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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7일 일요일

Carbondale, Illinois - Chester, Illinois
55mile = 88.5km

모처럼 푹 쉬려고 벼렸던 카본데일(Carbondale)에서 계획이 틀어져버렸다. 소개받았던 한국인 교수님은 세미나 참석차 시카고에 있어서 내게 한인 목사님 집을 소개해주었다. 위치를 알았더라면 약속을 잡지 않았을 텐데.

카본데일에 오는 동안 힘겹게 오르내렸던 언덕길을 다시 6마일 되짚어 가야 했다. 자전거 여행자들은 공감하겠지만 그날 주행을 마치고 몸이 풀려버린 상태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피로감은 상당하다. 다음날 예배 준비에 바쁜 목사님 부부께 폐를 끼치기도 했거니와 지친 육신에 적당한 휴식도 선사하지 못했다.

공은 오늘로 넘어왔다. 일리노이 주와 미주리 주 접경지역에 위치한 체스터(Chester)까지는 55마일. 발걸음을 서둘러 일찍 쉬도록 하자.

누구의 신발일까? 상업과 전령의 신 헤르메스(Hermes)가 바삐 가다가 운동화 끈이 걸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 전깃줄에 걸려있는 신발 누구의 신발일까? 상업과 전령의 신 헤르메스(Hermes)가 바삐 가다가 운동화 끈이 걸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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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Mississippi) 강변에 위치한 소도시 체스터는 다리 하나를 두고 미주리 주와 이어진다. 인구는 8000여 명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중 3000명이 인근에 위치한 교도소 수감자. 인구 센서스의 맹점이다.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이 도시가 유일하게 자랑하는 한 가지. 바로 뽀빠이의 고향이라는 사실.

뽀빠이를 탄생시킨 엘지 크라이슬러 세가르(Elzie Crisler Segar)는 1894년 12월 8일 체스터(Chester)에서 태어났다. 뽀빠이로 유명세를 얻고 난 후 캘리포니아로 이사 간 그는 1938년 10월 13일에 산타 모니카(Santa Monica)에서 생을 마쳤다.

도시 곳곳에는 뽀빠이(Popeye)를 비롯해 연인 올리브(Olive), 라이벌 브루터스(Brutus), 햄버거를 좋아하는 친구 윔피(Wimpy), 마법의 개 유진 더 지프(Eugene the jeep) 등의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마을 곳곳에서 뽀빠이 등장인물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벽화나 동상들을 통해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 뽀빠이의 고향, 체스터(Chester) 마을 곳곳에서 뽀빠이 등장인물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벽화나 동상들을 통해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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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빠이는 1929년 1월 17일 <골무극장(Thimble Theater)>이라는 제목의 잡지 만화 조연으로 처음 등장했다. 훗날 파라마운트(paramount)의 자회사가 된 플라이셔(Fleischers) 스튜디오는 1933년 뽀빠이 캐릭터들을 각색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30년대 최고의 인기에 힘입어 1957년까지 제작이 계속된다.

뽀빠이는 위기에 처하면 시금치를 먹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데 실제 시금치는 칼로리가 아주 낮아 힘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뽀빠이 만화의 인기 덕분에 1930년대 미국에서는 시금치 소비량이 30%나 증가했다고 한다.

나도 뽀빠이처럼 힘을 내기 위해서는 쉴 곳을 찾아야 한다. 체스터에는 자전거 여행자들을 위한 무료 숙소가 있다. 독수리공제조합(Fraternal order of Eagles)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을 지닌 술집에서 자전거 여행자들을 위해 판잣집을 하나 만들어 놓았다.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묻자 한 아저씨가 트럭을 몰고 나왔다. 데이브 록헤드(Dave Lochhead) 아저씨는 바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엉겁결에 직원 대신 내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불타는 해골 바가지 티셔츠에 커다란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는 데이브는 공무원이라 보기에는 자유인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목마른 내 속을 알아챘는지 그가 맥주를 한 병 사줬다. 따뜻한 친절로 한껏 누그러진 마음에 들이키는 쌉싸름한 맥주의 향미.

한국에서 온 나를 유독 반기는 이유가 있었다. 데이브의 아버지는 젊었을 적 한국전쟁에 참전했었고 아직도 한국에 강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를 부모님 집으로 초대했다.

딘 록헤드(Dean Lochhead)씨가 속한 대대(大隊)는 다른 두 대대(大隊)와 함께 일본 훗카이도에 주둔하다가 1952년 부산으로 이동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의 부대는 자리를 지켰고 33개월 동안 한국의 격변기를 온 몸으로 겪었다. 처참했던 한국의 참상을 두 눈으로 봤던 딘 할아버지는 가끔 한국 관련 뉴스를 보며 놀란다.

"이제는 미국보다 더 발전했다는 생각이 든다네. 대단한 나라야."

이제 79세인 그는 만성 폐질환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대화 도중에도 이따금 기침을 했다. 몸을 아끼지 않고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던 아버지를 데이브는 깊이 존경했다. 요즘 미국인들은 부모에 대한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그게 미국만의 문제랴? 장유유서의 가치를 떠받들던 동양도 비슷한 꼴인 걸 보면 싸가지도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번지나보다.

데이브 록헤드(Dave Lochhead)와 쉘리 라샹스(Shelly Lachance).
▲ 아름다운 커플 데이브 록헤드(Dave Lochhead)와 쉘리 라샹스(Shelly Lachance).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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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또 한 사람을 소개해준다. 셀리(Shelly)는 아직 부인은 아니다. 2년 전 부인과 사별한 데이브에게 새롭게 다가온 연인이다. 이제는 성인이 된 세 딸의 동의를 얻어 결혼을 하겠다는데, 과거의 상처를 잊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를 나 또한 속으로 빌었다.

저녁을 사준 데이브가 집으로 돌아가고 홀로 바에 앉아 있다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었다. 릭(Rick), 크리스(Kris), 제이슨(Jason) 세 사람은 내가 자전거 여행자임을 알아보고 피자를 사줬다. 알고 봤더니 다들 데이브의 친구들이다. 역시 좋은 사람 옆에는 항상 좋은 친구들이 머무른다. 연인 사이인 크리스와 제이슨은 집에서 직접 꺼내온 과일까지 한 아름 품에 안겨주었다. 분에 넘치는 대접이다.

친절한 사람들과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다보니 애초 계획했던 휴식은 물 건너갔다. 대신 정신적 만족감이 넘쳐흘러 피로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이번 여행에서 체스터는 또 하나의 좋은 기억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뽀빠이가 아니라 착한 사람들의 도시로.

6월 18일 월요일

Chester, Illinois - Pilot knob, Missouri
63mile = 101.4km

뽀빠이의 고향 체스터(Chester)를 떠난다. 미시시피 강을 사이에 두고 일리노이 주와 미주리 주가 마주보고 있다. 150번 국도가 다리를 건너니 51번으로 바뀌었다. 갓길이 좁아서 옆으로 지나는 트럭과 승용차들이 무섭기만 하다. 한시라도 빨리 한적한 도로로 바뀌길 바라며 페달을 밟는다.

다리만 건너면 일리노이 주에서 미주리 주로 넘어간다.
▲ 트럭 바이패스(Truck Bypass) 다리만 건너면 일리노이 주에서 미주리 주로 넘어간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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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의로 근무할 당시 아는 형님이 자전거 여행을 하다 들렀던 기억이 난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었다. 트럭 하나가 뒤에 따라 붙었다. 거리를 좁히던 차량이 옆으로 지나가면서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순간적인 풍압에 못 이겨 휘청대던 순간이 며칠이 지났건만 그에게는 생생했다.

같은 입장이 되고 보니 실감이 난다. 무엇보다도 미국 트럭은 한국에 비해 풍채부터 우월하다. 영화 <트랜스포머>(Transformer)에 등장했던 육중한 떡대가 몸을 들이밀 때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음속으로 주행하는 전투기 뒤에서 약간의 간격을 두고 소리가 쫓아가듯, 트럭이 나를 지나치고 잠시 후.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온 몸을 휘감아든다. 정신을 못 차릴 만한 풍압. 정신 단디 차리지 않으면 핸들이 꺾여 사고가 날 수도 있다.

교통량이 줄어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 저쪽 언덕에서 자전거 한 대가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접선 형태를 갖춘다. 나는 오른쪽 갓길에, 그는 왼쪽 갓길에 자전거를 각자 세우고 안전선을 확보했다. 이차선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통성명을 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영국에서 날아온 이 친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을 향하고 있다. 이제 절반 이상은 마친 셈. 트랜스 아메리카 트레일(Trans America Trail)을 정규반에 비유하자면 이렇게 웨스턴 익스프레스(Western express) 코스는 속성반이다. 콜로라도에서 와이오밍, 몬태나, 아이다호, 오리건 주를 밟지 않고 유타, 네바다, 캘리포니아를 거치면서 횡단에 필요한 거리를 455마일(732km) 단축시키기 때문. 록키 산맥과 옐로 스톤(yellow stone) 국립공원의 험난한 산세를 겪지 않은 그들 앞에는 애팔래치안 산맥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헤어지기 전 내 앞길에 언덕이 많다는 귀띔을 주었다. 참말이다. 스무고개도 아니고 언덕이 왜 이리 많은지. 파밍턴(farmington)을 지나기 전까지 평균 속도가 8마일 밖에 나오지 않았다. 짐을 획기적으로 줄인 이후로 가장 느린 속도다. 결국 미주리도 내 욕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힘껏 외쳐줬다. 미주리! 이 XXX.

6월 19일 화요일

Pilot knob, MO - Eminence, MO
70mile = 112km

땅에게도 인격이 있다면 미주리 주는 아마 고약한 심보를 가졌을 것이다. 무수한 언덕을 오르내리며 욕을 수없이 해댔다. 오르막과 오르막 사이가 너무 짧아 내리막의 여유를 맛보기도 전에 다시 힘겹게 페달을 밟아야 한다.

바람까지 가세. 산맥이 없어서인지 다른 지역에 비하면 더욱 거세다. 정도껏 불면 시원하기라도 할 텐데 자전거를 양 옆으로 흔들어 댈 때는 할 말이 없다.

언덕을 적어도 스무 개 이상은 넘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쏜살같이 내지르려는데 맞은편에서 누군가 자전거를 끌고 올라온다. 트레일러에다 짐을 실은 자전거 라이더다. 수염이 허옇게 나신 장년층이 미국 횡단에 도전하는 중.

오리건 주 애스토리아(Astoria)에서 시작해 버지니아 주 요크타운(Yorktown)으로 가고 있다. 더운 날씨에 자전거를 끌고 오르느라 온 몸은 땀 범벅이다. 미 해군에서 복무하다가 그만둔 지 7주째. 대체복무를 최근에 마친 나로서는 그 누구보다 동질감을 느낀다.

혼자여서 외로움을 느끼다가도 길 위에서 많은 솔로 라이더를 보면 위안을 얻는다. 함께 하지는 않아도 이 길 어딘가 나처럼 페달을 굴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Have a safe trip!(안전한 여행 하세요)"

서로 행운을 빌어주며 자전거에 올라탔다. 만나면 헤어진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구절은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면 절로 실감한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사람을 만나도 대화를 오래 끌기 어렵다. 그저 달릴 뿐이다. 웬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안장에서 내리지도 않는다.

목적지에 닿을 무렵 보이는 마을 표지판은 언제나 반갑다.
▲ 에미넨스(Eminence) 도착 목적지에 닿을 무렵 보이는 마을 표지판은 언제나 반갑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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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8시에 출발했는데 오후 7시에 드디어 에미넨스(Eminence)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악조건 속에서 겨우나마 70마일을 이동했다.

애로우헤드 캠핑장(Arrowhead campground)에 들어갔다. 젋은 관리인은 원하는 곳에 텐트를 세우라 했고 나는 주변을 배회하며 적당한 장소를 살핀다. 알맞은 땅을 발견했는데 누군가 먼저 와 있었다. 게리 조(Gary joe) 아저씨는 RV차량(Recreational vehicle)을 집 삼아 3주째 여기 머물고 있다. 직속 상사와 둘이서 간단한 토목공사를 벌이는 중이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시골에서 그는 대화에 굶주렸나 보다. 그동안 참아왔던 말을 나에게 쏘아댄다. 미국인답지 않게 공자님의 명언을 주워섬기는 그는 스스로 만든 10계명을 보여주었다.

1. 약자를 보호하라.
2. 명예롭게 살아라.
3. 만인을 위해 투쟁하라.
4. 권위를 존중하라.
5. 형제 자매를 지켜라.
6. 항상 진실만을 말하라.
7. 주변의 도전을 당당하게 받아들여라.
8. 적에게 등을 보이지 말라.
9. 종교적 신념을 가져라.
10. 무지한 자들을 가르쳐라.

범상치 않은 외모만큼이나 그의 철학 또한 남다르다.
▲ 게리 조(Gary joe) 범상치 않은 외모만큼이나 그의 철학 또한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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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에 아내와 세 아들이 있건만 이 남자는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미국 각 주를 바람처럼 떠돌아 다니며 이런저런 잡일로 돈을 번다. "나한테는 일이 아니라 휴가나 마찬가지야. 덕분에 안 가본 데가 없지." 캐나다에서는 3개월 동안 막장을 드나들며 석탄을 캤다. 8만2000달러를 벌었다는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8200달러 아니에요?"
"아냐. 8만2000달러야."

금액이야 어쨌든 지금은 한 푼도 남아있지 않다. 저축은커녕 하나도 남김없이 써 버린 것이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나. 그는 자유를 사랑했다. 무엇에든 얽매이기 싫어한다. 배가 고프면 나무 열매나 버섯을 따먹고 일은 하고 싶을 때만 한다.

"세상 만물은 자기에게 맞는 위치가 있어. 제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지. 석유 때문에 말썽이 많아. 기름이 유출되어 바다는 죽어가고,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공기가 더러워지고 있어. 국가 간에 싸움도 잦지.

부시는 석유를 빼앗으려고 이라크를 침범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 원래 석유는 땅 속에 갇혀 있을 운명이야. 지하세계에 있던 석유가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모든 문제가 생긴 거지.

원유가 뽑히니까 그만큼 지구 중심에 공간이 생겼어. 지구는 일정한 축을 기준으로 자전과 공전을 하는데, 무게 중심이 어긋나니까 모든 게 뒤틀려 버렸어. 그 때문에 무수한 기상이변이 생기는 거지."

본인이 직접 그린 삽화. 그림만 봐도 그는 동양문화에 상당히 쉼취한 듯 보인다.
▲ 게리 조(Gary joe)의 그림 본인이 직접 그린 삽화. 그림만 봐도 그는 동양문화에 상당히 쉼취한 듯 보인다.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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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캠핑장에서 만난 거리의 철학자는 이윽고 모닥불을 피웠다. 어느새 꺼져버린 가로등 대신 새빨갛게 타들어가는 숯불이 은은하게 우리를 비추었다. 땅에서는 두런두런 말소리가 살금살금 퍼져나가고,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점점이 박혀 가느다란 빛줄기를 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기고 그는 잠자리에 들었다.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성공은 의미가 없어. 돈은 사람을 타락시키지.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해."


태그:#미국,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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