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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빨래 건조를 금지하는 아파트, 이유는 보기 싫고 위험해서

베란다 빨래건조대 설치를 금지하는 아파트가 늘고 있다. 보기에 좋지 않고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베란다 빨래건조대 설치를 금지하는 아파트가 늘고 있다. 보기에 좋지 않고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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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파트는 입주 초기부터 베란다 밖에 빨래건조대 설치를 금지하였습니다. 관리규약 제 49조와 안전상, 미관상의 이유로 민원이 제기되어 빨래건조대 설치를 금지하오니 빨래건조대를 설치한 입주민들께서는 자진하여 철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2012년 6월 19일 ○○○○2차아파트

요즘 밖에서 보이는 곳에 빨래 너는 것을 금지하는 아파트가 많단다. 안전상 이유와 함께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이유를 든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현실적인 고려도 깔려 있다. 어떤 이는 길을 걷다 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 기분이 나쁘다고 말한다.

어떻든 아파트에서 빨래 너는 풍경은 사라지는 추세라 한다. 최근 몇 년을 빼곤 평생 아파트와는 상관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생소하다. 낮은 주택이 많은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보이는 곳에 빨래를 너는 모습은 익숙하다.

어쩌면 보이는 곳에 빨래를 너는 일을 금지하는 풍경은 현재진행형이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아파트가 느는 추세와 무관하지 않을 터다. 현재 우리나라 주택 가운데 아파트는 60% 정도로 절반이 넘는다. 무엇보다 아파트가 계속 늘고 있다.

아예 밖에서 보이는 곳에 빨래를 널지 않기 때문에 베란다를 없애는 아파트 주인들도 많다고 한다. 집값을 높이기 위해 이름까지 바꾸는 상황이니 빨래 너는 것을 금지하는 게 그렇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빨래를 보이는 곳에 너는 게 지저분하다, 친근하다는 논쟁은 이미 70년대부터 있었다.
 빨래를 보이는 곳에 너는 게 지저분하다, 친근하다는 논쟁은 이미 70년대부터 있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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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널기에 대한 거부감이 생소하지만 그 역사는 짧지 않다. 1970년대부터 이미 아파트에서 빨래 너는 것에 대해 논란이 일었으니 말이다.

원로피아니스트 한옥수는 1976년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아파트 베란다에 너는 세탁물 풍경이 논란이 되는 세태를 아쉬워했다. 그는 "널려 있는 빨래로 인해서 가정적인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면서 아파트 베란다에 널린 빨래를 옹호했다.

이어 빨래를 보이는 곳에 널지 않은 서양의 아파트에 가봤더니 오히려 복도 같은 곳에 널어서 더 지저분하더라며 나름대로 논리를 편다.

이런 논리가 지금은 먹힐 수가 없다. 빨래건조기 때문이다. 건조기에 넣고 빨래를 돌리면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니 굳이 빨랫줄에 널지 않아도 된다. 2000년 2% 정도에 불과했던 건조기 보급률이 대략 10년이 지난 지금 10% 정도로 크게 는 것은 빨래건조에 대한 현 세태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따라가고 있는 미국의 경우 빨래건조기 보급률이 꽤 높다. 2006년 기준 81%였으니 대부분 가정에 건조기가 있다고 보는 게 맞다. 추세대로 간다면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골목은 시대에 역행한다. 여전히 사람들이 다니는 길목이나 옥상, 담 등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빨래를 널곤 한다. 이불이나 수건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고 바지나 신발도 종종 볼 수 있다. 드물지만 속옷이나 아이들 잠옷을 내건 경우도 있긴 하다.

혹자는 내걸린 빨래가 가난을 상징한다며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하긴 골목에 가난한 이들이 많이 사는 건 사실이니 내걸린 빨래와 가난이 연관성이 없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런데 만약 가난이 죄가 아니라면 내걸린 빨래를 꼭 터부시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내걸린 빨래가 건조한 도시에 생동감을 준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갈수록 골목은 사라지고, 아파트는 늘고 있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길을 걷다 빨래를 볼 날이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았다.

빨래를 감추는 사람들, 드러내는 사람들

어린 시절 잘 마른 이불 속에 들어가면 그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잘 마른 이불 속에 들어가면 그 느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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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빨래 널기와 걷기는 재미있는 놀이 가운데 하나였다. 어머니께서는 어린 남자아이 힘이라도 필요했는지, 아니면 심심할까 그랬는지 종종 옥상에 같이 빨래를 널러 가자고 하셨다.

빨래 널기는 사실 재미없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너는 건 힘들었고, 축축한 느낌도 싫었다. 재미있는 건 빨래 걷기를 할 때였다. 동생과 같이 옥상에 올라가 뽀송하게 마른 이불 속에 기어들어갔다. 햇빛을 담뿍 머금은 이불 속에 들어가면 따뜻하고 아늑했다.

빨래 걷기를 한다기보다는 이불 속에 들어가 온실놀이를 하고 있었으니 어머니로서는 방해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불 속에서 한껏 따뜻함을 즐기고 있는데, 어머니가 '훽' 이불을 걷어가버릴 때는 원망스럽기만 했다.

어쨌든 잘 마른 이불 속에 들어가는 게 좋아서 이불을 걷을 때는 어머니가 굳이 가자고 하지 않아도 따라나섰던 것 같다. 잘 마른 빨래를 만지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때도 빨래를 개기는커녕 만지작거리고만 있었으니 하등 도움이 안 됐겠지만 어머니가 크게 혼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빨래 널기와 걷기, 개기는 10대를 거쳐 20대, 30대, 40대까지 자취생활하는 내내 이어졌다. 옥상에 널기도 했고, 마당에 널기도 했으며, 창문에 걸치기도 했다. 빨래는 응당 햇볕에 말려야 한다는 게 지론이었고, 귀찮긴 했지만 가끔씩 대청소를 할 때면 이불을 담에 걸쳐 햇빛을 담뿍 머금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빨래를 널고 말렸으니 남들도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다. 세상은 매년 조금씩 변했으나, 나 또한 변하는 흐름 속에 있었으니 예민하게 느끼진 못했다.

중국 상하이의 한 아파트에서 본 풍경. 집집마다 장대에 매달아 빨래를 내놓은 풍경이 이채로웠다.
 중국 상하이의 한 아파트에서 본 풍경. 집집마다 장대에 매달아 빨래를 내놓은 풍경이 이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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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본토와 화교들이 많이 사는 나라에 갔을 때 풍경을 보고서야 우리 주변에서 빨래 너는 풍경이 많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중국인들이 사는 도시에선 빨래가 도시의 아주 중요한 장식물이었다.

그냥 베란다에 빨래를 내건 정도가 아니었다. 빨래를 긴 장대에 매달아 창문 밖으로 길게 뻗었기 때문에 아주 멀리서도 잘 보였다. 오로지 빨래를 햇빛에 많이 닿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을 뿐 보기에 흉하다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아파트엔 아예 장대를 걸 수 있게 홈이 만들어져 있었다. 일반 주택이나 저층 주택들이 있는 골목엔 집과 집 사이에 막대를 걸친 다음 빨래를 걸었다.

내걸린 내용물도 놀라웠다. 브래지어나 팬티 같은 속옷이 태연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네들은 빨래를 너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에 돌아오니 아파트나 길거리 풍경이 많이 달랐다. 아파트에선 내걸린 빨래를 보기 힘들었고, 대로변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내걸린 빨래를 볼 수 있는 곳은 주로 골목이었다.

빨래 널기를 금지하는 나라들, 빨래 널다 목숨 잃을 뻔하기도 

실제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선 빨래 널기를 금지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다. 빨랫줄 사용금지 조례(Clotheslinesban)를 상당히 많은 주가 채택했다. 도시풍경을 해친다는 이유에서다. 빨랫줄 사용금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창문 밖으로 빨래 대신 꽃이나 나무를 보고 싶다는 이유를 내세운다.

이들의 목소리는 상당히 강한 편이다. 빨랫줄 금지 조례를 무시하고 빨래를 마당에 널다 고소를 당하거나 총을 맞고 목숨을 잃을 뻔한 사람들도 있다. 빨래건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빨래를 말릴 자유(Drying for Freedom)>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빨래건조에 대한 논쟁을 다룬 영화 '드라잉 포 프리덤'
 빨래건조에 대한 논쟁을 다룬 영화 '드라잉 포 프리덤'
ⓒ 드라잉포프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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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나라인 캐나다나 유럽의 부국인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보이는 곳에 빨래를 말리는 것에 대해 무척 부정적이다.

펜실베이니아주 더블린의 침실 두 개짜리 콘도미니엄에 사는 목수 케빈 퍼스(27)는 주택조합으로부터 100달러의 벌금을 부과받고 잔뜩 화가 났다고 로이터 통신이 18일(이하 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햇볕에 빨래를 말리고 싶다. 어릴 적부터 늘 해오던 일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지방정부가 이런 단속을 하지 말도록 규정하는 법안이 플로리다와 유타, 메인, 버몬트, 콜로라도와 하와이 등 6개 주에서 이미 통과됐을 정도다. - <서울신문>(2009년 11월 20일)

중동의 부자나라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수도 아부다비에서도 빨래 너는 행위를 금지한다. 도시가 지저분해 보인다는 이유다. 빨래를 내걸면 벌금을 매기고, 크레인을 동원해 발코니에 널린 빨래를 모두 걷어가기도 한다.

지중해 국가인 키프로스 수도 니코시아에서도 보이는 곳에 빨래를 거는 행위를 금지한다. 니코시아 시장은 2004년 시 경관보존을 위해 야외에 빨래를 널면 벌금을 매기겠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본다면 빨래를 거는 행위가 후진국에서나 이뤄지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탈리아나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같은 나라에서 내걸린 빨래를 보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리에 빨래를 내걸기로 유명한 싱가포르도 1인당 소득수준은 우리나라보다 높다.

남유럽 사람들이나 중국인들이 빨래를 너는 것을 좋아하고 미국이나 캐나다, 중앙유럽 쪽 사람들이 빨래를 너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보면 문화 차이로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내걸린 빨래를 두고 "찌질해 보인다"라고 폄하하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잘사는 나라나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에서 내걸린 빨래를 봤을 때도 과연 사람들은 그렇게 느꼈을까.

집 밖 빨래건조를 다시 허용하자는 사람들, 이유는 '에너지 문제'

집밖에 빨래는 너는 게 가난해보이고 지저분해보인다며 싫어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집밖 빨래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골목일 것이다. 골목에 대한 이미지가 나아진다면 집밖 빨래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지지 않을까.
 집밖에 빨래는 너는 게 가난해보이고 지저분해보인다며 싫어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집밖 빨래에서 떠올리는 이미지는 골목일 것이다. 골목에 대한 이미지가 나아진다면 집밖 빨래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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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내걸린 빨래에 대한 재평가가 요즘 새롭게 이뤄지는 중이다. 보이는 곳에서 빨래를 말리는 것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대하는 편이었던 미국에서 벌써 새로운 바람이 분다. 메인, 버몬트, 유타, 콜로리다, 플로리다, 하와이주 등이 몇 년 전 집밖에 빨래를 널 수 있게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외 몇몇 주에서도 비슷한 법을 만들기 위해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호주 정부 또한 2010년 "거리에서 눈에 띄지 않으면"이라는 단서를 단 뒤 발코니나 건물에 빨래를 거는 것을 허용했다. 지역 가치를 떨어뜨린다며 반발한 이들이 있었지만 정부에선 새 법안이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을 떨어뜨린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일부 선진국에서 지역 가치를 떨어뜨린다며 비난을 받아온 집 밖 빨래건조를 옹호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이유는 환경 문제 때문이다. 빨래를 집 안에서 건조하기 위해 전기건조기를 돌리려면 꽤 많은 전기가 든다. 집 밖 빨래 건조 금지 조치는 건조기를 사거나 전기료를 내기 부담스러운 빈곤층에게 부당하다는 지적도 있다.

어찌 보면 먼나라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베란다나 마당, 옥상에 빨래를 내거는 이들이 많고, 법으로 금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건조기 설치 가정도 10%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설마 물을 사먹는 시절이 오겠어?"라며 코웃음 치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집값이 떨어진다면 물불을 안 가리는 쪽으로 가고 있다. 집밖 빨래 건조 금지 조례가 꼭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이미 관련 규약을 만든 일부 아파트들을 보면 그렇다.

집밖 빨래 건조 금지를 내걸었던 일부 선진국들을 본받는다면 그들 나라에서 이뤄지는 집밖 빨래 건조 허용이라는 흐름에 대해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나라 골목에선 이미 충분히 집 밖 빨래 건조를 활용하는 중이다. 집 밖 빨래 건조가 가난을 상징한다면 이유는 골목 이미지가 낡았기 때문이다. 골목을 좀 더 살기 좋게 가꾸고, 골목에 대한 이미지가 좀 더 좋아진다면 집밖 빨래 건조에 대한 이미지도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시대 흐름이 집밖 빨래 건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중이다.


태그:#빨래, #빨래건조, #빨래건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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