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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논란이 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도중 박 후보가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논란이 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도중 박 후보가 잠시 눈을 감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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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뱉은 말은 뒤집지 않는 게 신념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지만, 결국 '두 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에 대해선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사과로 마무리된 '박근혜의 역사인식' 논란의 흐름을 보면 상대방의 공세 때문이라기보다는 박 후보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박 후보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지난 7월 16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5·16은 돌아가신 아버지로선 불가피했던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해 논란을 촉발 시켰다. 2007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5·16은 구국의 혁명"이라고 평가했던 것보단 다소 중립쪽으로 이동했지만 군사 쿠데타에 대한 긍정 평가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박 후보는 동시에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에 대해선 "찬반 논란이 있으니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박정희 정권의 공과에 대해선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했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박 후보의 이런 평가는 야당뿐 아니라 당 내 다른 경선 후보들로부터도 강한 반발을 불렀다. 김문수 당시 경선 후보는 "5·16 자체를 그 뒤의 산업혁명의 성공 때문에 잘 됐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후보의 이런 역사인식은 이후 경선에서 김 후보뿐 아니라 임태희·김태호 후보 등 비박 후보들의 주요한 '박근혜 공략 포인트'가 됐다.

경선에선 '정면돌파' 선택... 새누리당 선거인단 86.2% 몰표

그러나 박 후보는 자신의 역사인식을 바꾸기보단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5·16은 최선의 선택' 발언이 있은 뒤 이틀 후인 7월 18일 박 후보는 강원도 철원에서 "정치권에서 국민의 삶을 챙겨야 할 일도 많은데 계속 그것 가지고 역사논쟁을 할 거냐고"며 "저뿐 아니라 저처럼 생각하는 국민들도 많이 계신다. 그러면 그렇게 생각하는 모든 국민들이 아주 잘못된 사람들이냐. 정치인이 그렇게 말할 순 없다"고 말했다.

박 후보가 자신의 역사인식에 대한 공세를 '박정희에 우호적인 국민들을 폄하하는 것'으로 몰아갈 수 있었던 것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정희 정권에 대한 긍정 평가가 절반을 넘거나 적어도 40% 이상 높은 수치를 보인 데 기반했다.

새누리당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의 역사인식'은 별 문제가 안됐다.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은 박 후보에 86.2%라는 경이적인 득표율을 안겨줬다(일반 유권자 여론조사를 30% 반영한 최종 득표율은 84%).

새누리당의 대선후보가 된 박 후보는 경선 바로 다음 날인 8월 21일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걸로 시작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를 예방하는 등 파격행보를 선보였다. 이에 '과거와의 화해' '대통합 행보' 등의 평가를 받았다.

박 후보는 이어서 전태일재단 방문을 시도했지만 전태일 열사 유족과 쌍용차 해고 노동자 등에 가로막혔다. 박 후보가 유신독재에 대한 반성과 재평가 없이 일방적으로 내민 손이 거부당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인 것.

박 후보에 대한 유신독재 재평가 요구는 이후로 본격화됐다. 8월 29일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홍사덕 전 의원이 "유신이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수출 100억 달러를 못 넘었을 것"이라고 유신을 옹호하면서 '박 후보가 유신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받게 됐다.

'두 개의 판결'로 자기 합리화 시도... '두 개의 사건'은 몰랐네

지난 12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열린 '인혁당재건위사건 '사법살인' 부정하는 박근혜 규탄 기자회견'에서 고 송상진씨 부인 김진생씨, 고 김용원씨 부인 유승옥씨, 고 우홍선씨 부인 강순희씨가 울부짖고 있다.
 지난 12일 오후 여의도 새누리당사앞에서 열린 '인혁당재건위사건 '사법살인' 부정하는 박근혜 규탄 기자회견'에서 고 송상진씨 부인 김진생씨, 고 김용원씨 부인 유승옥씨, 고 우홍선씨 부인 강순희씨가 울부짖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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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후보는 지난 10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한 인터뷰에서 '유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문제가 된 '두 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을 내놨다.

박 후보는 "그 부분에 대해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또 어떤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손 교수가 '거기서 특별히 더 진전된 것은 없냐'고 다시 한 번 확인을 요구하자 박 후보는 "예, 왜냐하면 다른 판단이 나왔기 때문에, 똑같은 대법원에서"라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이 '두 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의 파장은 컸다. '사법살인'으로 평가되는 2차 인혁당 사건 당사자들에 대해선 2007년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된 바 있는데, 이 재심으로 이미 무효가 된 1975년 대법원의 사형선고에 박 후보가 똑같이 정당성을 부여한 것.

유신의 가장 어두운 측면인 2차 인혁당 사법살인에 대해서도 박 후보가 전향적인 평가를 거부하면서 '박근혜의 박정희 평가'는 뜨거운 논란거리가 됐다. 유신독재 하에서 '사법살인'으로 고통받은 유가족들은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국가가 살해한 남편들의 영정을 들고 항의했고, 박 후보가 사법체계에 대해 무지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러나 박 후보는 자신의 '두 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자신의 발언이 옳았음을 강변했다. 문제의 발언이 있었던 바로 다음날 박 후보는 국회에서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어제(10일) 말한 대로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답했다.

'인혁당이 실재했다'는 일각의 주장을 거론하면서 자신의 '두 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을 정당화하려고 한 것. 그러나 박 후보가 거론한 '인혁당 실재' 주장은 용공조작사건으로 평가되는 1964년 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것이고, '사법살인'이 저질러진 2차 인혁당 사건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이라는 점에서 박 후보의 현대사 인식부재만 드러내고 말았다.

홍일표의 '당이 대신 사과' 부인하다 결국 본인이 고개 숙여

7월 16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열린 대선 예비후보 초청 정치부장 포럼에 참석해 5.16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박 예비후보는 "5.16이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초석을 만들었다고 본다"며 "(아버지가) 바른 판단을 내리셨다"고 말했다.
 7월 16일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예비후보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열린 대선 예비후보 초청 정치부장 포럼에 참석해 5.16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박 예비후보는 "5.16이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초석을 만들었다고 본다"며 "(아버지가) 바른 판단을 내리셨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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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경선까지는 별 문제가 안 될 것 같았던 박 후보의 '박정희 정권 평가'가 본격 대선 국면에 앞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자 새누리당 내에서도 부정적인 평가가 제기됐고, 급기야는 대변인이 물러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계파색이 옅은 홍일표 당시 새누리당 대변인은 지난 12일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 당이 대신 사과하는 논평을 냈지만, 박 후보가 홍 대변인의 사과를 부인하면서 당과 후보간의 혼선과 소통부재를 드러냈다.

홍 대변인이 책임을 지고 대변인직을 물러났고, 그 자리는 친박계 핵심 김재원 의원이 맡았다. 박 후보는 '두 개의 인혁당 판결' 발언이 있은 14일 만에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라면서 고개를 숙였다.


태그:#박근혜, #인혁당, #유신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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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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