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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이 고향으로 향하는 열차에 오르고 있다.
 지난 1월 20일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연휴를 하루 앞두고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이 고향으로 향하는 열차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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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를 상징하는 최대 명절 추석이 다가온다. 많은 사람이 귀경길에 몰리며 북새통을 이룬다. 바쁜 일상을 살던 현대인들도 이 순간만큼은 일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과 하루를 보낸다.

물론 명절을 불편해 하는 사람도 많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과 청년실업자, 그리고 결혼에 큰 의지가 없는 처녀총각들이 대개 그렇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어떨까? 특히 지방에서 서울로 '유학'이 아닌,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내려'온 학생들에게 추석은 어떤 의미일까?

여전히 학벌과 대학 서열화가 공고한 한국사회.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의 대학을 비하하는 일명 '지잡대(지방에 있는 잡 대학들)'에 다니는 수도권 대학생을 만나봤다.

[사례1] 지방대는 장학금 받기 쉽냐고?

박현철씨(21, 가명)는 서울에서 경남의 한 도시로 내려와 대학교에 다닌다. 어느덧 추석이 다가오고 있지만, 그에게 '추석'은 없다. 박현철씨는 명절을 거부한다. 대학에 간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1년 전 설날. 박씨는 '멘붕'을 겪었다. 두살 위 친척 누나가 박씨의 학교명을 듣고 진지하게 물었다.

"너네 학교 강원도에 있는 거니?"

고모는 "지방을 대표하는 대학도 아닌 곳에 가서 뭘 어쩌자는 거냐"며 혀를 끌끌 찼다. 친척만이 아니다. 부모님마저 박씨의 학교를 부끄러워하는 눈치였다. 이젠 그런 부모님이 더 마음에 걸린다.

박현철씨의 또래 사촌들은 일명 '1류대학'은 아니어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을 다닌다. 친척들의 눈초리에 박씨는 괜한 열등감마저 느낀다. 박씨는 지난 학기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이런 소식을 듣고 고모는 또 박씨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지방대학에 다니면 남들보다 장학금 쉽게 받는 거 아니야?"

20년을 서울에 살았던 박현철씨. 박씨는 "이제야 지방의 설움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설움이 큰 탓일까? 대학에 들어온 이후 박씨는 온갖 핑계를 대며 명절을 피하고 있다.

[사례2] 집까지 버스로 6시간, 한국이 대륙도 아닌데...

추석이 없는 청춘은 박현철씨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대학 컴퓨터공학부에 다니는 장지연씨(20, 가명)는 다른 이유로 하소연을 했다. 경기도 양평이 고향인 장씨는 대학에 입학한 후 가족과의 한끼 식사도 힘든 일이 됐다.

지난 1학기 동안 장씨가 고향집에 간 횟수는 두 번. 기차를 이용해 고향집에 간다는 장씨는 "예약은 필수"라며 "주말 기차를 예약하지 않으면 귀향을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향집에서 학교로 돌아오는 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장씨는 "한 번은 기차를 예매 못해 월요일 수업을 빠진 적도 있다"고 말했다.

경남 OO터미널에서 양평 가는 표를 알아보고 있는 장혜원(20)씨.
 경남 OO터미널에서 양평 가는 표를 알아보고 있는 장혜원(20)씨.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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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기차 예약을 못해 장씨는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를 이용하면 장씨의 학교가 있는 경남 OO시에서 양평 집까지는 무려 6시간이 걸린다. OO버스터미널에는 양평행 버스가 없다. 인근 대도시 터미널로 나가야 한다. 물론 거기서도 양평행 직행 버스는없다. 동서울버스터미널로 간 뒤 양평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이러니 고향 가는 길이 막막하다. 장씨의 부모님은 "차라리 이번 추석에는 오지 말라"고 만류까지 하셨단다.

"우리집 식구가 다섯 명이거든요? 오빠는 집에서 가까운 학교 다니고, 동생도 양평에 있어요. 괜히 나만 가족들과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가족들끼리 다 아는 이야기인데 나만 모르고…. 집에 가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그나마 이게 저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니 그나마 위로가 돼요. 추석 때 그냥 기숙사에 남아 있겠다는 친구들도 많아요."

[사례3] 차비만 10만 원... 가정 대신 알바 현장으로

부산 OO대 조경학과에 다니는 강재일씨(24, 가명) 역시 수도권에서 살다가 지방으로 내려왔다. 재일씨에게도 추석은 없다. 원래 집은 인천시 연수구. 학기 중에는 아예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 방학 때 겨우 집에 가 얼마동안 지낸 뒤 내려온다.

강씨가 추석을 누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교통비 부담이다. 강씨가 집에 가는데 드는 비용은 왕복 10만 원. 누군가에게는 적은 돈이지만, 최저생계비가 15만 원인 재일씨에게는 부담되는 비용이다. 지금 그의 통장엔 3만 원이 남아 있다.

이번 학기 들어 강씨의 주머니 상태는 최악이다. 강씨는 학기까지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하지만 성적이 떨어지는 기숙사에서 나와 학교 앞 집을 구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 관리비에 전기세까지 합치면 5만 원이 더 든다. 자취를 하다 보니 생활비가 이전에 비해 두 배가 더 든다.

집에서 보내주는 밑반찬으로 겨우 밥은 먹고 산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는 안한 지 오래다. 그렇다고 내년 2월 졸업을 앞둔 강씨가 아르바이트만 하기도 힘들다. 자격증 준비에도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나 20대들이 많다. 사진은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의 한 장면.
 추석 연휴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나 20대들이 많다. 사진은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의 한 장면.
ⓒ M3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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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는 동네 보습학원에서 시험지 채점 아르바이트로 겨우 용돈 벌이를 한다. 일주일에 적게는 400~500장 정도, 많게는 600장에 달하는 시험지를 채점한다. 그래서 손에 쥐는 돈이 15만 원.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시간 구애를 받지 않아 다행이다. 

"추석 때 집에 왜 안 오느냐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요. 저라고 왜 집에 안 가고 싶겠어요. 교통비 때문에 집에 가기 힘들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고…. 취업 때문에도 눈치 보여요. 부모님은 제가 공부 하느라 바빠서 못 오는 줄 아세요."

강씨의 발목을 잡는 건 하나 더 있다. 바로 '단기 알바'. 추석 연휴 때 손님이 붐비는 대형마트나 추석 상품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해 높은 시급의 단기 알바를 많이 구한다. 이번에 강씨는 친구의 소개로 떡 만드는 생산직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시급은 6500원. 시험지 채점 알바에 비하면 '횡재'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남들 쉴 때 일하는 건 죽을 맛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강씨에게 추석은 가정과 풍요의 상징이 아니다.

추석이 외로운 청춘은 전국에 흩어져 있다.

덧붙이는 글 | 김다솜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합니다.



태그:#추석,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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