한 점 의혹 없는 규명으로 추락한 행정불신을 회복시켜야 한다. 김 시장은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자는 시민단체와 시의회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등 김연아 조형물로 인한 불신과 갈등을 씻는 데 앞장서야 한다.

너무 앞선 것인지는 모르겠다. 소모적 논쟁을 더는 데 도움 되기를 바라면서 의견을 밝힌다. 김연아 조형물이 혈세낭비 사업으로 최종 밝혀지면 이 사업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시민단체 일부 관계자는 불법 조형물은 철거하고 혈세 환수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자는 철거가 아닌 존치 입장이다. 단, 김연아 조형물 앞에 불법에 의한 혈세낭비 사업이란 안내문을 설치해서 시민과 공무원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지 않을까.


태그:#김연아 동상, #군포시, #기자수첩, #검찰, #김윤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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