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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노건평 뭉칫돈'이 건평씨와 무관한 것으로 결론이 나는 모양입니다. 4일과 5일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그렇습니다. 검찰이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 측근 계좌에서 수백억 원대 뭉칫돈이 발견됐다며 언론에 공개한 사건이 결국 '건평씨와 무관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습니다.

어이가 없습니다. 검찰이 언론에 흘리고, 수구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마치 엄청난 의혹이 있는 것처럼 알려진 사건이 의혹 당사자와 무관한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지난 5월 이 '뭉칫돈'이 마치 노무현 대통령 쪽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도해 물의를 빚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불과 며칠 앞둔 상태에서 이 사건을 1면에 대문짝하게 보도한 조선일보, 하지만 뭉칫돈이 건평씨와 무관한 것으로 결론이 나니까 사과나 정정보도 없이 사회면에 아주 간단하게 보도합니다. 소설 쓰고, 엉뚱한 사람 죄인 취급 해놓고도 사과는 물론 최소한의 책임지는 모습도 없습니다.

검찰과 수구언론의 공생관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경향신문 2012년 10월5일자 22면
▲ 경향신문 경향신문 2012년 10월5일자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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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평씨와 무관한 것으로 결론이 났고, 언론도 '무관하다'고 보도했으니 이제 없던 일로 해야 할까요. 그럴 순 없습니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혐의로 결론 났으니 이제 '없던 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일방적인 재단과 여론몰이를 강행한 검찰과 언론에 대해서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돈의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지 않은 채 섣불리 의혹을 언론에 흘린 검찰의 책임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검찰 발표를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무분별하게 받아쓴 언론의 책임 역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막중한 책임을 느껴야 할 검찰과 언론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한(?) 자세를 보이는 것도 이런 책임론에 방점을 찍게 합니다. 이 글은 이른바 '노건평 뭉칫돈' 사건과 관련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에 대한 짧은 기록입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많지만, 당시 창원지검 이준명 차장검사에 대한 징계는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그는 지난 5월18일 공식브리핑에서 "노건평씨 자금관리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계좌에서 의심스러운 수백억 원의 뭉칫돈이 발견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을 기자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이 차장검사의 발언은 5월18일과 19일 거의 대다수 언론에 주요 기사로 보도됐습니다.

이준명 차장검사의 당시 브리핑에 대해 노건평씨 측 정재성 변호사는 '피의사실 공표'라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정재성 변호사는 당시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두 차례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뭉칫돈에 대해 아무런 조사를 받지 않았는데 (검찰이) 뭉칫돈과 연결시키고 있다"며 "법정에 세우기도 전에 사실이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그냥 그런 식으로 얘기해버리면 국민들이 그냥 유죄로 단정하지 않겠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검찰은 당시 창원지검 이준명 차장검사를 반드시 징계해야

당시 창원지검 이준명 차장검사의 행위는 명백한 명예훼손죄에 피의사실 공표죄에도 해당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고의적으로 흘리려 한 의도가 짙기 때문입니다.

한겨레 2012년 5월29일자 사설
▲ 한겨레 한겨레 2012년 5월29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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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판단하게 된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한겨레 5월29일자 사설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5월18일 공식브리핑에서 수백억 원의 뭉칫돈이 노건평씨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기자들에게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난 뒤인 19일 "하지도 않은 말을 왜 보도하느냐"며 언론책임론을 제기하더니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한 상태에서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잖으냐"며 혼선을 부추겼습니다.

갈팡질팡 하던 검찰이 이틀 뒤인 5월21일엔 '뭉칫돈이 노건평씨와 관련 있다고 말한 적 없다'며 기존 입장을 또 다시 번복합니다. 그랬던 검찰이 5월25일엔 "뭉칫돈을 노건평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입장을 최종적으로(!) 밝힙니다. 당시 검찰이 이 사건의 처리방향을 두고 얼마나 '왔다갔다' 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현 수사공보준칙에 따르면 추측성 보도 방지 목적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기소 전에 수사 상황을 공개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준명 당시 차장검사는 추측성 보도 방지 목적은커녕 언론으로 하여금 추측성 보도를 하도록 오히려 부추겼습니다. '죄질'로만 따져도 상당히 나쁜 축에 속한다는 얘기입니다.

이제 남은 건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언론에 발표한 당시 창원지검 이준명 차장검사를 검찰이 징계하는 일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건평씨 수백억 원 비자금 계좌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검찰 조치와 상관없이 피해자들이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조선일보는 사과문 게재하고 재발방지 약속해야

'조선일보 책임론'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시 검찰 브리핑을 대다수 언론이 받아쓰긴 했지만 그래도 사실관계 위주로만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1·2·3면에 주요기사로 보도하면서 사실관계보다는 자신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한'소설 수준'의 기사를 선보였습니다. 조선일보 책임이 검찰 못지않게 무거운 이유입니다. 조선일보 기자들이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조선일보 2012년 5월19일자 1면
▲ 조선일보 조선일보 2012년 5월19일자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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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9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는 전수용 기자가 쓴 <노건평 자금관리인 계좌에 300억>이라는 기사입니다. 당시 전수용 기자는 기사에서 검찰 관계자 말을 인용 "노 전 대통령이나 그 자녀와는 상관이 없고 정치자금도 아니다"라면서도 "노 전 대통령 가족이나 친노(親盧) 인사가 이 돈 가운데 일부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누구도 속단할 수 없다"고 보도했습니다.

자… 그런데 이 보도 내용,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요? 조선일보가 사과문 게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다른 언론과 달리 1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 하고 관련 기사를 종합면에 도배까지 했기 때문에 사과문의 크기와 강도 또한 달라야 합니다. 사회면에 '노건평씨 뭉친돈이 건평씨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도로 처리할 사안이 결코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조선일보의 공식 사과문 게재와는 별도로 저는 당시 '소설기사'를 쓴 기자들에 대한 책임론도 거론하고 싶습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5월19일자 1면을 비롯해 2면과 3면 거의 전면을 할애, 노건평씨의 수백억 원 비자금 계좌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는데  '소설기사'는 2면과 3면에서 두드러졌습니다.

조선일보 이명진 기자는 별도 반성문 실어야

특히 조선일보 이명진 기자가 작성한 <300억 누구 돈이길래… 괴자금 계좌, 盧 퇴임하자 입출금 '스톱'>(2면)이라는 기사는, 기사를 소설이라는 장르로 확산시킨 대역작(?)으로 꼽힐 만큼 '문제작'이라는 게 저의 판단입니다. 이명진 기자가 쓴 당시 기사를 잠깐 보시죠.

조선일보 2012년 5월19일자 2면
▲ 조선일보 조선일보 2012년 5월19일자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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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로 검은돈이 발각될 것을 우려한 건평씨나 박(영재)씨가 의도적으로 돈 흐름을 중단시켰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 이들이 추적을 피하기 위해 면밀하게 세탁했을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 검찰은 계좌 소유주인 박(영재)씨도 괴자금의 주인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가 노 전 대통령이나 건평씨를 등에 업고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다는 얘기가 된다 …."

이명진 기자의 'SF적 상상력'은 3면 기사 <괴자금 사용처 밝혀지면 메가톤급 파문>에서도 여실히 발휘됩니다. 그의 놀라운 상상력을 다시 한 번 감상해 보시지요.

"현재까지는 문제의 괴자금이 건평씨와 그 주변 인물들이 여기저기서 받아 챙긴 이권개입 대가라고 보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건평씨가 자신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혹은 노 전 대통령 가족의 '퇴임 후'를 위해 노 전 대통령 모르게 챙겨 둔 돈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괴자금 중 일부가 노 전 대통령 가족이나 친노(親盧) 인사들의 정치자금 등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드러난다면 파장은 간단치 않을 수 있다."

앞서 전수용 기자가 작성한 1면 머리기사의 경우, 백 번을 양보해 검찰의 발표를 받아쓴 거라고 이해한다고 하죠. 하지만 이명진 기자가 쓴 기사는 '받아쓰기' 차원을 넘어 '적극적 부풀리기' 양상을 보입니다. 조선일보의 공식 사과와는 별개로 이명진 기자 개인의 사과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런 식의 '소설'을 써놓고도 사과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과연 기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른 건 논외로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독자들에게 자신의 '오보'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게 책임 있는 자세일 겁니다.

관련 내용 대서특필한 KBS MBC 보도책임자도 징계해야

KBS MBC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특히 MBC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지난 5월18일 MBC < 뉴스데스크>는 당시 최대 이슈 가운데 하나였던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를 밀어내고 노건평씨 비자금 계좌 의혹을 톱뉴스로 보도했습니다. 누가 봐도 상식이하의 편집이었습니다. 같은 날 SBS가 < 8뉴스>에서 이 사안을 보도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 아닐까요.

2012년 5월18일 MBC <뉴스데스크>
▲ MBC 2012년 5월18일 MBC <뉴스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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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노건평 비자금 의혹'이  MBC < 뉴스데스크> 헤드라인을 장식하려면 뭉칫돈과 관련한 검찰의 추정이 아닌  '사실이 확인된 근거'가 확보됐어야 합니다. 이건 언론학 교과서까지 갈 필요도 없는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하지만 근거도 불충분하고, 노건평씨 측이 사실무근이라며 여론수사를 중단하라고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MBC는 이 뉴스를 톱으로 올렸습니다. 그것도 파이시티 인허가 개발 비리와 관련한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뒤로 미룬 채 말이죠. 때문에 당시 MBC < 뉴스데스크>는 '최시중·박영준 구속기소'보다 '노건평 수백억 뭉칫돈'이 화두를 장식했습니다.

이런 상식 이하의 편집을 한 MBC가 노건평씨의 수백억 원 비자금 계좌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이후 어떤 보도태도를 보였을까요. 침묵입니다. 대다수 언론이 심지어 조선일보까지도 5일자 사회면에서 '노건평 뭉칫돈'무혐의 사실을 사회면에서 보도했지만 MBC는 지금까지 메인뉴스에서 '나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25일 검찰이 노건평씨를 변호사법 위반과 업무상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는데 MBC는 당일 이 소식을 < 뉴스데스크>에서 단신으로 보도하면서 '노(건평)씨 수사와 관련해 (뭉칫돈이) 발견된 것은 맞지만 노씨 관련 계좌는 아니다'라는 검찰의 발표를 짧게 처리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최근 노건평씨와 관련한 의혹이 무혐의 쪽으로 결론이 났는데도 이에 대한 사과는 없습니다. 몇 개월 전,'검찰발 단신'으로 보도한 뒤 할 일 다 했다는 식입니다.

2012년 5월18일 KBS <뉴스9>
▲ KBS 2012년 5월18일 KBS <뉴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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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지난 5월18일 창원지검의 '공식브리핑' 내용을 < 뉴스9> 5번째 꼭지로 보도한 KBS는 노건평 씨의 수백억 원 비자금 계좌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이후 지금까지 메인뉴스에서 이와 관련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발표한 검찰의 브리핑 내용은 주요뉴스로 다루더니 그 보도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나니까 입을 굳게 다물고 있습니다.

당시 창원지검 이준명 차장검사, 조선일보, 조선일보 이명진 기자, KBS, MBC - '노건평 뭉칫돈' 의혹을 언론에 공개하고 이를 확인 없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검사 및 기자들 그리고 언론사들입니다. '노건평 뭉칫돈'이 무혐의로 밝혀진 이상 이제 이들에게 남은 건 공개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마련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 테지만 이들의 행태를 보니 그걸 기대하기는 무리인 듯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장문의 글을 쓴 것도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 사과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들의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합니다.


태그:#노건평, #조선일보, #창원지검, #이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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