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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송편은 솔잎을 넣어서 찌기 때문에 송편입니다. 솔잎을 충분히 넣고, 송편을 3층 내지는 4층 정도로 올려 놓습니다.
 송편은 솔잎을 넣어서 찌기 때문에 송편입니다. 솔잎을 충분히 넣고, 송편을 3층 내지는 4층 정도로 올려 놓습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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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싸이가 빌보드차트 2위에 들어간 건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한 것 같아요."

평소 음악과 연극에 관심이 많은 대학교 4학년생 조카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트챠트 상위권에 오른 것에 대해 흥분을 감출 수 없었던지 상기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렇지, 내가 8년 전에 영국에 갔을 때 고속도로 매점에 들렀어. 점원이 나보고 일본사람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중국 사람이냐고... 황당해서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이 사람이 한국이란 나라를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거야. 그런데 옆에서 일하는 점원이 반기면서 자기는 한국을 안다더군. 그래서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2002년 월드컵 개최국이 한국과 일본이어서 안다고 그러더라.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생각은 세계에서 우리나라를 모르는 사람들이 없는 줄 알았거든. 좀 충격이었다. 그러니까 싸이가 우리나라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크게 일조하고 있는 거지."

내 말에 조카 녀석도 공감하는 표정입니다.

송편을 빚으며 대화하는 우리 집 문화, 작은 행복입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송편 빚는 우리집 풍경. 해마다 추석이면 연출되는 작은 행복입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송편 빚는 우리집 풍경. 해마다 추석이면 연출되는 작은 행복입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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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날인 지난 9월 29일, 큰집에 친지들이 모였습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한 친지들이라고 해봐야 모두 8명. 형님, 형수님, 대학 4년생인 큰조카, 대학 포기하고 작곡 공부 중인 작은 조카, 아내, 올해 대학에 입학한 우리 딸, 고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 그리고 나.

가족들이 명절이나 제사 때나 돼야 이렇게 모이니까 1년에 네 번 모든 식구가 만나게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만나면 제사만 서둘러 지내고 돌아가기에 바쁘지 가족끼리 모여앉아 긴 이야기를 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추석 때에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이유는 송편 빚는 자리 때문입니다. 누가 그렇게 시킨 것도 아닌데 추석 전날 큰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할 일은 뒷산에 올라 푸른 솔잎을 채취해 오는 일입니다. 송편 빚기 싫어서 산속에서 게으름을 피울라치면 여지없이 전화벨이 울립니다. 요령을 좀 피우자는 내 심사를 훤히 꿰뚫고 있는 집사람의 전화입니다.

아마 이 정도의 시간이면 솔잎을 얼마만큼 땄겠다고 계산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왜 날 찾을까요? 보고 싶어서? 아닙니다. 빨리 와서 송편 만들라는 호출입니다.

송편을 찌기전 (본인 또는 친지의)산에서 따온 솔잎을 씻어 가지런히 준비해 둡니다.
 송편을 찌기전 (본인 또는 친지의)산에서 따온 솔잎을 씻어 가지런히 준비해 둡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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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송편을 반죽하는 건 형님 몫, 형수님은 팥이며 콩이며 깨·밤 등 송편에 들어갈 재료를 준비하고 집사람은 송편을 펼쳐놓을 쟁반과 보자기 등을 준비합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송편을 빚는 시간이 되면 모든 식구가 둥그렇게 모여 앉습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됩니다. 형식적으로 조카들에게 "공부는 잘되니?"라는 식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다가 각자 최근 이슈들을 자기가 제일 많이 아는 것처럼 경쟁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내지요.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은 몇 년 전만해도 아이들은 지들끼리 재잘거리며 송편을 빚고 형님과 형수님, 그리고 우리 부부 넷은 고향 이웃사람들의 이야기, 직장 상사 뒷담화 등을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녀석들이 어른들의 대화에 같이 합류를 한 겁니다.

송편 빚으며 나눈 대화의 주제는 '선거'

쪄낸 송편, 반죽할때 쑥을 넣어 만든 송편은 녹색, 호박을 넣은 송편의 노란색입니다.
 쪄낸 송편, 반죽할때 쑥을 넣어 만든 송편은 녹색, 호박을 넣은 송편의 노란색입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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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빠는 이번에 대통령 누굴 뽑을 거예요?"

올해부터 투표권이 부여된 대학 1학년생인 딸아이는 그것이 제일 궁금했는지 눈빛을 반짝이며 묻습니다.

"글쎄다. 내 생각에는 P후보가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인데..."

늘 보수적 안정을 주장해온 형님의 의견입니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A후보가 신선하지 않아요. 덜 가진 사람들을 위해 선행도 많이 베푼 대잖아요." 

큰 아빠의 말씀에는 언제나 고분고분하던 딸아이의 반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늘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딸아이가 언제 저렇게 컸는지 당황했습니다.  

"아빠는?"

딸아이가 대견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내 의견을 묻습니다. 이 상황에서 '인마, 학생이 공부나 할 일이지 무슨 정치에 관심이냐'라고 말하면, 가족 간의 대화가 단절됨은 물론 분위기마저 어색해집니다.

"글쎄... 세 후보들 다 장단점이 있지만 M후보가 정치 경험도 있고 끈끈한 정치적 의리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식구들 각자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충분한 이유를 들어 설명은 하지만, 동조해 달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렇게 송편을 빚으며 정치적인 이야기부터 학교생활, 친구들 이야기까지 하다보면 어느새 송편 반죽은 사라지고 말지요.

가족이 모여 송편 빚는 풍경, 그리고 떡돌림 문화

내가 만든 송편을 공개합니다. 이 정도면 예쁘게 만든 편 아닙니까!
 내가 만든 송편을 공개합니다. 이 정도면 예쁘게 만든 편 아닙니까!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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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니들 할머니가 아빠한테 송편 이쁘게 만들면 예쁜 색시 얻는다고 해서 이쁘게 빚었는데, 이거 다 순 뻥이더라. 하하."
"얼씨구,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

역시 가만히 있을 집사람이 아닙니다. 난 정말 송편을 예쁘게 빚는 편입니다. 이유는 돌아가신 어머님 때문입니다. 솔직히 남자가 송편을 잘 빚어야 얼마나 잘 빚겠습니까. 그런데 어머님은 내가 송편을 예쁘게 잘 빚는다고 늘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송편을 예쁘게 빚는다는 말은 어머님께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송편 빚는 바쁜 손을 덜기 위해 사탕발림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걸 당시에는 모르고, 잘한다고 하니까 정말 잘하는 줄 알고 열심히 했던 게 정말 송편을 예쁘게 빚는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옛날 시골에는 송편을 만들기 위해 쌀 한말을 빻아 반죽해 송편을 만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송편을 빚어야 했는지... 그때엔 무척 귀찮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만한 것이, 옛날엔 송편을 빚어서 옆집, 뒷집, 건너 마을까지 가가호호 다 돌리고 오면 잠시 후 돌려준 만큼의 송편이 돌아옵니다. 그러니 우리 집 송편 속에 팥이나 밤 한 가지만 넣었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강낭콩이며, 꿀이며, 설탕 등 다양한 맛의 송편이 우리가 배달한 만큼 되돌아왔으니까요. 이것이 시골 고유의 인심이었고 정이었습니다.

당시 시골에는 그 흔한 냉장고도 없었습니다. 그 많은 송편을 싸리나무를 쪼개서 만든 소쿠리에 담아 집 앞 나무위에 올려놓으면 한 달이 지나도 쉬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솔잎을 충분히 넣어서 송편을 쪘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 송편을 매일 조금씩 꺼내 밥에 넣어 찌기도 하고, 기름에 살짝 튀기기도 했습니다. 겨울철까지 우리들의 간식은 송편이었던 셈이지요.

그런데 요즘은 송편의 의미가 사라졌습니다. 그냥 추석명절이라니까 형식적으로 시장 떡집에 가서 송편을 사다 차례를 올리는 현상. 시장에서 산 송편의 솔향기가 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떡집에서 소나무 잎을 따다가 떡을 찌는 번거로운 일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송편 빚기 작업이 끝나면, 맛있는 저녁 밥상이 준비됩니다. 송편 빚을때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저녁 자리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송편 빚기 작업이 끝나면, 맛있는 저녁 밥상이 준비됩니다. 송편 빚을때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저녁 자리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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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정도 사라져갑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별 관심 없이 지내는 것은 이미 도시화를 넘어 시골에도 침투했습니다.

낯선 사람이 오면 경계부터 하고 문을 꽁꽁 잠그는 현상. 옛날 시골에는 일부러 사람들이 들어오라고 사립문을 열어놓고 살았습니다. 대문을 굳게 닫아놓고 사는 집은 정이 없다고 그 마을에서 소위 요새 말하는 '왕따'에 해당됐습니다.

내년 추석에는 가족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송편도 빚으며 이야기꽃도 피워보고, 이웃 간 서로 떡을 나누는 문화를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태그:#송편, #송편빚는문화, #추석, #한가위, #이웃간 떡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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