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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볼라벤이 상륙한 지난달 28일, 경상남도 거창의 사과농장에 낙과피해가 발생했다.
 태풍 볼라벤이 상륙한 지난달 28일, 경상남도 거창의 사과농장에 낙과피해가 발생했다.
ⓒ 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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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약에 할증에 적은 보상까지…. 국비를 지원해주는 농작물재해보험이 농협을 위한 것인지, 농민을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사과농장을 경영하는 이종응(가명)씨의 말이다. 이씨는 1만5000㎡ 규모의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다 이번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전체의 50%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현재 시세로 따지면 5000만 원 상당이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 농협에서 운용하는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했지만, 이씨는 "실질적인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지난 2010년, 한 차례 쏟아진 우박으로 전체 과수원의 90%(9000만 원 상당)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을때도 이씨가 수령한 보상금은 2000만 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자부담 200만 원(국가보조금 포함 1000만 원)의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했는데도 실비를 크게 밑도는 보상만 받았습니다. 보험을 산정할 때, 피해를 입은 사과 중에서 시장 출하용 빼고 과즙용 빼고 계산하니까 도저히 답이 없는 거죠."

이렇듯 수확의 재미를 느껴야 하는 가을에 태풍 볼라벤으로 피해를 입은 농가들이 농작물재해보험으로 속병을 앓고 있다. 힘들게 키운 농작물의 피해를 봐서는 가입을 해야 하지만, 수십만 원부터 수백만 원에 달하는 보험금이 부담되고 이것저것 다 떼고 보상을 하다 보니 실질적인 보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시세에 턱없이 모자란 보험금... 낙과 판매는 사실상 '불가능'

태풍피해는 낙과피해와 착과피해로 분류된다. 낙과피해는 과실이 바닥에 떨어진 경우며 착과피해는 달려 있는 상태에서 입은 피해를 뜻한다. 하지만 과실이 바닥에 떨어졌다고 해서 전부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농작물재해보험 약관에 따르면 낙과의 경우 피해인정계수를 적용해 감수량을 조사한다. 피해인정계수는 떨어진 과일을 정상과실, 50%, 80%, 100%형 피해과실로 분류한다. 여기에 정상과실은 피해인정계수를 0으로, 50%는 피해인정계수 0.5, 80%는 피해인정계수 0.8, 100%는 피해인정계수 1로 계산한다.

한 나무에서 100개의 과실이 떨어졌다고 해도 100의 피해가 아닌, 피해인정계수를 토대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낙과가 발생했더라도 50% 미만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판단되면 보상을 받지 못한다.

피해과실 x 피해인정계수 = 낙과 감수과실 수
예) 100개의 과실이 50%형 피해과실이라면 50(100 x 0.5)이 감수과실 수로 인정

문제는 농가의 경우 낙과를 판매하기가 사실상 힘들다는 점이다. 떨어진 사과를 분류하는 일손도 부족할 뿐만 아니라 분류하는 동안 사과가 썩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대다수 농가들은 낙과를 사과즙을 짜내는 용도로밖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럴 경우, 일반적인 판매가격의 1/5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착과손해는 100개 중 5개만 인정... "일부러 과일 떨어뜨린다"

8월 30일, 전남 나주시 봉황면의 한 배 과수원 풍경. 태풍 볼라벤과 덴빈이 연이어 휩쓸고 지나간 후 70%가 넘는 배들이 땅에 떨어져 피해가 막심하다.
 8월 30일, 전남 나주시 봉황면의 한 배 과수원 풍경. 태풍 볼라벤과 덴빈이 연이어 휩쓸고 지나간 후 70%가 넘는 배들이 땅에 떨어져 피해가 막심하다.
ⓒ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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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태풍으로 인해 과실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도 강한 바람으로 인해 과실끼리, 혹은 나무에 부딪혀 이른바 '멍'이 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실은 심한 경우 판매를 못하기도 한다. 이를 감안해 보험에도 착과손해로 인정, 보장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농협의 농작물재해보험은 착과 손해를 낙과 감수과실 수의 단 5%만 보장해 준다. 250개의 과실이 열리는 나무에서 100의 낙과가 발생했다면, 남은 150개 중 단 7개만 착과손해(멍이 든 것)로 인정된다.

이런 상황이라 일부 농가들이 태풍피해의 적절한 보상을 위해 일부러 멍이 든 과실을 떨어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달려 있어서 보상을 적게 받느니 차라리 떨어뜨려 감수 과실이라도 늘리려는 속셈이다.

같은 지역에서 사과농장을 경영하는 김건영(가명)씨는 "떨어진 사과나 멍든 사과는 상품성이 없어 아는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판매하지 않으면 사과즙을 내는 방법밖에 없다"며 "비싼 보험료를 내는데 사실상 받는 보험료는 적어 다들 (농작물재해보험 가입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지역농협 농작물재해보험 담당자는 "수확하고 있는 과실은 떨어져도 팔 수 있다고 판단해 이렇게 적용하고 있다. 착과손해는 정확한 계수가 파악이 안 돼 기준만 정해놓은 것"이라며 "실제 농민들에게 착과손해로 계산되는 비율은 10% 수준"이라고 항변했다.

한 번 보상받으면 보험료 할증... "자동차보험도 아니고"

문제는 또 있다. 태풍(강풍), 우박으로 인한 과실피해를 제외한 서리 또는 기온의 하강으로 농작물이 얼어버리는 '봄동상해', 과실 또는 잎이 얼어 생기는 '가을동상해', 태풍과 집중호우로 인한 '나무손해' 등은 특약으로 규정돼 있어 추가로 가입을 해야 한다. 특히, 추가가입으로 드는 비용이 적게는 10만 원부터 많게는 30만 원 수준이라 농가들이 꺼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나무손해보장의 경우 자기부담금을 100만 원으로 규정해 그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경우에만 보상되며 일반적인 보험과는 달리 한시적인 지급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농업농민정책연구소인 '녀름'이 지난 2011년 10월에 작성한 <농업재해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재해보험 가입 경험자의 34.4%가 '제한적인 대상재해' 때문에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또, 재해보험 미가입자의 32.1%도 마찬가지로 가입이 꺼려지는 이유로 '제한적 대상 재해'를 꼽았다.

'녀름'은 보고서에서 1헥타르의 과수원을 가지고 있는 농민이 보험에 가입할 때 내는 보험료가 75만 원 상당이며 동해나 집중호우를 추가하려면 각각 몇 십만 원씩을 더 내야 할 뿐만 아니라, 낙과율이 20% 미만이면 보상을 받을 수 없어 부담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문제도 있다. 농산물재해보험의 경우, 자동차보험처럼 한 번 보상을 받은 농가는 다음 보험 가입 시 보험료가 할증된다. 특히, 5년간의 할증기간 중 또 피해를 받으면 추가할증이 있다.

거창군농민회 관계자는 "자동차는 운전자의 성향에 따라 사고율이 다르기 때문에 할증 적용이 가능하지만, 농작물 재해는 하늘이 내려주는 것"이라며 "보험금을 부당하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조항이 붙은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들에 대해 지역농협 농작물재해보험 담당자는 "기본 보장을 넓혀 보험료를 올리는 것보다 가장 보편적인 태풍 피해인 낙과와 과실 손해보장에 중점을 두는 것이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보험료 할증 문제에 대해서는 "자연재해는 지역별로 빈도 차이가 확연해 적게 피해를 입는 지역 농가들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할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거창인터넷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농산물재해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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