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꽹과리, 장구, 북, 징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고 그 앞에 스무 개 정도의 의자가 놓여 있다. 지난 5일 오후 1시 성북동주민센터 5층 다목적실, 공연 시작 30분 여를 앞두고 준비가 한창인데 할머니 두 분이 문을 밀고 들어서신다. 반색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한 할머니가 입안엣 소리를 하신다.

"1시부터 동사무소에서 닭죽 준다고 해서 왔는데..."

일찍 도착해 할 일 없이 앉아 있던 첫 관객인 내가 나서서 아래층 주민센터 사무실로 가 문의하니 닭죽 드리는 행사 같은 건 없단다. 할머니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혹시 닭죽 생각을 하고 점심을 거르고 오신 건 아닌지 여쭈니 다행히 한 술 뜨고 왔다고 걱정 말라고 하신다. 그래도 걱정되는 내 마음.

대부분의 다른 어르신들도 역시 시작 시간보다는 일찍들 오셨고, 공연단에서는 기다리는 지루함을 덜어드릴 요량으로 정식 공연에 앞서 민요와 춤으로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그리고는 드디어 정식 인사와 함께 공연의 막이 올랐다.

공연을 시작하며 인사하는 출연자들
▲ 움직이는 판소리 <석숭 이야기> 공연을 시작하며 인사하는 출연자들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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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숭 이야기>는 자신의 사나운 팔자를 한탄하던 '석숭'이라는 인물이 염라대왕에게 가서 도대체 자신의 팔자가 왜 그런지 물어보고 오려고 길을 떠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만난 여러 인물들의 고된 팔자까지 대신해서 물어보고 돌아온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극이다.

특히 이번 공연은 일명 '움직이는 판소리'라고 해서 소리와 연극이 어우러지도록 구성을 했기 때문에 어르신들이 보기에 지루하지 않고 전달이 쉬웠으며 흥미로웠다. 공연 내내 어르신들은 웃음과 박수뿐만이 아니라 극중 인물들의 말에 적극적으로 대답을 하는 등 열렬하게 반응하셨다.

조실부모하고 머슴 노릇을 하며 돈을 모았으나 그 돈을 다 잃어버린 석숭은 염라대왕에게 가는 길에 자기 못지않게 사나운 팔자를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 첫 날 밤을 치르기도 전에 자꾸 남편이 죽고마는 여인에서부터 수염이 고드름처럼 얼어 붙어 땅바닥에 붙어 있고 등에 진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노인, 집이 자꾸만 무너져 내려서 수수깡집에서 사는 부부, 천 년 동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이무기까지.

등에 진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노인과 석숭
▲ 움직이는 판소리 <석숭 이야기>의 한 장면 등에 진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노인과 석숭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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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깡집에 사는 부부와 석숭
▲ 움직이는 판소리 <석숭 이야기> 의 한 장면 수수깡집에 사는 부부와 석숭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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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숭은 우여곡절 끝에 염라대왕을 만나 자신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팔자에 숨겨진 비밀을 듣고, 나름의 답을 얻어 돌아온다. 여인은 새로운 배필을 만날 것이며, 노인의 괴로움은 지난 날의 죄때문이었고, 부부의 집이 자꾸 무너지는 것은 근본인 부모님을 잘 섬기지 못한 까닭이며, 이무기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것은 과한 욕심 탓이었던 것. 그래서 마지막은 해피엔딩!

어르신들의 박수가 터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흥겨운 민요와 춤. 자신이 젊어서부터 하도 춤을 좋아해서 별명이 '건달'이라는 여든 넷 할머니가 앞으로 나와 예사롭지 않은 춤사위를 선보이신다. 다시 또 박수가 터진다.

공연단에서 마련한 떡과 음료수를 받아들고 나가시면서 어르신들이 다 한 마디씩 하신다.

"재미있었어. 우스워 죽는 줄 알았어! 10년은 젊어진 것 같네. 공짜로 보여주고 떡도 주고 고맙네, 고마워!"

공연이 끝난 후에도 흥겨운 어르신 관객의 춤은 계속되고...
▲ 움직이는 판소리 <석숭 이야기> 공연이 끝난 후에도 흥겨운 어르신 관객의 춤은 계속되고...
ⓒ 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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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석숭 이야기>를 각색하고 직접 출연까지 한 임미경 연출가와의 일문일답이다.

- 총 세 번의 공연 중 오늘이 첫 공연인데, 이번 공연은 어떻게 마련하게 된 건가?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에서 아동과 영유아 중심의 연극놀이를 넘어 노인층을 주 관객으로 하는 공연을 하기로 하고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올초부터 준비했다."

- 설화 중에서 <석숭 이야기>를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어르신들에게 적합한 이야기라는 직감이 왔다. '석숭'이라는 인물은 팔자 탓을 하며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 나간다. 어려운 생을 살아오신 어르신들도 신세 타령보다는 지나온 인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남은 시간 행복하고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다."

-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도 공연을 하려면 무척 준비할 것이 많은데 그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다.
"역시 인력과 예산이다. 공연의 질을 생각하면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하니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적은 예산을 쪼개 쓰며 대부분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예산 지원을 받아서 안정감있게 공연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과제다." 

- 오늘 약 서른 명 정도의 관객이 모였다. 어르신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다고 보는가?
"관객수도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예상보다는 활발하게 반응해 주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중간 중간 대사를 받아주시고 박수를 많이 쳐주셔서 힘이 났다. 처음에는 약간 굳은 얼굴이었던 분들이 나가실 때 보니 얼굴이 많이 펴진 것 같고 '고맙다'며 손을 잡아 주셔서 보람을 느꼈다."

- 아까 극중에서 부른 노래를 다시 한 번 듣고 싶다. 그 가사가 어르신들에게 잘 맞아서 인상적이었는데, 부탁한다(임미경 연출가는 그 노래가 <사설난봉가>의 가사를 개사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구성지게 들려주었다).

"왜 생겼나 왜 생겼나 / 요다지 곱게도 왜 생겼나 / 이 풍진 세상 살다보니 / 백발성성 주름은 가득 / 활짝 웃는 그 얼굴에 / 인생 설움 다 묻어있구나."    

덧붙이는 글 | 움직이는 판소리 <석숭 이야기> (각색, 연출 : 임미경 / 출연 : 성경철, 김유림, 임미경 / 악사 : 이광용, 박영주)
* 공연 일정 : 10/9 오후 4시 광장종합사회복지관 2층 강당, 10/10 오전 10시 30분 충북 보은 효나눔복지센터



태그:#석숭 이야기,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석숭, #판소리, #움직이는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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