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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한쪽에서 명태를 다루는 아저씨. 명태 머리는 찌개로 인기가 좋단다.
 가게 한쪽에서 명태를 다루는 아저씨. 명태 머리는 찌개로 인기가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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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명절 추석(秋夕)을 사흘 남겨놓은 27일 오후 4시 군산시 신영동의 재래시장(신영시장, 공설시장, 역전시장)을 찾았다. 먼저 도로를 경계로 공설시장(구시장)과 마주하고 있는 신영시장을 돌아보기로 했다. 마침 한 쪽 구석에서 칼질을 열심히 하는 아저씨가 눈에 띄어 다가갔다.

"오늘부터 추석 단대목인데 경기는 좀 어떤가요?"
"아이고, 단대목은 무슨 단대목, 내가 천만 번 얘기혀봐야 필요 없응게 아저씨가 눈으로 확인해 보쇼. 사람이 댕기는가 안 댕기는가, 추석 대목장이 이 정도믄 볼 장 다 본 거쥬··· 오늘(27일)은 생선이 많이 나가고, 내일(28일)은 고기(육류)랑 과일 등이 많이 나가거든유."

"그래도 명태를 다루고 계시잖아요. 주문도 들어오고 매매도 되니까 다루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내내 놀다가 점심밥을 먹고 6만 원(12마리)어치 팔었소. 명태 한 마리 다뤄서 포까지 떠주고 5천 원씩 받는디 뭐가 남겄소. 손님이 대가리는 안 가져가니께 대가리 하나 보고 장사허는 겁니다. 대가리는 명태찜을 전문으로 허는 식당에서 싹쓸이로 사 가니께···."

하얀 얼음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냉동명태를 다듬느라 고개도 들지 못하던 아저씨(65)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재래시장으로 봐서는 나이 든 어르신들이 좀더 오래오래 사셔야 허는디···"라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70대~80대 어른들이 가장 큰 고객이기 때문이라는 것.

명태장사 경력 30년이라는 아저씨는 "요즘 뉴스를 보믄 20대~30대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아짐서 야당 후보들 지지율도 함께 올라가고 있다고 헌다"면서 "젊은 사람들이 대형 마트나 정치인에게만 신경 쓰지 말고 시설과 서비스가 옛날보다 좋아진 재래시장도 많이 애용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들 추석에 차례도 안 지내는 모양유"

‘대목장’이란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던 신영시장 생선전.
 ‘대목장’이란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던 신영시장 생선전.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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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코앞에 둔 단대목이니, 손님과 상인들이 흥정하는 소리로 흥청거려야 할 시장은 썰렁하다 못해 냉랭했다. 100m 달리기 트랙처럼 뻥 뚫린 시장골목, 특히 생선전은 자전거를 타고 달려도 거칠 게 없을 정도로 한가했다. 셔터가 내려진 가게들은 추석 대목의 불경기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선가게 주인아주머니는 "오늘이 최고 큰 장인디 손님이 없는 걸 보믄 다들 추석에 차례도 안 지내는 모양유"라며 울상을 지었다. 또 그는 올해는 배가 조업을 나가지 않아, 30년 만에 풍어였던 작년 가을에 냉동해 두었던 조기를 판다고 했다. 추석 차례상에 올릴 만한 크기의 조기는 세 마리에 1만 원으로 작년보다 30% 정도 오른 가격이었다.

작년에 냉동해두었던 참조기. 제수용은 세 마리 1만 원.
 작년에 냉동해두었던 참조기. 제수용은 세 마리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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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용 박대(상단 왼쪽)와 병어(상단 오른쪽), 냉동 명태(생태)
 제수용 박대(상단 왼쪽)와 병어(상단 오른쪽), 냉동 명태(생태)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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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수용 박대는 세 마리 1만 원, 병어(병치) 한 마리 1만 5천 원~2만 원, 국산 홍어(소) 한 마리 5만 원이었고, 오징어는 네 마리 1만 원, 고등어 다섯 마리 1만 원, 중간 크기 갈치 한 마리 1만 5천 원, 작은 생태 다섯 마리 1만 원, 큰 생태는 세 마리 2만 원, 작은 아귀 한 마리 1만 원, 꽃게 1kg 1만 3천 원이었다. 제수용 박대, 병어가 30%, 오징어와 갈치가 20% 정도 올랐다.

새로 단장한 공설시장, 100년의 역사를 지닌 재래시장으로 알려진다.
 새로 단장한 공설시장, 100년의 역사를 지닌 재래시장으로 알려진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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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전국 최초로 마트형 전통시장으로 새롭게 탄생한 공설시장은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었다. 공설시장은 주차장과 장보기용 카트도 준비되어 있어 가족단위 손님이 느는 추세. 입구에서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아주머니는 전보다 30대~40대 젊은 손님이 늘어난 편이라며 대형마트가 일요일마다 쉬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소를 파는 상인이 거스름돈을 건네고 있다.
 채소를 파는 상인이 거스름돈을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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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가게 아주머니는 1관에 3만 원 하던 시금치가 요즘 1만 5천 원으로 내렸다며 채소는 작년보다 배 가까이 올랐다고 귀띔했다. 강원도 배추(고랭지배추)는 한 포기에 5천 원~7천 원, 무 한 개 3천 원~4천 원, 열무 한 단 3천5백 원, 대파 한 단 1만 2천 원, 쪽파(조선파) 한 무더기 4천 원, 고구마 한 상자(10kg) 3만 5천 원씩 했다.

국내산 도라지는 한 보시기에 5천 원, 중국산은 3천 원, 국내산 고사리 한 보시기 5천 원, 밤 한 되 5천 원, 대추 한 보시기 5천 원, 달걀(왕란) 한 판(30개) 5천5백 원, 미나리 한 단 6천 원, 부추(솔) 한 단 3천 원, 애호박 한 개 3천 원, 실고추 한 봉지 1천 원, 홍당무 두 개 1천 원, 돼지고기 한 근 6천 원, 쇠고기 한 근 1만 5천 원 등이었다.

풍성함과는 달리 손님들 발길이 뜸한 과일가게.
 풍성함과는 달리 손님들 발길이 뜸한 과일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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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비바람을 동반한 몇 차례의 태풍에도 과일전은 풍성했다. 사과, 배, 감 등에서 풍기는 상큼한 과일 향이 가라앉은 기분을 전환시켜주었다. 그러나 손님의 발걸음은 뜸했다. 과일가게 아주머니(50대)는 "재래시장을 선호하는 지금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과일 장사도 못 해 먹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과일가게 아주머니는 "단감이랑 홍시는 열 개 1만 원씩 받고 덤으로 하나를 얹어준다"며 "과일 가격은 작년과 비슷 헌디 장사는 그만 못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웃가게 아주머니는 "오늘이 열이틀(음력 12일)인디도 추석 냄새는 하나도 안 난당게유"라며 거들었다. 제수용 사과와 배는 1만 원에 세 개씩 했는데 씨알은 예년만 못한 것 같았다.  

떡집, 온종일 송편만 4만 원어치 팔아

들기름 냄새와 향긋한 쑥향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떡집의 송편
 들기름 냄새와 향긋한 쑥향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떡집의 송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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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시장의 떡집 골목도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시장에서 떡집을 25년째 운영하고 있다는 할머니(71)는 "오늘 같은 날, 하루 점드락 송편만 4만 원어치 팔고 시루떡은 만져보지도 못 허고 이렇게 앉아 있네유"라며 내리 한숨이다. 할머니는 날마다 열리는 새벽시장 때문에 장사가 더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단골이 많기로 소문난 '골목 떡집'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 가끔 송편을 사가는 손님이 있었으나 사위까지 나와서 일손을 돕던 예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장사는 잘 되는지, 송편은 어떻게 파는지 등을 묻기 미안할 정도. 불경기 탓일까. 아주머니 신경이 예민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렵게 입이 열린 떡집 아주머니는 "송편과 인절미는 1kg에 7천 원, 시루떡(1kg)은 4천 원(콩떡), 5천 원(검정깨), 백설기 2천 원, 비닐 상자에 든 경단과 찹쌀떡은 3천 원, 쇠머리 찰떡도 1kg에 8천 원씩 판다"고 했다. 작년과 비교해보니 떡 종류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직 우려내지 않은 재래종 감. ‘감치기’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직 우려내지 않은 재래종 감. ‘감치기’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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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과일'로 제사나 명절 차례상에 빠지지 않는 감(柿)을 빼놓을 수 없었다. 특히 먹시로 불리는 재래종 감은 모두가 가난했던 코흘리개 시절 가을소풍과 가을운동회를 상징하는 과일로 아이들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해서 감 가게가 하나 남아 있는 감독(감도가)으로 방향을 잡았다.

스물한 살 때 감독에서 장사를 시작, 수십 년 쌓은 노하우로 땡감을 우려내는 기계를 개발해서 집에 설치해 놓은 윤귀섭(72)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손님도 없고, 주문량도 작년보다 못하다"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두 달쯤 이어지는 감 장수는 이제야 시작이기 때문이라는 것.

윤 할아버지는 "작년에는 추석(9월 12일)이 너무 일찍 들어 우린 감을 먹지 못했지만, 올해는 윤달이 끼는 바람에 먹을 수 있다"며 "내일(28일)부터 감을 팔려면 오늘 밤새도록 감을 우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감 시세는 단감과 재래종 감 한 접(100개)에 5만 원으로 예년과 비슷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추석 대목장, #군산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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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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